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남자는 환상일 뿐이다


『문화일보』연재소설 「강안남자」가 여성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도 비록 소설로 포장되긴 했지만 여성 비하적인 내용을 신문으로 매일 마주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두 여자가 만나 이런 현실을 여성의 눈으로 분석했다. 편집자 주

1년 전부터 『문화일보』에 연재되는 이원호의 소설 「강안남자」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일간지에 연재되는 본격적인 기업소설이자 성애소설이다. 요즘 남자들 소원이 「강안남자」의 주인공 조철봉이라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그렇지만 조철봉은 남자들의 환상일 뿐인 것 같다. 주인공 조철봉은 그의 성적 능력에 모든 여자들이 무너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으며 돈 많고 능력 있는 여자를 용서하지 못하고 반드시 응징에 처한다. 문화평론가 권명아와 여성학 강사 권김현영이 만나 「강안남자」에 딴죽을 걸었다.

권명아(이하 권) : 오늘의 만남을 위해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까 피부에 와 닿는 「강안남자」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는 다르게 관련 기사가 거의 없다. 오늘의 대화 때문에 괜히 이 소설이 화제가 되어 남 좋은 일 시키는 거 아닐지 모르겠다(웃음).

권김현영(이하 권김) : 『문화일보』에서 100호 특집으로 이 소설을 자화자찬할 정도다. 보통 일간지들은 연재소설의 경우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교묘히 줄타기를 하곤 하는데 이렇게 노골적인 경우는 처음이다.

권 : 「강안남자」도 문제지만 『문화일보』가 더 문제다. 일반적인 스포츠 신문이 아닌 매체에서 이런 기사를 다룬 다는 것은 이른바 일간지들도 황색저널화 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권김 : 「강안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1부터 100까지 문제가 아닌 게 없다. 최근 『문화일보』광고에도 벗은 여자가 나와서 독자들에게 다른 상상을 하게 만든 후 “보고 싶다 『문화일보』”라는 카피를 썼다.

권 : 사람들은 이런 소설이 신문에 실리면 죄의식 없이 본다. 포르노와 예술을 쉽게 구별하는 방법이 무엇인줄 아는가? 주기적으로 섹스장면의 묘사가 있으면 그것은 대부분 포르노다. 「강안남자」는 일정한 간격으로 소설이 지루해 질 만한 하면 벗는 장면이 나온다.

권김 : 삽화를 그리는 만화가 난나의 입장도 궁금하다. 페미니스트 만화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소설가 이원호는 남성기업소설가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이런 만화가가 「강안남자」 와 조우하면서 도구화되는 게 안타깝다.

권 : 「강안남자」를 통해 남성직장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주인공 조철봉은 밑바닥에서부터 일하기 시작해 성공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여성을 이용하고 나중에는 복수를 한다. 조선족 여성에게 특히 심했다. 그러나 더 문제는 대부분의 기업소설처럼 조철봉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에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이른바 ‘기생집단’이다. 부모가 돈이 많아서 부자가 된 경우다. 독자로 하여금 그런 여성들을 착취한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는 식의 사고를 하게 한다. 경제위기 속에서 이런 소설이 직장인들에게 더 어필하는 것 같다. 실업위기에 대한 불안은 남성만 느끼는 게 아니다. 남성들에게 여성이나 소수자들이 마치 자신의 자리를 그들이 대신 차지하고 있다는 식의 콤플렉스를 조장한다. 소수집단에 대한 증오감도 드러난다.

권김 : 주인공 조철봉, 그리고 이 시대 남성들이 진정으로 미워하고 있는 대상은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 부와 명예를 축적한 남성들이 아닌가. 그럼에도 소설은 그 분노를 여성과 약자에게 던진다. 성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있는 강한 페니스 때문에 모든 여성들이 사랑해 빠졌다고 정당화시키고 있다.

