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세습되고 있다”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그 가운데 여성, 아동, 노인, 청소년들은 곱절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이 겪는 빈곤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집단은 아무래도 사회복지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빈곤의 현실과 현장에서 고민해 본 대안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일 시 : 2003년 8월 18일

장 소 : 철학마당 느티나무

참석자 : 구세군복지관 유지영 사회복지사, 군포매화복지관 이성준 과장, 방아골복지관 유기훈 재가복지팀장, 양지자활후견기관 임남희 실장

사 회 : 황지희 본지 기자

사회자: 현재 빈곤에 관련해 사회복지 현장의 화두는 무엇인가.

유기훈 (이하 유기): 복지예산현실화가 문제다. 실제 복지관 예산의 1/3밖에 지원해 주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2/3에 대해서는 법인과 복지관이 알아서 사업비를 마련해야 한다. 복지사업도 병행해야 하므로 사업비 마련을 위한 업무 부담 때문에 사업을 좀더 전문화하는 데 투입할 시간과 에너지를 뺏기게 된다. 결국 그 피해는 양질의 복지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지역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임남희 (이하 임) : 후견기관제도가 생긴 지 2년이 지나고 있다. 시행과정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수정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저소득층의 근로의욕을 어떻게 고취할 것인가도 문제다. 후견기관의 경우 수급자들이 훈련을 받은 후 시장에 진입해 스스로 자활하는 것이 가능한가 등을 고민하고 있다.

이성준 (이하 이) : 저소득층의 자살문제나 차상위계층에 대한 복지서비스 문제에 관심이 많다. 현재 우리 복지관이 위치한 영구임대아파트는 1340세대가 있는데 그 가운데 500세대가 수급대상 세대다. 지난해부터는 탈북가정 9세대가 영구임대아파트로 들어오면서 특수계층에 대한 서비스 문제도 고민하고 있다.

유지영 (이하 유지) :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서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비자발적이라는 청소년들의 특성상 대상자 발굴에 어려움이 있다. 이 점을 고민하다가 청소년들이 쉽게 복지관을 찾게 하기 위해 복지관 내에 인터넷카페를 운영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이 보다 스스럼 없이 복지관에 접근하고, 그 중 문제를 가진 청소년을 발굴해 다양한 복지프로그램과 연계할 수 있게 되었다.

사회자 : 언론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 빈곤계층의 자살이 많은가?

유지 : 자살과 유사한 사례들이 많다. 청소년들과 상담하면 그의 생활사를 써 본다. 그 중 중학교 1학년인 한 학생의 글이 매우 감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알아보니 아버지의 자살을 목격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또 한 사례의 경우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으로 간경화가 심해진 경우가 있었는데 당시 상태가 ‘술’을 더 마시면 자살하는 것과 다름없는 지경에 이른 상태였다. 복지관과 상담을 하면서 상태가 호전되던 중에 다시 술을 마시고 다음 날 사망했다.

임 : 자살은 아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병을 고치지 못해서 사망하는 경우들이 많다. 부채를 해결하지 못해 살해당한 사례도 있었다. 부채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심장질환으로 사망하기도 한다. 자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여성들의 경우 경제적인 한계상황에 부딪히면 재혼을 많이 고민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도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애인에게 폭행을 당해 시력을 잃은 여성, 남자가 130만 원을 준 게 고마워 카드를 빌려줬다가 전셋집을 날린 여성도 있었다.

차상위계층의 지원이 요구된다

이 : ‘빈곤의 악순환’보다 더 강력한 표현이 필요하다. ‘빈곤의 세습’이라고 해야 한다. 우리 복지관은 아동문제와 관련해서 100여 세대를 관리한다. 그 가정들의 내력을 살펴보면 빈곤은 확실히 세습된다. 가난의 세습도 문제지만 정신적인 세습도 문제다. 우리도 사회교육프로그램을 많이 한다. 문화지체 현상을 없애기 위해 많은 교육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필요한 것은 정신적인 상담이다. 빈곤가정들의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평생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사에 자신감이 없다. 반면 물질적인 서비스는 어떤 점에서 또 다른 악순환을 가져온다. 예를 들어 경로식당을 운영하면 처음에는 100여 명만 오다가 그 다음부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공급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활을 목적으로 한 지원이지만, 클라이언트들은 자기권리라고 생각하며 받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다 예산의 문제 등으로 한계가 생기면 기관의 문제로 전가시킨다.

