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정치세력화, 약이냐 독이냐
2003/2003년 06월 :
2003/06/01 00:00
지역단체 중심으로 시민사회 내부논쟁 본격화 전망
경남참여개혁운동본부를 필두로 지역사회의 정치세력화 논의가 촉발되고 있다. 부산경남은 물론 대구, 광주, 대전충남 등 여러 권역에서 정치세력화를 도모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2002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던 사람들이다. 지역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하던 풀뿌리지역운동단체들은 이를 관망하며 시민사회는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다. 그들의 고민이 무엇인지 직접 들어봤다. 편집자주
지난 5월 2일 경남 창원 경남도여성회관에서는 ‘참여개혁운동본부’ 창립총회가 열렸다. 민주당 신당 창당 논의가 본격화하던 시점에 2002 대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 나섰던 정치세력과 학계, 경남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결합된 ‘정치조직’이 출범해 시민사회운동진영 내부에는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2000년 총선 당시 386 학생운동권들이 ‘젊은피 수혈’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정치권에 빨려 들어갔다면, 2004년 총선에는 지역단체의 수장 격에 해당하는 시민운동가들이 이런 방식으로 ‘빨려 가는 것이냐’는 우려와 탄식이 섞인 것. 이렇게 정치권에 다 빨려가면 도대체 시민운동은 누가 하냐는 게 시민운동 원칙론자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언제까지 이런 ‘답답한 논의’로 정치개혁의 핵심인 ‘인적 청산’을 답보시킬 셈이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기실, 총선을 앞둔 시점이 되면 시민사회단체 대표급 인사들은 언론의 ‘하마평’에 오른다.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2004년 총선에서 당선률이 가장 높을 것으로 점쳐지는 사람들은 한나라당 구주류를 비롯한 ‘구시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과 ‘신뢰감’을 주는 시민운동가들이다. 따라서 민주당 신주류는 물론 개혁당 유시민 대표까지 나서 시민운동가들의 정치참여를 적극 권장하는 ‘구애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다. 오는 8월말 창당 예정인 민주당의 신당에 ‘깜짝 놀랄만한’ 시민단체 인사가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가운데, 과연 시민운동진영에서는 정치세력화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들어보았다.
현재 시민사회운동진영 내부에는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한다. 낡은 정치 청산과 온전한 개혁의 완성을 위해 시민운동가들이 정치사회에 입장해야 한다는 현실론과 시민단체는 우리사회의 권력감시그룹으로서 자기역할을 분명히 해야하므로 정치권과의 긴장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론이 그것이다. 박재율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의 말을 들어보자.
현실론과 원칙론 사이에서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 문제에 대해 시민사회 내부논의를 본격화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사회의 개혁은 ‘제도개혁과 인적개혁이 반드시 병행돼야’ 성공할 수 있다. 특히 2004년 총선에서는 낙선운동 카드가 국민들에게 잘 먹히지 않을 것이다. 이미 지난 대선에서 참여정치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시민운동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번 총선에서 ‘역할분담론’을 깊이있게 고민해보자고 제안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 기존 정당에 빨려가는 것보다는 시민사회 내부논의를 통해 일정한 조직적 꼴을 갖추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모양 상으로도 그리 나쁠 것 같지 않다.”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실장의 말이다.
“지금은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를 논의하는 것보다 시민운동의 안전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우선시 돼야 한다. 2004년 총선에서 어떤 카드를 쓸 것이냐는 논의는 시민운동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만들면서 성급한 결론을 내기 쉽다. 또 현재 정치개혁을 위한 범국민협의회를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함께 만들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 성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정계개편을 위한 움직임은 분주하지만 제도개혁을 위한 행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당법 선거법 개혁 등 시민운동진영이 제기하는 정치개혁 이슈가 전혀 먹혀들지 않는 가운데 무리하게 정치사회로의 이동을 분위기로 잡을 필요는 없다.”
낙선운동에 대해서도 입장이 갈린다. 박재율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인적개혁의 방식으로 낙선운동을 강조하면 시민운동의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참여연대는 이라크파병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서 평화를 도외시하는 정치인에 대해서는 낙선운동이 불가피하다”고 밝혀 2004년 총선에서도 ‘낙선운동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기실 지역단체 활동가들은 “제도개혁 못지 않게 인적 개혁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제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의 말을 들어보자.
“2004년 총선에서 시민운동이 어떤 카드를 쓸 것이냐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고 본다. 낙선운동과 당선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다만 이 운동의 조직적 틀을 시민사회 내부로 끌고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민운동 따로, 정치개혁운동 따로, 이렇게 따로따로 논의해야 한다.”
대전은 이를 위한 논의를 이미 시작했다. 5월 23일엔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실에서 토론회도 연다. 가칭 ‘정치개혁을 위한 시민사회운동’.
여기에는 대전지역 주요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고 있고, 이 모임은 2004년 총선에서 시민운동진영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될 것이다. 김 처장에 따르면 “이 모임에‘정치지망생’들이 자꾸 몰려들어 논의를 확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곧 시민사회 내적 논의로 본격화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참여정치의 흐름을 이어가려면
청주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처장은 “아직 지역에서 정치세력화를 위한 본격 논의는 시작되지 않았으나 그동안 지역문제를 등한시하던 386 정치지망생들이 속속 지역사회로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정치지망생들과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 논의를 한데 섞어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조유묵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도 “경남참여본부 건설 논의과정에 참여했으나 마창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직을 걸고 공식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정당과 시민운동의 어느 중간 지점에서 ‘시민사회 정치세력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대선 당시 표출됐던 참여정치의 흐름을 담아낼 수 있다. 경남지역은 지난 몇십년간 특정정당이 독주해온 지역이다. 이 지역에 새로운 정치흐름을 만드는 건 너무나 절실한 데 이걸 어떻게 만드느냐가 고민이다.”
그러나 ‘지역 시민사회의 창당론’과 지역단체 활동가들의 정치세력화 고민은 아직 전국화 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으나 선뜻 이 논의의 주체가 되려는 곳은 없기 때문이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김제선 처장은 “참여연대가 나서야 이 논의는 촉발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참여연대는 “시민운동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다.
최열 환경연합 공동대표는 “시민사회 정치세력화 논의하면 자꾸 정치지망생들이 끼여들어 복잡하게 흐르는 경향이 있지만 곧 이 논의는 시작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당장 3보1배 때문에 정신 없으니 나중에 통화하자”며 끊었다.
박원순 참여연대 집행위원장도 “모 의원 당선 축하모임에서 시민사회가 정치권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긴 했지만 그렇게 정치권에 갈 수 있겠냐”라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40∼50대 전업운동가들의 진로문제를 두고 시민운동의 외연확장 차원에서 정치세력화 문제를 바라볼 필요도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과거처럼 시민운동과 정치권을 적대적 관계로 설정할 게 아니라 진보와 개혁을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정치세력화도 적극적으로 사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입장도 팽팽하다. 2004년 총선 전까지 ‘뜨거운 감자’로 존재할 ‘시민사회 정치세력화’ 논의는 차츰 예각화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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