권 : 모든 기업소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강한남자 콤플렉스’다. 처음에는 거래였거나 여성이 당한 경우였으나 결국 강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일종의 위기의식이 들었다. 소설이 미치는 영향도 문제지만 이런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했기 때문에 소설이 팔리는 게 아니겠는가. 이런 심리도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남성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리고 싶은 것이다. 요즘 작가들은 이런 소설을 쓰면 얼마나 비판을 받는지를 잘 알고 있다. 틀림없이 공격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실제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치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낸다. 여성들이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저 페미니스트들 꼴보기 싫어서라도 나는 이 소설을 지지한다는 식의 반응이 금새 나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권김 : 남성에 대한 소설이나 만화를 읽어보면 남성들의 환상이 무엇인지 담겨있다. 여자들도 환상이 있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그것을 깨려고 스스로 노력하고 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에 대한 반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그것은 각본화된 꿈이며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강요한 욕망일 뿐이라는 것을 이제 여성들은 안다. 남성들도 반성에 들어가야 한다. 페미니즘이 싫고 불편하다는 식의 감정 이상을 넘어서려면 남성들 스스로 이러한 소설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 「강안남자」는 남자들의 동화며 자본주의에 대한 천박한 꿈만 담겨있다.

언론운동, 이제는 조중동 차원 넘어서야

권김 : 언론운동이 조중동의 정치적 시각문제에만 집중되어 있다. 여성운동에서는 여성비하적인 뉴스, 드라마, 언론 등에 대해 비판하는 등의 제기를 해왔지만 언론개혁을 하는 큰 그림에는 여성적 시각이 반영되지 않다. 조중동 이외의 신문에 대한 비판운동이 적다. 『한겨레21』에서 “베트남으로 여성을 사러가다”같은 제목의 기사가 나오는 것을 봐라. 이건 상업전략으로 이해하기에는 지나친 부분이 있다. 여성의 눈으로 보기에 더 유해한 것은 『조선일보』 보다 오히려 스포츠신문일지 모른다. 조중동과의 큰 싸움에서 이런 문제들은 밀리고 있다. 연재중지운동을 하든 ‘안티문화일보’운동을 하든 구체적인 여성들의 움직임이 나와야 할 때가 아닌가. 언론운동도 특정신문만에 대한 저항운동이 아닌 다양한 시각에서 비판할 필요가 있다.

권 : 조중동에 밀린 다수의 일간지들의 파탄의 징후라고 본다. 특정기사가 여성을 비하했다면 정정보도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 문제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 창작의 자유 문제다. 그것은 마광수나 장정일 사태와는 다르지 않는가. 세계관이 다르니까 그 문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는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소설 한편을 중지시키는 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권김 : 우리가 무엇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운동을 했냐는 고민을 다시 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표현의 자유는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운동한 이유가 이와 같은 폭력적인 소설을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권 : 섹스에 대한 묘사만 가득한 완전한 포르노보다 이런 소설이 더 위험하다고 본다. 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권력문제가 개입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착취하는 심리가 소설 저변에 깔려있다. 내가 먹을 것인가, 내가 먹힐 것인가를 선택하고 행동할 것을 강요한다.

본지 기자 : 『문화일보』에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페미니스트가 일하고 있다. 그래서 더 실망스럽고 여성계가 「강안남자」에 대해 반발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감싸기가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

권김 : 물론 『문화일보』에도 여성기자가 있고 페미니스트도 일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단체들이 본격적으로 이 문제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단순히 동지애적 시각으로 「강안남자」를 감싸고 있다고 폄하하기는 힘들다. 복잡한 문제다.

영상과 문자의 차이

권 : 영화나 방송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분석한 경우는 많지만 소설은 드물다. 그 이유는 첫째 이제 문자언어를 거의 안 본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영화는 즉각적으로 반응하지만 문자는 소수의 전문가 집단만이 평가를 한다. 또 진지하게 볼만한 텍스트와 그냥 소비하는 텍스트에 대해 구별이 분명하다. 사람들이 소비하는 문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즉 비판의 사각지대에 있다.

