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고 실습교육을 통한 진로선택 취지 무색, 노동착취 수단으로 변질


60년대부터 산업현장의 값싼 노동력 공급의 일환으로 진행돼온 실업고의 현장실습제도는 청소년에 대한 성인들의 폭력과 기업, 인력파견업체의 노동착취가 중첩된, 무관심 속에 방치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인권유린이다. 편집자 주

실업고등학교 3학년이지만 음악밖에 모르는 3인조 록그룹 ‘연어의 비늘’은 연습장 마련에 필요한 500만 원이 필요해 가기 싫은 현장실습을 결심한다. 현장실습 전날 선생님은 “말썽 피우면 알지? 고분고분 말 잘 들어. 알았지?”라고 타이르며 실습을 보낸다. 그들이 부딪힌 현장실습은 이 싱싱한 연어들의 비늘을 마구 벗겨낼 만큼 혹독하다. 현장 감독을 맡은 회사의 간부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실습생에겐 금지된 시간 외 근무가 다반사. 사소한 일로 따귀를 맞은 학생들은 간부를 폭행하고 실습장을 뛰쳐나와 호스트바, 농수산물 시장을 전전한다.

5월 14일 저녁 8시.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 ‘강강술래’에서 ‘Let"s 알바’라는 제목의 옴니버스 연극 중에서 두 번째 ‘연어의 비늘’의 내용이다. 극작가 윤영미 씨가 쓴 연어의 비늘은 작가가 주변 실업고 학생들의 실제 생활에 기초해 구성했다.

현장실습 순간부터 교육은 없다

이 연극이 시사하는 바대로 실업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은 학교의 준비단계부터 실습이 끝나는 기간 동안, 아니 실습이 끝난 후까지 학부모, 선생님, 기업, 교육부, 근로감독관 등 학생들을 둘러싼 성인들의 폭력이 이뤄지는 시간과 공간이다. 그 폭력의 형식은 무관심, 방치, 착취, 불법과 편법, 성희롱 등이다.

실업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은 교육부훈령인 ‘각급학교 현장실습운영에 관한 규칙’에 의해 운영되는데, 3년 동안 최소 34시간(2단위)에서 최대 6개월(34단위)이 허용된다. 일부 공업고등학교의 경우 ‘2+1’ 제도에 의해 68단위가 허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대 34단위로 허용된 현장실습 기간이 학교장 마음먹기에 따라 수개월 더 연장되는 일이 흔하다. 특히 지역사회에 기업이 부족한 광주, 전남, 경남 등 남쪽지역 실업고에서는 4월부터 실습을 내보내 졸업할 때까지 그 실습이 이어지는 일이 잦다. 올해 4월말에도 전남 지역의 광주전자공고를 비롯한 3개 학교가 수원에 있는 삼성전자 사업장에 실습을 나갔다. 그러나 이 학교의 공업실습 기간은 12단위로 2개월 남짓.

교육부 지침에 어긋나는 일을 왜 학교에서는 강행하려 할까. 전교조 서울지부 실업고 위원장인 디지텍고등학교 김성진 교수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립고의 경우 학생들이 조기에 실습을 나갈 경우 고정비용인 실험실습비가 남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번에 실습을 보낸 광주의 모 학교 선생님에게는 기업으로부터 감사조로 상품권이 오기도 했다. 기업과 학교의 유착관계를 의심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때로는 가능한 좋은 조건을 갖춘 기업의 한정된 일자리에 자기학교 학생들을 먼저 실습 보내려는 선의의 경쟁도 조기 실습을 부추기고 있다. 금오공고는 5월에도 현장 실습생을 보내주기를 원하는 기업들의 의뢰서가 쇄도했지만 일부 선생님들이 중간고사 이후에 보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학교장은 “우리가 안 내보내면 다른 지역에서 먼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인데 누가 책임을 지려고 하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남 지역 실업고 교장들 역시 “광주·전남만 손해봐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면서 비슷한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학교의 이런 경쟁을 선의로 이해하더라도 조기 실습은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당장 교육부 지침을 위반한 것은 물론, 실업계 고등학생들에게 진로선택의 다양한 기회를 부여한다는 본래의 교육적 취지에서 빗나가, 취업의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취업 아닌 취업에 들어서는 순간 학교는 학생에 대한 교육과 보호의 의무를 벗고, 학생들은 가장 값싼 노동력으로 이익창출을 얻으려는 기업과 인력파견업체의 욕심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김성진 선생님은 “원래 실습 기간에도 취업담당 선생들이 학생들을 방문, 지도해야 되는데 수십 명 학생들의 실습 현장을 찾아가려면 한달에 보름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사실상 전혀 지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역시 현장실습 기간을 준수하고 학사일정을 정상화하라는 지침만 학교에 전달할 뿐 그것의 준수 여부에 대한 관리와 감독은 없다. 그 속에서 학생이 치르지도 않은 시험에 성적이 매겨지고, 듣지도 않은 수업일지가 작성되기도 한다.



