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5일 장엄한 시작을 선포한 참여정부가 오는 6월 4일 출범 100일을 맞이한다. "검사와의 대화", "국정원 개혁", "언론개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의 목소리는 높았으나 그에 비해 내용적 성과가 별로 없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지난 5월 15일 한미정상회담 전후에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네티즌들로부터 힐난을 받기까지에 이르렀다. 본지는 노무현정부 100일을 기점으로 총 12개 분야의 전문가를 통해 참여정부의 개혁정책을 평가하고 이후 과제를 고민해본다. 편집자 주

(1) 외교·안보·통일분야

핵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은 긍정적으로 병행되어야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평화번영정책은 어디에 서 있는가? 정책환경이 열악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김대중정부의 포용정책 환경과 또 다르다. 이라크전쟁 이후 부시행정부의 군사적 패권에 기반한 외교적 일방주의는 여전하다. 국방성은 공공연히 북한의 정권교체를 주장하고 있고, 국무성의 대화 노선은 소수 의견에 머무르고 있다. 북한 역시 3자 회담에서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범한 제안’을 공식적으로 밝혔지만, 동시에 실체가 모호한 핵 보유 사실을 비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라크전쟁의 교훈에 따라, 대화와 대결의 어떤 가능성에도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북미 양국은 여전히 강경파들이 주도하는 적대적 의존관계를 되풀이하고 있다.

노무현정부는 북한 핵문제 해결 원칙으로 대화를 통한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 유지를 강조해 왔다. 북미 양국의 강경파들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남한의 역할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미관계와 남북관계, 두 축이 모두 중요하다. 그렇지만 3자 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을 거치면서 두 가지 과제의 미묘한 긴장이 깨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은 노무현정부의 외교적 현실의 가능성과 한계를 보여주었다.

첫째, 평화적 해결원칙은 양보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은 여전히 협상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지속적으로 경제제재와 군사적 공격을 포함한 다양한 선택들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3자 회담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음을 밝혔다. 현재의 국면은 미국이 대답할 차례다. 평화적 해결원칙의 공감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황에서 추가적 조치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은 북한의 제안에 대한 동문서답이 아닐 수 없다. 표현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3자회담에 임하는 미국의 입장이 문제다. 한미관계의 악화가 가져올 현실적 파급효과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것은 위기의 단기적 봉합에 불과하다. 미국에게 협상을 해야 한다고 설득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 스스로 협상 국면의 중요성을 희석할 필요가 없었다. 공동선언은 분명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 양국의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미국이 평화적 해결방식에 소극적인 한, 한미간의 시각차이는 당연하다. 한미 공조란 미국의 입장을 따르는 것만이 아니다. 한국의 입장이 있고, 그것을 설득하는 것이 외교적 능력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핵문제와 경제협력과의 관계는 부정적 연계론이 아니라, 긍정적 병행론이어야 한다. 인도적 지원을 연계하지 않겠다는 합의는 다행이다. 문제는 경제협력이다. 북한은 3자회담에서 남북경협과 북일 관계에서 미국의 간섭 배제를 요구했다. 그렇지만, 미국은 지속적으로 경제협력을 외교적 압력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현재의 경협 수준의 도약이 어렵다. 그런 차원에서 핵문제가 경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경협이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대북송금에 관한 특검으로 발목이 잡혀 있는 남북경협의 핵심사업을 비롯한 전반적인 경협 사업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향후 노무현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복합적 접근과 국내적 탈냉전이다.

첫째, 한미 공조에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 주변국 외교와 남북관계 축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부시행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가 핵심 열쇠이지만, 그것이 어려울 경우에 대비한 대안도 필요하다. 동북아의 외교환경은 중동과 달리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가 그렇게 쉽게 통하지 않는다. 한미 정상회담 이후 예정된 주변국 외교에서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다차원적 외교가 필요하다. 동시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남북한의 대화채널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국제사회에서의 남한의 적극적 역할은 남북관계의 진전수준을 반영한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둘째, 남북관계에서 보다 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핵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표류하고 있는 경제협력 활성화 방안도 필요하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핵문제가 풀릴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 동시에 남북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적 협력사업의 개발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국내적 탈냉전을 가속화해야 한다. 여전히 색깔론이 판치는 냉전적 과거와 탈냉전적 미래가 공존하는 과도기적 상황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평균 의식은 분명 과거의 냉전틀에서 벗어나 있다. 국내적으로 냉전적 잔재를 극복하지 않으면, 대북정책이나, 미래지향적인 외교를 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2) 경제분야

