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제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봄의 합창이 가득한 날들이다. 음악을 하는 사람이면서도 무엇이 그리 분주한지 봄의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리며 살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서둘러 아파트 정문을 나서다 목련의 화사한 몸짓에 잠시 발걸음을 늦춰 본다. 목련의 합창은 봄의 기쁨과 사랑을, 목련의 우아한 몸짓은 생명의 존귀함을 노래하고, 그들의 노래는 공해와 먼지로 찌든 하늘과 내 일상마저 씻겨주려 봄비를 부르고 있었다.

막힐 지 모르는 도로를 피해, 그리고 인터뷰 질문들도 준비할 겸 지하철을 타고 서울 명동에 있는 유네스코 건물로 향했다.

비 내리는 명동거리. 가게마다 진열된 옷들과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젊은 청춘 남녀들의 표정과 몸짓에도 봄은 무르익고 있었다. 집에 있는 아내와 8개월 된 딸 예성이가 문득 떠오르는 건 왜일까. 그러고 보니 제대로 가족끼리 봄나들이도 못해봤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다음에 꼭 아내와 이 거리를 걸으리라. 봄이 가기 전 우리도 봄을 노래하리라.

약속장소에 거의 도착할 무렵 독특한 우산을 든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이라크에 생명과 평화를’이라는 글자를 우산에 써 붙이고 평화 캠페인을 하는 여러 시민단체 회원들이었다. 빗속에서도 인간의 사랑과 생명의 존귀함을 위해 애쓰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봄은 나에게 보여주고 들려준다. ‘이라크에 생명과 평화를’이라고.

봄이 가기 전 봄을 노래하리라

지각이다. 서둘러 올라간 어느 식당. 약속장소에는 벌써 사람들이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매련.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 국제협력팀 영문출판 편집장. 처음 만나 건네준 그녀의 명함에 써있는 내용이다. 『SANGSANG』이라는 영문잡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조금 당황했다. 청소년, 인권, 평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인 남편을 둔 외국인 여성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와 관련해서 ‘한국인 남편을 둔 외국인여성들의 모임’에 관한 두 편의 기사를 미리 읽어 본 것말고는 사전에 준비된 것이 너무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그러나 어쩌랴. 질문을 다행히도 다양하게 준비해 왔으니 그것을 통해 좋은 만남을 가져봐야겠다.

고향은 미국 오하이오주. 한국에 온지 25년이 되는 김매련 씨는 1970년대 말에 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인권운동을 해왔고, 기독교방송에서도 근무했었다. 경실련에서는 시민사회영역을 다루는 잡지도 만들었고 2001년부터 지금의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에서 오보에를 전공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약간 놀라웠다. 그녀의 약력에는 다른 전공이 연상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활동했던 1970년대 말이나 80년대는 한국의 역사가 무서운 독재시절이었고 암울한 정치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선 남편을 만나 눈을 떴다. 남편에게 한국의 민주화 운동, 통일 이야기, 한국의 대단한 역사, 독립운동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오고 싶어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매련 씨의 순수함 속에 깃든 호기심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어떻게 동양에서 온 남자와 결혼해 한국까지 오게 됐을까?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어느 날 그 사람이 제 앞에 나타났어요.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어요. 처음 만난 게 스물 하나일 때였죠. 당시 제가 사는 지역에는 저임금을 받으며 사는 저소득 계층이 많았어요. 아무런 힘없이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운동이었는데 거기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어요. 당시 남편은 신학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민중해방신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국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학교도 만들었다고 했어요. 첫인상이 대단했죠. 그 때 제가 사랑에 빠졌어요. 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구나. 그래서 결혼했어요(웃음).”

남편은 김용복 목사로 신학대학교 총장을 지냈으며 최근에는 생명학대학원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한국인 남편과 사는 외국인 여성으로서 어려움이 많지 않았을까?

“제가 어떤 회의에 강사로 초청받은 적이 있어요. 반은 외국여성 한국남편, 반은 한국여성 외국남편이었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운 점만 얘기하던데 저는 반대로 생각해 봤어요.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없고 귀중한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그냥 미국사람이 아니잖아요. 미국사람이면서도 여기 와서 어느 정도 한국사람이 됐어요. 그 자체가 참 귀중하죠. 미국세상뿐만 아니라 한국세상도 경험해서 너무 행복해요.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우리 자식들도 두 가지 문화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죠. 엄마 문화도 있고, 아빠 문화도 있어요. 그걸 더 귀중하게 생각하며 살라고 했어요.”

