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 : "정부 공인 도박장"에서 꿈을 잃다
2003/2003년 06월 :
2003/06/01 00:00
올 여름 각광받는 "수상레포츠"가 있다길래 미사리 경정장을 가보았다. "은빛 레이스"를 달리는 "꿈의 페달"을 볼 수 있다길래 실내 경륜장을 가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히 빗나간 상상이었다. 그곳은 피튀기는 혈전이 난무한 도박장 그 자체일 뿐이다. 편집자 주
동대문 밀리오레 10층 여자 화장실. 짙은 마스카라에 초록 매니큐어를 바른 20대 여자가 세면대 위에 턱, 올라앉더니 긴 한숨 끝에 손톱을 물어뜯는다. 동공엔 핏발이 섰고, 낯빛은 창백하다. 입가를 실룩거리는 그녀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해 보였다.
“모르면 아예 끼질 마. 난 한번 올 때마다 오십씩 갖고 와. 딸 땐 이삼백도 따지만, 잃으면 완전 올인이야. 나, 한 2∼3년 했지. 그동안 돈 많이 땄냐구? 흥. 웃기지마. 여기 돈 지른 인간 중에 몇이나 따나 다 붙잡고 한번씩 물어봐.”
묵묵히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던 40대 여자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울화가 얼굴에 밴 그녀는 “도박은 모르는 게 약”이라고 신신당부한다.
“아가씨, 안 배웠으면 시작하지마. 젊은 사람이 뭐 하러 여기 끼어들어. 우리야 한번 빠졌으니까 자꾸 하지만… 애즈녁에 관둬. 다, 쓰잘데기 없는 짓이야. 내 말 들어.”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운영본부(사장 유용겸)가 설치한 동대문 장외경륜장이 들어선 밀리오레 10층. 지난 5월 17일 오후 3시께 이곳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사람들의 열기 때문인지 사우나처럼 더웠다. 이곳에 모인 40∼50대 남녀는 천장과 한쪽 벽에 매달린 모니터와 대형스크린을 바라보며 저마다 컴퓨터용 플러스펜과 예상적중 지(紙)를 들고 곧 시작하게 될 제8경주의 1등과 2등 선수를 점치고 있었다.
청바지에 돈다발을 꽂은 남자
힐끗힐끗 남들은 뭐라고 썼는지 컨닝도 하고, 남이 자기 것을 볼까봐 아예 밖으로 가지고 나가 혼자 체크하고 들어오는 사람도 보인다. 마치 수능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처럼 여러 예상지를 펴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백발의 칠순 노인, 학교 실험실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돋보기를 대고 구매표를 작성하는 60대 할아버지, 땅바닥에 앉아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신문지로 부채질하는 50대 아줌마, 담배연기로 숨막히는 흡연실에서조차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청바지 주머니에 시퍼런 돈다발을 꽂고 슬리퍼를 끄는 남자, 현찰이 빼곡한 핸드백을 든 여자….
경주 시작 3분전, 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최소 100원부터 시작하는 1회 배팅 최고금액은 5만 원. 경륜운영본부 측은 5만 원 한도 때문에 사행성 도박이라 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은 여러 투표소를 돌며 한 판에 몇십, 몇백만 원씩 걸지만, 이 규칙을 제지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한꺼번에 왕창 따려면 뭉칫돈을 갖고 와서 데끼리(가장 안전한 배당)에 거는 법’이라고 귀띔해주는 사람은 있다. 수많은 청원경찰들이 그 안에 진치고 있지만 한도 5만 원을 감시하거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무료하게 앉아 ‘배팅맨’들의 움직임을 관망할 뿐이었다.
이날 제8경주에 배팅된 판돈은 9억6025만1400원. 단돈 몇천 원이라도 이 경주에 돈을 건 사람이라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게 마련이다. 돈을 잃게 되면 더 큰 액수로 다시 도전해 본전을 찾고 싶은 건 당연지사. 이렇게 시작해 빠져들면 ‘피를 말리는 도박판’에 몸을 던지는 꼴이 된다.
제8경주, 7명의 선수가 출발선에 서자 장내는 엄숙해졌다. 어떤 아저씨에게 말을 붙이자 ‘게임 하는데 재수 없게 여자가 말을 건다’며 욕설이 날아올 정도. 그러던 찰나, 선수들이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자 장내는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마침내 욕설과 탄성이 어지럽게 터진다. 선수 이름 뒤에 ××를 붙이는 것은 예사고,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귀여운 언사다.
