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의 속살을 공개합니다!
2003/2003년 05월 :
2003/05/01 00:00
참여사회 창간8주년 특별기획 - 참여사회 ㄱ에서 ㅎ까지
ㄱ, '그땐 그랬지' 참여사회 8년의 야사
1. 용산역 비둘기에 관한 추억
출근길 용산역 광장을 가로지르다 보면 ‘한밤에 부쳐놓은 빈대떡’을 마주하게 된다. 그 빈대떡을 쪼아먹는 비둘기 떼를 본 일이 있는지. 그걸 봤다면 제 아무리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래도 ‘하늘을 나는 쥐’이상의 감정은 안 생긴다.
창간 초 『참여사회』 편집부는 용산역 사창가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남자 기자들은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포주와 마주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팔을 붙잡는 포주를 뿌리치는 건 출근길 교통대란 외에 ‘또 하나의 전쟁’이었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이, X기자! 오늘도 출근만 하나?”
2. 3장의 정기구독 엽서
95년 창간한 『참여사회』는 당시 여타 시민단체 기관지 중 가장 세련된 편집을 자랑했다. 특히 포토꼴라쥬 등의 기법을 통해 배달되는 미술작품은 뉴욕에서 DHL로 배달되는 최초의 시민단체 표지였을 것이다. 당시 뉴욕에서 표지를 받는 시민단체기관지는커녕 시사월간지도 없었을 듯. 작품의 가격은 50만 원. 정기구독엽서 3장을 관리할 때였다.
3. 많으면 둘, 없으면 하나
『참여사회』엔 주로 ‘없으면 하나, 많으면 둘’ 수준이었다. 뭐가? 기자 수가. 기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재정상황이 허락하지 않아 기자 수를 무턱대고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악조건이지만, 대안언론의 기수가 되겠다는 열망으로 『참여사회』 기자들은 오늘도 78호를 제작 중이다. 그래서일까. 『참여사회』 편집위원의 역할은 막중하다. 14명의 편집위원은 무료 자원봉사로 『참여사회』의 편집에 참여한다. 도시락 하나로 밤늦도록 토론하는 건 예사고, 경우에 따라 교정 편집업무도 돕는다.
4. 빚 2800만원과 눈물의 휴간식
IMF귀신은 『참여사회』도 삼켰다. 2800만 원의 빚이 남았고, 구성원들은 뿔뿔이 헤어져야했다. 1998년 2월 9일 『참여사회』는 ‘휴폐간 검토사항’ 문건을 남기고 눈물의 휴간식을 열었다. 사람들은 취했고, 얼굴이 통통 붓도록 밤새 울었다. 대안언론의 길은 참으로 멀고 험했다.
5. 48쪽짜리 월간지
300만 원. 『참여사회』가 재기할 수 있는 종자돈이었다. 5×7배판 크기를 4×6배판 크기로 줄이고 분량도 대폭 축소해 ‘재기의 월간지’를 제작했다. 1998년 5월 첫선을 보이자 사람들은 위로의 메시지를 날렸다. “작으니까 더 좋네. 시민단체 잡지 같고.”
6. 기업광고 딜레마
“우리 기업광고는 왜 안 싣나요?”
모 재벌 간부의 말이다. 『참여사회』는 광고를 받는 데도 원칙이 있다. 참여연대와 투쟁중인 ‘이해상충기업’에게는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일까. 참여연대에서 경제개혁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질 때는 간혹 『참여사회』 편집부를 찾아오는 기업체 홍보실 직원이 있었다. 직접 찾아와 정기구독을 하겠다거나, 새로 창간할 잡지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며 찾아오지만 언제나 대화의 끝은 광고로 귀결. 그럴 때마다 홍보실 직원과 편집장은 서로 멋쩍게 웃고 썰렁하게 헤어진다.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거운 건 사실이다.
7. 잊을 수 없는 사건과 실화
2001년 신년호를 준비할 때였다. 탈고 뒤 인쇄를 넘긴 상태였다. 그런데… 모 단체 사무총장 인터뷰 기사가 문제였다. ‘도전인터뷰’ 형식을 처음부터 달가워하지 않던 그는 끝내 몇 군데를 문제삼았고, 그 단체 실무자는 기사의 부분수정을 요구했다. 부분수정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우여곡절 끝에 돌아가던 윤전기는 섰고, 결국 기사는 빠지게 됐다.
8. 참여사회 전성시대
『참여사회』엔 요즘 문의전화가 잦다. 진보언론의 꿈을 가진 여러 시민단체에서 기관지 벤치마킹 대상 1위로 『참여사회』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주로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광고는 누가 하나요?” “한달의 편집비용은 얼마나 돼요?” “서점에선 몇 부나 팔리나요?” 그러면서 한 마디는 꼭 붙인다. “우리도 『참여사회』처럼 만들려구요.”
