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설사 있다하더라도 그 대답은 죽은 후에나 확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 가는 과정이다.

나는 ‘밝은 별’이라고 외치며 살아온 지 2∼3년이 됐다. 나를 비추는 수많은 사랑의 눈빛이 나를 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 안의 욕심과 열등감, 죄의식, 교만으로 검은 별이 될 때도 있지만 나는 수많은 사랑의 눈빛으로 인해 밝은 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갑작스럽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이유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만이라도 잠시 시간을 붙잡고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을 말이다.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사람은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닌가.

“자! 밝은 별의 수다가 시작됐습니다. 의견 있으시면 연락주세요. 웃고 있는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늘이라구요? 한강이라구요? 나무라구요? 아니 꿈꾸는 소녀라구요? 검은 별이라구요? 아니 예쁜 별 같은데. 누군가 내게 얘기해준 적이 있습니다. 사람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져 간다고 말입니다.”

서두가 너무 긴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밝은 별인 나의 작은 일상이다. 어려서부터 말이 많다고, 웃음이 헤프다고 핀잔을 많이 듣던 내가 오늘은 왠지 나와 비슷한 멋진 친구를 만날 것 같다. 아니, 나를 격려해주고 장점은 크게 단점은 작게 만들어 줄 좋은 누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여성학자이면서 방송인, 강사, 베스트셀러작가로 맹활약하고 있는 오한숙희 씨를 만나기 때문이다.

비 오는 아침, 김포 고촌마을

비 오는 아침. 황지희 기자와 함께 부지런히 경기도 김포 고촌마을을 찾았다. 길눈이 어두워 헤매고 헤매다 뒤늦게 찾은 오한숙희 씨 집. 황토빛이 주변 풍경과 무척 잘 어울리는 전원주택이다. 그의 어머니와 작은언니도 함께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는 만나자마자 분주하다. 나와 인터뷰하는 것을 찍기 위해 캠코더를 준비하고 2층 방으로 올라가더니 『부부 살어 말어』와 『아줌마 밥 먹구 가』를 가지고 내려와 사인부터 해준다. 다르게 표현해볼까. 우리의 만남을 축제로 만드는 느낌이었다. 아주 소중하게, 가벼우면서 재미있게, 소풍 가서 사진 찍는 느낌으로 인터뷰의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사인한 책을 주며 책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준다.

“결국 무언가를 제시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도구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책을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삶의 무게와 깊이만큼 받아들이는구나. 그렇다면 이걸 내놓은 것은 내가 내놓은 것이 아니라 ‘나’라는 도구를 통해 여기에 놓여진 것뿐이구나. 최근에는 책을 낸다는 것은 하나의 발언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요. 그래서 나에게 책을 내는 것은 하나의 운동이죠. 책에서 말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사람들의 관계가 변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기왕 하는 운동이면 좀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책 홍보도 열심히 하고 다니죠.”

우리 가족은 똑같이 6분의 1이다

그의 유년시절 정서의 배경은 인천 변두리였다. 1966년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는 불과 1Km. 올챙이가 가득한 논길을 따라 매일 아침 학교에 갔다. 하루는 등교 길에 본 올챙이가 너무 예뻐서 잠시 장난을 치다가 학교에 갔더니 벌써 마치는 시간이었다는 일화도 들려줬다. 당시는 학교에서 커다란 빵을 나눠주곤 했었는데 자신과 빵을 나눠먹던 일명 ‘빵짝’이 가난한 고아였지만 항상 그에게 더 많은 빵을 나눠줘서 잊혀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그의 아버지는 식민지 시절에 영문학을 전공하고 인권과 인간해방에 관심이 많았던 교사였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두 언니, 오빠, 그리고 그. 이렇게 여섯 식구였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께서 항상 하셨던 말씀 중의 하나가 ‘우리 가족은 똑같이 6분의 1이다. 6분의 1이 썩으면 나머지도 다 썩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똑같이 6분의 1이다’입니다. 연령이나 성별에서 차이가 없으셨어요. 어려서부터 정치의식도 심어 주셨죠.”

대학에 입학할 때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영문학을 선택했지만 우연히 사회학 강의를 듣고 전공을 바꿨다.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은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그때 오한숙희 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의 그 심정을 그는 ‘아수라 백작’ 같았다고 했다. 고졸 여사원과 대졸 여사원 사이에서, 대졸 여성과 대졸 남성사원과의 관계에서, 한 쪽은 특혜를 받으며 한 쪽은 남녀차별을 받게 되면서 자신의 이중성에 갈등하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것이 후에 여성학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갈등하던 찰나 우연히 이화여대 대학원에 여성학과정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미련 없이 직장을 포기하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러나 쉽지만은 않았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원을 몇 번이나 휴학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했었다.