정규직 급여의 70%에서 파견업체는 다시 30% 공제


현장실습을 어쩔 수 없는 취업으로 본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사실상 노동자이면서 학생신분이라는 이유로 노동권 보호로부터는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 근로시간, 휴가, 급여, 인권 등 총체적인 노동조건에서 현장실습생의 지위는 참담하다. 현장실습 계약은 노동부가 근로기준법을 토대로 마련한 ‘현장실습표준협약서’에 따라 학생과 기업의 근로계약이 이뤄진다.

그런데 실제 이 계약을 작성하며 실습이 이뤄지는 경우도 드물고, 있다 하더라도 계약에 담긴 구체적인 근로조건과 권리, 기업의 횡포에 대한 자구방법 등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학부모도 없다. 또 그것을 교육한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이뤄지는 기업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대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실습을 그만두는 것 밖에 없다.

김성진 선생님의 설명이다. “정해진 근로시간은 보통 8시간인데, 기업들, 특히 중소기업은 시간 개념이 없다. 밤샘작업도 다반사고 주말 근무도 허다하다. 여학생 생리휴가도 거의 지켜지지 않는다. 취업담당 선생님들이 돌아다니며 보호해야 하는데 실제로 불가능하다. 어쨌든 학생신분이기 때문에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개입할 여지도 없다. 기업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보험도 거의 적용받지 못해 개인적으로 드는 경우도 많다. 실제 사고나서 보상 못받는 일도 있었다. 그나마 기업체와 직접 계약을 맺는 형태는 좀 나은데 대부분 기업들은 요즘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실습생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실업고 현장실습에 인력파견업체의 개입은 현장실습생들의 근로조건에 결정적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2002년 포철공고에 현장실습을 의뢰한 기업들을 살펴본 결과 전체 32개 기업체가 의뢰한 실습생 590여 명의 37%인 220명이 휴먼뱅크, 케스프, 신풍 등의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의뢰가 들어왔다. 그나마 이 학교의 수치는 낮은 편이다. 해마다 10만 명의 현장실습생 중 50% 안팎이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교조와 참여연대 사회인권팀의 조사결과 실습생은 동일 노동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의 70∼80%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력파견업체는 이 임금에서 다시 30% 정도를 떼어간다. 정규직 임금이 150만원이라고 가정했을 때 인력파견업체를 통해 고용된 실습생은 73만5000원, 정확히 정규직 월급의 반을 받고 일하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현장실습을 못견딘 절반 정도의 학생들은 실습 중간에 그만두는 실정이다.

여학생에 대한 성폭행과 희롱도 빠지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원주에서는 회식을 미끼로 여학생을 불러내 술을 마시게 한 뒤 성폭행한 기업체 직원이 검찰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심지어는 통조림공장에 실습 나간 남학생들이 그곳에 근무하는 아줌마들의 희롱에 시달린 사건도 일어났다.

해마다 10만 명의 연어들이 현장실습의 강을 거슬러 오르다 비늘이 벗겨지고, 살점이 뜯겨나가고 있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2003/06/01 00:00 200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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