고맙지만, 꼼꼼히 더 따져보라고 권고한다. 왜냐하면 죽도록 만들어도 가끔 이런 말을 듣기 때문이다.
“야, 아직도 이런 운동권 찌라시가 나오냐?”
‥ 장윤선 본지 기자 sunnijang@pspd.org
ㄴ, 누워서 침을 뱉는다
1. 참여연대운동에는 녹색이 없다
나는 “환경문제는 환경단체가 잘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 가장 실망스러운데 참여연대에서도 그런 실망감을 느낄 때가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정치 사회 개혁과제에 대해 이해하고 대응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환경문제는 언제나 특화된 집단의 문제로 자리매김 된다. 참여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부 중에는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다. 참여연대의 주요 운동과제는 환경단체와 연대사업이 되지만 아무리 중요한 환경사안도 참여연대와 연대해본 기억이 없다. 나는 몇 차례 참여연대에 연대사업을 제안한 적이 있는데, 심지어 새만금 간척반대운동도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 연대사업이 최선은 아니지만, 참여연대가 환경문제는 환경단체 몫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대단히 진보적인 지식인이라 하더라도 환경문제는 부차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정치개혁을 부르짖는 노무현 대통령도 환경에 관한 한 과거 개발세력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것을 보아온 사람의 우려이다.
나는 참여연대의 지난 활동 속에서 환경친화적 운동의 문화적 코드를 감지해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운 가게’(참여연대와는 분명 분리된 단체이지만)가 만들어졌을 때 좀 의아했다. 그것도 재활용을 전문으로 하는 알뜰가게 같은 단체를 만든다고 해서 말이다. 갑자기 재활용 가게라니. 이게 내 느낌이었다. 오래 전부터 재활용 운동을 해왔던 지역의 작은 단체들이 ‘아름다운 가게’의 급부상에 허탈해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더 들었다. 소박하고 빈한하게 녹색가게를 열어온 단체로서는 생활 실천과 알뜰함이 기본이 되는 생활 속 환경운동은 어디로 가 버리고, 갑자기 명망가들의 활약에 조명받는 ‘아름다운 가게’에 박탈감과 비애를 느꼈던 것 같다. ‘아름다운 가게’식의 운동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운동을 벌인다면 좀더 일상적 활동 속에 녹색의 문화가 녹아나야 한다는 마음이다.
환경운동은 이슈를 중심으로 펼쳐지기도 하지만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 문명 전환적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을 필요로 한다. 지금은 좀 나아지기도 했지만 아직도 참여연대 사무실에 가보면 일회용품이 쉽게 쓰인다. 종이 쓰레기들도 분리가 제대로 안된 채 뒹구는 것들을 보게 된다. 세상의 어떤 일도 알아야 관심을 갖게 되고 행동에 옮기게 된다. 참여연대도 환경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참여연대가 벌이는 운동 속에 ‘녹색’이 스며들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나는 아직도 총선연대 때 참여연대 활동가들과 동고동락을 같이했던 진한 경험을 잊지 않고 속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짝사랑만은 아니기를 바란다.
‥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kimhj@kfem.or.kr
2. 영원히 우회로로 떠나버린 진보정당의 꿈
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당위가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38선 이북에 있는 조선노동당을 자신의 당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권’이 합의하는 부분이었다. 그것이 레닌주의적 전위정당이건 아니면 합법적 대중정당이건 한국의 민중운동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가장 고전적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도는 무수하게 실패하였고, 사회주의권의 몰락·절차적 민주주의의 확장 속에서 당은 잊혀져 갔다. 특히, 경실련으로 대표되는 시민운동이 민중운동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커밍아웃’은 운동권으로서는 도덕적·이데올로기적 타격이었고, 진보정당운동의 유력인자들이 경실련에 참여해 오히려 경실련을 확대 강화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참여연대다. 시민운동의 민중운동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가 횡행하던 시절에 시민사회의 발전이 진보정당 성장의 토양이 될 수 있으며, 참여연대는 진보정당의 우회로가 될 수 있다는 신선한(?) 주장을 했다. 그 후 참여연대의 활동은 획기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소액주주운동의 눈부신 성과는 재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2000년 낙천·낙선운동은 많은 시민들을 동원해 1987년의 기억을 되살리게 했다. 참여연대는 구호가 아닌 구체적 실천으로 시민운동의 한 단계 질적 업그레이드에 기여했으며,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국선 변호를 하던 시절, 어느 시골에 사기혐의로 구속 중이던 피의자조차 자신은 매우 억울하다며, 대법원, 헌법재판소, 참여연대까지 가겠다는 발언을 하는 것을 들으며 참여연대가 이제 5심의 역할을 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성과에도 근본적인 의문은 잦아들지 않는다. 애초에 말했던 진보정당의 우회로라는 정신은 현재의 참여연대에게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사실 참여연대의 지위는 너무나 확고해 거의 모든 군소 시민사회단체들이 모든 분야의 영역에 대해 참여연대에 의존하고 있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또한 다른 곳에 비교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모든 조직은 발전하게 되면, 조직의 논리가 생기고 애초의 창립정신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며 참여연대도 그러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논리으로 아주 상식적인 해법을 시기상조론이라는 궤변으로 끊임없이 물 타기 하는 이상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상식은 제대로 된 정치세력 없이 외곽에서 변죽을 울려보았자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과 노동자·민중의 삶은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의 양 날개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에 묻고 싶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궤변을 강화하고 확대하는데 기여하고 있지는 않은지?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진보정당의 우회로”는 정녕 일부 기회주의 지식인의 자기 합리화였던가?
