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 '소수정권 한계 극복할 개혁프로그램 마련해야'
2003/2003년 06월 :
2003/06/01 00:00
일시 : 2003년 5월 14일 오전 10시
장소 :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소회의실
토론자 :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이종오 대통령 정책자문기획위원회 위원장,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가나다 순)
사회 : 김호기 본지 편집위원장,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정리 : 김선중 본지 기자 bombi@pspd.org
사회: 6월 4일은 참여정부 출범 100일을 맞는 날이다. 2002년은 한국현대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월드컵을 시작으로 대선까지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가 정치와 사회의 변화를 일구었다. 출범 이후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를 개괄적으로 했으면 한다. 먼저 현 참여정부의 거시적인 정책전망을 담당해온 이종오 위원장의 말을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종오: 출범 이후의 기간은 5년 동안 참여정부를 이끌어갈 제도와 인적 틀을 마련하는 시기였다. 87년 이후의 민주화 성과에 대해 불만족해 하는 세력, 새로운 틀 형성에 대해 저항하는 세력들이 없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그간 민주정권의 무능과 부패, 정책적 혼선 등을 반성하고 새로운 국민 통합적인 개혁을 하고자 한다.
사실 이제까지 모든 정권이 개혁을 말해왔다. 하지만 개혁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부분에 있어 개선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부문이 있는데, 예를 들어 교육부문이 대표적이다. 국내 대학간 서열화와 학벌주의로만 그치지 않고 외국, 특히 미국대학이 우리나라 학벌구조의 최상층부에 새롭게 위치함으로써 국민적인 역량이 거기에 쏟아 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정부는 지금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국가발전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아울러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안정적인 정치구조와 노사관계의 형성, 정부의 효율성과 문제해결능력 확보다. 이러한 중점과제를 1년 내에 성공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교육을 포함한 중장기적 과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주원: 87년 이후 일반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노력이 있어 왔는데 그것이 이번 노정부에서는 상당부분 진전이 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참여정부가 강조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아직 제도적, 인적 틀이 안정화되지 못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책임내각과 책임행정부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시스템으로서도 안정적으로 구축되진 못한 것 같다. 참여정부 개혁의 내용과 방향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해영: 100일도 안됐는데 성과여부를 얘기하는 것은 조급한 감이 있고 또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면서 진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정치학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개혁이라는 것이 초반에 승부를 내지 않으면 비전이 없다. 그런 면에서 그간 정부의 조치와 행보를 보면 불길한 예감이 든다. 마키아벨리는 정치개혁의 어려움을 지적한 바 있는데, 기본적으로 기득권 세력이 누리고 있는 것들이 구체적인 반면에, 새로운 세력들은 개혁을 통해 무엇을 얻을지 확신하지 못한 채 미래의 이익에 대해 확실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마키아벨리가 제안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무장한 예언자’다. 사람들에게 개혁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고 그러한 믿음을 유지시키면서 필요하다면 강제할 수 있는 실력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이 ‘무장’이라는 것은 의회라는 정치적 기반과 언론과 같은 기타 사회적 기반들이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노정부는 실력적 요소들이 상당부분 결여되어있다. 단적으로 노정부는 의회에서도, 집권당 내부에서도 소수인 이중의 소수정부다. 한마디로 정치적 기반이 대단히 취약한 정권이라 할 수 있다.
현정부는 그런 면에서 명확한 개혁전략과 개혁이념, 개혁주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이념생산자는 아니지만 새로운 개혁정신의 상징적 아이콘으로서 개혁이념의 이정표 역할은 해야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슈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길지 않은 기간을 놓고 현정부의 개혁정책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기간에 개혁정책이 결코 없었던 바는 아니다. 그 동안 추진되었던 핵심적 사안들인 경제, 사회문화, 노동 등 각론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먼저 경제개혁의 경우 내부 조건보다 외부 조건에 영향을 받는 한국경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현정부의 출범 전후로 지난 80일간 외부적 조건이 그리 유리했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이해영: 기본적으로 사회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조치들, 특히 언론정책에 대해선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파병동의안을 둘러싼 문제를 보면서 기본적으로 개혁 아이템에 외교를 자꾸 빠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노정부로서는 한미관계 재정립이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사안이라고 본다. 하지만 현재의 외교안보팀이 과연 이를 수행할 만한, 현정부와 코드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최근 방미를 정치학자 아닌 시민으로서 보면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개방, 민영화, 유연화, 규제완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고전적인 이슈들을 그대로 경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김대중정부 역시 이 네 가지 카테고리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하다가 덫에 걸려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마찬가지로 노사문제를 보더라도 양립 불가능한 신자유주의, 즉 개혁과 노사정위원회라는 조치들을 같은 한 솥에 넣어서 추진하는 것 같다.
