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바람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올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성인들에겐 크리스마스만큼이나 기다려지는 여름휴가. 지난해 여름의 추억을 떠올리며 올해도 어딘가로 떠나보자고 기대에 한껏 부풀어 있을 독자들에게 특별한 여름휴가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나는 귀신을 딱 두 번 만났다. 엄격히 따져서 한번은 만난 것이 분명하고 또 한번은 만났었다기보다는 내 주위를 휘감은 어떤 불가항력의 기운을 통해 그들이 내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다(사실 이때 느낌이 더 오싹하다). 지금 쓴 2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다. 여러분들은 아마 오늘 내가 경험한 것과 똑같은 아주 특별하고 기묘한 만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첫번째 이야기-새마을 모자를 눌러쓴 허망한 눈빛

갑자기 계획된 여행이었지만, 우리는 모처럼 황금 같은 여름휴가를 정말 멋지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운전한다는 것조차 큰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이 들떠 있었다. 휴가 기간동안 먹을 음식들과 음악을 충분히 준비하고 지도책도 구석구석 살피며 완벽한 여행을 꿈꾸었다. 아마 누군가 여행 테마를 ‘로드무비’로 정하자고 했던 것 같다. ‘로드무비’답게 최대한 자유로운 여행을 즐기기 위해 ‘강원도’로 간다는 것 외에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도로 위를 달리다가 누군가 ‘멋지다’라고 소리를 지르면 그 자리에서 밥을 먹기로 했고, 오침을 즐기다 배가 고파지면 그 자리에서 밥을 지어먹고, 또 별이 아름답게 빛나는 장소에서 별을 이불 삼아 잠들 것을 약속했었다.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적어도 새마을 모자를 쓴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명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동강 근처 어디쯤이었던 것 같다. 별로 유명하지 않는 장소라 그랬는지 비교적 한적한 편이었다. 그 장소에서 여장을 풀게 된 것도 그런 고요함 때문이었다. 피곤한 몸을 약간의 알콜로 풀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쏟아질 듯 가득한 별들을 한없이 바라보다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잠이 들었다.

얼마동안 잠에 빠져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날이 새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순간, 번쩍 무언가에 놀라 눈을 떴던 기억이 난다. 일행중 한 친구의 코고는 소리에 놀랐던 것 같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 때부터 내 등을 짓누르는 작은 돌멩이가 계속 신경이 쓰였던 것 같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깊이 잠들지 못하고 이상한 꿈속을 헤메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누워 있는 텐트 안에 우리 말고 다른 낯선 누군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앉아 있 그 새마을 모자를 쓴 아저씨를 기다리느라 한숨도 못잤다. 사람들은 내가 여행에 지쳐 헛것을 봤다고 한다.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직도 난 새마을 모자를 쓴 30대 후반의 그의 허망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가 왜 찾아왔을까?

5인용 텐트 안은 우리가 들고 온 짐들로 가득해서 3명이 누워 있기에도 사실 좀 비좁은 편이었다. 이 안에 누군가 들어와 앉아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안되는 상황에서 그저 혹시 그와 눈이나 마주치지 않을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저 어서 빨리 시간이 흘러 첫닭(?)이 울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앉아 있는 듯 싶기도 하고, 서 있는 듯 싶기도 한 자세로 어딘가를 무표정하게 응시하고 있는 그 남자는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서) 있다가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그날 이후 나를 제외한 두 명의 일행은 밤마다 그 새마을 모자를 쓴 아저씨를 기다리느라 한숨도 못잤다. 사람들은 내가 여행에 지쳐 헛것을 봤다고 한다.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직도 난 새마을 모자를 쓴 30대 후반 남자의 허망한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가 왜 찾아왔을까?

두번째 이야기-베트남 전쟁의 억울한 혼령들

베트남 귀신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베트남에서 영화를 찍었던 어느 배우는 쵤영기간 동안 수많은 귀신들과 함께 지냈었다고 토크쇼 내내 침을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그 배우가 영화 홍보를 위해 하는 거짓말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2000년부터 2003년까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많은 베트남 민중들의 진실을 규명하는 ‘베트남진실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다. 그 활동과 관련해 2000년 드디어 나도 베트남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특히, 학살의혹이 제기되었던 중부지방의 한 마을을 방문할 계획이라 여러 가지로 마음이 부산하고 남달랐다.

그 마을을 방문하기로 한 날은 아침부터 바빴다. 마을주민들에게 전해줄 선물 챙기랴, 한국에서 모금한 성금 전달하랴. 지역 성장과 공식적인 만남과 만찬을 준비하랴.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한국의 어느 농촌을 연상시켰다. 신작로가 놓여 있고 점심식사 전이라 농부들의 손길도 무척 바쁘게 느껴졌다. 우리 일행을 발견한 어느 촌로는 멀리서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8월초 무척 더운 날씨였다. 한 15분쯤 걸었던 것 같다. 얼추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 길 한가운데에서 나는 어떤 이상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느 지점에서 순간 알 수 없는 기분나쁜 느낌을 받았다. 이어서 심한 두통과 미식거림. 그리고 어떤 불가항력의 기운이 나의 발목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더위를 먹은 것은 아닐까?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어떻게 마을에 도착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마을에 도착하고 계획되었던 공식 행사들을 무사히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가이드를 했었던, 베트남 유학생 K에게 내가 느꼈던 이상한 느낌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반색을 하며 자기도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단다. 이후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었던 당시 그 길에 한국군이 들어왔다. 베트콩을 소탕하기 위해 들어선 마을에 베트콩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남자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기다리고 있던 부녀자들과 아이들, 노인들뿐이었다. 이렇게 남아 있던 3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은 모두 학살되었다. 그리고 마을에 불을 지르고 학살 흔적을 없애기 위해 모두 불도저로 밀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상처 입은 영혼들은 어느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2000년 그곳을 방문했던 한국여자인 나의 발목을 잡으며 억울한 죽음을 호소했던 것은 아닐까?

김숙경 아시아의 친구들 간사
2003/07/01 00:00 200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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