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가 출신 청와대 행정관의 현장이동 100일
2003/2003년 06월 :
2003/06/01 00:00
이슈파이팅에서 실용적 소통으로
한 지역 시민단체 대표를 지낸 필자는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행정관이 됐다. 1983년 대학졸업 이후 20년간 "장외"에서 진보과 개혁을 외치던 그의 눈에 비친 참여정부 100일은 어떤 모습일까. 시민운동가 출신 청와대 행정관의 참여정부 100일 소감을 듣는다. 편집자 주
한판 걸지게 온 세상을 뒤흔들었던 기적 같은 드라마가 막을 내렸다. 그리고 해가 바뀌고 시민단체 대표였던 나는 비서실 한 구석에 책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시민운동가가 참여정부에 참여하는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고, 또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 문제가 지금 내게는 논의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로 되었다. 시민운동이 가지는 시민적 가치와 국정을 운영해야하는 정부의 국정현실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괴리가 있기 마련이고, 각자 서있는 현장에 따라 해야할 역할과 임무가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개혁이 우리 사회 발전의 보편적 가치 위에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 5년의 경험은 참여정부의 소중한 반면교사여야 한다는 게 세 달 남짓 이 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점이다. 참여정부 출범과 동시에 터져나온 일련의 사태들은 우리가 넘어야할 산들이 얼마나 높고 험한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고, 내게는 ‘총성 없는 전쟁’이란 이런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인가 싶었다. 나눠 가질 줄 모르는 사람들의 손에 쥔 기득권은 시민사회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고했다.
이성관계가 아닌 동성의 친구
나의 주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가 시민사회와 정부의 관계설정이다. 관계설정이 잘못되면 시민사회나 정부 모두에게 부담이 되고 결국 개혁추진의 장애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안에 시민운동가 출신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시민사회 분야 직제 편성의 면면이 실제 시민사회 활동을 반영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여 이해하기 어려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고, 반면에 시민사회진영에서도 출발부터 다소 먼 거리를 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여기에는 시민사회진영에 정권과 좀 친밀한 관계가 되면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자기최면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시민사회와 참여정부의 소통문제는 정권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개혁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시민운동 과정에서 우린 줄곧 개혁과제 및 현실의제 발굴에 힘을 쏟아왔다. 그런데 정작 이 안에서는 그런 성과와 활동이 시민단체의 논의 수준에 머물러 있고, 국정에 반영되는 과정이 공허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민사회와 정부간 소통의 중심이 이슈 파이팅에서 실용적 소통으로 변화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시민사회의 정책제안을 항상 접할 수 있는 구조적 통로를 마련하고, 시민사회 역시 적극적으로 제안할 필요가 있다.
참여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이성관계가 아닌 동성의 친구’ 사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성일 경우 친구사이가 연인사이로 변할 수 있기에 그것은 위험하지 않겠나 싶다. 원래 연인사이는 배타적이다. 연인이 연인이기 위해서는 둘 사이에 누구도 끼여들 수 없는 공고한 울타리가 필요하다. 친구관계는 열려있는 관계이므로 배타적이지 않다. 또한 친구사이란 항상 좋은 것만이 아니라 다투기도 하고, 소원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 적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아주 어릴 적 선생님은 “친구가 잘못 했을 때 모질게 질타하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 말씀하셨다.
참여정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일부 언론의 논조에 포퓰리즘이라는 게 있다. 소수 정권인 참여정부가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국민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나는 참여정부가 개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포퓰리즘을 자주 쓰는 일부 언론의 의식 속에는 국민을 ‘우매한 백성’으로 바라보는 봉건적 비하가 숨어 있다. 가치판단과 비판정신이 없는 국민을 정파적 이해에 따라 동원한다는 수구보수세력의 혹세무민과 비난에 대항하는 것은 단순히 국정파트너인 여야간의 관계를 넘는 문제로 보아야하지 않을까.
지방개혁, 시민운동 역할 중요
비서실에서 민원업무를 담당하면서 느낀 것은 ‘왜 이렇게도 청와대에 민원이 많이 올라올까’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그 민원 속에는 우리사회 소외된 계층의 피눈물이 묻어 있었고, 정부의 참된 존재이유가 바로 이런 국민들이 척박한 삶을 인간다운 삶으로 바꿔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원창구에 가면 원혼이 떠돌더라, 우리가 할 일은 그들에게 해원굿을 해주는 일이다.”
어느 자리에선가 노무현 대통령이 던진 말이다. 물론 국정을 굿에 비유할 수는 없지만 정파적 이해에 따라 나라가 혼돈에 빠지는 매순간 순간 국민들은 더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야만 한다.
이 안에 들어와 100여 일간 일하면서 시시때때로 비상한 각오를 하게 된다. 내부 문제를 접하면서 느끼기도 하고, 업무를 처리하면서, 부처 공무원을 만나면서 혹은 신문을 보면서 그런 각오를 한다. 시민운동 과정에서 부딪치고 느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모순을 목도한다.
참여정부가 진정으로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민의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하는데, 국민의 신뢰는 국정운영에 있어 개혁의 원칙을 반듯이 세우고 우직하게 밀고 나갈 때 얻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보수세력의 공세가 어떠할지는 출범하자마자 겪어온 바이고, 그럴 때마다 참여정부의 개혁 원칙이 흔들리는 듯 보일 때 국민의 지지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개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개혁의 주체도 개혁의 수혜자도 국민이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의 개혁에서 지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여정부의 지방분권의 원칙은 지역 차원에서 개혁이 이뤄질 때 비로소 국가 전체의 개혁이 가능하다는 인식에 있다. 시민사회의 의미가 무엇인가. 시민운동에서 줄곧 해결과제로 제기되었던 지역시민운동의 활성화와 개혁은 깊은 연관이 있다. 지역혁신의 주체를 세우는 일은 이미 시민운동의 시급한 과제로 등장해 있다. 지역 수준에서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때 개혁은 힘을 얻고 국가의 개혁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내가 청와대에 있는 이유
가끔은 그리운 얼굴들이 떠오른다.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목소리를 높였던 그 동지애와 연대의식이 멀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상념에도 빠져보고, 어떻게 하면 시민사회가 제기한 국가적 의제를 현실에서 풀어낼 것인가 하는, 내 권한에 비해 조금은 과도한 책임의식을 갖기도 한다.
책상 위에 성산배수지 공청회 자료가 보인다. 아직도 현실에서는 개발과 환경이 충돌하고 공적 이익과 사적 소유권이 갈등한다. TV에 3보1배 하시는 스님과 신부님의 모습이 보인다. 갑자기 가슴이 아려온다. 눈가에 먼지가 날아든다. 다시 한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를 되새긴다.
‘그래! 3보1배 하는 심정으로 일하자! 흐르는 강물처럼 개혁의 이름으로 총성 없는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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