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게 사는 비결을 공개합니다!'


행복을 맛보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을 그저 앉아서 바라고만 있지는 않은지. 자신이 가진 재능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사람들은 어쩌면 너무 멀리에서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예순 다섯의 안숙자 할머니. 그는 자식이나 다름없는 인형들을 가지고 병든 노인들과 해맑은 아이들을 찾아다닌다. 안 할머니의 행복찾기가 더 귀하게 느끼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지난 5월 8일 이른 10시 충북 청주의 한 노인병원 내 치매요양원. 살랑 바람에 만국기가 펄럭이는 앞마당에서 뭔가 벌어질 참인 모양이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음식을 나르는 아주머니, 선물꾸러미들을 확인하는 아저씨, 이들에게 부축을 받아 건물에서 빠져나오는 휠체어 탄 할아버지, 할머니들.

마당 한 켠에 다소곳이 서있는 할머니는 금방이라도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되어있는 무용수 같았다. 속곳바지 위로 무릎까지 닿는 다홍치마와 노랑저고리에 색동저고리까지 걸친 모습에 ‘할머니’라는 호칭이 입에서 쉬 떨어지지 않았다.

“호호호, 어버이날이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들한테 재롱떨려고 일부러 짧은 치마를 만들어 입었어요.”

고정손님인 할머니가 이날 ‘요양원 주최, 어버이날맞이 동네잔치’의 공연 첫 순서를 맡는 것은 당연했다. “안녕하세요∼ 이쁜이가 왔어요!” 통통 튀는 목소리가 유쾌, 상쾌하기만 했다. 바로 이어지는 노래 ‘고향의 봄’과 ‘짝짜꿍’. ‘이쁜이’의 낭랑한 목소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박수를 반주 삼아 울려 퍼졌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은 ‘이쁜이’가 가르쳐준 대로 ‘대∼한민국’ 박수도 어렵지 않게 친다.

본격적인 공연 시작인 꼭두각시춤. 잠시 뒤로 물러섰다가 머리에는 족두리, 허리춤에는 도령으로 분한 인형을 둘러메고 사뿐사뿐 걸어오는 할머니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오른손을 허리에 대고 왼손으로 왼쪽 볼을 콕 찌르자 좌중은 자지러졌다. 할머니의 춤은 부채춤과 화관무로 이어지고 어느새 앞으로 나와 어깨춤을 추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들로 잔치는 무르익었다.



대사 없는 즉흥극


‘이쁜이’ 안숙자 할머니. 매월 둘째 주 금요일마다 이곳을 찾은 지가 어언 2년째다. 이날 잔치에서 선보인 ‘재롱’은 맛보기에 불과하다. 할머니의 진수는 인형극에서 드러난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금요일을 기다리는 이유다. 긴 막대기에 스펀지로 형체를 잡고 나서 각양각색의 천으로 만든 옷을 입혀 온전한 모습을 갖춘 60여 개의 인형들은 하나같이 할머니의 손위에서 갓난아기, 깜찍한 토끼, 무서운 호랑이에 이르기까지 매월 다른 모습, 다른 목소리를 가진 주인공들로 탈바꿈한다. 이야깃거리는 농사짓기와 효행. 두 시간 여 동안 독무대를 차지하는 할머니는 춤과 노래를 곁들여 인형극으로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가 된다잖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이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인형극의 내용들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걸 보면 더 신나서 하게되죠.”

할머니의 춤 실력은 20년 넘게 무용학원을 다닌 딸을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 지금은 아예 전담 사부를 모시고 수업을 받고 있다. 인형극 역시 한 극단에서 마련한 강의에서 배웠다. 이때 처음으로 손수 만든 인형 ‘똘이’는 다른 인형들보다 손때가 많이 묻어있다. 그래서일까. 할머니에게 ‘똘이’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자식과도 같은 똘이와 다른 인형들을 데리고 찾아가는 곳은 또 있다. 할머니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아이들이 모여 있는 어린이집이다. 무작정 재미있는 것도 좋지만 교훈적인 인형극을 보여주고 싶은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춘다. 욕심부리지 않기, 아빠, 엄마 말씀 잘 듣기, 매일매일 이 닦이 등 아이들이 늘 듣는 말들이지만 할머니의 인형들이 건네는 말은 꿈속의 친구가 말하듯 아이들의 귓가에 맴도는 모양이다.

“인형이 얘기해주는 것은 잊어버리지 않아요. 순수하니까 다 받아들이는 거죠.”

그런 아이들을 위해 할머니는 주로 동화책을 읽는다. 직접 만드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대부분 동화책의 내용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강의 역할을 나눠 인형을 세운다. 그리고는 대사 없는 즉흥극이 이어진다. “옛날 옛날에 말이에요∼” 손주들에게 옛날이야기를 해주듯이 극을 풀어나간다. 집에서 연습하는 것은 필수.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심취되어 있어요. 연습하다가 혼자 웃기도 하고.”

가끔씩 서울에 올라가 인형극을 보고 돌아오는 것도 아이들에게 좀더 알찬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지방의 아이들은 이런 문화를 충분히 접할 기회가 드물어요. 공연장도 없고. 내게 힘이 있을 때 아이들을 만나면서 즐거움을 주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네아이들을 모아놓고 얘기하는걸 좋아했다는 할머니는 그토록 바라던 유치원 교사의 꿈을 이루었다. 교회 유치부에서. 나중에는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활동하면서 줄곧 아이들을 만나왔다. 초등학생인 손주들의 학교에서도 수업시간을 빌어 저학년, 고학년에게 각각 춤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할머니는 어디든지 달려갔다. 하루에 세 번만 버스가 다니는 산골분교의 아이들도 할머니의 단골 관객이다. “이렇게 사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요.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때 기쁨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게 말이죠.”



다른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눈다는 것


할머니는 65세 이상 된 언니뻘 할머니들에게는 건강체조까지 강의한다. 매주 수요일 할머니가 살고 있는 동네의 군청 내 보건소에서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할머니들이 몸을 흔든다. 안 할머니가 직접 안무해 가르치는 고전무용에서 디스코로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린다.

“할머니들이 어디에 가시더라도 음악에 맞춰 적어도 하나의 춤이라도 추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다들 쑥스러워 하셨지만 지금은 왠걸요∼”라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조만간 이곳의 할머니들에게 사부로부터 배울 예정인 스페인무용을 꼭 가르쳐드릴 예정이라고.

이뿐 아니다. 보건소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을 위한 수업 중에서 할머니는 연극지도까지 하고 있다. 간단한 인사말조차 못하고 사람들을 피하려고만 하는 이들에게 할머니는 대사를 가르쳐주었고, 연극의 대사로라도 이들 사이에 소통이 오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표정 역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느 누가 기대를 할 수 있었을까. 지난 3월에 열린 연극대회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할머니와 참가자들은 믿을 수 없었다.

“연극을 한 우리도 즐거웠지만 연극을 보는 사람들도 즐거워했죠.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거예요.”

“오늘같이 매일매일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이날 공연의 마무리인사로 큰절을 하고 난 할머니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젊게 사는 비결이기도 해요. 아마 앞으로 10년 정도는 문제없을 것 같은데요, 호호.”

아이들의 목소리와 웃음을 닮은 이쁜이 할머니가 느끼는 청정지역 무공해 행복이다.

김선중(참여사회 기자)
2003/06/01 00:00 2003/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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