모르고 저지를 잘못이 더 위험하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출범 이후 노무현정부의 정책 중 조용히 넘어간 것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 중에서도 대미 외교정책과 경제개혁정책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다. 두 분야의 공통점은 노무현 대통령이 작년 선거운동 기간 중에 제시했던 원칙과 취임 이후의 정책이 뭔가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역시 현실정치는 머리 속에서 그리는 것만큼 간단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 두 분야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존재한다. 대미외교정책상의 원칙 후퇴, 특히 이라크 파병 결정은 모든 사람이 그 배경을 다 알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본인도 알고, 여당도 야당도 알고, 반전운동을 전개했던 시민단체도 알고, 심지어 미국정부도 안다. 외교는 실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러나 경제개혁정책의 후퇴는 그렇지 않다. 원칙이 무엇인지 분명치 않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추구하는 경제질서의 원칙이 훼손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며, 결국 김대중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무지로 인한 원칙위배가 더 무섭다. 실패가 확정되기 전에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4·3 카드사 대책이다. 관치금융의 재판이라는 참여연대의 비판에 대해 노무현정부는 신경질적인 반응만 보였다. ‘시장이 망가지는 것은 보고만 있으라는 말이냐’는 식으로…. 강조하건대, 최종 대부자 기능(the lender of last resort)은 정부 고유의 책임이며, 따라서 금융위기를 방치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유기다. 그러나 최종 대부자 기능에도 원칙이 있다. 그 원칙에 비춰볼 때, 은행 예금자의 돈을 동원해 소수의 재벌계 카드사와 부실 투신사를 지원하고, 이들의 불법·부실경영을 방조하고, 나아가 감독에 실패한 정책관료들로 하여금 대증요법을 남발하도록 하는 것은 정책 차원의 도덕적 해이다. 그 결과 시장에서는 미래에 동일한 금융불안과 관치금융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기대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진짜 문제다.

김대중정부의 경제개혁정책이 왜 실패했는가? 무수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놓고도 전혀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기적 위기관리와 장기적 구조개혁 사이의 갈등이 생길 때마다 김대중정부는 언제나 구조개혁원칙을 위배하는 위기관리대책을 시행했다. 나아가 금감위, 공정위, 국세청, 검찰 등 감독기관 및 수사기관의 전임 수장들이 수뢰혐의로 줄줄이 소환·기소되는 상황을 보면 김대중정부의 개혁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의 실패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이번 카드사 대책이 대우와 현대 사태 때의 대책과 무엇이 다른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은 물론 여타 재벌의 불법행위에 대해 얼마나 엄정하게 대처하고 있는가. 또 다시 감독·수사기관의 권한집행을 자의적으로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단기적 위기관리’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 대통령은 바뀌었으되, 경제정책을 구상·집행하는 관료조직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관료를 탓할 일이 아니다. 내년 총선 때까지는 경제개혁은 속도조절하자며 이른바 안정형 경제부총리를 임명한 대통령 본인이 책임질 일이다. 시쳇말로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서로 코드가 맞지 않으니, 경제는 개혁도 안정도 물 건너가고 있다.

(3) 언론분야

정권초반, 제도개혁의 기반 마련해야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참여연대 운영위원

노무현정부는 김대중정부에 비해 언론개혁과 관련해 좋은 여건에서 출발한 측면이 있다. 정치권에서도 개혁진영이 힘을 받고 있으며, 유례 없는 언론의 왜곡보도를 경험한 유권자인 수용자들이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의원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는 언론개혁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한계 속에서 지금까지 노무현정부의 대 언론 조치들이 이뤄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노무현정부가 취한 조치들은 권언유착의 고리를 끊는 것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보도에 대해 언론과 뒷거래를 하지 아니하고 공식적으로 대응한 오보백서, 권언유착의 고리역할을 했던 가판구독금지 조치, 소수언론의 정보접근 특권을 폐지하고 언론 다양성을 보장하려는 기자실 개방, 시장의 불공정 거래 규제를 강화하려는 신문고시 개정, 공동 배달제 지원의사 표명 등은 모두 기존의 소수 권력화된 언론의 특권을 폐지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권력과 언론의 긴장관계가 조성된다면 권언유착의 고리가 단절되는 긍정적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어쩌면 소수정권 아래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조치들이 각각 한계를 지니고 있음은 지적해야 한다. 오보의 대응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언론개혁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측면이 있으나, 그 대중성 확보를 위한 추후의 조치가 청와대나 정부로서는 어렵다는 사실이 간과되었다. 오히려 오보에 대한 대응은 언론중재위원회나 사법적 대응을 통해 명백한 언론의 오류를 평가받는 작업이 필요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대중적 동의를 획득하는 것이다. 가판구독금지 조처를 취하면서 기업에게 가판구독이 필요한 지를 탐문하는 잘못을 범하거나, 가판구독이 권언유착의 고리임을 전면에 부각시키고 이를 끊겠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전술적 실패, 기자실 개방의 전제인 정보공개 강화의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나감으로써 맞은 역풍, 신문고시 11조 개정에 머무른 시장정상화 조치, 공동배달제 실시 지원에서 보여준 미온적 태도 등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언론 개혁의 명분을 대중적 전술로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야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세 가지 점에서 비롯한다. 첫 번째는 소수정당 대통령으로서 제도적 개혁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으나, 언론개혁 의지의 표명이나 제도적 언론개혁의 기반을 지금 닦지 못한다면 원내 다수 정당이 된다 하더라도 언론개혁에 적극 나서겠는가 라는 의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민주적 절차의 훼손, 무적격자의 추천 등 방송계 인사 과정의 난맥상이다. 인사에서 개혁의 의지를 읽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는 언론개혁은 사회개혁을 위한 기반 구축의 의미가 있는데 개혁과제에 대한 미온적 행태,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노출 등에서 현 정부의 언론개혁이 정치적 고려에 불과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구심을 초래할 여지가 있다. 앞으로 노무현정부가 더욱 더 제도개혁을 위한 초석을 다져 나가지 않는다면, 부분에 불과한 현재의 조치들이 전체 언론개혁의 과제들을 대치하는 전도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4) 민생분야