서주원: 사실 모든 개혁을 포괄하는 중요한 개혁이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이다. 실력이라는 게 결국 사회적 기반과 자기 무장력인 셈인데 이것들 각각이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으로부터 나온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들을 수행하는 데 노동계에서도 현재 정책이 과연 일관된 개혁정책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 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불분명한 것이 그런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사회적 통합을 얘기하는데 지역적 통합뿐만 아니라 세대간 통합도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구세대들이 새세대의 가치관에 융화되지 못하고 있고, 새세대 역시 공동선의 가치관에 대해 희박하다. 교육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환경분야에 있어 개발독재의 시대를 지나 노정부 하에서는 지속가능성에 근거한 정책들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여전히 개발론자들의 강한 영향력과, 한국사회에 고착화 된 커넥션들 때문에 변화 조짐이 별로 안 보인다.
이종오: 김대중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과거 50년간의 분단사회라는 역사의 짐을 덜어놓는 데 불충분했고 그 짐이 새정부에 상당부분 다시 넘어왔다. 외교적인 측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약된 점이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와 같은 진부한 대답이 되겠지만 작년 12월부터 북핵문제가 첨예화한 상황에서 과거와는 다른 한미관계의 재조정, 새로운 동맹관계를 구축하기에는 참여정부가 가질 수 있는 행동의 여지가 매우 좁았다.
파병에 대해서는 동정적으로 이해한 대중도 광범위했다. 이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의 방식은 다르다고 본다. 이 사안으로 노정부 전체 성격을 규정하고 대미관계, 대북관계 전체 방향틀을 판단하는 것은 예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외교안보정책은 조심스럽고 보수적일 수 있지만 정부 내 행정개혁에서는 좀 더 과감한 보폭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화물연대 파업 등과 같은 사회적 갈등 조정과 해결도 정부의 과제인데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당사자들이 합의를 도출하고 준수하는 방식이 가장 선진적인 갈등 조정방식이다. 참여정부도 장기적으로 이를 지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객관적인 제3자에 의한 조정중재방식을 말하고 싶다. 객관적인 3자는 정부가 될 수도 있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기구가 될 수도 있다.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 정부, 사회관계 이해당사자들이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 사회적 권위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합의를 도출하는 시스템을 시급히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의 사회적 주체를 튼튼하게 꾸려야
사회: 참여정부에게 부과된 중요한 이슈는 크게 북핵위기와 내년 총선이라고 본다. 대략 11개월 남은 총선은 1년 넘게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장이 될텐데 총선 전에 참여정부가 이뤄야할 우선적인 개혁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서주원: 다양한 집단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이번 정치개혁의 핵심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노정부가 생각하는 개혁의 내용을 현실에서 이뤄낼 수 있도록 인적 교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해영: 친개혁적인 정치세력이 의회에 진출해서 실질적인 정치개혁을 하는 게 기본적인 프로그램이 아닐까싶다. 그런데 과연 현실적인 정치 역관계에서 볼 때, 총선에서 뒤집기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개혁의 사회적 주체를 튼튼하게 꾸려내는 일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노동, 시민운동 이런 부분에서 개혁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내는 작업들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종오: 정치개혁에 있어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가능한 쉽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혹은 나아가서 정치엘리트로서도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이제까지 정당구조, 공천, 선거방식 등이 정당과 정치엘리트 편의를 위해 지배되어왔던 측면이 강한데 그것들을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나 싶다. 아래로부터의 국민의 힘이 중요하지만 지식인사회의 몫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 어떤 개혁이든지 걸림돌과 디딤돌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걸림돌은 기존 체제에 안주하고 있는 이른바 특권층들과 일부 보수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서 여론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총선까지 정치개혁 못지않게 언론개혁도 중요할 것이다. 참여정부 언론정책의 방향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이종오: 이전부터 언론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사회적 분위기로 형성되어 왔고 의제로 형성되어 왔다고 본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가용할 어떤 수단과 자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정책적으로 빈약한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일차적으로 철저하게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방식밖에 없다. 언론이 오보하거나 왜곡보도하면 정정보도 신청하고 손해배상 신청하고, 이런 방식으로 말이다.