크게 보고 크게 생각하는 여자다. 이렇게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는 줄 몰랐다. 우와! 멋지다.

미국인은 자신의 역사를 모른다

해군 군악대 시절 샌프란시스코에 갔던 적이 있어 얘기를 나누다가 그곳에서 진행 중인 반전운동에 대해 들었다.

“앞으로 반전운동을 많이 할 계획입니다. 미국인들에게도 언론의 자유는 매우 부족해요. 미국인들도 자신의 정부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어요. 물론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고 있죠. 저도 학교에서는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나중에서야 『민중의 역사』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됐어요. 학교에서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지금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해요.”

이어 그는 레이건 이후 미국 우파가 유엔까지 무시하는 교만함을 꼬집었고 미국 군수업체들에 대해서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미국은 큰 착각을 하고 있어요. 전쟁을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그런 착각. 그렇지 않아요. 평화로운 방법을 통해서만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태평양 국제이해교육원은 평화를 향한 국제이해 교육을 하고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전쟁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생활에 필요한 조건들이 다 들어가요. 예를 들면 전쟁 체제를 없애고 경제 사회 정의, 남녀 평등, 정의로운 사회, 또는 인권보호도 필요하고, 타문화간의 연대·화해·대화도 필요하고 환경평화도 필요해요. 인간들이 환경을 공격하고 파괴한다면 평화가 올 수 없죠. 마지막으로 내적인 평화를 얻어야 하고 교사들에 대한 교육이 필수적이죠. 특히 교사들은 교육을 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가르치면서 배우는 자세가 필요해요. 관련된 워크숍이나 출판물 제작, 심포지엄도 자주 열어요.”

이야기를 듣다가 윤뺀(윤도현 밴드의 애칭)을 통해 이러한 평화의 문화가 전파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효과가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평화의 문화를 배워보자. 이미 진행중인 것도 있어서 윤뺀의 메시지와 잘 통하는 것 같다.

자식은 자유롭게

그는 트럼펫을 부는 음악교사인 아빠와 미술을 하고 옷도 잘 만들며 수도 잘 놓는 엄마 사이에서 6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우리 부모님을 굉장히 존경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고마운 것은 우리 남매들을 사랑하고 항상 우리 중심으로 살아오신 것 같아요. 그렇지만 부모님들은 우리에게 어떤 대단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으시고 항상 자유롭게 살도록 하셨어요. 우리가 만약 관심 있는 분야가 있으면 그것을 격려해 주시면서 키우셨죠.”

우리가 흔히 놓치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자녀들이 관심 갖는 것에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다. 자유롭게, 자유롭게.

“나 하고 이 아이가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걸 염두에 두어야 해요. 기독교적으로 표현한다면 하느님이 만든 창조물은 모두 귀중하잖아요. 자식이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고 나와 잠시 같이 있는 존재예요. 같이 있게 해줘서 하느님에게 고맙다고 하면서도 아이에게 자유를 주지 못해요. 그런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천하는 게 참 어렵죠. 저도 어려워요. 그냥 힘있게 사랑하는 사람으로, 아무리 어려워도 용감하게 살기를 바라는 기도만 하면 되는데 자꾸 욕심을 부리는 기도를 하게 되죠. 남편도 마찬가지예요. 남편도 자식도 나의 소유물이 아니고 귀중한 한 명의 존재죠. 어머, 제가 강연하는 것 같네요.(웃음)”

김매련 씨에겐 미술과 음악을 하는 두 아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는 아들이 셋이 있다. 딸을 둔 다른 어머니들보다 정서적으로 많이 힘들게 살아오셨다. 남자들에 둘러싸여 짓밟혀온 어머니의 여성성. 어머니에게 때로 소리 지르며 거칠게 항의했던 나의 모습에 조금은 슬퍼진다. 나는 내가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들의 해답을 찾게 되면서 올바른 남성상, 여성상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라는 실체를 삶 속에서 보다 가깝게 느끼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다. 대부분의 한국남자들은 올바른 남성상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물론 나도 예외일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온전한 나를 발견하고 만들어 가는데 노력하는 것이 진솔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는 어떤 말을 들려주고 싶을까?