유기 : IMF 때와 비교해 더 어려워졌다. 우리 복지관이 있는 지역을 보면 ‘한부모 가정’이 많은데 ‘모자 가정’보다 ‘부자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전에는 서로 애들을 키우겠다고 싸웠지만 지금은 그냥 가출해 버린다. ‘조부모 가정’도 많이 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돈을 벌 수 없으니까 시부모나 친정에 맡기고 나가는 거다.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카드문제 또한 빈곤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차상위계층도 이처럼 고통을 겪고 있다. 실제 노인분들 가운데 많은 경우는 자식들의 빚보증으로 카드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있다. 빈곤한 세대와 빈곤하지 않은 세대, 그렇게 둘로 확연하게 나누기 어렵다. 부모들이 스트레스가 증가하면서 자식을 학대하는 경우도 늘었다. 하지만 시설보호가 아닌 다음에야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다. 결국 문제가 곪을 대로 곪고 나서야, 보호시설로 넘겨져 보호받다가 아무런 대책 없이 다시 가정으로 되돌려 보내지거나, 생활시설로 보내진다. 그런 아이들은 그나마 나은 것이고, 아예 발견조차 되지 않거나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임 : 우리 어머니세대들이 겪은 빈곤과 지금은 다르다. 청소년이나 젊은 여성들은 빈곤체감도가 훨씬 크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생활보호대상자가 된 사람들 대부분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고통이 크다. 예를 들어 여성 가장들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걸 중지시키기 쉽지 않다. 때문에 박탈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여성들에게 아이들은 삶의 동력이자 걸림돌이다.

유지 : 빈곤 청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경제적 서비스인 장학금이나 결연사업도 대부분 학교에 다니는 제도권 아이들, 그야말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문제다. 후원자들은 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아이들에게 지원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더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은 그 아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었다.

이 : 아이들은 지역사회에서 사회화되는 과정을 배우게 된다. 우리 지역은 아이들끼리 도둑질을 같이 하거나, 남에게 상해를 주는 경우가 빈번하다. 얼마 전에도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자동차 안에 있는 동전을 꺼내려고 자동차 유리창을 깨버렸다. 지역사회에서 이런 문제까지 교육하는 게 불가능하다.

임 : 아이들 문제는 곧 여성들의 문제다. 아이들 때문에 여성들은 죽고싶어도 살아야 하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욕구나 삶은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들과 전화상담을 해 보면 “나 지금 딱 죽고 싶으니까 당장 전화 끊어라”,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절박한 심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여성가장들의 심정이 이해 간다. 자활근로가 힘들어서 그만둔 어느 여성은 방에 누워있으면 천장이 내려오고, 벽이 달려들어 자신을 누르려고 하는 환상에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래도 아침이면 출근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깨닫고 다시 일하겠다며 찾아온 사례도 있다. 어떤 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하면 벼랑끝에서 누군가 자신을 밀어내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장학금이나 쌀 등 물질적 지원에는 많은 빈곤층이 몰려들지만 교육훈련이나 작업현장에서 근로하는 자활사업의 경우에는 참여하고자 하는 빈곤층이 적어 후견기관에서 직접 일하거나 교육받을 사람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성가장은 인간관계 등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많다. 상담과 관계맺기가 절실하다.

남편과 헤어지면서 시집식구와의 관계도 끊어지고 친정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쉽게 고립된다. 혼자 사는 여자라는 사회적 편견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려면 사회적 관계가 든든한 언덕이지만, 관계가 자꾸 좁아지고 편견은 깊어져서 안타까울 때가 많다.

이 : IMF 이전만 해도 ‘한부모 가정들’이 자립·자활을 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았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달린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무엇이든 전문적인 인력을 요구하는 추세라, 30∼40대 주부들은 갈 곳이 없다. 자활후견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후견기관에서 일하는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면 그때 배운 기술로 창업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실 어렵다. 결국 계약기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차상위계층에서 일반 수급자로 떨어지게 된다.

빈곤의 악순환, 아동과 청소년 지원으로 끊어야

유기 : 사회복지는 보편주의로 가야한다. 지금 정부는 아동이나 노인들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복지정책을 펴고 있다. 빈곤을 평가하는 기준이 부양의무자의 재산과 소득뿐이다. 이건 정말 미개한 일이다. 어떤 아동이든 살기에 적합한 곳에서 자라야할 권리가 있는데 국가는 모든 빈곤의 책임을 가족에게 돌리고 있다. 빈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알아야 한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그나마 생계 활동을 할 수 있는 어른들, 차상위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회복지사들은 언제나 가능성이 희박한 사람들과만 씨름을 해야 한다.

