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에 자유와 해방을!


필자는 지난 7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 2주 동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을 취재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미국 세 정상이 만나 로드맵에 합의한 직후의 팔레스타인. 그러나 평화는 멀게만 보였다. 그의 "팔레스타인 여름해방 캠페인" 참가기를 싣는다. 편집자 주

7월 1일 기자가 도착한 날, 이스라엘군이 철수했고 관광지로 유명하기 때문에 출입이 가장 무난하다는 베들레헴 지역을 드나들 때도 매번 이스라엘군 체크포인트에서 여권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나마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외국인들과 이스라엘인들 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여전히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하는 데에도 허가증이 필요했다. 때문에 기자를 안내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그 허가증을 받지 못해 매번 체크포인트 안쪽에서 우리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구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베들레헴 안에서만 기자와 동행할 수 있었다. 웨스트 뱅크의 툴카렘과 같은 지역에서는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그리고 체크포인트를 지키고 있던 이스라엘군의 “왜 툴카렘에 들어가려고 합니까? 툴카렘에 들어가는 게 무섭지 않습니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당신들을 폭탄 테러할 지도 모르잖아요”라는 황당한 질문을 듣고 서야 2시간만에 간신히 들어갈 수 있었다.

역시 이스라엘군이 철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자지구의 상황은 더 심했다. 간단한 체크포인트만(?) 거치면 들어갈 수 있는 웨스트 뱅크 지역과는 달리 가자지구에 들어간다는 것은 웬만한 국경을 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7월 15일, 가자지구에 들어가려던 기자는 3시간을 그곳에서 기다리며 졸랐지만 결국 가자지구에 들어가지 못했다.

가자지구에 살고 있는 아흔이 훨씬 넘은 병든 아버지를 뵈러 왔다는 미국 국적의 팔레스타인 할머니, 오랜 여행에 지쳐 서있을 기운조차도 없어 보이는 70대의 그 할머니는 기자를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나마 그곳에서 허락을 기다리는 것조차 거부당할까봐 할머니는 이스라엘군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소근거릴 뿐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 길이 있어도 다닐 수 없는 곳. 그곳에서 과연 ‘로드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방어벽? 아파르트헤이트벽?

7월 1일부터 8월 15일까지 6주간, 팔레스타인에서는 국제연대운동(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의 ‘팔레스타인 해방 여름 캠페인(Freedom Summer Campaign)’이 진행 중이다.

미국, 영국, 스페인 등에서 온 외국 평화운동가들과 이스라엘 대학생들은 바로 몇 달 전 국제연대운동단체 소속 미국 대학생 라첼 코리가 목숨을 잃은 이 땅을 올 여름에 다시 찾았다. 그녀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이 땅과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해방 여름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기본 훈련 프로그램(실제로 생명이 걸려있는 일이라 엄청나게 많은 주의사항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을 거쳐간 사람들만 해도 100여 명에 달하며 그 외에도 당일 일정에 맞춰 참가하는 사람들에 등록은 하지 않았어도 함께 하는 사람들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가옥을 파괴하는 이스라엘 불도저를 막다가 불도저에 깔려 목숨을 잃은 라첼 코리 사건으로 드러나듯이 이들의 활동은 쉽지 않다. 항상 실탄을 장전하고 다니는 이스라엘 군인들과 역시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촌 주민들은 자신들의 ‘안보’를 위해 외국인들의 목숨도 개의치 않는다. 이들에게 ‘안보’는 모든 것이 용납되는 만병통치약이다.

구속쯤은 생명의 위협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게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이번 평화 캠페인에 참가하는 이스라엘 대학생들 역시 한번 연행된 정도로는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외국인들의 경우는 ‘강제추방’을 가장 두려워한다. 일단 강제 추방당하면 다시는 이스라엘에 입국할 수 없기 때문에 연행되더라도 추방당하지 않으면 감사해한다.

