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문
2003/2003년 07월 :
2003/07/01 00:00
내가 ‘영업’을 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련한 추억 속의 대학동아리 모임에 나오라고 연락한 선배는 다들 ‘직장’에 잘 다니고 있다며 ‘15년만의 회동’을 제안했다. 15년 동안 연락 한번 안한 것도 ‘영업’인지 모르겠지만, 난 선배들이 어떤 ‘직장인’으로 변했을까 궁금했다.
그들은 족히 5∼10kg 정도 몸무게가 늘어나 있었다. 연신 울려대는 휴대폰과 PDA를 번쩍이며 차를 몰고 나타났다. 다들 여전히 정겨운 얼굴들이다. 한 순배, 두 순배 술잔이 돌자 가슴에 묻어두었던 대학시절 이야기들이 좔좔 흘러나왔다.
15년 간 얼굴을 못 본 사이 선배들은 직장도 얻었고, 결혼도 했다. 아이도 둘씩이나 얻은 선배도 있었다. 선배들은 ‘호의’로 내 생활과 안부를 물었다.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15년 만에 만난 후배의 안녕이 궁금했던 것일까?
한 달 전 어떤 돌잔치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와 동행한 친구가 우연히 예전에 다니던 직장동료를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아니, 결혼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애가 없는 거야?” 내 친구는 우물쭈물하며 “요즘 뭐 애 없는 부부도 많은데…”라며 얼버무렸다.
“무슨 소리야, 빨리 하나 낳아서 잔치해야지.”
난 내 친구가 아이 없이 살고 싶어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섰다.
“만약 못 낳는 거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질문을 아무렇게나 해요?”
우회적이었지만 난 남 일에는 이렇게 용감하다.
지난 2월 세계적으로 반전시위가 벌어졌을 때, 나는 어찌 어찌하여 150만 명이 모였다는 런던의 시위대 안에 있었다. 반전시위에 나오는 히피풍 젊은이들이 궁금했는데 잘됐다. 한 친구는 그 모습이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 했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이 되지 않는 젊은이들이 점차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결국 주류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포기하는 데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 주류사회의 가치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그들만의 공동체와 가치를 구축하고 활동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대체로 환경마인드가 강한 이들은 엄격한 채식주의자이고 평화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 급진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유럽에는 이 비주류적 혹은 대안적 생활방식이 가능한 인프라가 있다. 갈수록 팍팍해져 간다고는 하지만 사회복지시스템이 아직은 버티고 있고, 사회적 실현과는 다른 문제지만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지표다.
‘애들 교육비 땜에 이 눔의 직장 때려치지도 못하고, 접대하느라 정말 싫은데 폭탄주를 마신다고, 주식 땜에 머리가 아파죽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술을 안 마시거나 채식을 하고, 머리 아플까봐 주식 안하고, 대안학교에 애들 보내거나, 혹은 혼자 살거나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해한다. 나와 다른 남은 눈뜨고 못 보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다. 남이야 어떻든 내 기준에 맞아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나는 그게 참 싫다. ‘내 멋대로 살아’도 흉보거나 책잡지 않는 사회는 요원한 걸까. 다르게 사는 삶을 인정하는 문화, 그야말로 똘레랑스의 시작 아닌가.
그들은 족히 5∼10kg 정도 몸무게가 늘어나 있었다. 연신 울려대는 휴대폰과 PDA를 번쩍이며 차를 몰고 나타났다. 다들 여전히 정겨운 얼굴들이다. 한 순배, 두 순배 술잔이 돌자 가슴에 묻어두었던 대학시절 이야기들이 좔좔 흘러나왔다.
15년 간 얼굴을 못 본 사이 선배들은 직장도 얻었고, 결혼도 했다. 아이도 둘씩이나 얻은 선배도 있었다. 선배들은 ‘호의’로 내 생활과 안부를 물었다.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15년 만에 만난 후배의 안녕이 궁금했던 것일까?
한 달 전 어떤 돌잔치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와 동행한 친구가 우연히 예전에 다니던 직장동료를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아니, 결혼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애가 없는 거야?” 내 친구는 우물쭈물하며 “요즘 뭐 애 없는 부부도 많은데…”라며 얼버무렸다.
“무슨 소리야, 빨리 하나 낳아서 잔치해야지.”
난 내 친구가 아이 없이 살고 싶어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나섰다.
“만약 못 낳는 거라면 어떻게 하려고 그런 질문을 아무렇게나 해요?”
우회적이었지만 난 남 일에는 이렇게 용감하다.
지난 2월 세계적으로 반전시위가 벌어졌을 때, 나는 어찌 어찌하여 150만 명이 모였다는 런던의 시위대 안에 있었다. 반전시위에 나오는 히피풍 젊은이들이 궁금했는데 잘됐다. 한 친구는 그 모습이 ‘신자유주의’의 산물이라 했다. 대학을 나오고도 취직이 되지 않는 젊은이들이 점차로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고 결국 주류질서에 편입되는 것을 포기하는 데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 주류사회의 가치에 염증을 느낀 이들이 그들만의 공동체와 가치를 구축하고 활동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대체로 환경마인드가 강한 이들은 엄격한 채식주의자이고 평화주의자이며 정치적으로 급진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유럽에는 이 비주류적 혹은 대안적 생활방식이 가능한 인프라가 있다. 갈수록 팍팍해져 간다고는 하지만 사회복지시스템이 아직은 버티고 있고, 사회적 실현과는 다른 문제지만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지표다.
‘애들 교육비 땜에 이 눔의 직장 때려치지도 못하고, 접대하느라 정말 싫은데 폭탄주를 마신다고, 주식 땜에 머리가 아파죽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술을 안 마시거나 채식을 하고, 머리 아플까봐 주식 안하고, 대안학교에 애들 보내거나, 혹은 혼자 살거나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사람들을 보면 불편해한다. 나와 다른 남은 눈뜨고 못 보는 것이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풍토다. 남이야 어떻든 내 기준에 맞아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나는 그게 참 싫다. ‘내 멋대로 살아’도 흉보거나 책잡지 않는 사회는 요원한 걸까. 다르게 사는 삶을 인정하는 문화, 그야말로 똘레랑스의 시작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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