30년 넘게 지속되어 오던 가정폭력이 결국 살인을 불렀다. 30년 동안 온갖 폭력으로 가족을 괴롭히던 아버지. 아들은 자신과 가족들을 보호하려다 그를 우발적으로 죽이게 됐다. 일각에서는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이 흘러나온다. 본지는 살인 시점에서는 다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30년동안 벌어진 그 아버지의 행태를 살펴 보았다. 편집자주

“고분고분하지 않은 니 콧대를 꺾어주려고, 보복하기 위해서 결혼했다.”

1971년 12월 28일. 결혼식을 올린 3일 만에 김순희(가명) 씨는 신혼의 단꿈을 버려야 했다. 남편의 말 한마디는 청천벽력처럼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과 함께 친정에 갔던 날 반갑다고 손 내미는 사촌동생에게 돼먹지 않은 집안이라며 멱살을 잡고 소란을 피웠던 남편. 눈앞이 캄캄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그 날 이후 남편은 사촌남동생과의 관계를 캐물으며 순희 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 때 깨달아야 했었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억지 만남을 강요할 때, 군대에서 휴가 나왔던 날 순희 씨를 속여 강제로 순결을 잃게 했을 때 미리 알아차렸어야 했다. 이것이 30년간 줄기차게 이어진 폭력의 서막이 될 줄이야.

아버지를 죽인 게 아니다

2002년 10월 27일 새벽 3시. 한 청년이 마스크를 쓰고 야구방망이를 든 채 골목에 숨어 있다. 늦은 가을 밤이라 옷섶을 여미게 할 정도로 추운 날씨였지만 청년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한 가정집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어느덧 불이 켜지고 집안에 있던 여자가 집밖에 위치한 공동화장실에 가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청년은 그 집의 안방으로 진입했다.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는 자고 있던 그 집안의 남자를 내리찍었고 그 남자는 그 날 오전 11시 40분 경 숨을 거둔다.

죽은 남자는 청년과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던 여성을 20년 동안 성폭행 해온 범인이었으며 청년이 목숨처럼 사랑하는 누이와 전 부인, 새 애인을 성추행 했고, 청년의 어머니와 자신에게 30년 동안 폭력을 행사했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죽은 이는 청년의 아버지이자 김순희 씨의 남편이다.

그러나 청년은 아버지를 죽일 목적으로 야구방망이를 준비했던 게 아니었다. 아버지가 맞아 몸을 움직이지 못하면 어머니 김순희 씨를 때리지 못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것이다. 청년은 그 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항거했다. 그는 아버지와 살면서 단 한번도 그와 싸우지 않았다. 아버지와 대화하는 법도 몰랐다. 온 가족은 30년 동안 아버지에게 순종해야만 했다. 그동안 그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유일한 일은 어머니 대신 맞는 것 하나였다. 처음으로 저지른 아버지에 대한 저항은 어처구니없이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청년은 아버지를 죽였다는 자책감에 무기력해졌고, 경찰이 묻는 대로 모두 다 실토했다. 삶을 지속할 아무런 이유도 없게 느껴졌다. 청년의 고분고분한 자백으로 사건은 쉽게 덮어졌고 2003년 1월 28일 서울지법 형사 제21부는 그에게 존속살해 죄로 징역 7년을 선고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1월 30일 성명서를 발표해 “가정폭력 피해자 이모 씨(가명)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성명을 통해 “재판부는 그동안의 폭력상황에서 이모 씨가 갖게 된 정신적인 피해 및 후유증에 대해 세심히 살펴봐야 한다. 이모 씨는 아버지에 대한 엄청난 분노, 증오, 두려움이 혼재되어 있으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는 사실 앞에 무력감을 느끼고,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이들은 모두 30여 년 동안 당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었다”며 재판부에 감형을 촉구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배삼희 변호사는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를 때 이씨가 대항해 저지른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정당방위 대신 고의성을 가진 살해라고 인식되는 것 같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라. 오죽하면 아버지를 때려서라도 어머니를 매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겠는가. 2심에서 우리는 이씨의 정신감정을 의뢰한 상태다”라고 전했다. 배 변호사는 또 “아이러니하게도 이씨의 가족은 아버지가 죽은 뒤 마음의 평정을 얻었다. 변호사접견에서 그는 지난 세월동안 외롭고 힘들었으며 이 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다

어머니 김순희 씨와 딸은 재판부에 장문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이 탄원서에는 이 가족의 아버지가 휘두른 폭력 속에 숨죽여 살아왔던 지난 30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임신 9개월. 첫딸의 출산을 기다리던 어느 날의 일이다. 친구가 집으로 찾아와 점심을 지어 먹여 보냈고 남편은 “뭐가 좋아 히히 거리냐”고 시비를 건 끝에 김순희 씨의 따귀를 때렸다. 서러움에 우는 그에게 우는 소리를 들으면 머리가 거꾸로 선다고 발길질을 시작, 쓰러져 있다가 찬물세례를 받고 일어났을 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그 충격으로 양수가 터졌고 첫 딸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리고 3남매를 낳아 키우는 30년 동안 폭력은 계속됐다. 폭력은 점점 도를 넘었다. 허리띠로 때리는 것은 예사였고 칼로 협박을 했고 바늘로 발등을 찌르거나 담뱃불로 김순희 씨의 몸을 지졌다.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집으로 돌아와 소리를 지르고 밥상을 엎어야 해결됐다. 사업은 하는 일마다 망하는 게 일쑤였고 그때마다 친정에서 돈을 빌렸다. 돈을 빌리지 못하면 김순희 씨에게 화풀이를 했다. 아무리 할말이 있고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하더라도 “네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용서해 주세요.”이런 말을 화가 풀릴 때까지 반복해야 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언제나 김순희 씨를 의심하고 시간을 체크했다. 때릴 수 있는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김순희 씨는 동네를 나설 때도 시장을 갈 때도 언제나 뛰어다녀야만 했다. 집에서 키우는 개는 땅을 판다고 개 발톱을 망치로 때려 으깨버렸다. 그리곤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다 이렇게 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쳤다. 도망가고 이혼하고 싶었지만 이렇게 잔인한 사람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할지 몰라 두려워하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참고 노력하면 변할 줄 알았다고 한다. 이 집안엔 “아니오”는 없고 “네”라는 순종만 있었다.