“청소년들이 어리다고 해도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관심분야도 많고 여러 가지 배우고 싶은 마음도 많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대로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학교에서만 배우지 말고 신문을 보고, 신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면 왜 그렇게 신문을 만드는지, 제대로 된 신문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살라고 말하고 싶어요. 영화가 좋다면 왜 그 영화가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었을 지 생각하고 멋진 배우가 있다면 어떤 면에 끌리는 지를 생각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 여러 질문들을 자신에게 물어보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학교도 부모도 대신해 주지 않아요. 심지어 대학졸업 할 때까지도 아무런 고민이 없다는 사람이 있어요. 안타까워요.”

한국문화가 좋다

“태권도, 태극권, 탈춤 등을 한국에 와서 배웠어요. 처음에 와서 볼 때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너무 좋아요. 특히 저는 말뚝이가 좋아요. 참 멋진 놈이에요. 힘있는 양반을 이기는 존재잖아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를 만지며) 말뚝이는 민중의 상징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기독교협의회 마크와 말뚝이를 합쳐서 이런 목걸이도 만들었어요. 전통음악도 참 좋아요. 전통집도 멋있어요. 초가집이 사라진 건 비극이에요. 나이 많은 사람을 존경하는 문화도 좋아요. 제가 이제 나이가 많아져서 그런가요? 선생님! 선생님! 하면서 잘해줘요. 마음에 안 들면 노인네 그냥 집에 있지 하고 핀잔을 줄 때도 있지만(웃음).”

옆에 있던 황지희 기자가 한 수 더한다. 조선시대 후반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선교사들은 다시 태어나면 한국의 노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보다 한국문화를 더 사랑하고 많이 접해본 그의 얘기를 들으며 내심 부끄러웠다.

그의 꿈은 무엇일까? 어렸을 적에는 너무 행복해서인지 꿈이 없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 중심으로 살아왔고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민주화운동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보였다. 한국에 와서는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푹 빠졌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유엔이 제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이라크 전쟁을 보면서 무차별 공격으로 무고한 인명이 살상되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게 참 비참하게 느꼈어요. 이건 유엔의 힘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유엔이 세계평화를 지키는 사도가 됐으면 해요. 개인적으로는 가족들이 건강하길 바랍니다. 그러나 더 바라는 바는 세상 사람들이 정의롭고 평화롭게 살았으면 하는 거예요. 제 꿈 너무 크죠?”

마무리로 인권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는 아시아인권위원회에서 날아오는 메일을 받고 있는데 그것을 읽어보면 세계에는 여전히 고통받는 민중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론가 다른 세상에 다녀온 느낌이다. 사오십 년 전의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부터 지금의 한국 서울 그리고 명동까지. 유엔의 정상적인 역할이 이루어지는 미래의 어느 시간까지 말이다. 물론 유네스코에서 김매련 씨와 나는 특별한 차 한잔을 마시면서 이 날을 추억할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평화를 전하는 김매련 씨. 내 안에 뿌려진 평화의 문화. 그 씨앗이 자라고 열매 맺을 때에 나의 딸 예성이도 많이 자랐으리라.

나의 아내는 미술을 전공했고 손으로 무엇인가를 잘 만들어낸다. 나는 음악을 전공했고 훗날 예성이에게 음악도 가르쳐주겠지. 김매련 씨. 앞으로 50년 후에 나의 딸 예성이를 만난 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봄비의 노래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죽어 가는 이라크의 시민들의 울부짖음과 새롭게 태어나다 죽어 가는 어린 생명의 피울음마저 봄비에 젖어. 멀리서 총소리와 폭탄소리와 함께. 오늘 나는 걸레를 들고 거실과 방을 깨끗이 닦았다. 평화, 평화!

김매련

목련의 합창은 봄비를 부르고

매련의 노래는 평화를 부르고

목련의 몸짓은 생명

매련이 몸짓은 사랑

나에게 날린 당신의 향기

내 영혼에 심어준 평화의 씨앗

내 안에 평화

가정의 평화



향기되어 날리네

평화

평화

2003.4.11. 봄비 내리는 날에


박태희 윤도현밴드 베이스
2003/05/01 00:00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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