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소식도 없이 지내다가 1년만에 만난 누이의 입에서 뜻밖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귀신과 싸우면서 지냈다.”

다소 황당했지만, 1년동안 종적을 감췄던 누이가 정색을 하고 시작한 말이었기에 가족들은 계속 귀를 기울였다.

96년으로 기억된다. 누이는 그해 여름 갑자기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이삿짐을 풀어놓은 곳은 경기도 남양주의 한적한 곳이었다. 누이의 말에 따르면 50여m 떨어진 곳에 손주들과 함께 사는 한 할머니 집이 있었고, 마을은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할머니 집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사람들이 오랫동안 다니지 않은 탓인지 할머니 집과 통하는 좁은 오솔길은 수풀로 덮여 있었다.

누이가 꿈에서 귀신을 처음으로 본 것은 이사할 집을 수리하기 전날 밤이었다. 꿈에 한 사내가 팔짱을 끼고 나타나 “거긴 내 집이니까, 이사오지마”라고 말하면서 누이를 쏘아붙였다. 꿈이 너무 생생하고 소름이 끼쳤지만, 이미 계약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다음날 저녁때 인부 3명과 함께 그 집을 찾았다고 한다.

이날 인부들은 “아니 이런 집에서 어떻게 혼자 살려고 그러느냐” “느낌이 너무 나쁘다”라고 말하면서 플래시를 켜고 방을 돌아다니면서 견적을 뽑았고 일을 마치고 나가려던 순간,

“깔-깔-깔-깔”

4명이 동시에 들은 소리였다. 혼비백산해서 인부 2명은 문지방에 걸려 넘어졌고, 누이와 함께 인부들은 서둘러 그 집을 떠났다. 그 뒤 인부들이 꺼림칙하다며 공사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누이는 웃돈을 주고 다시 불러들여 집을 수리하고 이사를 했다.

이 날부터 ‘악몽’의 연속이 시작된 것이다. 눈만 감으면 단발머리를 한 젊은 여자가 새파란 얼굴로 다가와서 “깔깔깔깔” 웃어댔고, 키 큰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나타났다. 팔짱을 낀 젊은 남자는 항상 ‘새마을’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쓰고 나타나 “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쳤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악몽’의 연속이었다. 누이는 밤에 잠을 자지 못해, 낮에 토막 잠으로 때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좀 떨어져서 살고 있는 할머니가 찾아왔다. 누이는 “도대체 사람이 사는 것 같은 데 인사도 없다”고 말하면서 찾아온 할머니와 며칠동안 왕래를 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 그 할머니는 마실 온 첫날 누이에게 “어떻게 이런 곳에 혼자 사느냐” “비가 올 때는 사람들이 이 집 앞을 지나가지도 못하는 흉가”라고 말했지만, ‘악몽’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며칠이 지난 뒤 할머니와 식사를 하면서 누이는 자연스럽게 ‘악몽’에 나타난 사람들의 행색을 이야기하면서 “혹시 이런 사람이 이곳에서 살았느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뒤로 벌렁 나동그라지며,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땅바닥을 치면서 누이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말했다.

“꿈에 나타난 사람들입니다. 한 여자는 단발머리이고 매일 나타나서 나를 보고 ‘깔깔깔’ 소리를 내며 웃습니다.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할머니는 항상 맨발로 다니십니다. 팔짱을 낀 남자는 항상 새마을 모자를 쓰고 ‘내 집에서 나가’라고 소리칩니다. 이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습니까.”

이 말을 듣고 있던 할머니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집안의 내력을 이야기해줬다.

“이곳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 군부대가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군인과 ‘깔깔깔’거리며 웃는 여자아이가 사귀었다. 그런데 군인은 제대하고 소식을 끊었다. 이 여자는 그 뒤 미쳤고, 매일 치마를 치켜들고 깔깔거리며 돌아다니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그 뒤 팔짱을 낀 사내의 부인이 집을 나가버렸고, 남편은 매일 술을 먹고 돌아다녔다. 그 와중에 집에서 불이 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팔짱을 끼고 다녔던 남자는 장례를 치를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양말과 버선도 마련해주지 못했다. 그걸 비관하면서 매일 술을 먹고 다니다가 길거리에서 음독자살했다.”

이 말을 듣고 누이는 그 집 식구들의 이름을 다 얘기해달라고 부탁해 그 다음날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누이는 ‘천수경’을 읽어주면서 제사를 지냈고, 마당에 있었던 옷가지들을 모아 다 태웠다. 그런데도 그 날 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또 누이의 꿈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공중부양한 자세로 자신들의 맨발만 비춰주고 사라졌다고 한다.

다음날 누이는 어제 제사 때 할머니, 할아버지의 양말과 버선을 챙겨주지 못했다고 생각해냈고, 다시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 날 밤, 그간 ‘악몽’의 등장인물들이 누이의 꿈에 등장했다. 이들은 까만 항공모함 같은 큰배를 타고 있었으며, 누이를 보면서 떠나갔다.

그 다음날부터 누이는 ‘악몽’을 꾸지 않았다.

김기남 회사원 minifat@hanmail.net
2003/07/01 00:00 200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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