식당 일을 하는 김순희 씨와 아들에게 한 달에 200∼300만 원의 용돈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폭력을 행사했다. 교회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장로, 친구들에게는 의리파, 집안에서는 폭군. 그렇지만 남편의 행위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고통받는 것은 다른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딸의 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어린 시절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몸 구석구석을 만지는 것에 대해 딸은 아버지가 자신을 예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성년이 된 딸에게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는데, 딸의 회사동료인 남자는 “내일 30분 정도 일찍 출근하라”는 언질을 줬다. 이 전화를 남편이 받았다. 남편은 어떤 놈이길래 함부로 딸에게 전화를 했냐며 딸에게 발길질을 시작하더니 급기야 옷을 벗겨놓고 때렸다. 한참 때리더니 딸의 상태를 검사해야 한다며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었고 이를 말리는 김순희 씨를 고무 호스로 때렸다. 그는 잇달아 며느리를 성추행 했다. 가난과 시아버지의 횡포를 견디지 못한 며느리는 이혼하겠다고 나섰고, 결국 아들과 갈라섰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의 새로운 여자친구까지 성추행 하는 만행이 이어졌다.

영화 속에서도 벌어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을 겪었지만, 아들은 남편에게 반항하지 않았다. “그래도 남자니까 네가 아버지를 말려 보라”는 딸들의 부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아들은 “만약 그렇게 하면 아버지는 내가 없을 때 누나와 엄마를 더 때릴 지 모른다”며 일부러 남편의 말에 순종했고 김순희 씨와 딸들을 대신해 남편의 화가 풀릴 때까지 대신 맞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이렇게 순종적이었던 아들이 변한 것은 2002년 9월부터다. 가족이나 다름없이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아버지가 20년 넘게 성폭행해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때야 아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결심하고 참았던 분노를 폭발시키게 된다. 어머니, 누이, 아내 그리고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해온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결국 그는 존속살해의 길로 내몰았다.

가정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잉태

이쯤 되면, 그는 아버지도 아니다. 아버지는커녕 사람도 아니다. 그런 그를 왜 지금껏 방치해뒀을까. 한양대 의과대학 안동현 교수는 2000년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가정폭력 대응전략을 위한 대토론회에서 ▲폭로로 인해 안전이 더 위협 당할 것이라는 공포 ▲배우자를 보호하려는 마음(그가 학대를 하지 않을 때에는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있으며, 아내와 아이들의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등으로 폭력 속에 사는 많은 여성들이 신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안 교수에 따르면 “피해자는 이미 희생자화(victimization) 과정을 통해 무기력하고, 독립심이 부족하고, 극도로 자존심이 저하된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며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심리를 분석했다.

가정폭력으로 인한 자식들의 피해도 크다. 가정폭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쉼터에 거주하는 학령기 아동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폭력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공격이나 비행 같은 외현화 된 행동보다는 소극적이고 위축된 내재화된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나타났고 이는 여아보다 남아에게 더 심하다. 또 이런 증상은 성인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발표한 사례에 따르면 결혼한 자녀들은 계속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이혼시키고 싶어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버지 앞에서는 제대로 자기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분노를 억압하게 된다. 그 결과 우발적인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대상자를 죽이고 싶을 정도의 분노를 표출하게 되는 것이다.

아울러 김순희 씨 가족의 경우 몇 차례 경찰에 신고를 시도했지만 두려움에 이내 포기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신고를 시도했을 때 경찰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무엇보다 신고 후 아버지의 태도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1991년에는 남편에게 폭력을 당한 직후 남편이 잠든 사이에 살해해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 또한 1997년에는 가정폭력상황에서 남편을 살해 항소심선고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고, 최근 사례로는 지난해 12월 71세 할머니가 위의 경우와 비슷한 이유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아버지 살해사건의 경우 1995년 18년 간 가정폭력 피해자의 아들이 공포에 질린 엄마의 연락을 받고 달려가 아버지를 살해, 항소심 선고 징역 5년을 선고받은 판례가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행법상 존속살해의 경우 실형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가정폭력의 현장에서 일어난 사건도 아니다. 또 다른 방식의 정당방위임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6월 초순에 열리는 2심에서 아들의 심리분석 결과에 따라 이번 사건의 최종결과가 나올 듯 하다.

판결로 끝낼 일이 아니다

몇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김순희 씨는 끝내 기자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몇 차례의 보도를 통해 그녀가 고통스러워한 것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태도 때문도 아니고 사건이 알려지는 게 싫어서도 아니다. 인터뷰하면서 다시 지난 일을 떠올리기 싫어 그렇다는 것.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남편은 죽었고, 정상참작으로 아들의 실형이 면제된다고 가족의 고통이 끝날 수 있을까. 30년간 이어진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전문적인 치료와 보호가 요구된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3/05/01 00:00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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