이쯤 되면 과연 경륜을 ‘은빛 레이스’, ‘꿈의 페달’이라 불러야 할 지 망설여진다. 허름한 차림의 야구모자를 눌러쓴 60대 노인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난 아주 조금씩 해요, 5000원씩. 이거 해선 돈 못 벌지. 워디 돈 번 사람 있간디? 아마 없을껴. 뭐 간혹 따는 맛이야 있지. 아무리 큰돈 딴다해도 다음에 와서 잃으면 하냥 그만 아니여? 난 노름해서 부자 됐다는 사람 못 봤네.”
노동 일을 한다는 그는 하루 일당 4∼5만 원 번다. 요즘은 불경기라 일도 없고, 날도 더워 경륜이 열리는 날은 항상 이곳 동대문 밀리오레를 찾는단다. 호주머니에 2∼3만 원 찔러 넣고 와서 하루종일 있다 집에 빈털터리로 가면 마음 한켠이 착잡하지만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또 오게 된다며 마약보다 더 무서운 게 노름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자전거경주가 좋아서 오냐구? 아니지. 내가 자전거를 아나? 그냥 번호 맞추는 재미로 와. 스릴 있으니께.”
경륜은 벨로드롬 사이클 트랙에서 7명의 선수들이 일정거리(현재는 총 다섯 바퀴)를 경주하여 순위를 다투는 게임이다. 관람객은 경기 시작 전에 투표를 해서 선수 컨디션, 과거 경주기록, 직관적 판단 등으로 승부를 예상하고 경주권을 예매해 1~2위 선수를 맞추면 그에 상응하는 배당금을 받는 것.
경륜운영본부 유용겸 사장은 홍보책자를 통해 “경륜은 이제 우리 국민들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 레저 스포츠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동대문 장외경륜장에서는 단 한 명도 가족을 동반해 ‘건전 레포츠 경륜’을 즐기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극도의 예민한 신경전 가운데 수표를 현찰로 바꾸고, 현금인출기에서 예금을 찾고,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는 그야말로 ‘피가 튀는 도박판’일 뿐이었다.
경정장은 신용불량자 양성소?
5월 14일 수요일 오전 10시 20분. 지하철 5호선 상일동 종점 2번 출구 80m 전방엔 미사리경정장행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어딘가에 팔려 표정을 잃은 사람들. 경정 예상지에 공짜로 끼워준 스포츠신문 머릿기사로 여자연예인 누드해킹소동이 사진과 함께 실렸지만 그들은 관심 없다. 재빨리 면을 넘겨 찾은 건 ‘경정단신’. 예상지와 맞춰보며 오늘의 판을 그려본다. 20여 분 후, 미사리 경정장에 도착했다. 입장료 200원. 4명이 한꺼번에 왔으니 단체할인을 해달라는 객쩍은 농담까지 건넬 정도로 여유로운 출발이었다.
평일 오전임에도 이곳은 북새통이다. 2층 관람석은 벌써 자리가 다 찼다. 경정운영본부에 따르면, 하루평균 방문객은 1만2000명.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다. 그나마 최근 장외경정장이 생기면서 방문객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경정운영본부 송국섭 상무에 따르면 ‘분산효과’라는 것이다. 미사리 경정장과 장안동·상봉터미널 장외경정장이 50 : 50의 비율로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경정운영본부 입장에서 보면 굳이 미사리 경정장으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일 필요가 없다. 원거리 배팅이 가능하도록 장외 화상 경정장 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 판돈을 키우는 건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얘기.
‘21세기 마린스포츠의 꽃’ 경정을 관람하기 위해 찾은 것으로 보이는 한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일찌감치 2층 관람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올해 환갑을 맞은 노인이다. 초면에 그가 던진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짜식들, 꼭 긁어먹어도 없는 사람들 걸 ×먹어요. 여기 오는 사람 중에 돈 많은 사람 없어. 전부 노동자거나 실업자. 이건 정부가 시작했으니 이젠 정부가 국민을 말려야 돼. 이제 좀 자제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정부나 자치단체가 이런 시설 더 늘린다며? 여긴 막말로 ‘신용불량자 양성소’야. 눈 뒤집어지면 몇십만 원도 좋고 몇백만 원도 좋아. 노름하는 사람들이야 그런 거 생각하나? 나한테 경정은 ‘3∼4만 원의 친구’지만 어디 나 같은 사람만 있을라구? 노동자들 하루 뼈빠지게 일해봤자 6∼7만 원이야. 빠듯한 생활 짜증나고 신세타령하다 여기 빠지면 못 헤어나. 남의 돈 전부 긁어 여기 갖다 넣는 거야. 그러니 친구, 카드, 은행 뭐… 한 사람이 빠지면 여러 사람 죽는 거지. 얼마 전, 경륜장에서 한 사람 자살했잖아. 빚독촉 때문에. 그 사람 심정 내가 백배는 이해한다.”