‥ 김정진 변호사·민주노동당 정책부장 lizard@kdlp.org
3. 여론의 눈치에서 벗어나라
그 동안 참여연대는 비판적 시민사회 세력의 정치 사회적 입장을 대변하고 정책적인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 한국 사회의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부분적으로 아쉬운 면도 있었다. 시민단체가 여론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데에 있어서 수구 언론이 구조화시킨 여론에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모습을 많이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참여연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단체의 일반에 대한 평가라고 해도 무방하다. 또한 시민단체가 정치적 포지션을 심판자적 위치에 두고 있으므로 정치적 행위를 평가하는 데에 있어 지나친 양비론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의 단적인 예로 대북송금 문제에 대한 참여연대의 입장을 들 수 있다. 참여연대는 논평에서 특검제를 포함한 가능한한 수단을 통해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는 정치적 입장을 밝혔고 노무현 대통령의 특검 수용에 대해 사실상의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하였다. 그런데 ‘특검=진상 규명’이라는 등식은 수구 언론이 만들어 낸 일종의 미신이기 때문에 특검 거부에 대한 비판 시민사회 세력들간의 연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그러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수구세력들이 민족문제를 저열한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판적인 견해를 밝히기도 하였으며 필자 역시 같은 생각이다. 나는 이와 같은 일이 기본적으로 시민단체가 여론에 너무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좀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정치적 입장을 밝히기는 해야겠는데 욕을 덜 먹기 위해 양비론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일종의 관성으로 굳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일반적인 태도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정치적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려면 분명 모호한 제3자적 위치라는 것에서 벗어나 명확하게 호불호와 선악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03년은 시민단체의 결성이 활발하게 이뤄지던 1990년대 전후와는 객관적인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과감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 장신기 서프라이즈 칼럼니스트 chungwolgusa@hanmail.net
4. “참여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참여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취재를 했다. 모두 익명이라는 게 좀 아쉽기는 하다.
“잘하잖아, 별로 할 말이 없는데”-촛불집회에서 만난 30대 활동가
“원래 민중운동과는 다른 흐름이니까, 그 중(시민운동)에서는 제일 진보적인 것 같아. 민중운동진영과의 연대사업에도 적극적이고”-인천에서 활동중인 노동운동가
“잘 모르겠는데요.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고, 구체적인 쟁점을 잘 만드는 것 같아요.”-서울의 한 대학생
“한총련 법률구조단 같은 일을 해줬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어요.”-수배 2년차 대학생
“소액주주운동 하는 걸 보면서 이 사람들이 좀 이상해졌다는 생각을 했지. 그 쪽에서 핵심적인 실무자들은 다 운동권 출신이었다는 말을 들었는데.”-서울지역 사무직 노조간부
“경실련이랑 참여연대는 이제 같이 가기에는 너무 벌어져 있는 것 아닌가, 시민운동이랑 민중운동이랑 다 모아놓고 판을 새로 짜보면 좋지 않을까”-30대초반 민주노동당 지구당위원장
“참여연대 일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고 생각해요.”-정치학 석사과정 대학원생
“권리 찾기를 위한 시민참여사업 인큐베이팅을 하면 어떨까?”-학생운동출신 벤처기업 사장
“범 개혁, 진보진영의 씽크탱크가 필요한데, 참여연대가 나서면 가능하지 않을까”-늦깎이 사법연수원생
‥이정무 『민중의 소리』 기자 jmlee@voiceofpeople.org
5. 전문가 단체는 이제 그만!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와 납세자운동본부에 잠시 기웃거리다가 도통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상을 정립할 수 없어, 나름대로 정해놓은 한 가지 관심분야에만 충실하자고 결심하고 참여연대와 멀어질 즈음, 공익제보지원단에 참여하게 되었다.
1999년 철도청 내부 문제를 언론에 공개함으로써 징계처분 당한 공무원들의 사건을 변론하면서 공익정보 제공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때 난 ‘정의로운 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깊은숨을 들이쉬고, 직접 그들을 만나 위로하며, 그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재평가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참여연대 전문가들을 보면서 내심 뿌듯했다.
