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시민단체들로 본 한국시민사회 보수-진보구도
2003/2003년 08월 :
2003/08/01 00:00
보수언론 등에 업고 진보언론 타격
시민단체라면 무조건 진보적이라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한다. 시민사회의 이념적 분화는 이미 본격화되었으며, 지금은 그 이념에 근거한 개별 단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단계이다. 한국시민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것인가. 아니면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에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진영의 적극적 공세인가. 편집자 주
최근 한국시민사회에 ‘안티’ 바람이 불고 있다. 교육분야가 대표적이다. NEIS 파동 등 교육분야는 참여정부 출범 이후 가장 큰 혼란을 겪었던 영역인 만큼, 이 과정에서 여러 교육관련 단체들이 만들어졌다. 일례로 아예 ‘안티 전교조’를 표방하고 나선 ‘교육공동체시민연합’과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을 들 수 있다.
강영훈, 현승종, 정원식 전 국무총리 등이 발기해 지난 6월 출범한 ‘교육공동체시민연합’은 이상주 전 교육부총리와 고학용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등을 공동대표로 뽑고 본격적인 전교조 비판에 돌입했다. 이상주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이 광복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여기에는 교육공동체를 붕괴시킨 전교조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경우 국민의 정부 마지막 교육부 장관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장관직을 내려놓자마자 특정 교원단체를 상대로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전교조에 대한 그의 감정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충북도교육청 강연회에서 이상주 대표는 “전교조가 겉으로는 참교육과 교육 민주화를 내세우면서 보신주의와 이기적인 권위주의에 사로잡혀 각종 교육 현안마다 반대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특히 “전교조가 6·25, 북한, 미국 등에 대해 편향된 이념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사회적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높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아예 “지역별로 모니터링제 등을 운영해 전교조의 잘못된 활동을 감시하고 건전한 여론조성으로 전교조를 변화시키겠다”고 해, 한 단체에 대한 안티활동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시민단체가 그들의 의도처럼 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 데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러한 상황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하기조차 어렵던 일이었다. 일개 노조를 비판하기 위해 전직 총리 및 부총리들까지 다수 참여해 단체를 만들고 지역 활동까지 펼치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랜 군사독재 기간을 거친 한국사회에서 진보진영은 늘 소수였으며, 수구적 보수진영이 늘 주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럼 이제는 달라졌단 말인가. 한국 시민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확장되고 다원화해 가는 징조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진보단체에 대한 대항적 성격 강해
2년 전이었다. ‘민주참여네티즌연대’라는 시민단체가 참여연대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인 일이 있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다는 ‘민주참여네티즌연대’는 ‘안티 참여연대’를 표방했다. 이들은 “참여연대는 시민운동의 외피를 벗고 사회주의자의 본질을 드러내라”고 주장했다. 재미있는 점은 ‘안티’를 주장하는 단체명이 ‘참여연대’의 원래 이름인 ‘참여민주시민연대’와 거의 흡사하다는 점이다. ‘참여’와 ‘민주’의 순서만 바꾸고 ‘시민’을 ‘네티즌’으로 바꿈으로써 성격이 정반대인 단체가 탄생한 것이다.