올 여름, 팔레스타인 해방 여름 캠페인에서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방어벽’이라 부르고 있는 콘크리트 벽 건설 문제다. 이스라엘은 지난해부터 “방어벽”을 건설하고 있는데,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를 “분리한다는 뜻인, 아파르트헤이트 벽”이라 부른다. 이스라엘은 웨스트 뱅크의 주요 도시들을 중심으로 북쪽에서부터 ‘방어벽’을 짓고 있는데, 현재 툴카렘 지역까지 내려와 있다. ‘방어벽’은 지금도 단절된 도로와 이스라엘군의 체크포인트로 뿔뿔이 흩어져 있는 팔레스타인 마을들,‘게토’를 8m 높이의 콘크리트 벽으로 완전히 둘러싸 거대한 감옥으로 만드는 계획에 다름 아니다. 더군다나 ‘방어벽’은 현재 이스라엘이 잠정적 국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그린 라인(Green Line)’보다 팔레스타인 영토 쪽으로 더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심한 곳은 6km까지 팔레스타인 안으로 들어와 있다고 한다. 현재까지 건설되었거나 건설 중인 ‘방어벽’과 ‘그린 라인’ 내에 갇혀버린 팔레스타인 땅과 우물들로 인해 팔레스타인인들이 입는 피해는 엄청나다. 농부들은 방어벽 너머 자신들의 땅에 접근할 수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 그 너머 우물에서 물을 공급받던 사람들과 농작물들은 몇 달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날씨에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그린 라인’과 ‘방어벽’ 사이에 갇혀버린 사람들도 있다. 집이, 마을이 이 공간 안에 포함되어 버린 사람들은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한 채 단절되어 버린다. 벽 사이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 베들레헴 주변에만도 이런 사람들이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총길이 360km에 달하는 ‘방어벽’, 이 벽이 완성되게 되면 웨스트 뱅크의 10분의 1이 이스라엘 영토가 되게 된다. 이 벽은 아파르트헤이트 기능 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무력 침공과 다름 없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 아리엘 샤론 총리가 평화협상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들 것이라고 추측한다. 평화협상이 지연될수록 ‘방어벽’ 건설은 더 진척될 테고 그만큼 이스라엘 영토는 넓어질 테니 말이다. 하지만 ‘방어벽’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혹은 ‘방어벽’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경으로 확정된다면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를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앗 살람 알라이쿰!

7월 12일 토요일. 그 며칠 전 우연히 팔레스타인 웨스트 뱅크 나블루스 부근의 한 작은 마을에서 집회가 예정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과 이 국제연대운동이 함께 준비하는 집회였다.

우리 일행이 들어가려는 마을은 웨스트 뱅크 나블루스 근처의 팔레스타인 마을 아즈무트(Azmut), 살림(Salim), 데어 하툽(Deir Hatub)이었다. 계곡 아래 깊숙이 자리잡은 이 세 마을에 들어가는 길은 단 두 곳. 나블루스에서 가는 길과 산꼭대기에 자리잡은 이스라엘 정착촌, 엘론 모리(Elon Morie)에서 내려가는 길이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이스라엘군은 이 엘론 모리 정착촌에 대한 위협을 차단한다는 이유로 세 마을에 들어가는 길을 모두 봉쇄해 버렸다. 1년 가까이 이 세 마을에는 들어가는 것도, 마을 주민들이 밖으로 나오는 것도 완전히 차단됐다. 살림 마을의 경우, 심지어 학교가 체크포인트 밖에 있어 아이들도, 교사들도 1년 가까이 학교에 가지 못했다.

다른 참가자들이 나눠 탄 미니버스 두 대와 기자의 렌트카가 베이트 포리크(Beit Foriq) 체크포인트에 도착한 시간은 정오 무렵. 기자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이스라엘 군인 한 명이 다가왔다. “당신과 당신 친구들, 지금 뭐하는 거요?” “글쎄요, 친구 만나러 가는데요”. 그 사이, 체크포인트를 ‘합법적으로’ 통과하기는 불가능하겠다고 판단한 참가자들이 갑자기 통행금지쇠줄을 넘어 달려가기 시작한다. 놓칠 새라 얼른 기자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우리 뒤를 쫓아오는 이스라엘 군인들, 지프차들, 탱크들….

