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아줌마의 초보 농사꾼 되기
2003/2003년 07월 :
2003/07/01 00:00
아∼ "두서없는" 내 밭이여!
멋모르고 시작했다가 낭패를 본 일이 있는가. 본지는 이번 호부터 "멋모르고 ○○하기"라는 코너를 새로 시작한다. 이번 호는 "멋모르고 농사짓기". 도시 아줌마가 멋모르고 농사짓기에 나섰다. 어린 시절 자연과 더불어 보낸 기억을 되살려 여섯 살바기 아들에게 "자연과 사는 법"을 가르치겠다는 포부로 10평짜리 밭을 빌린 것. "아름다운 농사;를 기대한 그녀의 밭에 한달 사이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는데…. 편집자 주
내 고향은 부산이다. 말이 부산이지 40분 넘도록 걸어야했던 초등학교 가는 길은 온통 논두렁과 밭두렁인 변두리였다. 우리 집도 내가 여섯 살 때까지는 농사를 지었다. 그런 내게 아직도 영화를 보듯 훤히 기억나는 추억이 있다. 바로 추수하던 가을날의 풍경이다. 어른들은 논에서 베어낸 누런 벼를 널찍한 우리 집 마당에 잔뜩 쌓아놓고 탈곡기를 발로 구르며 낱알을 훑어냈다. 어른들이 탈곡을 하고 남은 짚단을 뒤로 던지면 아이들은 이 짚단을 하나씩 주워 들고 뒷마당으로 들고 가 쌓아놓는 일을 했다. 아이들에게는 이 일이 아주 신났다. 짚단을 가지고 가서는 푹신한 이불에 넘어지듯 한번씩 짚더미에 풀썩 누워보는 재미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곱 살이 되면서 우리 집은 논밭을 모두 팔고 집도 새로 지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할머니를 위해서인지 뒤뜰에 넓은 채마밭을 만들어 두셨고, 그 공간에 할머니는 온갖 푸성귀를 키우셨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채마밭에 가서 호박꽃을 따 소꿉놀이도 하고 열매도 따먹었다. 나는 그렇게 자연과 함께 자랐다. 그러나 우리 동네는 어느덧 급속한 도시화의 물결을 탔고 채마밭은 콘크리트로 뒤덮여 버렸다.
농사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은 대학시절 강원도로 농촌활동을 가서 고추밭과 감자밭의 김을 매던 일이다. 그 후 지금껏 20여 년 동안 농사는 나의 기억 속에서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올해 초 아련한 추억 속에만 있던 농사를 직접 지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우연히 ‘서울시가 주말농장을 임대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나서였다. 여섯살바기 아들 녀석에게도 내 어린 시절처럼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망설이지 않고 당장 10평을 분양 받았다.
잡초조차 없는 밭
4월 첫주, 드디어 농장이 문을 열었다.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가. 그러나 나와 남편은 일이 너무 바빠 농장을 찾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나자 조바심이 생겼다. 더 이상 미루면 파종 시기가 너무 늦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시어머니, 아들은 나보다 먼저 4월 넷째 주에 우리 밭에 찾아갔다. 그날 저녁 시어머니와 남편은 너무나 즐거워하면서 아이가 소풍날짜를 기다리듯이 다음 주말을 손꼽았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심은 이야기, 아름다운 주변경관과 꿀맛 도시락까지 얘기의 소재도 무궁무진했다.
고대하던 5월 첫주. 우린 아침 일찍부터 호미와 모종삽, 그리고 먹을 것을 챙겨 밭으로 향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북한강 바로 옆에 있는 밭에 ‘농사를 짓게 되다니’ 정녕 꿈만 같았다. 그러나 막상 우리 밭을 본 나는 실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언뜻 보기엔 흙만 잔뜩 있는 맨 땅이었기 때문이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니 새끼손톱 만한 싹이 조금씩 올망졸망 올라와 있을 뿐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잡초도 보이지 않았다. 밭에 물 한번 주고 거름 한번 덮은 뒤 가져간 도시락만 까먹고 2시간도 안돼 집으로 와버렸다.