혀를 끌끌 찼다. 하루종일 귀동냥하면 대충 여기가 어떤 데인지 알 거라며 제발 한 사람 얘기만 듣고 쓰지 말고 여러 사람 얘기 듣고 가라고 당부했다. 경장장에 온 사람이라고 해서 꼭 경정만 하는 것은 아니며 대충 경마하다 경륜, 경륜하다 경정 순으로…. 아니면 아예 월화는 쉬고, 수목은 경정, 금토는 경륜, 일은 경마 이렇게 한 주를 보내며 마치 ‘직업’처럼 ‘노름’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귀뜸해줬다.
안양에서 일인당 1만 원씩 차비 내고 관광버스로 왔다는 45인의 남자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각 경정장의 막이 내릴 때까지 배팅하다 귀가할 때 다시 만날 것이다. 그중 한 40대 남자는 적으면 30∼40만 원, 많으면 하루 1200∼1300만 원도 잃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버스운전을 하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들고 여기 왔다가 하루에 다 날렸다는 것.
“경마장에서 하루에 1500만 원을 딴 적도 있어요. 1500만 원 따려면 내가 15년간 얼마를 갖다 버렸겠어요. 그래도 딸 때 그 희열은 말도 못해. 이거 하려고 2000만 원 빚지기도 했죠. 그래도 한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걸 믿고…. 물론 마누라는 몰라요. 알면 당장 이혼이야. (웃음) 신용불량자죠, 뭐. 15년 하니까 이제 친구들도 돈 안 빌려줘요. 내일 또 돈 빌리기로 했는데, 이번엔 상호신용금고를 통한 불법대출. 일종의 사채예요. 한 5000만 원 빌릴 생각인데, 선이자를 1000만 원이나 떼데? 그래도 한방이면 다 갚을 수 있으니까.”
카드 대여섯 개로 ‘돌려막기’하다 더는 방법이 없어 불법대출을 받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본전’을 찾기 전엔 죽어도 이 판에서 빠질 수 없다. 그가 지금 죽지 않고 사는 이유다.
경륜은 직업, 경정은 아르바이트
서울 신당동에서 왔다는 60대 할머니는 심심풀이로 1000원씩 하는데, 주말엔 아예 아들 딸 며느리까지 불러 경륜장으로 향한다고.
“꿈만 잘 꾸면 4만 원도 벌고, 5만 원도 벌어. 많이 하면 안 되지만 조금씩 하면 괜찮아요. 경마장에서 100원이 1000배 터진 때도 있었어. 경륜장에선 1500원 해서 600배 맞았는데 80만 원 주더라고. 애들 다 10만 원씩 나눠줬지. 얼마나 재미있다구.”
백화점에서 영업을 한다는 30대 남자는 “경정이나 경륜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갈 곳 없는 수도권에서 그나마 이런 놀이시설이 있어서 다행인데, 이런 기사가 나가면 그나마 이런 데라도 갈 곳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던졌다. 병적으로 경도돼 빠지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지 이런 시설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불광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씨 부부는 야외 나들이 겸해서 미사리 경정장을 찾았다. 처음엔 5만 원으로 재미삼아 시작했지만 요즘은 왠만하면 이 길로 나서고 싶을 정도다. 가급적 식당 휴무도 경정장 개장에 맞춰 잡고 싶을 정도. 한 인테리어업체에서 전기공사를 하던 30대 후반 남자는 아예 본업을 접고 이 길로 나섰다.