몸싸움이 벌어지고 채 50m도 전진하지 못한 채 우리 일행은 발이 묶여 버렸다. 앞뒤로 거대한 탱크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은 후퇴했다.

“알았다. 안 가면 될 것 아니냐”고 투덜거리며 터덜터덜 돌아나와 큰길로 들어선 우리를 여전히 앞뒤로 군용지프차가 따라온다.

“설마, 이대로 후퇴하는 거예요?”

“그럴 리가 있나요. 조금 있다 계곡 오른편으로 내려갈 겁니다.”

오른편을 내려다봤다. 이런, 우리는 지금 산꼭대기를 지나는 도로 한 가운데 있었다. 그 밑으로는 경사가 적어도 45도는 넘어보이는 가파른 비탈길이다. 여길 내려가자고? 더군다나 이곳은 몇 달 전에도 체크포인트를 통과 못한 이 마을 팔레스타인 대학생 한 명이 넘다가 뒤에서 쏜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죽은 곳이 아닌가. 당시 스물두 살의 파디 알로나는 졸업식을 두달 앞둔 대학생으로 학교에 가려다 총에 맞았었다.

“서라, 안 서면 쏜다!”

“갑시다!”

조나단의 한 마디에 모두들 계곡으로 뛰어내려가기 시작한다. 기자도 따라 뛰어내려갔다. 곧 우리 뒤를 쫓아 내려온 이스라엘 군인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라, 안 서면 쏜다!”

머리끝이 쭈뼛 섰다. 이 사람들, 이거 정말 쏠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여기서 죽으면 무슨 개죽음인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순간적으로 머리 속에 수십 가지 생각이 스쳐가는데 조나단이 등을 민다.

“괜찮을 거예요, 갑시다.”

“당신들, 도대체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는 거예요?”

다행히, 정말 다행히 “그냥 보내주라”는 명령이 떨어지면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뒤로 물러나고 조금 숨을 돌린 뒤 계속 올리브 나무 사이로, 험한 바위들 사이로 조심스레 내려가면서 물었다. 조나단이 씩 웃으며 말한다.

“한국에서는 왜 시위를 하죠? 모두가 평화롭게 동등하게 잘 사는 사회를 위해서 아닌가요?

우리도 똑같아요.”

30여 분 넘게 산을 내려가면서 한 명이라도 놓칠세라(뒤로 쳐진다는 것은 곧 연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7월 12일 현재까지 이 여름 캠페인에 참가했다가 연행된 사람만 해도 10여 명이 넘는다) 각자 번호를 붙여 서로 번호를 계속 확인하며 걸었다.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팔레스타인에 자유를!” 구호도 힘차게 외치기도 한다.

일단 마을로 들어서자 일행은 더욱 신이 났다.

집집마다 대문마다, 창문마다 빼곡이 주민들이 매달려 밖을 내다보며 손을 흔든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얼른 숨어버리기로 유명한 수줍은 아랍 여성들도 곧 다시 고개를 내밀고는 웃음을 보낸다. 거대한 감옥에 갇혀 사는 이들에게 자신들과 함께 하기 위해 힘든 길을 지나온 이스라엘 대학생들과 외국 평화활동가들은 정말 소중한 손님이었다.

집회가 예정되어 있던 살림 마을 반대편 끝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우리 일행 뒤로 수십여 명은 넘는 아이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나블루스 쪽에서 출발한 또 다른 수십 여 명의 활동가들과 마을 주민들이 모여 100여 명이 넘는 군중을 이루고 있었지만 집회는 결국 하지 못했다. 군중의 수만큼이나 많은 이스라엘 군인들 덕분이었다.

“저기 보이는 저기가 우리 학교요! 학교 좀 가자는데 왜 못 가게 하는 거요?”