개인신용 위기에 대한 대책은 있는가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처장

국민의 정부 말기 참여연대는 “스톱 카드!”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신용카드회사의 카드발급 남발과 카드사용한도 폐지로 가계부채의 증가 및 신용불량자, 가계파산자 양산의 우려가 높고 이로 인한 신용카드회사의 부실화가 우려된다는 지적을 했다. 그러나 정부가 계속 규제완화라는 미명 하에 카드회사의 부실경영을 방치한 결과 참여정부 들어와 참여연대의 지적은 현실화되었다. 가계부채가 430조 원이 넘고 그중 19%가 신용카드로 인한 부채이며 신용불량자는 300만 명을 넘어 경제활동 인구 7명 중 1명이 신용불량자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게 됐다.

참여연대는 이런 개인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카드발급과 카드사용한도의 제한, 불법채권추심 금지 등 카드회사에 대한 정부의 감독을 강화하고 이미 발생한 개인파산자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개인회생절차법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참여정부 100일 동안 신용카드회사의 불법채권 추심으로 신용불량자의 아버지가 자살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개인신용의 위기가 도래하고 있음에도 참여정부는 적기에 적확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꾸로 신용카드회사의 도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신용불량자의 가족들에 대한 채권추심 등 이미 「대금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서 불법화된 채권추심과 카드수수료 인상, 전체 매출액 대비 현금서비스 매출비율의 50% 제한조치 철폐 등 서민금융이용자 보호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임대차보호법)」의 시행유예기간이 1년이나 되고 기존 임대차계약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으며 이 법의 제정 이후 공백기간이 2년이나 되다보니 본격적으로 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는 2003년 11월 이전에 임대료를 인상하고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엄포를 놓았던 악덕 임대인에 대한 세무조사도 100여 건 정도에 그쳤고, 서울시의 경우에는 임대차보호법의 적용을 피하기 위해 미리 상가를 비워주기로 하는 ‘제소 전 화해조서’를 상인들에게 강요하는가 하면 임대료를 최고 300%까지 올려 받는 등 오히려 악덕 임대업자를 자처하고 나서는 어이없는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다.

국민의 정부의 경기활성화를 위한 부동산투기 조장(?)정책으로 집값이 폭등하고 부동산투기가 만연하는 사회현상은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도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100만 호 국민임대주택건설과 재산세 등 보유세 인상과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기준 강화로 이에 대처하겠다고 했으나 국민임대주택건설은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행정영역 안에 임대주택을 건설하지 못하겠다는 이기적인 태도로 택지를 확보하지 못해 추진이 미진하다.

국민의 정부에서 후퇴시켰던 분양권 전매금지 철폐조치를 다시 원상 회복해 전면금지 정책으로 전환하는 등 보다 강화된 부동산투기 억제정책을 내놓고 있으나 노무현 대통령의 선거공약이었던 주택분양가 원가연동제지침 부활 등 보다 근원적인 부동산투기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5) 교육분야

정부가 외국 교육자본 이익 대변해서야

박거용 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

노무현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여러 분야에서 나름의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지만, 교육분야에서는 오히려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노무현정부 들어 가장 먼저 추진되었던 교육정책이 교육개방이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3월말 ‘주체성 상실’과 ‘국내 대학의 몰락’을 우려하며 교육개방을 강력히 반대했던 교육관련 단체의 요구를 무시하고, 교육개방 양허안을 제출했다. 이는 교육분야를 보건, 문화분야와 함께 서비스협상에서 제외하기로 공식 발표한 유럽연합(EU)의 입장과도 다른 것이다. 우리정부가 외국 교육자본의 이익을 위해 앞장선 꼴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교육인적자원부의 대통령 업무보고 내용이다. 김대중정부의 교육개혁안을 재탕 삼탕 반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 내용에서도 후퇴한 결과들을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이미 국민들로부터 실패했다고 비판받고 있는 정책들을 막무가내로 밀어 부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국민 혈세만 낭비한 ‘BK21사업’ 강행과 국립대 민영화의 일환인 「국립대학 운영에 관한 특별법」, 사학 운영자들의 이익을 위한 ‘대학 퇴출 경로 마련’, 교육개방의 일환인 ‘원격교육 확대’,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대학 평가 강화’ 등이 그런 예이다.