결국엔 많은 짐을 시민사회나 국민에 넘기는 측면이 있지만 이런 문제들은 시민사회와 지식인 등 여론주도층들에 크게 달려 있다고 본다. 이해영 선생이 이중적 소수세력에 대해 말했는데, 여기에 추가해서 현정부는 사회적 소수세력이기도 하다. 지난 2002년 정치적, 사회적 소수세력이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 점에서 아직까지 한국사회에는 엄청난 비약과 도약을 할 수 있는 국민적 잠재력이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자신감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문제를 너무 어렵게 보면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역설적 낙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주원: 참여정부가 강조하는 절차적 합리성, 투명성, 공정성은 한국사회에서 상당히 취약한 부분이었다. 사회적으로 합의보다 지배권력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그 주변에 엘리트가 모여 있는 방식으로 사회가 이끌어져 왔다. 여전히 커넥션이 남아있지만 무너져 가는 중이라고 본다. 언론에 대해서도 분명한 전략은 제시하지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절차적 합리성이나 공정성, 투명성을 통해 개선될거라 믿는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각 영역에서 패권적 보수층의 커넥션이 강하다. 이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해영: 지금 현재의 세계정치조건에서 누가 정권을 잡아도 운신의 폭은 제약되기 마련이다. 첫째, 북핵위기도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세계경제, 최근 21세기 들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적 세계지배전략과 한반도 평화세력 사이의 대결이다.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둘째로 정치권 문제인데 세계사 어디에도 정치 기득권세력이 스스로 개혁한 적은 없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기득권 세력의 해체가 필수 불가결하다고 본다. 여기에 특히 현정부에서 해야할 몫이 있다고 본다. 그람시의 생각을 원용하자면 동의 내지 합의는 강제와 같이 가는 문제가 아닌가싶다. 개혁을 요구하고 그것이 정도에서 벗어날 때는 강제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강제력을 정부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셋째로 현정부 내의 관료주의 내지 형식주의다. 아무리 대통령이 개혁하고 싶어도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고 지속적 개혁 프로그램이 먹혀들지 않으면 개혁은 역시 힘들어진다.
넷째, 보수언론의 담론구조에 기대고 있는 보수적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정부의 과제다. 지역주의 문제는 지하실의 시체처럼 살아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내년 4월 집권야당이 마땅히 내놓을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지역주의 불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역주의를 차단하기 위한 프로그램 제시도 역시 개혁전략 속에서 비중있게 다뤄야한다.
그 다음으로 참여정부의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어정쩡한 태도가 자칫 자본의 사보타지와 노동의 스트라이크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보수세력의 놀림감이 될 수 있다. 특히 현재 국내자본에 대한 현정부의 대단히 미온적인 태도를 어떤 식으로든지 정정 내지 교정하지 않고서는 개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정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마인드 부족
사회: 마지막으로 참여정부에 바라는 개혁조건과 개혁과제를 얘기해보자.
서주원: 최근 교장단들이 시위를 벌였다. 예전 같으면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정부에서는 그런 방식이 안 되기 때문에 과거 소수자였던 개혁세력들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해결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힘의 역관계가 상당부분 수평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마인드는 부족하다. 절차적 합리성만 강조해서는 실제로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이 나와야한다.
이해영: 민주주의의 문제를 파워엘리트의 순환으로 제한시킨다든지 절차적 민주주의로 환원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정부의 최종적인 좌표는 더 많은 민주주의,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참여정부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대담한 제안과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이종오: 민주주의 실현은 대담성과 아울러 조심성이라는 측면이 보완되지 않으면 상당히 모험주의가 될 수 있다. 김대중정부의 의약분업은 전향적이었지만 실행과정에 있어서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대담성과 조심성을 다 같이 갖출 때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능력과 국정운영에 신뢰를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대담한 개혁을 하고 보다 많은 민주주의로 진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대담성과 조심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자세와 아울러 개혁의 실현은 자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집권세력이 분명한 자기절제와 긴장과 도덕성을 유지하고 한국사회의 많은 지혜를 결집시켜 현실성 있고 합리적인 문제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바로 이런 바탕 위에서 성과 있는 개혁을 실현할 수 있다.