개인적으로 참여연대 활동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주요 공직 후보자에 대해 ‘취미가 뭐라더라’, ‘성품이 어떠하더라’는 사오정 식의 정보가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자질과 능력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참여민주주의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방대한 법조인정보자료실을 만들고 법조인 인사 때마다 인사평가서를 작성함으로써 지속적인 사법감시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더 바랄 것이 있다면, 참여연대가 전문가와 활동가로만 구성된 전문가 단체가 아니라 좀더 다양한 시민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하는 시민단체였으면 하는 것이다. 참여연대 깃발 아래 다양한 시민들이 모여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낼 때, 참여연대는 항상 새로운 도전을 받으며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리라 생각한다.
‥ 이상희 변호사·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단 실행위원 shlee@hklaw.co.kr
6. 작은 단체에 떠넘기지 말라?
김창국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한명숙 환경부 장관, 김중배 전 MBC 사장의 공통점은? 물어볼 것도 없이 참여연대 대표를 지냈던 분들이다. 촌스럽게 시민단체의 정부기관 참여에 대해 딴죽을 걸자는 것은 아니다. 참여연대 대표를 맡았던 분이 국가인권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꼽혔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참여연대로서는 자랑할만한 일이다. 따로 자랑하거나 너스레를 떨지 않아 그렇지, 그만한 인물들이 함께 단체를 끌어왔고, 요즘 말로 ‘코드’를 함께 한다는 것은 분명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연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참여연대에게는 옛말에도 있듯이 ‘부자 몸조심하듯’ 해야되는 숙제가 주어졌다. 전혀 목에 힘주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목에 힘이 꽉 들어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참여연대가 ‘큰’ 단체이기 때문이다. 크기 때문에 받는 오해도 적지 않을 것이다. 크기 때문에 주목을 받다보면 본의가 왜곡되거나, 거꾸로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작은 인권단체에서 일하지만, 키가 크고, 목소리까지 커서 불필요한 오해를 받는 일이 적지 않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인사를 건넬 때, 능수능란하게 하는 체 하기 힘들어서 “죄송합니다만…”하면 당장 “잘난 체 하네” 하는 눈빛이 쏟아진다. 마치 키 크고 목소리 큰 사람은 기억력이 나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것처럼.
참여연대는 민원을 다루지 않는다. 민원을 다루든 그렇지 않든 그건 전적으로 그 단체가 선택할 몫이고, 단체의 역할이나 전망과 관계된 일이라 누구도 관여하거나 탓할 바 못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좋은 뜻의 안내이겠지만, 참여연대를 통해 소개받았다며 민원인들이 우리 단체를 찾아오는 일이 적지 않다.
한번은 북파공작원들이 우리 사무실에 연락을 해왔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퉁명스런 목소리였다. 그 사연을 잠깐 들으니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고 싶고, 신문기사에 보니 참여연대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곤 하는데, 그 강당을 어떻게 하면 빌릴 수 있냐는 것이 유일한 용무였다. 다만 몇 마디라도 들어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저 북파공작원이라고 하고, 할말이 있다니까 무조건 작은 단체의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그곳에 알아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큰 단체이고 많이 알려졌으니 민원인이 많이 찾아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고민도 없이 조금도 듣지 않고, 다른 단체로 떠넘기기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건 그냥 하나의 일을 떠넘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참여연대가 떠넘기는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점을 유념했으면 한다.
왜 이런 태도가 생기는 것일까. 사람이 찾아오면 찬물이라도 내놓고 무언가 들으려 하는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만 한 일일까. 아무래도 일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서도 그렇겠지만, 그게 정말 이유가 될까. 혹시 참여연대 사람들이 무언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hrights@hrights.or.kr
ㄷ, 다른 대안매체들
1. 주간 『진보정치』
- 내는곳 : 민주노동당 - 문의 : 02-780-2081
2. 월간 『함께 사는 길』
- 내는곳 : 환경운동연합 - 문의 : 02-735-7000
3. 월간 『자유공간』
- 내는곳 :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 문의 : 02-765-6835
4. 월간 『다함께』
- 내는곳 : 다함께 - 문의 : 02-3295-4773
5. 격월간 『여성의 눈으로』
- 내는곳 : 한국여성의전화연합 - 문의 : 02-2269-2962
6. 월간 『민족예술』
- 내는곳 :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 문의 : 02-738-6058
7. 월간 『경실련』
- 내는곳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 문의 : 02-771-0374
8. 작은것이 아름답다
- 내는곳 : 녹색연합 - 문의 : 02-747-8500
9. 월간 『함께걸음』
- 내는곳 :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문의 : 02-521-5364
10. 월간 『문화연대』
- 내는곳 : 문화개혁시민연대 - 문의 : 02-773-7707
ㄹ, 락(樂), 『참여사회』광고
『참여사회』는 오락(樂)실이야!
