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잘 지냈는지요. 오늘은 어버이날이자 석가탄신일입니다. 아버지를 뵙기 위해 아침 일찍 의정부로 갑니다. 의정부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강북강변로를 타고 가다 동부간선도로를 통해 갈 수도 있고, 구파발을 거쳐 북한산 뒷자락 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선택한 것은 종로에서 혜화동과 미아리를 거쳐 도봉동을 통해 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10대와 20대 초반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던, 제 어린 시절 추억들이 살아 숨쉬는 길입니다.



“울어라 은방울아”의 추억


한적한 휴일 아침 대학로를 지나 삼선교로 나아갑니다. 삼선교는 어머니가 경기도 양주로 시집을 오자마자 곧바로 이사해 사시던 곳입니다. 삼선교 사거리에서 보문동으로 가는 그 어딘가에서 어머니는 해방되기 직전 시부모를 모시고 신혼 살림을 차렸다고 하셨습니다. 가끔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당시 열 아홉이셨던 어머니 눈에 비춰졌을 경성의 모더니티를 생각해 보곤 합니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어머니의 시선에 잡혀진 식민지 시대 말기 경성의 풍경들, 전차와 다방과 유성기와 태평양전쟁의 전시체제, 그 새롭고 낯선 풍경들 속에서 어머니가 느끼셨을 그 어떤 놀라움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생각해 보곤 합니다. 아버지는 만주로 떠나시고 큰 형님이 태어나고 드디어 해방이 되고 우리사회는 격동의 모더니티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고, 아버지가 돌아오시자 두 분은 양주로 귀향하셨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사회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되풀이해 들었던 그 당시 삼선교 이야기는 모더니티를 언제나 양가적으로 바라보는 제 무의식의 한 부분을 이뤄왔는지도 모릅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노래가 ‘울어라 은방울’입니다. 채마밭을 돌보실 때 열무김치를 담그실 때 외가집을 찾아가실 때 자신도 모르게 낮은 목소리로 흥얼거리셨던, 그러다 옆에 있던 저를 발견하고 다소 수줍은 미소를 지으시게 만들었던 노래입니다. “은마차 금마차에 태극기를 날리며, 사랑을 싣고 가는 서울 거리야. 울어라 은방울아 세종로가 여기다. 인왕산 바라보니 달빛도 곱네.” 어쩌다 세종로 부근에 약속이 있어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광화문 근처에서 우연히 인왕산을 바라볼 때 문득 이 노래가 떠오르곤 합니다. 오래된 유행가라 하더라도 왠지 이 노래에는 젊은 20대 어머니가 갖고 계셨을 풋풋한 느낌과 정서가 살아 있는 듯 해서 제게는 언제나 애틋한 곡입니다.

어느새 수유리를 거쳐 도봉산 아래와 장수원을 지나갑니다. 버스를 타고 이 길로 초등학교 통학을 시작했을 때 이곳은 푸른 벌판이었습니다. 이제는 아파트 단지가 줄지어 늘어선 중랑천변은 우리들의 소중한 놀이터였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어울려 천변에서 축구를 하거나 장마로 물이 불어나면 미역을 감기도 했습니다. 개발연대의 압축적 산업화가 격렬히 진행되던 1970년대 초반 도시 어린이들의 활기차면서도 다소 서글픈 오후의 꿈과 서정을 생각하게 하는 곳입니다. 의정부까지 이어지는 이 벌판에 봄이 오면 어머니와 함께 나물을 캐거나 쑥을 뜯으러 오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언제나 경이로웠던 것은 어머니가 알고 있는 수많은 풀들의 이름입니다. “얘야, 이것은 먹을 수 있는 풀이고 저것은 먹지 못하고, 이것은 서울제비꽃이고 저것은 미나리아재비이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를 읽고 나서야 제가 갖고 있는 추상적 지식이 공식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하셨다 하더라도 어머니가 갖고 계셨던 구체적 지식에 비해 얼마나 하잘 것 없는가를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습니다.



양성평등의 사회를 향하여


K 기자, 지난 겨울 베를린에 갔다 왔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그 때 잠시 잘레강가에 있는 할레라는 도시를 찾았습니다. 이 할레는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유명한 작센안할트주에 위치해 있습니다. 제가 굳이 이 고도를 찾은 것은 이 도시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이 펼쳐지는 무대의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의 절정은 말 못하는 막내딸 카트린이 건물 지붕에 올라 적군의 접근을 알리기 위해 북을 치는 장면입니다. 30년전쟁을 배경으로 브레히트는 이 놀라운 서사극에서 전쟁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제게 더없이 인상적인 것은 어머니란 존재가 갖는 의미입니다.

“어머니… 오손도손 평온한 가정의 바람은 마땅한 우리 모두의 비원입니다. 오! 어머니 당신 속엔 우리의 적이 있습니다”라고 시인 박노해는 ‘어머니’에서 노래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한없이 평온하고 정겨운 숨결과 바람결이 넘쳐흐르는 가족을 위해 당신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희생하셨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평온함과 정겨움은 언제나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과도 같은 것, 진정한 자유란, 진정한 평화란 우리 삶을 위협하는 그것들에 맞서서 대항하지 않으면, 소리 높여 북이라도 치지 않으면 결국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진정 안타까운 것은 당신의 삶 속에서 사라져버린 그 무엇입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서, 여섯 아이의 어머니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의 어머니를 생각해 볼 때가 있습니다. K 기자, 이른바 가부장적 권력이 얼마나 많은 이 땅 어머니들의 삶과 정체성을 억눌러 왔는지요. 당당한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것은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당연한 권리입니다. 양성평등의 사회는 더 이상 지나칠 수 없는, 사랑과 헌신이란 담론으로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소중한 민주적 가치입니다.

유난히 비를 좋아하셨던 어머니, 유난히 작은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좋아하셨던 어머니. 비가 오는 날이면 더러 어머니가 생각나고 그 때마다 물방울무늬 원피스를 유독 좋아하셨던 이유가 그 물방울이 비를 연상시켜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곤 했습니다. 어머니이기 이전에 인간이자 여성이셨을 그 분을 저는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 삼선교를 거쳐 종로로 들어섭니다. 종묘 공원과 파고다 공원과 보신각 옆을 지나 광화문 네거리를 가로지릅니다. 이제는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도 모르게 제가 그 노래의 2절을 흥얼거립니다. “연보라 코스모스 가슴에다 안고서, 누구를 찾아가냐 서울 색시야. 달려라 은마차야 보신각이 여기다. 가로수 흔들흔들 네온빛 곱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가 살고 있는 그 나라에도 길이 펼쳐져 있고 가로수가 봄바람에 나부끼고 그 사이로 네온사인이 곱게 빛나고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서울이라는 낯선 공간이 비로소 낯익은 장소로 뒤바뀌어지는 순간-영원의 사랑을 배우는 순간입니다. 한적한 휴일 밤 서대문 로터리를 지나 마포대교로 가는 길로 들어섭니다. 내내 건강하길 바랍니다. 그럼 다음 달에 다시 소식 드리지요.

김호기 본지편집위원장,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2003/06/01 00:00 200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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