참여정부의 소수성을 지적했는데 소수가 전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수가 다수가 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인 담론과 정책을 마련해가는 과정과 방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과정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자기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해야겠지만 한국의 발전과 개혁을 희구하는 제반세력이 수평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결합하지 않더라도 서로 협력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건강한 개혁세력들간의 연대 혹은 연대정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장소 :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소회의실
토론자 : 서주원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이종오 대통령 정책자문기획위원회 위원장,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가나다 순)
사회 : 김호기 본지 편집위원장,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정리 : 김선중 본지 기자 bombi@pspd.org
![]() |
이종오: 출범 이후의 기간은 5년 동안 참여정부를 이끌어갈 제도와 인적 틀을 마련하는 시기였다. 87년 이후의 민주화 성과에 대해 불만족해 하는 세력, 새로운 틀 형성에 대해 저항하는 세력들이 없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그간 민주정권의 무능과 부패, 정책적 혼선 등을 반성하고 새로운 국민 통합적인 개혁을 하고자 한다.
사실 이제까지 모든 정권이 개혁을 말해왔다. 하지만 개혁의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부분에 있어 개선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부문이 있는데, 예를 들어 교육부문이 대표적이다. 국내 대학간 서열화와 학벌주의로만 그치지 않고 외국, 특히 미국대학이 우리나라 학벌구조의 최상층부에 새롭게 위치함으로써 국민적인 역량이 거기에 쏟아 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정부는 지금 중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국가발전의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아울러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안정적인 정치구조와 노사관계의 형성, 정부의 효율성과 문제해결능력 확보다. 이러한 중점과제를 1년 내에 성공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교육을 포함한 중장기적 과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주원: 87년 이후 일반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노력이 있어 왔는데 그것이 이번 노정부에서는 상당부분 진전이 될 것이라고 본다. 특히 참여정부가 강조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진전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아직 제도적, 인적 틀이 안정화되지 못하고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 않다. 책임내각과 책임행정부가 유기적으로 맞물려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시스템으로서도 안정적으로 구축되진 못한 것 같다. 참여정부 개혁의 내용과 방향도 분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 |
이에 마키아벨리가 제안하고 있는 것이 이른바 ‘무장한 예언자’다. 사람들에게 개혁이 이익이 된다는 것을 설득하고 그러한 믿음을 유지시키면서 필요하다면 강제할 수 있는 실력들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볼 때 이 ‘무장’이라는 것은 의회라는 정치적 기반과 언론과 같은 기타 사회적 기반들이다. 그런 각도에서 보면 노정부는 실력적 요소들이 상당부분 결여되어있다. 단적으로 노정부는 의회에서도, 집권당 내부에서도 소수인 이중의 소수정부다. 한마디로 정치적 기반이 대단히 취약한 정권이라 할 수 있다.
현정부는 그런 면에서 명확한 개혁전략과 개혁이념, 개혁주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이 이념생산자는 아니지만 새로운 개혁정신의 상징적 아이콘으로서 개혁이념의 이정표 역할은 해야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슈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길지 않은 기간을 놓고 현정부의 개혁정책을 평가하기에는 이른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기간에 개혁정책이 결코 없었던 바는 아니다. 그 동안 추진되었던 핵심적 사안들인 경제, 사회문화, 노동 등 각론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먼저 경제개혁의 경우 내부 조건보다 외부 조건에 영향을 받는 한국경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현정부의 출범 전후로 지난 80일간 외부적 조건이 그리 유리했던 것 같지는 않아 보이는데….
이해영: 기본적으로 사회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새로운 조치들, 특히 언론정책에 대해선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파병동의안을 둘러싼 문제를 보면서 기본적으로 개혁 아이템에 외교를 자꾸 빠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노정부로서는 한미관계 재정립이 역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사안이라고 본다. 하지만 현재의 외교안보팀이 과연 이를 수행할 만한, 현정부와 코드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최근 방미를 정치학자 아닌 시민으로서 보면 너무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제와 관련해서는 개방, 민영화, 유연화, 규제완화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고전적인 이슈들을 그대로 경제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김대중정부 역시 이 네 가지 카테고리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구하다가 덫에 걸려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마찬가지로 노사문제를 보더라도 양립 불가능한 신자유주의, 즉 개혁과 노사정위원회라는 조치들을 같은 한 솥에 넣어서 추진하는 것 같다.