왜? 다섯 가지 즐거움을 주니까.
우리 사회의 희망들을 발견해서 마음이 즐겁고(樂)
시민들이 주인공이 되어 눈이 즐겁고(樂)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속 시원히 긁어줘서 귀가 즐겁고(樂)
할 말을 대신해줘서 무엇보다 사는 게 즐겁고(樂)
그리고 기자들은 독자들이 있어서 책을 만드는 게 즐겁다(樂)!
다섯 가지 락(樂)이 있는 월간 『참여사회』
ㅁ, 미래
기관지의 미래는 있다? 없다?
8년 전 『참여사회』는 2003년 시민운동의 모습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시민운동의 성장은 더 이상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스스로 매체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인터넷의 발전은 시민과 시민, 시민과 시민단체, 시민단체와 시민단체간의 대화를 원활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기관지는 이제 즐거운 폐간을 시도해야 할 시기일까? 8년 후 『참여사회』의 미래를 상상한다. 2011년 5월 조간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나올지도 모른다. 믿거나 말거나.
1.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민들은 일간 『참여사회』로 하루를 시작한다. 시민운동진영이 안티조선 등 네가티브 언론운동 대신 새로운 매체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것. 인터넷으로도 자신의 목소리를 펼칠 수 있었던 시민운동진영은 무료로 배포되는 일간 『참여사회』를 통해 언론운동과 시민운동의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꿈을 꾸고 있다. 기존 언론에 염증을 느낀 수십 명의 기자들도 일간 『참여사회』로의 이직을 희망하고 있다.
2. 대표적인 시민단체 및 정당 기관지들이 하나로 뭉쳤다. 『참여사회』 『사X이 사X에게』『X은 것이 아름답다』 『진X정치』 『함께X음』 등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제작되던 기관지들이 새로운 형태의 주간잡지를 만들었다.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환경운동, 소수자인권운동 등이 새롭게 출발한 주간지의 주요 방향이다. 기본 독자들은 각 단체간의 합의 끝에 회원들에게 1차로 발송되며 회원 가입 없이도 구독을 원할 경우 5단체 중 하나를 선택해 전화로 신청하면 된다.
3. 『아시아 참여사회』 창간. 월간 『아시아 참여사회』가 영문판, 한글판, 일본어판으로 제작된다. 『참여사회』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시민운동 잡지로 2년 이상의 노력 끝에 이를 창간하는 데 성공했다. 3개 국어로 만들어지는 이 월간지는 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자와 시민운동가들이 뭉쳐 만든 언론으로 전세계에 배포된다. 전세계의 이목이 아시아로 집중되는 시점에 창간된 시민운동 정론지라서 더 큰 인기를 끌 전망이다.
ㅂ, 밝히고 싶지 않은 실수
지금도 등이 오싹거린다. 참여연대는 난생처음 ARS 후원전화를 받게 됐다. 700-1357. 정말 피곤했던지, 글쎄 잡지엔 723-1357로 나온 게 아닌가. 그것도 판권에 말이다. 그날 자원활동기자와 편집부는 하루종일 ‘공쳤다’. 23을 00으로. 이뿐 아니다. 95년 당시에는 박원순 변호사의 칼럼 ‘무쇠솥의 철학’이 ‘부쇠솥의 철학’으로 나오는 바람에 하루종일 앉아 스티커 작업을 해야했다. 인쇄소의 윤전기는 무지하게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런 일도 있었다. 성폭력피해자의 실명이 인쇄됐던 것. 이번엔 발송업체까지 전 기자들이 몰려가 플러스펜으로 이름 부위를 검게 칠했다. 그러나….
“하늘에 비춰보면 다 나와. 그거 몰랐어?”
그때의 황당함이란. 최근에는 표지에도 사고를 쳤다. 2003년 2월호 기사 제목은 “초기 개혁이 정권의 승패를 좌우한다.” 이게 틀렸음을 발견한 사람이 거의 없어 기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승패’가 아니라 ‘성패’다.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라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문제인 것.
ㅅ, 세상을 바꾼 기사들
1995년 5·6월호 창간특집 새로운 복지운동 ‘국민생활최저선’ 확보운동
1996년 3·4월호 특집 시민운동, 중간계급운동 넘어서야
1997년 11·12월호 ‘삼성권력’에 맞선 시민단체
1998년 6월호 시민사회노동운동가 100인 여론조사-DJ개혁 평균점수는 3.48
프랑스 파리현지취재-홍세화의 백수건달운동론
1998년 7월호 특별대담 세계화의 덫 저자 하랄드 슈만 VS 장하성
“IMF프로그램으로 한국경제 살릴 수 없다”
1998년 10월호 단독보도-한 삼성전자 직원이 보낸 편지
“총수님, 삼성가족 대신 기어이 삼성자동차를 택하시겠습니까?”