“통계를 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3일 기준 100만 원이면 보통 200~300만 원은 따요. 난 경륜이 직업이고 경정은 아르바이트야. (웃음) 이거 하다보면 한 주가 휘딱 가요. 경륜장에서 하루에 최고로 많이 딴 건 2700만 원, 제일 많이 잃은 건 560만 원. 하루에 통상 50∼60만 원 갖고 와서 일단 잃으면 계속 현금출납기 앞에 서는 거죠. 그런데 이젠 그렇게 안해요. 한 200만 원 잃으면 그냥 가. 오늘은 날이 아니다 싶어서. 처음엔 경마장 다니다가 경륜장, 그러다 경정장에 왔는데, 난 경륜이 제일 낫더라구. 난 좀 오래 한 편인데도 지금까지 다 따져보면 4800만 원 투자해서 4350만 원 정도 유지 했으니 많이 잃은 건 아니에요. 아직까지는 그렇게 손해 본 장사는 아니죠. 한달에 1000∼2000만 원 넣으면 한 2억∼3억 될 때도 있다더만. 직장 다니면서 어떻게 2∼3억을 벌어요? 그거 맛들이면 나처럼 이 길로 나서는 거죠. (웃음) 나야 직장처럼 도박장에 다니지만 그래도 이런 시설을 더 짓는 건 반대예요.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해야지, 여기 와서 이러면 쓰나? 그런 사람은 나 하나면 족하지. (웃음)”
참여형 마린스포츠의 그늘
경정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시설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오지 않고는 못 배긴다고 고백했다. 서울시 송파구에 산다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50대 남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하우스를 열고 판돈을 키우는데 어찌 모르쇠 할 수 있겠나”며 너스레를 떨었다. “수상레포츠라고 떠들지만 누가 모터보트경주에 관심 있어? 오로지 낙점한 선수가 머리로 들어왔냐 아니냐 그것만 관심 있지. 이건 도박이야.” 그는 허리춤에서 돈을 꺼내 몇십만 원을 세더니 다시 투표소 앞으로 갔다. 다음 경주엔 이번보다 큰돈을 걸 모양이다.
휴무라서 친구들과 놀러 왔다는 한 20대 청년은 처음엔 웃으면서 5만 원 수준으로 배팅을 시작했으나 오후를 넘겨 경기 막바지에 이르자 점점 배팅금액을 크게 걸었다. 한 큐에 찾겠다는 것이었다.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점차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으며, 심리적 불안과 초조에 따른 것인지 줄담배가 이어졌다.
한 경정 예상지의 기자에 따르면 미사리 경정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영업자, 실업자, 일용직 노동자가 많다고 한다. 그들이 여길 자주 찾는 이유를 물으니 그는 “본전 생각 때문” 아니겠느냐고 되묻는다. “서민의 호주머니를 정부가 털어 간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이 이 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는 것은 잃어버린 돈을 되찾기 위한 마음”일 거라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전했다.
관계당국은 경정을 ‘수상레저스포츠의 활성화’라고 포장하면서 장외 경정장 설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사리 포함 3개 소에서만도 하루 매출액 25억 원이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영철 경정운영본부 사장은 그가 출간한 『경정』 머리말을 통해 “세계 유일의 철갑 거북선을 창조한 해양국가의 후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곧 다가올 개인용 보트시대를 준비하며,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발전 그리고 가족중심의 새로운 수상레저스포츠 정착을 위해 미약하나마 하나의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내놓는다”며 “1인당 배팅 한도액을 철저히 지켜 일부에서 우려하는 사행성을 완전히 배제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다.
육안으로만 보아도 동대문 장외경륜장과 마찬가지로 ‘수상레포츠’로 경정을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한방의 대박’을 꿈꾸는 이들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그런데도 경정운영본부는 겉으로 이런 광고를 한다.
“물과 모터보트의 새로운 만남, 경정은 모터보트 경주로 관객들은 시원한 레이스도 즐기고 우승예상선수의 경주권을 구입해 승자를 적중시켜 배당금도 받는 참여형 마린스포츠입니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건전 레포츠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경정운영본부 송국섭 상무는 “경정은 머리를 쓰는 게임이다. 제일 큰 노름은 주식이고, 둘째는 복권이며, 셋째는 부동산이다. 과학적인 게임을 가지고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이상하게 쓰지 말라”고 주장했다.
취재를 마치고 난 뒤 경정장에서 만났던 한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그날 투자한 돈에 비해 얼마나 땄느냐고. 그는 허허로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올인”
동대문 밀리오레 10층 여자 화장실. 짙은 마스카라에 초록 매니큐어를 바른 20대 여자가 세면대 위에 턱, 올라앉더니 긴 한숨 끝에 손톱을 물어뜯는다. 동공엔 핏발이 섰고, 낯빛은 창백하다. 입가를 실룩거리는 그녀는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초조해 보였다.