이렇듯 최근 연달아 결성되고 있는 보수적 시민단체들의 경향성 중 하나는 단체 결성 목적이 자신들의 보수적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진보·개혁적인 단체들에 대한 대항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들 단체들이 조직적 연대를 시도하고 있다는 것도 예전과는 다른 점이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3월 1일 집회를 통해 드러났다. 진보진영의 평화대회에 맞서 보수진영은 ‘반핵반김 자유통일 3·1절 국민대회’를 열었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 흐름은 계속 이어져 지난 6월에는 110여 개 보수단체가 집결한 ‘반핵반김 한미동맹 강화 6·25 국민대회’를 만들어냈다. 저항의 수단이었던 집회와 시위가 더 이상 진보진영만의 상징이 아닌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시민사회의 다원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최근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보수단체들이 과연 시민단체의 기본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자발성과 자생성에 근거한 것인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특히 최근에 만들어진 또 다른 ‘안티 전교조’ 단체인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의 경우 아예 관변단체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은 “이 단체는 서울시 교육청이 지역 교장단협의회에 공문을 보내 추천 받은 학부모들로 구성한 관변단체적 성격이 강하다. 과거 전교조와 국가가 대립했다면 이제는 보수적 교육단체와 전교조가 대립하는 양상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심성보 부산교육대 교수 또한 ‘새로운 교육운동단체의 등장과 올바른 교육운동의 방향’이라는 토론회에서 “교육분야에 등장한 두 보수단체가 그들의 주장처럼 조정역할을 하기보다는 갈등을 부추기는 세력으로 활동하는 면이 강하다”고 지적하고, “보수, 중도, 진보로 이념적 분화를 보이는 상황에서 각 교육운동단체는 ‘무엇을 위해 공존해야 하는가’하는 공공선의 가치를 좀더 명확하게 해야 하고, 참여정부는 보수적 요구와 진보적 요구를 제도화된 틀 내에서 포용하고 조정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여론 생산이 필요했던 보수언론의 지원
보수단체들의 결성과 활동에는 보수언론들이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박영선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시민사회가 다원화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부터 존재했던 보수세력이 보수언론을 통해 부각되는 상황일 뿐”이라고 진단했다. 기존의 대표적인 시민단체들이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 증권집단소송제 도입, 반전평화 실현 등’ 점점 진보적 면모를 강화해 가자, 보수언론들로서는 이들 단체들에 대항할 ‘보수적 여론’을 생산해 줄 시민단체가 필요했다는 해석이다.
보수언론을 등에 업고 보수적 시민단체가 뜨고 있다는 이러한 지적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실제로 ‘민주참여네티즌연대’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보수주의를 표방하고 최근 창간한 인터넷매체 『독립신문』 그 자체라는 걸 알 수 있다. 단지 제호만 ‘민주참여네티즌연대’일 뿐이다. 『독립신문』 또한 『조선일보』와 조갑제 기자가 생산하는 기사들이 주요 컨텐츠를 이룬다. 사이트 위아래에 ‘조선일보 1부 더 보기’ 배너가 달려 있을 뿐 아니라, 『월간조선』 기사에 대한 반향이 또 다시 기사화 된다. 독립적인 언론이자 개별 단체의 홈페이지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이다.
자생적·자발적이지 못한 보수단체들의 등장에 대해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보수세력이 진보진영에 대한 적극적 공세에 나선 것으로 해석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의 보수세력은 ‘잃어버린 5년(DJ정부)’에 대한 좌절과 ‘잃어버릴 5년(노무현정부)’에 대한 절망으로 강한 방어기재가 작동했다. 보수세력의 능동화가 시작된 것이다. 즉 기득권적 주류였던 보수세력들이 권력을 상실해 비주류로 전락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자기권력을 방어하려고 나선 것이다.”
조 교수는 이어 “개혁을 표방한 참여정부에 대해 정권초기부터 능동적인 비판활동을 시작한 보수언론을 포함해 보수세력의 능동화는 이미 본격화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개혁적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하고 진보적 사회통합 패러다임을 구축해 갈 것인지가 우리가 당면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한 “보수적 언론에 의한 ‘보수적 해석’과 그것의 국민여론화를 통해 개혁이 동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진보·개혁적인 시민사회 및 지식인 진영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의 말처럼, 시민사회의 자연스런 분화보다는, 자신들에 대한 인위적 대항마 조직의 성격이 강한 최근의 보수단체들 난립에 직면한 진보진영이, 향후 시민사회 안에서 스스로의 열할을 어떻게 자리매김해 나갈 지 점검해 봐야 할 시점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