물론 교육인적자원부는 국민적 비판이 높아질 것을 우려해 ‘교육인적자원부 혁신’, ‘교수회 합법화’, ‘국립대학 총장선출 방식 자율화’, ‘사학비리전담기구 구성’ 등과 같은 몇 가지 미봉책을 곁가지로 끼워 넣고는 있으나, 이 역시 전제조건과 다른 의도를 담고 있어 그 진실성에 의심을 주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이러한 배짱(?)의 이면에는 교육문제를 바라보는 정권 핵심부의 안일한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우선 청와대 직제를 보면, 외교, 국방, 경제, 인사, 정보과학기술보좌관만 있을 뿐 교육보좌관은 없다. 청와대는 정책실장 산하의 국정 과제 TF팀의 일환으로 ‘교육개혁팀을 추후 검토 후 상반기 중에 설치하겠다’고 밝히고 있을 뿐이다. 청와대의 이와 같은 인식은 교육개혁이 또다시 교육관료들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노무현정부는 교육개혁을 위한 ‘교육혁신기구’를 구성하겠다고 하지만,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요 정책 고수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기구가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성공적인 교육개혁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통령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교육개혁을 정권의 핵심 과제로 설정하고 범 정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관료주의와 행정편의주의, 편협한 엘리트주의에 찌들어 있는 교육인적자원부에 교육개혁 작업을 맡겨서는 안된다. 중이 제머리를 깍을 수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속히 민주적이고 현장성 있는 인사들을 주축으로 명실상부한 ‘교육개혁 추진 기구’를 구성해 ‘시장 논리’가 아닌 ‘균형과 통합’에 기반한 교육개혁을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 정부에 대한 교육정책 평가나 향후 계획 등도 여기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6) 노동분야

노동개혁 빈수레가 요란하다

박석운 노동인권회관 소장·참여연대 운영위원

참여정부 100일의 노동정책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한 수많은 국민들의 기대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나름대로 종전 정권과 다소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노동쟁의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일정한 변화가 감지된다. 가압류, 손배의 철회와 해고자 복직을 갈망한 50대 노동자의 분신으로 촉발된 두산중공업 노동쟁의에서 전투경찰을 투입하지 않는 대신 쟁의가 장기화되자 노동부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서 어렵사리 노사합의를 조성해 낸 사례가 첫번째 긍정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두번째 긍정적인 신호는 철도노조쟁의 사례에서 나타났다.

노조의 철도 민영화(사유화)정책 철회와 부족한 인력충원 등을 요구하는 쟁의에서, 사용자이자 정부당국인 철도청이 성실한 교섭에 나서서 파업 돌입직전에 노사합의를 이뤄냈는데, 여기에는 노동정책 당국의 적극적 대화여건 조성노력이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나름대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가까스로 마무리된 화물연대의 파업사례가 세번째 긍정적 사례가 될 수 있다. 운송료 인상, 지입제 등 화물운송 관련 법제도 개선, 다단계 알선체계 개선 등을 요구하는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연대”의 “파업”시 주무부처인 건교부 등의 관료주의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사태가 악화되고 있을 때 노동부장관 등이 앞장서서 대화와 협상을 추동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전개를 놓고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새 정부가 “노동자 편향적인” 또는 “친노동자적인” 정책을 쓰고 있다면서 마구 비난하고 있지만, 이는 실상과는 동떨어진 과도한 비판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예전 정부의 “사용자편향적인” 정책이나 “전투경찰 동원형” 노동정책에서, 정부가 “중립적 자세로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하는 노동정책으로 방향전환되고 있지만, 아직은 중립적 위치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여전히 친사용자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그 반면에 노동정책의 개혁문제는 여전히 나팔소리만 요란할 뿐 실제로는 개혁공약이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OECD국가 중에서는 한국만 빼고는 모두 인정되고 있는 공무원노조를 합법화하겠다고 수 차례 천명하고 있지만, 아직 법안조차 제출되지 않은 실정이고 국회에는 정부입법안으로 제출되어 있는 “공무원조합”법안(공무원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법안)이 계류되어 있는 실정이고, 그 외에도 98년 노사정 합의사항이기도 한 “실업자의 초기업단위 노조가입허용” 문제가 아직도 입법되지 않고 있는 등 원초적인 노동기본권인 결사의 자유(노동3권) 영역조차 실질적 진전이 없다. 그리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주5일제를 실시하는 문제나 기만적인 외국인산업연수제도를 철폐하고 노동/고용허가제를 도입하는 문제도 여전히 실질적인 진전이 없는 실정이고,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철폐하겠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구호에 그치고 그 어떤 실질적인 개선조치도 취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오랜 악폐인 사용자측의 부당노동행위는 여전히 처벌되지 않고 있다.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는 실정법 상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행위인데, 대우자동차판매 노조사례에서 보듯이 사용자측의 적나라한 노조파괴공작을 입증하는 각종 자료가 폭로되고 있지만, 여전히 처벌되지 않고 있다. 그 외에도 서 교장 자살사건을 빙자한 전교조에 대한 마녀사냥식 매도나 평화교육에 대한 용공매도 등에서도 명백한 개혁후퇴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일부 측면에서 다소 개선되는 조짐이 없지 않으나, 전반적으로는 아직 노동개혁과제의 실천이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태로 판단된다.