1999년 4월호 인터뷰 “HOT가 말하는 10대 문화와 연예계 그리고 시민운동”
‘시민단체 제조기’ 서경석 목사 공세적 인터뷰 “시민운동가가 정치하면 변질하는 겁니까?”
1999년 6월호 본지특종-이해할 수 없는 서울시와 분뇨업체의 20년 커넥션
1999년 8월호 딴지일보 기자들이 본 시민운동 “앗! 씨바, 시민운동 졸라 엄숙해!”
1999년 9월호 대필파문으로 떠난 유종성 전 경실련 사무총장 “1등 콤플렉스가 경실련사태 불렀다”
2000년 3월호 본지특종 탈옥수 신창원의 옥중고백 “청소년에게 사랑과 보살핌을”
2000년 5월호 낙선운동 백일야화
거만한 유착설과 굴욕적인 ‘잘봐달라’
2000년 7월호 발굴취재 수도권 신흥 ‘윤락명소’ 파주 용주골 르포 우리도 의료보험 혜택 주세요”
2001년 10월호 시민운동매체 최초인터뷰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 겸 사장
“다음 대선엔 보수세력이 정권 탈환할 것”
2001년 12월호 특집 개판 코리아? DJ정부 이보다 더 못할 순 없다
2002년 2월호 특별기고 13년 전 의문사한 선배를 가슴에 묻은 한 후배의 공개서한
2002년 4월호 본지특종-광주 무등파크호텔에서 생긴 일
사라지지 않은 기업체의 기자접대관행
2002년 6월호 본지특종 서울 YMCA 골프연습장 지으려고 숲 없앤다?
2002년 7월호 도전인터뷰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격정토로
“개혁 거스르는 당내저항, 흥정 일탈은 없다”
2003년 4월호 발굴특종-‘결핵환자의 대부’ 사랑의 보금자리 이정재 이사장의 두 얼굴
ㅇ, 참여사회에 등장했던 얼굴들
김중미 이종오 손봉오 문부식 지현 박미란 정몽준 조국 김창국 김경희 강인 김병준 지명관 오한숙희 노회찬 문성근 지하은희 박원순 황금명륜 정태인 권은정 양장일 대니서 조정래 강도영 권영길 박그림 김연철 김창수 강재섭 도법스님 손이덕수 백창우 오태양 차병직 쥴리 이창동 황석영 최영도 이문옥 권해효 서승억 최보은 박래군 신영복 손호철 이수효 김지숙 박치병 홍명보 황인성 김호기 조선희 김근태 이부영 아니마 김기식 홍세화 김제남 안성기
ㅈ, 참여사회에 쏟아지는 질문 Q&A
『참여사회』기자들이 독자들을 만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Q1 “월급을 받고 일하십니까?”
A1 물론입니다. 『참여사회』기자들은 참여연대에서 근무하는 간사들과 마찬가지로 참여연대 규정에 따른 월급을 받고 일합니다.
Q2 “취재비는 받고 활동하십니까?”
A2 취재비라는 명목으로 따로 지급되는 돈은 없습니다. 타 매체의 경우 핸드폰 사용료 등을 회사에서 따로 지급하는 경우도 있지만 『참여사회』는 없습니다. 다만 좌담 진행비, 지방출장 교통비 등 취재를 위해 드는 돈은 지급 받습니다.
Q3 “『참여사회』는 왜 서점에서 쉽게 살 수 없습니까?”
A3 『참여사회』는 광고나 영업을 담당하는 분이 따로 없습니다. 모든 광고나 영업관련 업무는 물론이고 결산 및 회계도 기자들이 담당합니다. 취재와 이런 업무를 병행하다 보니 영업을 확장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아 매달 500여 권 정도의 『참여사회』만 외부에 영업을 대행하고 있습니다. 왜 담당자를 따로 뽑지 않느냐구요? 물론 재정문제 때문입니다. 그 외 칼라인쇄를 하지 않는 이유와 사진기자가 없는 이유도 간혹 질문을 하시는 데 모두 재정 때문이죠.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참여사회』가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이러한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4 “『참여사회』가 참여연대의 기관지라면 참여연대의 소식이 중심이 됩니까?”