“모르면 아예 끼질 마. 난 한번 올 때마다 오십씩 갖고 와. 딸 땐 이삼백도 따지만, 잃으면 완전 올인이야. 나, 한 2∼3년 했지. 그동안 돈 많이 땄냐구? 흥. 웃기지마. 여기 돈 지른 인간 중에 몇이나 따나 다 붙잡고 한번씩 물어봐.”
묵묵히 화장실 차례를 기다리던 40대 여자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었다. 울화가 얼굴에 밴 그녀는 “도박은 모르는 게 약”이라고 신신당부한다.
“아가씨, 안 배웠으면 시작하지마. 젊은 사람이 뭐 하러 여기 끼어들어. 우리야 한번 빠졌으니까 자꾸 하지만… 애즈녁에 관둬. 다, 쓰잘데기 없는 짓이야. 내 말 들어.”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운영본부(사장 유용겸)가 설치한 동대문 장외경륜장이 들어선 밀리오레 10층. 지난 5월 17일 오후 3시께 이곳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에어컨을 틀었는데도 사람들의 열기 때문인지 사우나처럼 더웠다. 이곳에 모인 40∼50대 남녀는 천장과 한쪽 벽에 매달린 모니터와 대형스크린을 바라보며 저마다 컴퓨터용 플러스펜과 예상적중 지(紙)를 들고 곧 시작하게 될 제8경주의 1등과 2등 선수를 점치고 있었다.
청바지에 돈다발을 꽂은 남자
힐끗힐끗 남들은 뭐라고 썼는지 컨닝도 하고, 남이 자기 것을 볼까봐 아예 밖으로 가지고 나가 혼자 체크하고 들어오는 사람도 보인다. 마치 수능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처럼 여러 예상지를 펴놓고 골똘히 생각에 잠긴 백발의 칠순 노인, 학교 실험실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돋보기를 대고 구매표를 작성하는 60대 할아버지, 땅바닥에 앉아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신문지로 부채질하는 50대 아줌마, 담배연기로 숨막히는 흡연실에서조차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 청바지 주머니에 시퍼런 돈다발을 꽂고 슬리퍼를 끄는 남자, 현찰이 빼곡한 핸드백을 든 여자….
경주 시작 3분전, 그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최소 100원부터 시작하는 1회 배팅 최고금액은 5만 원. 경륜운영본부 측은 5만 원 한도 때문에 사행성 도박이라 보기 힘들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그리 많은 것 같지는 않다.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은 여러 투표소를 돌며 한 판에 몇십, 몇백만 원씩 걸지만, 이 규칙을 제지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오히려 ‘한꺼번에 왕창 따려면 뭉칫돈을 갖고 와서 데끼리(가장 안전한 배당)에 거는 법’이라고 귀띔해주는 사람은 있다. 수많은 청원경찰들이 그 안에 진치고 있지만 한도 5만 원을 감시하거나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무료하게 앉아 ‘배팅맨’들의 움직임을 관망할 뿐이었다.
이날 제8경주에 배팅된 판돈은 9억6025만1400원. 단돈 몇천 원이라도 이 경주에 돈을 건 사람이라면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게 마련이다. 돈을 잃게 되면 더 큰 액수로 다시 도전해 본전을 찾고 싶은 건 당연지사. 이렇게 시작해 빠져들면 ‘피를 말리는 도박판’에 몸을 던지는 꼴이 된다.
제8경주, 7명의 선수가 출발선에 서자 장내는 엄숙해졌다. 어떤 아저씨에게 말을 붙이자 ‘게임 하는데 재수 없게 여자가 말을 건다’며 욕설이 날아올 정도. 그러던 찰나, 선수들이 마지막 한 바퀴를 남기자 장내는 다시 시끌시끌해졌다. 마침내 욕설과 탄성이 어지럽게 터진다. 선수 이름 뒤에 ××를 붙이는 것은 예사고, ‘죽일 놈’ 소리는 차라리 귀여운 언사다.
이쯤 되면 과연 경륜을 ‘은빛 레이스’, ‘꿈의 페달’이라 불러야 할 지 망설여진다. 허름한 차림의 야구모자를 눌러쓴 60대 노인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난 아주 조금씩 해요, 5000원씩. 이거 해선 돈 못 벌지. 워디 돈 번 사람 있간디? 아마 없을껴. 뭐 간혹 따는 맛이야 있지. 아무리 큰돈 딴다해도 다음에 와서 잃으면 하냥 그만 아니여? 난 노름해서 부자 됐다는 사람 못 봤네.”