(7) 부정부패분야

반부패 정책, 핵심은 "제도화"에 있다

장유식 변호사·참여연대 협동처장

노무현정부 출범 100일이란다. 『참여사회』 편집부는 노무현정부의 정책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솔직히 평가할 정책이 없다. 꼭 하라면, ‘제도화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싶다.

노무현정부가 집권과 함께 제시한 12대 국정과제 중 반부패 분야의 슬로건은 ‘부패 없는 사회, 봉사하는 행정’이다. 그 핵심은 권력형비리·고위공직자의 부패척결이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처음부터 한발 물러서고 있다. 당초 대선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이하 비리수사처)의 신설과 특검제 실시’를 공약했으나 집권 후에는 ‘특검제의 한시적 상설화와 청와대 사정팀의 공식화’로 후퇴한 것이다.

대신 과감한 검찰개혁, 범정부 차원의 반부패시스템 구축을 통해 사정기능의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은 당초 비리조사처 신설의 중요성이 제기된 취지와 내용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특검제는 검찰권 행사에 있어 정치적 중립성 훼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임에는 분명하지만, 정치적 논란을 거쳐 사후적으로 특검을 임명함으로써 소모적 정쟁을 일으키고 다수당의 전횡이 빈발하는 등 문제점이 없지 않다.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는 특별검사들로 구성된 별도의 상설적인 조직, 즉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가 필요하다. 청와대 사정팀의 공식화 역시 대통령 주변과 고위공직자의 비리, 부패행위를 수사하는 기관이 대통령의 지시와 감독을 받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독립성 침해를 해결하지 못해 실효성이 없다.

노무현정부는 최근 나라종금사건과 측근비리, 대북송금 특검 등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다. 집권초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걸어 나가기는커녕 집권말기에나 있을 법한 각종 비리의혹에 발목이 잡혀있다. 그것이 과거정권의 비리라고 항변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반부패정책을 ‘제도’로 완성해나가겠다는 일관된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제도화와 관련하여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이른바 ‘합법적인 부패’라고 불리우는 ‘이해충돌의 회피’에 대한 것이다.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라 함은 말 그대로 공무원들의 공적 의무와 사적 이해의 충돌을 의미한다. 구체적인 사례로 삼성전자 주식 수십만 주를 보유하고 있는 진대제 정통부장관이 정보통신관련 정책결정(예를 들어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통해 삼성전자 주식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이다.

외국의 경우 이해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이해충돌 상황이 예상되는 공직자를 특정한 직위에 부임하지 않게 하거나 이해충돌이 예상되는 재산을 처분하는 것을 전제로 공직에 임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공직자윤리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고 공직자들이나 국민 일반의 인식도 낮은 상태이다. 노무현정부의 반부패정책이 소위 글로벌 스탠다드(Global standard)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공직자윤리법의 개정논의에 이해충돌해소에 관한 규정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노무현정부는 그밖에 시민옴부즈맨 도입 등 부패추방을 위한 시민참여확대, 공정하고 투명한 인사시스템의 확립, 국민과 성과중심의 행정개혁, 투명한 성과중심의 예산개혁 등을 반부패정책의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앞으로의 진척상황을 지켜볼 일이다.

(8) 정치분야

낡은 정치제도 청산, 내일이면 늦으리

김민영 참여연대 시민감시국장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개혁을 이뤘나? 아직까지는 긍정하기 쉽지 않다.

주목할 것은 대통령과 의회와의 관계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 후 대통령 신분으로 야당의 당사를 최초로 방문한 것이나, 직접 국회연설을 진행한 점, 수시로 각 정당 대표들과 만나 국정협의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은 신선한 변화다.