교육생 10명 중 대부분이 알코올중독이거나 어딘가 병든 사람이다. 나무가 다 말라죽은 다음에 물을 줘서 뭐 하는가? 한 클라이언트는 내게 “내가 아직 더 죽어가기 전에, 죽어버리기 전에, 손 내밀 수 있을 때 나를 도와줘야 하지 않냐”고 호소한 적이 있다. 그분은 요보호세대가 아니라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영구임대아파트만 봐도 행정편의주의적이다. 한 동은 모자가정, 한 동은 장애인가정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몰려 산다.

유지 : 현장에 있는 사람은 빈곤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적인 문제보다는 미시적인 접근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 복지관에서는 비자발적인 빈곤가족들을 위해 out-reach clinic(직접 가정을 방문해서 상담하는 센터)을 실시하고 있으며, 특별히 빈곤가정 아동과 청소년들에게는 멘토링 사업을 통해 학습지도나 정신적 안정을 위한 상담을 함으로써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접근은 성인보다 변화가 빠르고 효과가 가시적인 것 같아 희망적이다.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빈곤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예방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임 : 정부가 공인한 가난한 사람인 수급가정에게 지급하는 돈과 물품, 의료서비스를 모두 포함하면 3인 가족기준으로 150만 원 정도다. 그러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30∼40대 여성들이 취업해서 노동을 하면 80만 원 이상을 벌기 힘들다. 그런데도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80만 원을 받으면 수급자 범위에서 벗어나 모든 정부급여를 포기해야 한다. 감자탕집에서 하루 종일 일하면 더러 150만 원씩 받기도 하더라. 그러나 몸도 약하고 애도 키워야 하는 여성들이 그런 일을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가? 빈곤계층들은 자발적으로 일해서 그 상황을 벗어날 엄두를 못 낸다. 의료부담이 제일 크다. 일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정부지원을 받으려고 일을 안 한다는 사회의 손가락질을 상대로,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력만으로 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려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복지현장에서도 배짱이 필요할 것 같다. 일선에 있는 사회복지사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정부지원을 받을 때와 지원을 벗어나 직접 노동을 통해 자립하고자 했을 때 노동현장이 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를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 사회적 지원과 관심만이 노동하고 있는 빈곤층의 재추락을 막을 수 있다는 사례를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은

사회자 : 상황이 어려울수록 사회복지사들의 전문적이고 안정적인 서비스가 중요할 것 같다. 사회복지사들의 처우에는 변화가 있나.

유기 : 사회복지사가 한 복지관에서 일하는 평균근무 기간이 2년이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유지 : 모든 사회복지사들이 그렇듯 대단한 급여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 근로자의 평균임금에 60%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복지사들과 사회복지사 가족들의 복지에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쉬운 예로 대중교통비도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데 우리는 교통비로 5년 전부터 3만원을 받고 있다.

임 : 우리는 보너스를 타지 않으면 실수령액이 70만원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후견기관은 총 6명의 직원을 둘 수 있는데, 어떤 기관은 1년 동안 실무자가 8번 바뀌었다. 실장급이 최대 월 200만 원 가량 받는다.

사회자 : 마지막으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중점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게 무엇인지 말해 달라.

임 : 복지현장의 조직화와 행동이 본격적으로 드러나야 한다. 주거의 경우 영구임대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지만 입주 후의 문제는 입주한 빈곤층이나 사회복지사나 누구도 제기하지 않는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영구야, 영구야”하고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안정된 주거공간이 있다는 것에 꾹 참는다.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가난 때문에 이렇게 낙인찍히고 있는 현실에 대해 흥분해야 하지만, 사회복지사가 이런 일에 발벗고 나서기는 어렵다. 정부 지원금으로 사업하고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계 때문에 정부의 행정편의적이고 일시적인 빈곤대처에 반발할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유기 : 빈곤문제는 상생을 위한 문제며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작게는 우리 구의 예산, 크게는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게 필요한 때이다. 주인이 기르던 개에게 던져주듯 던져주는 작은 조각을 갖고 무수한 어려운 이웃들이 배부를 것을 기대하는 것, 그것은 어쩌면 ‘적선’해 주었으니 내 몫을 다했다라는 교만이 아닐까. 한 수급대상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도 과거에는 세금도 냈었고, 못할 짓하고 산 적이 없었는데, 나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나는 왜….”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2003/09/01 00:00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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