A4 독자라면 아시겠지만 분명히 아닙니다. 『참여사회』는 참여연대의 소식지가 아닌, 시민사회 시사정론지라는 방향성을 창간 당시부터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참여연대 활동 소개나 회원들 소식은 참여연대에서 별도로 발행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Q5 “『참여사회』는 어디서 구입할 수 있습니까”
A5 『참여사회』는 정기구독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독료는 1년에 3만원입니다. 전화번호는 02-723-1246. 참여연대 홈페이지(http://www.peoplepower21.org)에서도 정기구독이 가능합니다. 낱권으로 구입하실 경우에는 참여연대에 직접 찾아오시거나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서울은 대형서점에서 언제나 구입이 가능합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성대 앞 서점 논장 등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과월호 구입은 참여연대에서만 가능합니다. 미리 전화를 주시고 입금해 주시면 일주일 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ㅊ, 축하합니다
초심잃지않는 건강한 대안매체, 참여사회 8주년을 축하합니다. 『오마이뉴스』직원 일동
참여사회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 함께 만들어 가요. 남성과 함께 읽는 여성시사잡지 내일신문 미즈엔 일동
진보언론 대안언론으로서 『진보정치』와 함께 창간100주년까지 달려봅시다. 축하합니다. 진보정치 일동
대안언론 "참여사회"가 만들어 내는 빛과 소금,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창간 8주년 축하합니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장선배와 기자들, 정말 고생많으십니다. 신나는 『참여사회』를 기대합니다. 공연문화기획 탁현민
우리사회 대안언론으로서, 큰 역할 기대하겠습니다. 8주년 축하합니다. 국회의원 김근태
참여사회 8살 생일을 축하합니다. 참여사회가 시민사회 발전에 변함없는 선구역할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전국언론노조 대한매일지부
"민중"과 "시민"의 건강한 징검다리로 계속 성장하시길 바랍니다.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
ㅋ, 콩깍지
기자들이 가장 힘이 날 때는 『참여사회』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느껴질 때입니다. 당근도 좋고 채찍도 좋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가만히 길을 걷다가도 혼자 빙그레 웃음이 날 때는 『참여사회』 열혈 독자들을 만날 때입니다. 눈에 콩깍지를 쓰고 『참여사회』 기사라면 언제나 신뢰를 보내주셔서 항상 마음이 든든합니다.
『참여사회』의 서포터들
경인방송 김력균 PD는 “아이템 회의 할 때 작가나 PD들이 『참여사회』를 자랑스럽게 들고 올 때가 많아요.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 없고 일간지에서도 볼 수 없는 신선한 기사들이 많아서 방송제작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라고 전합니다. 실제로 매달 책이 나오면 사무실에는 취재원의 연락처를 묻는 다른 매체 기자나 방송작가들의 전화가 연일 쏟아집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교재로 활용하는 교사들도 있습니다. 특히 월드컵을 다른 시각에서 기획했던 기사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시각을 전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매달 『참여사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니터하고 의견을 올려주시는 이영구 할아버지는 인터넷에서도 유명합니다. 이영구 할아버지는 기자들에게 빨간펜 할아버지로 통하죠. 『참여사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니터하고 빨간펜으로 일일이 의견을 적어주셨습니다.
졸업하고 나면 『참여사회』에서 꼭 일해보고 싶다며 찾아오는 대학생들도 있고, 마감이 다가오면 수고가 많다는 문자메시지를 남겨주는 독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쁜 와중에도 『참여사회』의 부탁이라면 언제든 달려오고 원고를 보내주는 많은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있어 항상 마음이 든든합니다.
한 회원은 상상캠페인에 실렸던 기사를 보고 하루 종일 눈을 안대로 가리고 생활해봤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셨습니다. 짧은 기사를 통해 독자들의 일상에 특별한 경험을 줬다는 사실에 기자들도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참여사회』를 읽다가 참여연대를 알게 되고 세월이 흘러 참여연대에서 함께 근무하게 된 간사도 있습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참여사회』를 읽으며 시민운동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는 말씀을 듣고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사진가들도 『참여사회』에 든든한 서포터입니다. 열심히 찍어온 사진을 흑백으로 전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사진들은 종이의 질이 나빠도 흑백이라도 언제나 빛이 납니다. 한 달에 한두 통이지만 독자엽서가 도착합니다. 기자들을 격려하는 짧은 문구들이 지난 한 달 동안의 고생을 까맣게 잊게 만든 답니다.
ㅌ, 퇴직
2003년 5월로 『참여사회』는 8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 『참여사회』에서 일하는 기자는 모두 5명. 편집장은 8년 동안 『참여사회』에서 일했으며, 나머지 기자 2명은 2년, 2명은 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하면 그야말로 『참여사회』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죠. 책 만들 맛이 나겠다구요? 그러게요. 하지만, 그만큼 해야할 일도 많답니다.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현재 각 시민단체들은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단체의 행사나 입장을 홍보하는 홈페이지가 아닌 ‘시민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에 지난해부터 참여연대도 콘텐츠팀을 따로 운영해 홈페이지의 질을 높이려고 하고 있습니다.『참여연대』 기자들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올라가는 기사까지도 모두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평균 근무기간 8.7개월
지난 8년간 『참여사회』를 거쳐간 기자들은 총 몇 명이나 될까요?