특히 민주당의 상당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북송금특검법에 동의함으로써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구현해 보인 것은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주지하다시피 16대 국회는 현재 한나라당 154석, 민주당 101석, 여타 정당 및 무소속 18석으로 구성돼 있다. 여소야대를 넘어, 한나라당의 독주체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시기, 집권자들은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해 아예 집권당을 국회 다수당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를 했었다. 이와 달리 노무현 대통령의 새로운 접근법은 대통령과 대의회관계의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으며 ‘상생의 정치’ 단초를 마련하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정치개혁의 핵심과제인 ‘낡은 정치제도 개혁’에 있어 노무현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거의 없으며, 실제로 진척된 것도 전혀 없다. 우리나라처럼 정부입법이 많은 나라에서조차 정치관계법만은 전적으로 ‘정당’의 소관이며 정당끼리의 협상에 의해 바뀌는 것 이외의 다른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후 때때로 ‘선거제도’ ‘정치자금제도’에 대해 언급한 것은 대통령 개인의 견해일 뿐 이를 실현할 수단이나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노무현정부 출범 후 ‘정치관계법’ 개정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4개월여 동안 각 정당은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 국회에서의 생산적 의정활동은 중단한 채, 정당개혁을 명분으로 사실상 당 내부 문제에만 집착하고 있다. 특히 본격적으로 민주당의 개혁신당 논의가 촉발되면서 지역주의적 정당구조의 구각이 깨어질 수 있을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념과 노선에 따른 정당구조로의 재편 역시 정치개혁의 중요한 방향이라 할 때 향후 새로 부상하는 신당의 성격과 방향에 따라 향후 한국정치는 큰 영향을 받을 것임은 틀림없다. 다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통령도 국민들도 정치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낡은 정치인의 퇴출’과 ‘부패한 정치구조의 혁신’ 그리고 이를 위한 ‘정치제도의 근본적 개혁’이다. 이와 같은 국민적 열망을 새로 부상하는 신당이 실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기존의 정당들이 환골탈태하여 이를 담당해나갈 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를 철저히 실현해나가는 정당이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해야 하며 또한 승리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라 할 수 있는 총선이 이제 1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국민과 변화하는 정치권 속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 지 귀추가 주목된다.

(6) 사법분야

시작도 못한 법원·변호사 제도개혁

전제일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간사

참여정부의 사법분야 개혁에 대해서는 평가주체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파격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법무부장관에 검찰 경력이 전혀 없는 여성 임명, 역대 최초로 평검사와 토론 생중계, 서열과 기수를 파괴한 검찰인사 등이 이런 파격에 속한다. 그러나 일반 국민의 눈에 ‘파격’으로 비친 이런 현상이 오히려 노무현정부 출범 후 모든 사법개혁이 제대로 진척되어 가고 있다는 일종의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법분야라고 할 때 그 범위를 어디까지 잡아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통상 법원과 검찰 그리고 변호사 영역을 ‘법조3륜’이라 하고, 사법개혁은 이 세 가지 영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정부의 사법개혁은 검찰, 그 중에서도 인사제도에 한정된 것에 불과하다. 법원과 변호사 부문에 대해서는 어떠한 개선이나, 개혁과제의 설정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조직과 달리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판결, 인사 등에서 광범위한 자율권을 누리는 법원이나, 민간부문에 속하는 변호사 관련제도는 상대적으로 개혁수단이 극히 제한적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라면 최소한 사법개혁 전반에 대한 기조와 방향을 잡고 여론을 통한 의제화와 정책집행을 꾸준히 진행해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가 제기해온 법원 개혁과제의 핵심은 인사권 독립과 공정한 인사제도의 정착이다. 법원은 최근 군사독재 시절과 달리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이룬 것으로 보이지만, 판사 스스로 법률과 양심에 따른 판결을 내리려면 경직된 관료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법원 상층부의 견제에서 벗어나 법관 직무수행에 공정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재판과정에 시민 참여의 길을 열어주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변호사 관련제도 중에도 지속적으로 문제돼온 전관예우 근절방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부패한 변호사에 대한 징계도 강화해야 한다. 경찰의 피의자 인권보호 방안을 실질화 하고, 수사권 독립 문제도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법원개혁은 최근 법원에서 시민모니터제를 도입하고 법관인사에 미미한 개선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정도가 전부이며, 참여정부의 변호사 제도개혁 의지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더욱 ‘법조3륜’으로 지칭되는 사법의 외연을 헌법재판소와 경찰까지 확장한다면 검찰인사제도의 성과는 전체 사법개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기득권집단은 호락호락하게 기득권을 넘겨주지 않는다. 여론이 불리할 때는 모든 것을 수용할 것처럼 저자세를 취하지만,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과거의 권위적인 자세로 돌아가곤 한다. 노무현정부가 진정 사법개혁의 의지가 있다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그러나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에서 확인되듯 전체 사법 개혁에 대한 국민적 바람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고, 이는 참여정부가 사법개혁에 관한 청사진과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실천에 옮기기 위한 호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10) 조세분야

세제개혁은 실망, 세정개혁은 더 지켜봐야

최영태 회계사·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소장

투기공화국 전통이 면면히 내려오는 대한민국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참여정부는 조세개혁을 등한시함으로서 출발부터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정부는 조세개혁을 하면 시장이 붕괴된다는 해괴한 논리에 경도된 채 수백 조 원의 투기자금이 몰려다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만 보더라도 이자투기로 시작된 투기열풍은 벤처투기를 거쳐 부동산투기로 이어져 한 번도 그 열풍이 가라앉은 적이 없다.