노동 일을 한다는 그는 하루 일당 4∼5만 원 번다. 요즘은 불경기라 일도 없고, 날도 더워 경륜이 열리는 날은 항상 이곳 동대문 밀리오레를 찾는단다. 호주머니에 2∼3만 원 찔러 넣고 와서 하루종일 있다 집에 빈털터리로 가면 마음 한켠이 착잡하지만 그래도 다음날이 되면 어김없이 또 오게 된다며 마약보다 더 무서운 게 노름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자전거경주가 좋아서 오냐구? 아니지. 내가 자전거를 아나? 그냥 번호 맞추는 재미로 와. 스릴 있으니께.”
경륜은 벨로드롬 사이클 트랙에서 7명의 선수들이 일정거리(현재는 총 다섯 바퀴)를 경주하여 순위를 다투는 게임이다. 관람객은 경기 시작 전에 투표를 해서 선수 컨디션, 과거 경주기록, 직관적 판단 등으로 승부를 예상하고 경주권을 예매해 1~2위 선수를 맞추면 그에 상응하는 배당금을 받는 것.
경륜운영본부 유용겸 사장은 홍보책자를 통해 “경륜은 이제 우리 국민들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건전 레저 스포츠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동대문 장외경륜장에서는 단 한 명도 가족을 동반해 ‘건전 레포츠 경륜’을 즐기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했다. 오히려 극도의 예민한 신경전 가운데 수표를 현찰로 바꾸고, 현금인출기에서 예금을 찾고,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는 그야말로 ‘피가 튀는 도박판’일 뿐이었다.
경정장은 신용불량자 양성소?
5월 14일 수요일 오전 10시 20분. 지하철 5호선 상일동 종점 2번 출구 80m 전방엔 미사리경정장행 셔틀버스를 타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다. 어딘가에 팔려 표정을 잃은 사람들. 경정 예상지에 공짜로 끼워준 스포츠신문 머릿기사로 여자연예인 누드해킹소동이 사진과 함께 실렸지만 그들은 관심 없다. 재빨리 면을 넘겨 찾은 건 ‘경정단신’. 예상지와 맞춰보며 오늘의 판을 그려본다. 20여 분 후, 미사리 경정장에 도착했다. 입장료 200원. 4명이 한꺼번에 왔으니 단체할인을 해달라는 객쩍은 농담까지 건넬 정도로 여유로운 출발이었다.
평일 오전임에도 이곳은 북새통이다. 2층 관람석은 벌써 자리가 다 찼다. 경정운영본부에 따르면, 하루평균 방문객은 1만2000명.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이다. 그나마 최근 장외경정장이 생기면서 방문객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한다. 경정운영본부 송국섭 상무에 따르면 ‘분산효과’라는 것이다. 미사리 경정장과 장안동·상봉터미널 장외경정장이 50 : 50의 비율로 매출을 올리기 때문에 경정운영본부 입장에서 보면 굳이 미사리 경정장으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모일 필요가 없다. 원거리 배팅이 가능하도록 장외 화상 경정장 시설을 갖췄기 때문이다. 판돈을 키우는 건 어디서든 가능하다는 얘기.
‘21세기 마린스포츠의 꽃’ 경정을 관람하기 위해 찾은 것으로 보이는 한 노인에게 다가갔다. 그는 일찌감치 2층 관람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올해 환갑을 맞은 노인이다. 초면에 그가 던진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짜식들, 꼭 긁어먹어도 없는 사람들 걸 ×먹어요. 여기 오는 사람 중에 돈 많은 사람 없어. 전부 노동자거나 실업자. 이건 정부가 시작했으니 이젠 정부가 국민을 말려야 돼. 이제 좀 자제했으면 좋겠어. 그런데 정부나 자치단체가 이런 시설 더 늘린다며? 여긴 막말로 ‘신용불량자 양성소’야. 눈 뒤집어지면 몇십만 원도 좋고 몇백만 원도 좋아. 노름하는 사람들이야 그런 거 생각하나? 나한테 경정은 ‘3∼4만 원의 친구’지만 어디 나 같은 사람만 있을라구? 노동자들 하루 뼈빠지게 일해봤자 6∼7만 원이야. 빠듯한 생활 짜증나고 신세타령하다 여기 빠지면 못 헤어나. 남의 돈 전부 긁어 여기 갖다 넣는 거야. 그러니 친구, 카드, 은행 뭐… 한 사람이 빠지면 여러 사람 죽는 거지. 얼마 전, 경륜장에서 한 사람 자살했잖아. 빚독촉 때문에. 그 사람 심정 내가 백배는 이해한다.”