“저는 제가 천출이라는 표현을 자주 써요. 대중적이고 서민적인 곳에서 자라났고 지금도 그곳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죠. 덕분에 대중들이 실제 겪고 있는 문제를 누구보다 예민하게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요”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낮은 곳에 머무는 자들에게 건네지는 축복의 증거를 확인한다.

대학원에서 오한숙희 씨의 삶은 자기 인생에 있어서 화산의 폭발기와 같다. 사회생활을 통해 많은 경험과 고민, 방황을 겪었던 선배들과의 수업시간은 그 자체가 눈물바다였고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여성학과에 가서 제 인생이 이거구나. 내가 걸어온 길이 바로 여기였다는 것을 알았어요. 목표 지점을 발견한 거죠. 내가 왜 여대를 오려했고 왜 사회학을 했고 왜 직장생활을 못 견딘 걸까 생각하던 것에 대한 의문이 풀린 거예요.”

궁금증이 생겼다. 남성학과는 없나. 사회적 편견과 독선에 맞서 자신의 소신을 펼쳐온 여성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여성들의 올바른 자아 확립 없이는 남성의 존재 의미도 불완전 그 자체이기 때문이며 여성의 자아 확립은 남성의 자아 확립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성학은 부부가 변해야

신문에 썼던 짧은 글들을 모아 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그래 수다로 풀자』가 광고도 별로 없이 10만 권이 넘게 팔렸다. 몇 년 후 현장에서 여성학 강의를 하며 얻은 것을 쓴 『너무 아까운 여자』 또한 10만 권이 넘게 팔렸다. 출판사 선배에게 이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하려고 가는 도중에 지금 사는 김포 고촌마을의 집을 만나게 된다. 필연이었나 보다. 보자마자 맘에 끌린 그 집을 무리해서 샀다. 게다가 IMF까지 겹쳐 융자받은 이자는 오르고 강의마저 줄어 예전에 어려운 시절을 다시 겪게 됐다.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작가로 여유 있는 생활을 했을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정말 해야 할 일은 강의나 방송, 집필로 나만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같은 지역에 살고 있는 김포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이때 탄생한 단체가 바로 ‘김포여성민우회’다. 그는 5년 동안 그 단체를 이끌며 운동에 있어 여성 대다수의 정서도 알게 됐고, 왜 아줌마들을 조직하기가 어려운지, 각개약진 하자던 아줌마들이 왜 각개격파 되는지 실제로 경험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한숙희 씨가 주목한 것은 부부다. 여성학은 부부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김포여성민우회에서 진행했던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부부대화법’에서도 남편들의 반응이 더 뜨거웠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면서 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여성운동가에서 부부운동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죠.”

이렇게 부부운동가로서 생활하는 그녀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다리’라고 표현했다. 돈벌이는 자신이 하고 살림은 어머니와 언니가 하기 때문에 자신은 남편 같고 어머니와 언니는 아내 같다고 한다. 또한 자신은 여자이기 때문에 일반 남편과는 달라서 아내들의 입장도 잘 알고 이해한다고 했다.

그녀에게는 두 딸이 있다. 큰딸은 중학교에 다니고 있고 둘째는 특수학교에 다닌다. 발달장애를 가졌기 때문이다.

“둘째 딸을 낳고 보니 사람들이 또 딸이냐고 한마디씩 하더군요. 그래서, 화가 나서 사람들에게 ‘둘째 딸은 처음’이라고 받아쳤죠.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를 성별로 묶어 도매금으로 넘기는 것, 그거 인권침해예요. 그래서 일부러 이름도 크게 지었어요. 둘째 딸 이름은 ‘바랄’ 희, ‘대통령’ 령. 사람들이 둘째 딸에 대해 많이 물어요. 뱃속에 있을 때 뭘 먹었나, 어떤 충격을 준 것은 아닌가 등. 큰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묻지 않는 그런 질문들을 하죠. 저는 두 딸을 똑같이 사랑해서 낳았고 똑같이 키우고 있어요. 두 딸을 똑같이 키우지만 좀 다른 면은 있어요. 우리 집은 둘째 딸 때문에 커튼이 없거든요. 이 녀석이 문을 닫으면 잠을 못 자요. (웃음)”

한국사회에는 희령이가 본받을만한 삶의 모델이 없어서 고민하다 딸이 자라서 여성 대통령이 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그. 실은 나에게도 예쁜 딸이 있다. 여성 대통령 후보로 우리 딸들이 진출해 끝내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를 꿈꿔본다.

음식은 관계다

(자! 잠깐만 여러분! 혹시 식사하셨나요? 우리의 대화가 꽃을 피워가는 동안 줄곧 옆에서는 오한숙희 씨의 어머니와 작은 언니께서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답니다. 침흘리지 마시고요. 혹시 식사를 거르셨다면 잠시 『참여사회』를 덮으셔도 좋습니다. 『참여사회』보다 당신의 건강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한숙희 씨는 “음식은 관계다”라며 상위의 반찬들을 하나씩 하나씩 설명한다. 전주에서 강의 갔다가 받은 남해산 멸치, 강원도의 큰언니가 직접 기른 유전자 변형이 안된 콩. 동네에서 나는 돌미나리, 청정 시범지역에서 품평회 해달라고 보내온 맛깔스러운 장, 제주도에서 올라온 젓갈, 방금 앞마당에서 따온 싱싱한 상추, 누룽지까지. 식사를 하며 벽에 걸려있는 신윤복 님의 글이 오한숙희 씨네의 가훈이란다.