![]() |
사회적 통합을 얘기하는데 지역적 통합뿐만 아니라 세대간 통합도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구세대들이 새세대의 가치관에 융화되지 못하고 있고, 새세대 역시 공동선의 가치관에 대해 희박하다. 교육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환경분야에 있어 개발독재의 시대를 지나 노정부 하에서는 지속가능성에 근거한 정책들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부분들이 여전히 개발론자들의 강한 영향력과, 한국사회에 고착화 된 커넥션들 때문에 변화 조짐이 별로 안 보인다.
이종오: 김대중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지만 과거 50년간의 분단사회라는 역사의 짐을 덜어놓는 데 불충분했고 그 짐이 새정부에 상당부분 다시 넘어왔다. 외교적인 측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제약된 점이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와 같은 진부한 대답이 되겠지만 작년 12월부터 북핵문제가 첨예화한 상황에서 과거와는 다른 한미관계의 재조정, 새로운 동맹관계를 구축하기에는 참여정부가 가질 수 있는 행동의 여지가 매우 좁았다.
파병에 대해서는 동정적으로 이해한 대중도 광범위했다. 이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정치적 평가의 방식은 다르다고 본다. 이 사안으로 노정부 전체 성격을 규정하고 대미관계, 대북관계 전체 방향틀을 판단하는 것은 예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외교안보정책은 조심스럽고 보수적일 수 있지만 정부 내 행정개혁에서는 좀 더 과감한 보폭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화물연대 파업 등과 같은 사회적 갈등 조정과 해결도 정부의 과제인데 기본적으로는 사회적 당사자들이 합의를 도출하고 준수하는 방식이 가장 선진적인 갈등 조정방식이다. 참여정부도 장기적으로 이를 지향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으로 객관적인 제3자에 의한 조정중재방식을 말하고 싶다. 객관적인 3자는 정부가 될 수도 있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기구가 될 수도 있다. 지식인과 시민사회단체, 정부, 사회관계 이해당사자들이 라운드 테이블에 앉아 사회적 권위와 신뢰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합의를 도출하는 시스템을 시급히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혁의 사회적 주체를 튼튼하게 꾸려야
사회: 참여정부에게 부과된 중요한 이슈는 크게 북핵위기와 내년 총선이라고 본다. 대략 11개월 남은 총선은 1년 넘게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개혁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장이 될텐데 총선 전에 참여정부가 이뤄야할 우선적인 개혁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서주원: 다양한 집단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이번 정치개혁의 핵심적 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노정부가 생각하는 개혁의 내용을 현실에서 이뤄낼 수 있도록 인적 교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해영: 친개혁적인 정치세력이 의회에 진출해서 실질적인 정치개혁을 하는 게 기본적인 프로그램이 아닐까싶다. 그런데 과연 현실적인 정치 역관계에서 볼 때, 총선에서 뒤집기가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개혁의 사회적 주체를 튼튼하게 꾸려내는 일 역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노동, 시민운동 이런 부분에서 개혁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해내는 작업들이 동시에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종오: 정치개혁에 있어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가능한 쉽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정치과정에 참여하고 혹은 나아가서 정치엘리트로서도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이제까지 정당구조, 공천, 선거방식 등이 정당과 정치엘리트 편의를 위해 지배되어왔던 측면이 강한데 그것들을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가야하지 않나 싶다. 아래로부터의 국민의 힘이 중요하지만 지식인사회의 몫 또한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 어떤 개혁이든지 걸림돌과 디딤돌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 걸림돌은 기존 체제에 안주하고 있는 이른바 특권층들과 일부 보수언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에서 여론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총선까지 정치개혁 못지않게 언론개혁도 중요할 것이다. 참여정부 언론정책의 방향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 |