혀를 끌끌 찼다. 하루종일 귀동냥하면 대충 여기가 어떤 데인지 알 거라며 제발 한 사람 얘기만 듣고 쓰지 말고 여러 사람 얘기 듣고 가라고 당부했다. 경장장에 온 사람이라고 해서 꼭 경정만 하는 것은 아니며 대충 경마하다 경륜, 경륜하다 경정 순으로…. 아니면 아예 월화는 쉬고, 수목은 경정, 금토는 경륜, 일은 경마 이렇게 한 주를 보내며 마치 ‘직업’처럼 ‘노름’하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귀뜸해줬다.
안양에서 일인당 1만 원씩 차비 내고 관광버스로 왔다는 45인의 남자들. 그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각 경정장의 막이 내릴 때까지 배팅하다 귀가할 때 다시 만날 것이다. 그중 한 40대 남자는 적으면 30∼40만 원, 많으면 하루 1200∼1300만 원도 잃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버스운전을 하다 퇴직금으로 받은 돈을 들고 여기 왔다가 하루에 다 날렸다는 것.
“경마장에서 하루에 1500만 원을 딴 적도 있어요. 1500만 원 따려면 내가 15년간 얼마를 갖다 버렸겠어요. 그래도 딸 때 그 희열은 말도 못해. 이거 하려고 2000만 원 빚지기도 했죠. 그래도 한방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걸 믿고…. 물론 마누라는 몰라요. 알면 당장 이혼이야. (웃음) 신용불량자죠, 뭐. 15년 하니까 이제 친구들도 돈 안 빌려줘요. 내일 또 돈 빌리기로 했는데, 이번엔 상호신용금고를 통한 불법대출. 일종의 사채예요. 한 5000만 원 빌릴 생각인데, 선이자를 1000만 원이나 떼데? 그래도 한방이면 다 갚을 수 있으니까.”
카드 대여섯 개로 ‘돌려막기’하다 더는 방법이 없어 불법대출을 받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본전’을 찾기 전엔 죽어도 이 판에서 빠질 수 없다. 그가 지금 죽지 않고 사는 이유다.
경륜은 직업, 경정은 아르바이트
서울 신당동에서 왔다는 60대 할머니는 심심풀이로 1000원씩 하는데, 주말엔 아예 아들 딸 며느리까지 불러 경륜장으로 향한다고.
“꿈만 잘 꾸면 4만 원도 벌고, 5만 원도 벌어. 많이 하면 안 되지만 조금씩 하면 괜찮아요. 경마장에서 100원이 1000배 터진 때도 있었어. 경륜장에선 1500원 해서 600배 맞았는데 80만 원 주더라고. 애들 다 10만 원씩 나눠줬지. 얼마나 재미있다구.”
백화점에서 영업을 한다는 30대 남자는 “경정이나 경륜을 너무 나쁘게만 보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갈 곳 없는 수도권에서 그나마 이런 놀이시설이 있어서 다행인데, 이런 기사가 나가면 그나마 이런 데라도 갈 곳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고 볼멘소리를 던졌다. 병적으로 경도돼 빠지는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지 이런 시설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불광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씨 부부는 야외 나들이 겸해서 미사리 경정장을 찾았다. 처음엔 5만 원으로 재미삼아 시작했지만 요즘은 왠만하면 이 길로 나서고 싶을 정도다. 가급적 식당 휴무도 경정장 개장에 맞춰 잡고 싶을 정도. 한 인테리어업체에서 전기공사를 하던 30대 후반 남자는 아예 본업을 접고 이 길로 나섰다.