‘열린 대문 너른 마당 두레상 한솥밥’

올 가을에는 『그래 수다로 풀자 2』가 나온다.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때에는 남자들의 수다를 넣을 예정이라고 하기에 수다 떠는 남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너무 중요해요. 수다는 나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다 나를 빼고 얘기하거든요. 그게 문제예요. 주관성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그걸 인정하려들지 않지만 소통의 시작은 주관성이죠. 모든 게 객관적이라면 소통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러면 자기 얘기를 해야죠. 자신의 경험세계를 주관성으로 착각하면 안 돼요. 그래서 불경에 그런 게 나오잖아요. ‘여시야문’ 내가 이렇게 들었다. 얼마나 겸손한 말이에요. 이게 맞느냐, 저게 맞느냐가 아니잖아요. 나는 왜 여러 사람이 같이 해야 되나. 왜 의논이 중요한가를 늘 생각해요. IQ 140보다 IQ 70짜리 둘이 모인 게 나아요. 왜냐면 사람 하나하나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거죠. 내가 아무리 완벽해도 나는 조금밖에 못 보는 거예요. 중국무술영화를 보면 둘이 등대고 있으면 이게 360도 방어가 되잖아요. 사람은 항상 등이 위험한 거예요. 자기는 절대 보지 못하는 게 있죠. 그걸 생각하게 해주는 중국무술영화가 좋아요. 저는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물어봐요.”

오한숙희 씨의 이런 사고방식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듯하다. 오한숙희 씨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그의 생각이 무엇인지 말하게 하는 훈련을 시켰다.

“아버지는 항상 내 생각이 무엇인지 물었어요. 우리는 무엇인가 의견을 얘기할 때 자신의 생각이 맞는 지 틀린 지 고민하고 남들 생각이 무엇인지 눈치를 보죠. 남들이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볼까 따지고요.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눈치보지말고 네가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라고 말했어요. 사람들은 그것을 괴로워해요.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을 피하곤 하죠. 제가 ‘다리’라는 얘기했잖아요. 내가 ‘다리’라고 하는 것은 둘 사이를 통하게 하는 거예요. 소통이거든요. 내가 『부부 살어 말어』라는 책을 낸 것도 부부가 소통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수다로 풀자』라는 책도 수다라는 아주 좋은 소통의 방법이 무시당하면서 사람들이 소통의 통로를 잃고 있기 때문이에요. 정신적인 소통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연대로 나타나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소통과 연대죠. 그 소통과 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구가 밥이라는 거예요.”

그래, 수다가 좋다. 남자들이여! 수다를 회복하자! 나와의 수다. 아내와의 수다. 누구라도 좋다. 가볍게 나의 주관성을 전달해 보자.

끝으로 만약에 대통령이 된다면 꼭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다름이 아닌 ‘주부 사랑방’ 만들기. 아파트단지마다 놀이시설, 경로당이 있는 것처럼 여자들끼리 모여서 동네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는 동네 아줌마 수다방을 만들 것이라고 얘기한다. 무게감 느껴지는 토론 공화국보다는 수다 공화국을 만들자고 제안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말문이 트이는것,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좋은 수다쟁이를 만나서인지 귀가 개운해졌다. 끝없이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처럼 그녀의 수다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영혼의 언어를 적신다. 나는 지금 인도네시아에서 이 글을 쓴다. 떠나기 전날 만난 그의 웃음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잠시 나의 일상을 뒤돌아본다. 가볍고 톡톡 튀며 재치가 느껴지는 대화가 내겐 너무도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하루하루 작게 시작하자. 그렇게 나누자. 속삭이자. 밥을 나누며 우리는 소통을 했다. 작지만 새로운 연대감이 생겼다. 나는 누구와 밥을 나누어야 하는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내 안에서 시끄럽다. 그동안 나는 나의 수다마저 짓밟고 살아왔다. 들어보자.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를. 별, 별. 밝은 별… 곧 죽어도 밝은 별….



당신을 만나

새롭게 새롭게

나의

입을 열어 노래할 수 있어요

입을 열어 칭찬할 수 있어요

입을 열어 사랑을 전할 수 있어요

입을 열어 기쁨을 전할 수 있어요

입을 열어 감사할 수 있어요

입을 열어 평안을 줄 수 있어요

입을 열어 용기를 줄 수 있어요

입을 열어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어요

박태희 2003.6.18


윤도현밴드 베이스 박태희
2003/07/01 00:00 2003/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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