그리고 2주가 지났다. 며칠 동안 비가 땅을 흠뻑 적시지 않아 아마 조그맣던 새싹이 모두 타죽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린 “고추 모종에 지지대를 세워야 한다”고 걱정하시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침 일찍 밭으로 갔다. 피곤한 마음에 물이나 좀 뿌려주고 와서 밀린 집안 일이나 해야지 생각했다. 남들은 우리보다 먼저 밭에 도착해서 상추 같은 ‘수확물’을 거두고 있었다. 우리 식구들은 마냥 그들을 부러워했다. 푸른 밭을 가꾼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있었지만, 우리는 어느 세월에…라면서 혀를 끌끌 찼고, 이번에도 그냥 물만 주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빈 틈 하나 없이 꽉 들어차 있는 야채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남편이름이 새겨진 팻말을 보면 분명 우리 밭인데, 그 땅에 빈 틈 하나 없이 꽉 들어찬 상추, 아욱, 쑥갓, 열무, 배추, 고추들! 우리는 말 그대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시커먼 흙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우리 밭이 어느새 남들의 밭처럼 무성한 채소들로 가득 찬 것이다.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여섯 살바기 아들은 자기가 씨앗을 뿌려 상추랑 쑥갓이 나왔다며 탄성을 질렀고, 나는 농사짓는 재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면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 풍광의 아름다움에 반해 넋 놓고 있는 사이, 시어머니는 상추부터 솎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파종하는 날, 여섯 살바기 아들이 여기저기 씨앗을 흘리고 다니는 바람에 시어머니와 남편은 어디에 무슨 씨앗을 뿌렸는지 기억조차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채소들이 어떤 곳에는 너무 빽빽하게 자랐고, 여러 채소가 한 군데에 뒤엉켜 자라고 있기도 했다. 농사에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심은 밭은 골을 따라 푸성귀들이 가지런히 자라고 있었지만, 우리 밭은 ‘두서없음’ 그 자체였다.
나는 시어머니의 코치를 받아 상추를 솎아냈다. 일은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다. 아들 녀석은 개미떼가 살아 있는 애벌레를 운반하는 광경을 목격하고는 무서웠던지 제 아빠 다리에서 좀체 떨어지지 않았다. 남편은 이런 아들에 얽매여 정작 밭일을 못했다. 결국 시어머니와 내가 둘이서 일을 해야 했으나 일이 서툰 나는 제자리걸음만 했고, 거의 모든 일을 시어머니 혼자 한 셈이 됐다. 어찌나 미안하던지….
원래 밭에서 물이나 주고, 서울에 올라와 이런저런 일을 하기로 했으나 다 미뤄졌다. 우선 싱싱한 야채에 곁들여 고기를 굽기로 했다. 우린 고기보다 야채가 더 먹고 싶었던 것이다. 방금 뽑아낸 상추와 쑥갓에 고기를 쌌다. 꿀맛이었다. 점심을 먹고, 오후 5시까지 솎아낸 상추와 온갖 푸성귀들은 종이상자 두 개와 비닐봉지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래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았다.
밭에서 돌아온 시각은 저녁쯤. 벌써 서울은 어둠이 짙었다. 시어머니는 오늘 딴 푸성귀는 싱싱할 때 먹어야 한다면서 우리가 먹을 것만 남기고 모두 이웃에게 돌렸다. 다음날 이웃집에서 고맙다는 인사로 음료수를 한 병씩 가져오기도 했다. 상추가 너무 맛있어서 식사 중에 고기를 더 사러갔었다는 후문까지 양념으로 들고 온 이웃도 있었다.
모처럼 만의 노동으로 허리가 뻐근하고 채소 잎에 긁혀 팔뚝도 가려웠지만 잠은 잘 잤다. 고단해도 이게 바로 농사짓는 쾌감인 모양이다. 흙과 풀냄새를 맡는 것도 행복이지만 도심에서 직접 농사지은 상추를 나눠 먹는다는 건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나는 정말 멋모르고 농사짓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벌써 내년이 기다려진다. 내년엔 좀 ‘두서있게’ 지어보련다. 자, 지금부터 원하는 작물 있으면 신청하시라. 나눠 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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