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관리를 고발한 기자에게 정치적 망명과 침묵 중의 선택을 강요하는 정부, 감옥 내 수감자들에게 돈을 받고 마약과 권총을 파는 간수, 올림픽 유치를 대가로 뇌물을 받는 올림픽 위원들.

“반부패국제영화제(Film for Transparency)”는 볼록렌즈가 된다. 사람들이 지나칠 지 모를 사회 곳곳의 썩은 부위를 우리에게 오롯이 보여준다. 격년제 행사로 2001년 체코 프라하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반부패영화제가 오는 5월 2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메가박스 영화관에서 열린다. 반부패세계연대(Transparency International, 본부 베를린)가 주관하는 반부패세계회의(Inrernational Anti-Corruption Conference)의 부대행사지만 독립적인 국제영화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밑거름을 쌓고 있다. 운동적 성격을 띠는 인권영화제나 여성영화제처럼 ‘반부패’라는 유일한 화두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고 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영화제가 추구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특히, 경쟁부문에 학생작품부문을 별도로 둔 것도 반부패영화에 대한 지속적인 작업을 추동시키기 위해서다.

영화제의 수상작은 오는 6월 베를린에서 영화제작 워크숍을 통해 또 한번 상영될 예정이다. 이번 영화제 상영작들은 대개 한국에서 최초로 개봉되는 것으로 장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극영화나 다큐멘터리가 대부분이다. 또한 이탈리아, 프랑스, 세네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개인 혹은 집단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패 대 반부패’의 치열한 싸움이 소개된다.

올해 영화제의 주제는 ‘부패를 폭로한다!’. 카메라가 폭로하는 이번 영화제 작품들을 미리 엿본다.

◇ <한 시칠리아 반항자의 일기>(Diario di una Sciliana Ribelle) (이탈리아, 2002, 감독 마르코 아멘타(Mrco Amenta))

=마피아에 저항한 17세 소녀 리타 아트리아(Rita Atria)의 투쟁일기를 그린 영화. 끝없는 폭력과 강도, 마약밀매가 판치는 그의 고향 파르탄나(Partanna)에서 자라난 리타 1990년 대 초반 벌어진 마피아간 전쟁의 배후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된다. 그녀로부터 지목당한 인물은 그 지역의 시장. 이후 그녀를 비롯한 가족들은 살해협박을 받는다. 법정에 선 그녀는 결국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고 어머니를 남겨놓은 채 자신도 살해를 당한다. 감독은 그녀가 기록한 일기 내용과 생존자들의 인터뷰 및 뉴스 기록들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누설(Leak)>(네덜란드, 2000, 감독 장 방 드 벨드(Jean van de Velde))

=경찰관 에디는 마약 판매상이 된 옛 동료 잭을 정보원으로 삼으라는 상부의 압력을 받는다. 이를 역이용하려드는 잭과 그의 조정자 역할을 하게 된 에디는 서로에 대해 위장을 하게되는데, 잭이 가져온 정보는 경찰의 방어를 빗나가고 범죄는 확산되어가기만 한다. 에디는 경찰 내부에서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하지만 증거는 없다. 에디는 점차 상부의 배신과 잭의 위협에 빠져드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네덜란드 경찰들의 마약밀매와 관련된 비리스캔들을 폭로하고 있다. 2000년 네덜란드의 권위적인 금우상 최우수영화상·감독상·극작가상·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2002)

=남아공 한 감옥의 간수들과 죄수들 사이에서는 마약과 술 매매가 이뤄진다. 심지어 섹스까지. 10대 청소년수감자는 간수의 지시에 의해 다른 수감자의 방에 들여보내진다. 재소자의 탈옥 기도시 사용할 권총과 총알도 어렵지 않게 주고받는다. 이곳 감옥 수감자 4명에 의해 현장에서 비밀리에 제작되어 여과 없이 공중파 방송을 탄 이 고발작은 시청자들을 경악케 했고 사회적으로 간수들의 비리를 폭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관객들, 부패에 자극받기를”

‘반부패’와 ‘영화제’의 조우가 우리에게 아직은 낯설지만, 정권마다 ‘부패’로 내홍을 겪어온 우리로서는 뗄 수 없는 ‘반부패’의 과제를 떠안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더욱 이번 반부패국제영화제가 한국에 어울리지 않을까. 영화제 한국팀 홍보를 맡고 있는 김영신 씨는 “영화제 이름은 낯설지만 우리에게 뜬금 없는 행사는 아니라고 본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가 알고 있지 않은가. 오히려 이 영화제를 쉽게 이해시키고 알릴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영화제를 통해 많은 사회의 구석구석에 있는 부패에 사람들이 자극을 받고 반부패 의식이 확산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6개 비경쟁부문 초청작에는 한국작품도 있다. 제 5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출품작 <낙선(Power of the people)>(감독 오정훈, 이안숙).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유권자 혁명을 외치며 정치권을 긴장시켰던 2000년 낙천, 낙선운동의 현장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같은 초청작인 페루 영화 <불투명(A Hazy Transparency)>(2001년 작)도 페루 대통령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이 관망자에서 적극적인 민주주의 수호자로 변신해나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직접적으로 거명되지는 않지만 씁쓸하게 한국인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다큐멘터리 한 편도 이번 영화제 초청작에 포함되어 있다. <올림픽 환상(The Great Olympic Illusion)>(프랑스, 독일, 영국 공동제작, 2000). 올림픽 위원회 조사를 맡았던 앤드류 제닝스(Andrew Jennings)의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지난 2002년 유례없는 심판시비를 불러일으켰던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의 유치를 둘러싼 비리를 폭로한다. 유타주의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에 의해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유치팀이 대회 유치를 위해 IOC(올림픽위원회) 위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것이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후 대회유치를 둘러싼 비리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당시 폭로로 IOC 위원 10명이 위원직을 박탈당하기에 이르렀다.

힘없는 자들과 힘있는 자들의 대결, 특히 부패와 비리로 얼룩진 관료조직에 대항하는 보통사람들의 거센 몸짓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 역시 확인할 수 있다.

공동체를 이루어 수 세대에 걸쳐 살아온 농부들이 경작해온 농장을 하루아침에 골프 리조트로 변경하려는 정부에 대항해 농부들이 떨쳐 일어난다. 다큐멘터리 (미국, 필리핀, 1998)에서는 결탁을 이루고 있는 필리핀 정부와 개발업자들에 의한 부동산 비리를 척결하려는 농부들이 사활을 걸고 싸워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 <희생(Sacrifice)>(미국, 태국, 1998)에서는 매년 수천 명에 이르는 소녀들이 미얀마의 시골마을에서 이웃나라 태국으로 건너가 섹스산업 종사자로 일하면서 겪는 고통을 고발한다. 소녀들은 태국의 불법 매음굴에 들어가 검은 유착관계에 있는 포주와 경찰들의 탄압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 애쓰고 있다.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

△영화제 문의: 02-393-6211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2003/05/01 00:00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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