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빠지게 일해봤자 돌아오는 건 병든 몸뚱어리뿐'


일하지 않아 가난한가. 아니다. 직장을 갖고 정기적으로 일을 하지만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 근로빈곤층이 늘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된 최저생계비보다 조금 더 받는다는 이유로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이들의 삶도 빈곤계층과 다를 바 없다. 편집자주

4년째 청소용역 일을 하는 박모 씨의 일과는 아침 6시부터 시작된다. 서울 근교의 ○대학교 학생회관이 박씨의 일터다. 지하 1층, 지상 5층인 이 건물의 청소담당자는 5명이다. 화장실과 로비 등 건물 내부는 물론 건물 주변 운동장까지 이들의 청소담당 구역이다. 하루에 수백 명의 학생들이 이용하는 이 공간을 10시간 이상 종횡무진 누비며 청소하고 퇴근할 때는 집에 갈 기력이 없을 정도로 힘겹다. 이들이 받는 월급은 60여 만 원, 여기서 의료보험료 등을 제외하면 손에 쥐는 돈은 55만7000원이다. 그나마 이 급여도 오른 것이다. 작년에 청소용역노동자들의 노조가 결성되면서, 임금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맞춰진 것이다. 2000년에는 실수령액이 37만 원 가량이었다고 한다. 수당이나 상여금은 상상도 못한다. 급여 인상은 오로지 정부가 정하는 최저임금 기준에 달려있다. 작업복은 지급되지만 기본인 식대조차 없다. 학생들이 버린 재활용품을 팔아 쌀을 사고 반찬은 집에서 가져와 식사를 해결한다.

박씨는 네 식구의 가장이다. 남편은 병석에 누워 경제생활이 어렵다. 두 자녀과 남편의 생계는 전적으로 박씨의 몫이다. 박씨만이 아니다. 이 학교에 일하는 다른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경우도 비슷해 이 월급으로 한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 적어도 3명, 4∼5명의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지만 이마저도 어떻게 될지 몰라 이들은 가슴을 졸여야 한다. 특별한 기술을 갖고 있지 않은 50대 후반과 60대 여성들이 얻을 수 있는 일터란 거의 없다. 이 일자리로라도 매월 정기적인 수입이 있다는 것이 우선 감사한 일이다. 매년 이뤄지는 계약 갱신여부가 전적으로 용역업체의 권한이고, 이들의 판단이 자의적인 경우가 많아 “다행히 올해는 일하지만 내년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또한 힘든 일이고 인정은커녕 무시당하기 일쑤인 분위기도 괴롭고 과중한 노동으로 숱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에 몇십번씩 대걸레를 손으로 짜는 일들은 만성습진과 관절염을 만들어 낸다. “뼈빠지게 일해도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고오히려 병만 얻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양해야할 가족들을 떠올리면 또다시 발걸음은 일터로 향하게 된다.

재계약 위해 김치까지 담아주기도

김모씨는 9년째 서울 노원구 ㄷ초등학교에서 과학교사 보조로 일하고 있다. 김씨의 일과는 학교 내의 다른 교사들과 다를 바 없지만 급여와 대우만큼은 천양지차다. 현재 김씨가 받는 급여는 1년 평균으로 따져 60만 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들의 급여는 일한 날수로 계산된다. 하루에 2만7710원. 방학기간은 무급이라, 급여로만 판단하면 이들에게 1년은 365일이 아니라 298일이다. 그것도 교장의 재량이라 소풍, 운동회 등의 행사에는 과학수업보조는 필요 없다는 이유로 일급은 제공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러하니 급여가 없는 1월과 8월은 필수고, 평소에도 부업이 없이는 생활이 어렵다. 파출부, 놀이방 보조원, 식당보조 등 마다하지 않는다.

노동조건도 심각하다. 연월차 휴가는 물론 보건휴가 쓰기도 하늘에 별따기다. 과학부장, 관리부장, 교감, 교장에게까지 결재 받는 복잡한 절차도 문제고 혹여 재계약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또한 말이 과학수업보조이지, 학교의 온갖 잡일은 이들의 몫이다. 과학과 전혀 상관없는 비품관리는 물론 차 심부름까지 해야한다. 매년 계약을 갱신해야하는 처지로는 일단 학교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상황이지만 아예 계약서에 “갑은 을이 지시하는 ‘모든 업무’를 해야한다”라고 못박고 있어 최소한의 권리조차 찾기 어렵다. 그뿐이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수업을 함께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경험이 쌓이고 나름대로 전문자격증 등을 취득하지만, 이에 대한 학교측의 반응은 “선생 바보 만들지 마라, 똑똑한 보조는 필요없다”는 식의 싸늘한 반응이다. 역시 40∼50대 여성이 취업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상황에서 이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당장 급여인상이 이뤄지는 것보다 고용안정이 절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계약여부와 노동조건에 대한 권한이 전적으로 교장에게 일임된 상황에서 재계약을 위한 과학수업보조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명절마다 선물 챙기는 것은 기본이고 교장, 교감의 김치까지 담아주는 경우도 있다.

차상위 빈곤층에 대한 근본대책 절실

영세자영업자들의 상황도 매한가지다. 이들 역시 근로빈곤층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 서울 종묘공원 앞에서 15년이 넘도록 좌판에서 수첩 등을 팔아온 한 노점상은 “살기 힘들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한다. 요즘처럼 어려울 때가 없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리어카 앞을 지켜봤자 내놓은 수첩이나 우산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얼마나 팔리는지는 짐작키 어렵지 않다. 2001년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자료를 보면 조사대상 노점상의 80%은 하루수입이 3만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주로 부부가 함께 일하고 많은 벌과금을 물면서 장사하는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의 벌이수준도 심각하다.

비정규노동자, 영세자영업자와 함께 5인 미만 작업장 노동자의 경우도 실질임금은 최저임금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최저생계비 수준의 정기적 급여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안전망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노동단체는 물론 시민사회까지 나서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이 바로 급여가 되는 근로빈곤층의 구제를 위해서는 기초생활보장법이 현실적인 사회보장 역할을 하도록 개정하거나 최저임금 수준을 현실화해 차상위 빈곤계층이라는 사각지대에서 구제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이영환 교수는 “우리나라 빈곤대책은 기초생활보장법이라는 하나의 제도 외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하나의 제도로서 다양한 빈곤층을 문제를 해결하려니 무리가 따른다. 주거·의료·직업훈련·교육 등 각각의 프로그램으로 별개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단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면 모든 사회보장 혜택을 누리는데 여기서 누락되면 혜택에서 제외되는 구조다. 현실적 상황에 맞게 다양한 구제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특히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보다 약간 소득이 상회한다는 이유로 사회보장제도에서 외면받은 차상위 빈곤층에 대한 대책은 시급하다”며 “실제로는 수급권자보다 열악한 조건임에도 부양의무자가 있거나 기타 조건들로 인해 구제받지 못하는 빈곤층 구제에 정부가 긴급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지난 18일에는 내년 차상위 빈곤층에 대한 의료·교육비 지원예산이 예산당국의 예산심사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와 정부가 최근 우리사회를 뒤흔든 신빈곤층 문제에 대해 안이하게 대응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래서 시민사회는 물론 여론의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사회적 타살’로까지 칭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빈곤계층과 근로빈곤층에 대한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부대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최현주(참여사회 기자)
2003/09/01 00:00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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