수익성을 쫓는 자금 속성상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곳에 자금이 투입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시장 붕괴를 우려한 정부는 아직도 예금, 주식 그리고 부동산에 대한 느슨한 세제를 뜯어 고쳐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상황인식이 부족한 정부가 이제 할 일이라곤 투기자금이 생산활동에 투입되게 해 달라고 기우제나 지내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러한 절박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제가 어렵다는 아우성에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하루아침에 뒤엎고 법인세를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정도의 정책을 추진하려면 왜 조세통인 경제부총리를 뽑았을까 의문이 든다. 통화량, 이자율 그리고 부동산 등 과거 정부가 주로 써 왔던 정책변수들이 더 이상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이 마당에 조세분야는 참여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가 아니냔 말이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과감한 조세개혁을 단행해야지 법인세 인하 등 밋밋한 정책으로는 상황을 호전시킬 수 없다. 그나마 정부가 주장해 왔던 비과세 감면 축소가 다른 부처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고 부동산 마저 다시 상승할 기미를 보이면서 또 다른 기우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참여정부는 탄생 초기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입법으로 개혁의 시동을 거는 듯했다. 하지만 수많은 개혁과제 중 왜 하필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만 강조할까 하는 의문에 대해 지금 판단해 보면 여타 세제 부문에서 정부의 개혁의지가 실종했음을 감추기 위함이었다고 유추하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닐 것이다.

반면 탈세를 근절하고 세정을 선진화하려는 노력은 신임 국세청장의 의지와 분배구조 악화를 방치하지 않으려는 청와대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국세청이 야심 차게 추진하려던 룸싸롱 및 골프장 접대비 불인정과 금융정보의 국세청 통보가 정부 부처 특히 재경부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까지 몰렸다. 전자의 불씨를 살린 것은 국민의 여론이었고 후자의 불씨를 살린 것은 청와대의 ‘빈부격차 완화와 차별시정 기획단’이다. 재경부는 조세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 행태를 즉시 그만두어야 한다.

국세청의 세정혁신 노력에도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눈에 띈다. 힘들고 어려운 탈세 추적은 기피하고 성실 납세자들을 괴롭혀서 쉽게 세금을 추징해 온 과거의 잘못된 세무행정은 이제 끝나야 한다. 특히 자진신고납부제도를 채택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따라서 세무행정만으로 탈세를 근절하겠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탈세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때문에 세무행정을 자꾸 비밀에 붙이려고 하지말고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을 적극 참여시켜야 한다. 연구소, 학계, 그리고 시민단체 들이 수년간 요구하고 있는 업종별·계층별 과세자료 및 탈세자료의 공개를 왜 꺼려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과세인프라 구축 또한 진척이 너무 느리다. 조금 더 지켜 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세정분야에서 주체적으로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자꾸만 사회보험제도에 기대어 개혁을 추진한다면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개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럴 경우 또 다른 실패작으로 끝날 수도 있다.