“1년 내내 밭에 가지 못해 먹을 게 없단 말입니다. 우리를 굶겨 죽일 작정인가요?”

“우리가 당신네 정착촌에 무슨 해를 끼쳤다는 겁니까? 우리는 아예 정착촌 근처에 접근도 못하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오히려 우리가 올리브를 수확하려 할 때마다 와서 나무를 베어버리고 우리를 폭행하던 것은 당신네들 아닌가요?”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맥을 잃고 주저앉아 있던 대열에 갑자기 힘이 붙었다.

마을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더니 도로를 벗어나 들판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곧 심한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고 총개머리판으로 찍어눌렀다. 외국인이라고 봐주지도 않았다. 기자 역시 총개머리판에 상당히 많이 얻어맞았다. 총개머리판에 맞는 것은 곤봉으로 맞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아프고 몇 배는 더 공포스럽다. 10여일이 넘게 지나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도 등과 팔에 남아있는 멍자국들은 새로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기자는 양호한 편이다. 조나단은 집회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훨씬 많은 폭력을 당해야 했다. 아예 대여섯 명이 둘러싸고 때리는 바람에 나중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조나단은 곳곳이 찢긴 상처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래도 조나단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툭툭 털고 일어난 다음 마을 주민들이 가져다준 시원한 얼음물을 마시면서 괜찮다며 주위 사람들을 위로한다. 온몸이 쑤실 텐데 다가오는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올려 무등도 태워준다.

앞뒤로 이스라엘 군인에 포위된 상태에서 길바닥 한가운데서 일행은 티파티도 벌였다. 여기 저기에서 마을 주민들이 달콤한 아랍식 홍차를 내오고 사람들은 여전히 먼지가 일고 있는 길바닥에 그냥 주저앉았다. 서로 잔을 부딪치고 서툰 아랍어와 히브리어, 때로는 서툰 영어로 인사를 나누고 평안을 빌었다.

“샬롬(평안을)”

“앗 살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안을)”

“안녕하세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

“참 좋죠? 제 친구들도 이렇게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차를 마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쉽지는 않을 거예요. 이스라엘 사람들, 정말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서워해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아서 그럴 거예요.” 다음날이 시험이라며 텔아비브에서 여기까지 오는 내내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리하드는 친구들과 이런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을 너무 아쉬워 했다.

리하드가 친구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은 부모님과의 외국 생활 덕분이다. 리하드가 어렸던 어느 날 부모님은 리하드를 데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훨씬 자란 다음에야 리하드는 부모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총을 겨눌 수 없다”는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떠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팔레스타인은 우리의 적이다, 모든 아랍이 우리의 적이다’라고교육을 받아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가면 바로 팔레스타인과의 분쟁에,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을 탄압하고 죽이는 현장에 투입되는 거예요. 그렇게 3년 동안, 또 이후로도 22년 동안 매년 30일씩 총을 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겨누다 보면 저절로 미움이 생기는 거죠. 내 바로 이웃에서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너무나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외국에 나가서야 알았으니까요.”

그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 미국과 영국과 스페인과 그리고 우리나라가 함께 한 티파티는 오후 6시경에 끝났다. 그리고 몇몇은 다시 텔아비브로, 또 몇몇은 걸어서 나블루스까지 가겠다며 떠났다. 저 멀리 나블루스로 통하는 체크포인트에서 또 발길이 막혀 싸우고 있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앞으로 서너 시간은 더 걸어야 나블루스에 도착할 이들이 너무 오래 막혀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발걸음을 돌린다.

언제쯤이나 되어야 모두가 함께 동등하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 되는 날이 올까. 정치, 국가, 종교가 인간의 권리와 인간의 행복보다 우선하지 않는 날은 언제쯤 올까. ‘로드맵’이 안내하는 길의 끝은 과연 이러한 당연함과 행복과 연결되어 있을까.

강은지 (민족21 기자)
2003/08/01 00:00 2003/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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