결국엔 많은 짐을 시민사회나 국민에 넘기는 측면이 있지만 이런 문제들은 시민사회와 지식인 등 여론주도층들에 크게 달려 있다고 본다. 이해영 선생이 이중적 소수세력에 대해 말했는데, 여기에 추가해서 현정부는 사회적 소수세력이기도 하다. 지난 2002년 정치적, 사회적 소수세력이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 점에서 아직까지 한국사회에는 엄청난 비약과 도약을 할 수 있는 국민적 잠재력이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자신감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문제를 너무 어렵게 보면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역설적 낙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주원: 참여정부가 강조하는 절차적 합리성, 투명성, 공정성은 한국사회에서 상당히 취약한 부분이었다. 사회적으로 합의보다 지배권력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그 주변에 엘리트가 모여 있는 방식으로 사회가 이끌어져 왔다. 여전히 커넥션이 남아있지만 무너져 가는 중이라고 본다. 언론에 대해서도 분명한 전략은 제시하지 못하지만 마찬가지로 절차적 합리성이나 공정성, 투명성을 통해 개선될거라 믿는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각 영역에서 패권적 보수층의 커넥션이 강하다. 이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해영: 지금 현재의 세계정치조건에서 누가 정권을 잡아도 운신의 폭은 제약되기 마련이다. 첫째, 북핵위기도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세계경제, 최근 21세기 들어 맹위를 떨치고 있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적 세계지배전략과 한반도 평화세력 사이의 대결이다.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둘째로 정치권 문제인데 세계사 어디에도 정치 기득권세력이 스스로 개혁한 적은 없다.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 기득권 세력의 해체가 필수 불가결하다고 본다. 여기에 특히 현정부에서 해야할 몫이 있다고 본다. 그람시의 생각을 원용하자면 동의 내지 합의는 강제와 같이 가는 문제가 아닌가싶다. 개혁을 요구하고 그것이 정도에서 벗어날 때는 강제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강제력을 정부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셋째로 현정부 내의 관료주의 내지 형식주의다. 아무리 대통령이 개혁하고 싶어도 관료들이 움직이지 않고 지속적 개혁 프로그램이 먹혀들지 않으면 개혁은 역시 힘들어진다.
넷째, 보수언론의 담론구조에 기대고 있는 보수적 지역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정부의 과제다. 지역주의 문제는 지하실의 시체처럼 살아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내년 4월 집권야당이 마땅히 내놓을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지역주의 불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역주의를 차단하기 위한 프로그램 제시도 역시 개혁전략 속에서 비중있게 다뤄야한다.
그 다음으로 참여정부의 노사관계에 있어서의 어정쩡한 태도가 자칫 자본의 사보타지와 노동의 스트라이크 사이에서 방향을 잃고 보수세력의 놀림감이 될 수 있다. 특히 현재 국내자본에 대한 현정부의 대단히 미온적인 태도를 어떤 식으로든지 정정 내지 교정하지 않고서는 개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정부,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마인드 부족
사회: 마지막으로 참여정부에 바라는 개혁조건과 개혁과제를 얘기해보자.
서주원: 최근 교장단들이 시위를 벌였다. 예전 같으면 파이프라인을 통해서 해결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정부에서는 그런 방식이 안 되기 때문에 과거 소수자였던 개혁세력들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해결방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힘의 역관계가 상당부분 수평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마인드는 부족하다. 절차적 합리성만 강조해서는 실제로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 구체적인 프로그램들이 나와야한다.
이해영: 민주주의의 문제를 파워엘리트의 순환으로 제한시킨다든지 절차적 민주주의로 환원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정부의 최종적인 좌표는 더 많은 민주주의, 다시 말해 민주주의의 양적 확대와 질적 심화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참여정부에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대담한 제안과 프로그램을 기대한다.
이종오: 민주주의 실현은 대담성과 아울러 조심성이라는 측면이 보완되지 않으면 상당히 모험주의가 될 수 있다. 김대중정부의 의약분업은 전향적이었지만 실행과정에 있어서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대담성과 조심성을 다 같이 갖출 때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정부의 능력과 국정운영에 신뢰를 보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대담한 개혁을 하고 보다 많은 민주주의로 진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대담성과 조심성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자세와 아울러 개혁의 실현은 자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일차적으로 집권세력이 분명한 자기절제와 긴장과 도덕성을 유지하고 한국사회의 많은 지혜를 결집시켜 현실성 있고 합리적인 문제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바로 이런 바탕 위에서 성과 있는 개혁을 실현할 수 있다.
참여정부의 소수성을 지적했는데 소수가 전체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결국 소수가 다수가 되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인 담론과 정책을 마련해가는 과정과 방식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과정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자기개혁 프로그램을 제시해야겠지만 한국의 발전과 개혁을 희구하는 제반세력이 수평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결합하지 않더라도 서로 협력하고 때로는 비판하는 건강한 개혁세력들간의 연대 혹은 연대정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