(11) 사회복지분야

사라져가는 분배와 복지에 대한 의지

김연명 중앙대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당시 사회복지계는 상당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노 대통령 자신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보다 선거기간 내내 분배와 복지를 강조했고, 모든 여론조사에서도 복지와 분배에 관한 한 노무현 대통령의 강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100일이 지난 지금의 ‘분배와 복지 확대에 대한 기대’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사회복지계가 전반적으로 실망스런 분위기로 빠져들고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먼저 ‘참여정부’에는 사회복지에 대한 비전과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타나지 않는다. ‘동북아 중심 국가’, ‘분권과 지방화’라는 화두에 비견될 만한 사회복지부문에서 중장기 비전이 없다. ‘참여복지’라는 말은 정치적 수사로 전락되고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란만 확산되고 있다. 정권인수위원회의 보고서와 보건복지부·노동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과연 새로운 사회복지에 대한 비전이 제시되었는가를 따져보면 실망스럽다. 기존에 각 부처에서 추진 예정이던 사업에 몇 가지 새로운 것을 더한 것 외에 패러다임의 혁신을 가져올 내용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보건복지 부분에서 참여정부 초기의 몇 가지 정책들도 논란과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대통령의 복지관련 첫 발언인 보육업무의 여성부 이관은 찬반여부를 떠나 보육업무의 장기비전 없이 돌발적으로 튀어 나와 혼란스러움을 가져왔고, 보육업무나 국민연금 등에 대한 복지부장관의 초기 발언 역시 정교한 정책구상과 정책에 대한 폭넓은 이해 없이 즉흥적으로 제시된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한 마디로 초기 100일간 진행된 보건복지 분야의 정책은 ‘참여정부’ 차원의 정교한 정책구상이 없고, 이를 집행할 만한 체계적인 의사결정과 집행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약간의 긍정적인 희망은 대통령 정책실 산하에 설치된 ‘빈부격차·차별시정 기획단’의 출범과 여기서 발표된 프로그램이다. 기획단에서는 자영자 소득파악 강화, 건강보험 보험료 부과 형평성 제고 등 시행 여부에 따라 분배와 사회보장 인프라에 획기적 전기가 될 몇 가지 프로그램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었던 분배와 복지의 사안이 왜 초기부터 비틀거리며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인가? 집권 초기 북핵이나 경제 등 시급한 현안이 많은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요인이 있지만 보건복지의 맥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개혁적 인사가 정책결정기구에 배치되어 있지 못한 점이 결정적이다. 청와대 내에 보건복지를 총괄적으로 관리할 기구나 정책을 책임지는 인사가 없다. 책임 장관제는 정책 아이디어는 좋으나 부처에서 정책 방향이 잘못 잡힐 경우 이를 교정할 장치가 사라지는 문제점이 나타난다. 일상적인 부처의 업무는 책임 장관제로 간다 하더라도 대통령 프로젝트를 챙기는 사람이 없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김대중정부의 복지정책의 부분적 계승 외에 ‘참여정부’라는 정권 이념에 걸맞은 한국 사회복지의 새로운 장을 여는 프로젝트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12) 환경분야

첨여정부 환경마인드는 낙제점

홍성태 상지대교수·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노무현정부는 환경문제에 대해 과연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노무현정부는 우리의 자연이 극심하게 파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이 나라의 ‘삶의 질’이 형편없이 낮은 까닭은 무엇보다 이러한 극심한 자연의 파괴 때문이라는 사실을 노무현정부는 알고 있는가?

노무현정부의 출범에 즈음해 많은 사람들은 이 정부가 펼칠 개혁에 대해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환경부문은 예외였다. 고도성장을 거치며 무참히 파괴된 이 나라의 자연이 되살아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노무현정부가 환경문제에 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 깊은 우려를 가지고 이 정부의 출범을 지켜보았다.

환경정책은 쉽게 말해 자연을 돌보는 정책을 뜻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자연을 돌보는 정책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자연을 이용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은 없으므로 결국 환경정책은 자연을 이용하는 정책을 뜻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환경정책은 다른 모든 정책의 기초이고 오늘날 우리가 추진해야 하는 개혁의 핵심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이런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정책에 관ㅁ해 노무현정부는 무능력과 무기력에 빠져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인수위원회에는 단 한 사람의 환경정책 전문가도 배치되지 않았으며, ‘10대 국정과제’에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해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정부는 박정희 체계, 곧 자연을 파괴하고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사회체계를 지속하는 데에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회는 고도성장의 결과로 커다란 사회적 변화를 맞게 되었다. 1990년대의 민주화나 노무현정부의 탄생은 모두 이러한 사회적 변화의 산물이었다. 우리 시대의 개혁은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한국 사회를 한층 더 ‘고급화’하는 것이다. 이 역사적 과제는 고도성장을 통해 우리가 쌓은 엄청난 경제력을 올바로 활용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 그것은 두 가지로 줄일 수 있는 데, 한편에서 복지제도를 확충해 경제적 형평성을 강화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확립해야 하며, 다른 한편에서 자연파괴형 사회를 자연보존형 사회로 바꿔 생태적 지속성을 소생시켜야 한다.

자연파괴형 사회를 그대로 두고 개혁을 논하는 것은 거짓이다. 진정한 선진국은 자연보존형 사회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력과 물의 생산방식이 바뀌어야 한다. 핵발전과 대형 댐은 자연파괴형 공업사회의 상징이다. 또한 새만금 갯벌 매립사업과 같은 시대착오적인 대규모 매립사업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무분별하게 추진되고 있는 도로공사들도 전면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개혁은 세계 최악의 ‘토건국가’ 한국을 새로운 국가로 바꾸는 것이어야 한다.

낡은 삶의 방식을 없애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낡은 삶의 방식을 지키면서 사회의 ‘고급화’를 이룰 수는 없다. 자연의 파괴는 생명의 파괴이자 문화의 파괴이기도 하다. 개혁은 이러한 파괴의 시대를 끝내는 것이다. 노무현정부는 개혁의 참뜻과 목표에 대해 참으로 깊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편집부
2003/06/01 00:00 200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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