권김 : 영화의 경우 이제 논의가 점점 세분화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문자는 다르다. 이는 사이버 성폭력 싸움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한 사이버 성폭력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인 실명제 도입 문제가 논란이 된 바 있다. 논의가 축적이 되면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만드는 합의를 이루어 가며 논의를 이끌어 갈 수 있다. 현재의 상태는 폭력을 당했다고 느끼는 여성들에게도 소설가들에게도 모욕적인 일이다.

권 : 「강안남자」에는 국제개혁연맹도 나온다. 요즘은 아무리 극단적인 보수주의라도 나름대로 진보적이라고 주장한다. 진보가 하나의 브랜드 가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남성들은 자칭 진보적이고 투사적인 기질이 있다고 주장하곤 한다. 국제개혁연맹이 나오는 것은 이런 위축감의 표현이며 진보에 대한 히스테리다. 그러한 박탈감까지 이 소설은 이용한다.

권김 : 평단에서 대중문화작가들에 대한 평을 시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권 : 말하지 않는 것 자체가 그 가치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면 될 것 같다. 문단에서는 문학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즉 한국에서 문학을 두 가지로 분류해, 평가하지 않는 것은 대중문학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만 하더라고 문화전반에 대한 평가를 작가가 발언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영향력이 떨어졌다. 아울러 인터넷의 영향으로 개국 이래 이렇게 많은 문학작품들이 쏟아져 나온 적도 없을 테다. 대중적인 장르를 고전적인 가치규범으로만 평가하기 힘들다. 대중문학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 가치를 암묵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굳이 말할 가치도 없다는 태도인데 이 때문에 대중문학에 대한 비평적 진단은 사각지대가 되어버렸다.

권김 : 성공에 관련된 소설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 전의 성공은 대부분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어내는 식의 성공담은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주제가 되어버렸다. 성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고 섹스가 일회적인 욕망으로 반복되는 게 늘어났다.

권 : 「강안남자」를 읽으면서 마치 룸살롱을 보는 듯 했다. 많은 직장남성들이 돈을 모아 룸살롱에 가고 그 안에서 여성을 소비한다. 일시적으로 강한 권력을 맛보기 위해서다. 그 안에서만은 제왕이 되고 싶어하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가정으로 돌아가 성실한 가장으로 살아간다. 소설을 통해 그러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권김 : 마지막으로 여성의 성공에 대한 책들과 비교해 보자. 여성들의 책은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 등의 처세술이나 전여옥과 같은 성공한 여성들의 일대기가 대부분이다. 남성의 성공에 대한 책들처럼 다양하지 못하다. 그것은 여성의 성공이 우리 사회에서 축적되어 있지 못하기 때문에 리얼리티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봐라. 고학력 여성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문화일보』 홈페이지에서 「강안남자」를 검색하면 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몇번째 소설이 업데이트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운영자는 관리를 철저히 해주십시오’ 라는 항의성 글과 「강안남자」의 성에 대한 묘사가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신문에는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그렇지만 두 여자의 비판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여성문제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들을 지켜봐 와서 일까. 「강안남자」를 중심으로 논란이 될 수 있는 문제들을 다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두 여자가 지적한 것처럼 진보는 브랜드화 되는 반면 페미니즘은 점점 공격받고 있다. 일간지에 이런 소설이 버젓이 실리는 엽기적인 일을 비판하는 것에도 이처럼 많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여성운동도 보다 다양화될 것을 요구받는다. 마지막으로 남성소설에 입을 열어야 할 사람은 바로 남성이다. 「강안남자」를 읽으며 더 낯이 뜨거워지는 건 남성일 것 같다. 이 소설은 단순한 여성비하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3/06/01 00:00 2003/06/01 00:00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Magazine/trackback/8777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