8년 동안 『참여사회』에서 일하고 퇴사한 기자와 사진기자는 모두 8명, 평균 근무기간은 8.7개월입니다.
이것은 참여연대에서 근무한 간사들의 평균재직기간 보다 낮으며 일반 매체 기자들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은 수치입니다. 이는 『참여사회』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많은 대안매체, 더 정확하게 말해 단체 혹은 진보정당의 기관지들이 이와 같은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의 2년차 미혼 기자(28세)가 한 달에 받는 급여 실수령액은 74만 원입니다.
기자들의 대략의 일상은 이렇습니다. 취재→기사작성→어? 잠깐... 광고 필름 좀 찾아오시오…ㅠㅠ→다시 마음가다듬고, 기사작성 몰입→어? 이런... 잡지협회 들러 5권 주고, 인터넷서점 갔다가 책 돌리고 오시오. 헉!→다시 또 기사작성→잠깐만. 회계장부 좀 정리하고. 으앙∼
이처럼 ‘팔방미인형’ 편집부 운영시스템은 기자들이 자기정체성을 명확히 세울 수 없는 면으로 작용합니다. 전문성있는 기사를 생산해 내는 데도 한계가 옵니다. 결국 이는 기자들의 잦은 퇴사 원인으로 이어지죠. 이런 문제는 비단 『참여사회』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앞서 지적했듯 다른 기관지 혹은 대안매체들 모두가 앓고 있는 현실이죠. 이를 타개할 공동의 모색이 필요합니다.
활동가에 대한 투자 없이 시민운동의 장기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듯이 올바른 대안매체의 성장을 위해서는 이와 같은 모순적 상황을 타개해야 하고 기자전문성이 제고돼야 합니다.
ㅍ, 표지
1995년 5·6월호 격월간 『참여사회』 창간 당시 표지 제작을 맡았던 아트디렉터는 작가 이인수 씨다. 그는 포토 꼴라쥬를 비롯 유화 등으로 작품성 높은 시민운동전문 시사잡지의 표지를 제작해주었다. 한 장의 그림에 담아내는 메시지가 너무 강렬해 당시 『참여사회』를 받아보는 독자들에게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표지만을 모아 전시회를 열자고 할만큼 『참여사회』의 표지에 대한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1998년 5월 휴간을 딛고 월간으로 복간한 『참여사회』의 표지는 서울간호대학 시각디자인학과 김현철 교수가 맡았다. 그는 컴퓨터그래픽, 일러스트레이션, 사진합성 등을 통해 『참여사회』의 표지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특히 주제의식이 뚜렷하면서도 감성적으로 호소력이 높은 작품은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를 끌기도 했다.
1999년과 2000년에는 사진가 서헌강 씨의 작품으로 『참여사회』 표지가 진행됐다. 자연채광을 활용한 촬영기법으로 인물의 서정성을 강조한 서헌강 씨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들로부터 높은 예술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1년에는 클레이애니메이션 작가 여태육 씨가 시사이슈를 토대로 표지를 제작했다. 클레이애니메이션은 찰흙 등 점성이 있는 소재로 인형을 만들어 촬영하는 형식의 애니메이션이다. 최근 광고시장에서도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클레이애니메이션을 시민운동전문 시사월간지에 시도한 것도 『참여사회』가 처음이다.
2002년에는 시사만화가 겸 시각디자인 전문가 양시호 씨가 표지를 맡았다. 그는 캐리커쳐를 포함한 포토 꼴라쥬, 컴퓨터그래픽 등의 방식으로 뛰어난 작품성을 선보였다. 올해 들어 2003년부터는 디자인이즈 장광석 팀장이 맡고 있으며, 『한겨레21』 등 정통 시사잡지의 표지를 제작하고 있는 그는 현재 『참여사회』 특유의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ㅎ, 하하하
장1. 시커먼종이에 칼라 한쪽 없는 볼품없는 잡지지만 매월 이 한권을 책을 만들기 위해 족히 사나흘을 밤을 새웁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장2. 들어오자마자 8주년. 제 기자경력의 2배가 넘는군요. 그 무게와 권위가 저를 숙연하게 합니다. 먼 훗날 『참여사회』의 역사 속에 제 이름이 새겨질 것을 보람삼아….
쭝. 희노애락을 느끼며 만들고 있슴다. 여러분동?
최. 읽을꺼리 쏠쏠한 『참여사회』를 위해 저는 오늘도 달립니다. 독자여러분, 벌써 다음호가 기다려지시죠?
황. 『참여사회』 속살공개! 조금 민망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다보여주고 나니 속이 후련합니다! 이제 여러분들과 함께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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