“통계를 내는 건 불가능하지만 3일 기준 100만 원이면 보통 200~300만 원은 따요. 난 경륜이 직업이고 경정은 아르바이트야. (웃음) 이거 하다보면 한 주가 휘딱 가요. 경륜장에서 하루에 최고로 많이 딴 건 2700만 원, 제일 많이 잃은 건 560만 원. 하루에 통상 50∼60만 원 갖고 와서 일단 잃으면 계속 현금출납기 앞에 서는 거죠. 그런데 이젠 그렇게 안해요. 한 200만 원 잃으면 그냥 가. 오늘은 날이 아니다 싶어서. 처음엔 경마장 다니다가 경륜장, 그러다 경정장에 왔는데, 난 경륜이 제일 낫더라구. 난 좀 오래 한 편인데도 지금까지 다 따져보면 4800만 원 투자해서 4350만 원 정도 유지 했으니 많이 잃은 건 아니에요. 아직까지는 그렇게 손해 본 장사는 아니죠. 한달에 1000∼2000만 원 넣으면 한 2억∼3억 될 때도 있다더만. 직장 다니면서 어떻게 2∼3억을 벌어요? 그거 맛들이면 나처럼 이 길로 나서는 거죠. (웃음) 나야 직장처럼 도박장에 다니지만 그래도 이런 시설을 더 짓는 건 반대예요.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해야지, 여기 와서 이러면 쓰나? 그런 사람은 나 하나면 족하지. (웃음)”
참여형 마린스포츠의 그늘
경정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런 시설이 문제라고 지적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오지 않고는 못 배긴다고 고백했다. 서울시 송파구에 산다는 트레이닝복 차림의 50대 남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하우스를 열고 판돈을 키우는데 어찌 모르쇠 할 수 있겠나”며 너스레를 떨었다. “수상레포츠라고 떠들지만 누가 모터보트경주에 관심 있어? 오로지 낙점한 선수가 머리로 들어왔냐 아니냐 그것만 관심 있지. 이건 도박이야.” 그는 허리춤에서 돈을 꺼내 몇십만 원을 세더니 다시 투표소 앞으로 갔다. 다음 경주엔 이번보다 큰돈을 걸 모양이다.
휴무라서 친구들과 놀러 왔다는 한 20대 청년은 처음엔 웃으면서 5만 원 수준으로 배팅을 시작했으나 오후를 넘겨 경기 막바지에 이르자 점점 배팅금액을 크게 걸었다. 한 큐에 찾겠다는 것이었다. 겉으론 웃고 있었지만 점차 얼굴 표정이 일그러졌으며, 심리적 불안과 초조에 따른 것인지 줄담배가 이어졌다.
한 경정 예상지의 기자에 따르면 미사리 경정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영업자, 실업자, 일용직 노동자가 많다고 한다. 그들이 여길 자주 찾는 이유를 물으니 그는 “본전 생각 때문” 아니겠느냐고 되묻는다. “서민의 호주머니를 정부가 털어 간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들이 이 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헤매는 것은 잃어버린 돈을 되찾기 위한 마음”일 거라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전했다.
관계당국은 경정을 ‘수상레저스포츠의 활성화’라고 포장하면서 장외 경정장 설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사리 포함 3개 소에서만도 하루 매출액 25억 원이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노영철 경정운영본부 사장은 그가 출간한 『경정』 머리말을 통해 “세계 유일의 철갑 거북선을 창조한 해양국가의 후손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곧 다가올 개인용 보트시대를 준비하며, 우리나라 해양산업의 발전 그리고 가족중심의 새로운 수상레저스포츠 정착을 위해 미약하나마 하나의 디딤돌이 되고자 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내놓는다”며 “1인당 배팅 한도액을 철저히 지켜 일부에서 우려하는 사행성을 완전히 배제한다”고 밝혔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다.
육안으로만 보아도 동대문 장외경륜장과 마찬가지로 ‘수상레포츠’로 경정을 즐기는 사람들보다는 ‘한방의 대박’을 꿈꾸는 이들의 신경전이 치열했다. 그런데도 경정운영본부는 겉으로 이런 광고를 한다.
“물과 모터보트의 새로운 만남, 경정은 모터보트 경주로 관객들은 시원한 레이스도 즐기고 우승예상선수의 경주권을 구입해 승자를 적중시켜 배당금도 받는 참여형 마린스포츠입니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건전 레포츠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경정운영본부 송국섭 상무는 “경정은 머리를 쓰는 게임이다. 제일 큰 노름은 주식이고, 둘째는 복권이며, 셋째는 부동산이다. 과학적인 게임을 가지고 과도하게 해석하거나 이상하게 쓰지 말라”고 주장했다.
취재를 마치고 난 뒤 경정장에서 만났던 한 취재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그날 투자한 돈에 비해 얼마나 땄느냐고. 그는 허허로이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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