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개혁, 눈앞에서 놓치나
2003/2003년 09월 :
2003/09/01 00:00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와 사법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 필요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대폭적인 교체 시기를 맞아,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시민사회 및 개혁판사들의 주장과 대법원간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왜 다양화 될 필요가 있는지, 대법원을 비롯한 사법부 역시 왜 국민에 의한 민주적 통제가 강화돼야 하는 지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참여정부가 들어선 첫 해, 대법원은 인적 구성에서 큰 전기를 맞고 있다. 한 명의 대법관을 제외하고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법관들이 임기만료로 교체되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오는 9월부터 대법관 한 자리가 새로운 인물로 채워진다.
대법관의 대폭적인 교체에 맞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하 민변)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그 동안 대법원의 성향이 너무 획일적이고 보수적이었다는 데 뜻을 같이 하고, 사회적 다양성을 대변할 수 있는 대법관 후보 추천을 위해 시민추천운동을 벌인 바 있다. 그 과정에서 이 소식을 접한 법원 내부 현직 법관들이 “대법원은 결코 보수적이지 않다”는 내용의 대법원 변호성 반론들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들 인정하듯 ‘보수’나 ‘진보’란 그 뜻을 일의적으로 정하기 힘든 불확정 개념이다. 그러나 사법부와 관련해 ‘보수적 대법원’과 ‘진보적 대법원’을 구분할 때에는 ‘사회변화를 판결에 수용하는 태도’가 그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즉, ‘보수적 대법원’이란 대법원이 사회변화를 판결에 수용하는 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판결을 통한 기존의 가치질서 유지와 그것의 확대재생산을 통해 법적 안정성에 치중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진보적 대법원’이란 사회변화를 판결에 수용하는 데 개방적 태도를 보이면서, 판결을 통해 입법부나 행정부에 앞서서 사회변화를 선도해나가는 대법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기준을 적용해 거시적인 맥락에서 살펴봤을 때, 우리 대법원은 지금껏 보수성향을 띠어왔다고 판단된다. 박정희정권 이후 군사정권의 사법부 탄압으로 대법원은 소극적으로 변했고, 대체로 ‘사회변화’보다는 ‘법적 안정성’에 치중하는 판결들을 내려왔다.
보수 일변도의 대법원 색채
대법원에서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려면 4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에서 반대의견이 하나라도 나오거나, 4인 재판부의 결정이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법원이 1년에 처리하는 총 2만여 건의 사건 중에서 전원합의체로 넘겨지는 사건이 평균 12건에 불과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대법원이 선판례를 변경하는 데 굉장히 소극적이고, 따라서 사회변화를 수용해 새로운 판결을 내리는 데 인색하다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의 보수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보수적이라고 해서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대법원에 보수성향의 대법관도 있어야 요동치는 사회에서 그 무게중심을 잡아내고, 사회변화 속도를 알맞게 조절하여 안정 속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문제는 4인 재판부 결정에서 반대의견이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대법원 구성원들이 서로 대동소이한 하나의 성향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배경을 가진 대법관들로 구성된 대법원에서 하나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 직접적 원인은 바로 대법관 선정 관행에 있다.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고, 법원조직법 제42조 1항은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임용자격을 변호사 자격 취득 후 개업변호사와 법학교수까지 포함하는 각종 법률관련직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40세 이상인 자로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장의 제청이나 대통령의 임명을 통해 지금까지는 ‘법’이 아니라 ‘관행’의 이름으로, 13인 대법관 중 1인은 검사 중에서, 1인은 변호사 중에서 충원하고, 나머지 11인을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의 직책에 있는 현직 고위법관 중에서 채용해왔다. 그나마 변호사 몫의 한 자리도 법관 출신 변호사들에게만 열려 있으니, 여러 가지 이유로 법관이 아닌 다른 법률직역을 생업으로 택했던 이들에게 대법원은 그들의 우수성 여하에 관계없이 ‘오르지 못할 나무’였던 것이다.
이런 관행 때문에 대법관 자리는 비슷한 대학을 나오고, 비슷한 젊은 나이에 법관생활을 시작하여 비슷한 기간 동안 판사실에 틀어박혀 사회와는 거의 단절된 채 산더미처럼 쌓인 소송서류들을 읽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대동소이한 배경의 50대, 60대의 남성 판사들에 의해 독점되어왔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절실한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
대법원은 최종적인 법해석과 법적용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이다. 입법부에서 법을 만들지만, 그 법의 의미를 구체적 사건에 적용해 법에 생명력을 불어넣음으로써 비로소 법이 국민생활 속에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바로 사법부를 통해서이며, 그 사법적 최종 판단권이 대법원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법원은 어떤 국가기관보다도 국민 일상생활 구석구석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기관이다.
바로 여기에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다양화될 필요성이 존재한다. 중요한 국가권력 행사의 장에, 변호사 시절 많은 노동사건 수임 경험을 통해 노동자의 입장을 깊이 이해하게 된, 그래서 1300만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이들도 대법원에 들어와야 한다. 전체 국민 중 절반이 넘는 여성의 관점에서 법을 해석해내고 섬세하게 한국사회의 변화방향을 잡아줄 수 있는 여성법률가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50대, 60대의 원숙함은 모자라는 40대이지만 변화를 열망하는 목소리도 적극적으로 대변해낼 수 있는 젊고 신선한 법률가들도 동석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오랜 법관생활을 화려하게 마감하는 엘리트법관들의 집합소가 아니라,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녹여내 국민 전체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용광로여야 한다. 그것만이 사법권도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통치권 중의 하나일 뿐이며, 따라서 사법권도 국민적 통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준엄한 헌법적 요구를 대법원 구성에 반영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인적 구성의 대법원을 갖기 위해, 기존의 기수·서열 위주의 법관 출신 대법관 선임 관행을 바꾸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주장과 시민 후보의 추천에 대해, 대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 이유란 게 우리가 조금만 속내를 세밀히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약한 논리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첫째, 시민단체 등이 대법관 후보 시민추천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 대법원은 외국의 경우 시민단체가 특정인을 후보로 추천하는 일은 없으며, 시민단체의 대법관 후보 추천운동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제청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법무부장관 참모들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 후보를 물색할 때,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종 사회단체가 후보로 특정인을 추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실제로 추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법관 후보에 대한 연방상원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각종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이 치열하게 간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한다. 일례로 전미변호사협회(ABA)는 법무부장관 참모들이 후보를 물색할 때, 대통령의 후보 지명 직전, 그리고 연방상원의 인사청문회시 무려 3회에 걸쳐 대법관 후보 지명과 임명에 직접 간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만 국회의원들을 통한 간접 통제가 가능할 뿐이다. 따라서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지명 이전에 각종 시민단체 등이 특정인을 후보로 추천한다 하더라도 민주적 통제는 2회만 가능한 것이며,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시민단체 등의 후보 추천에 대법원장이 법적으로 구속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대법관이나 대법원장은 일단 그 직에 임명되고나면 6년 임기 동안 철저한 직무상 독립을 보장받는다. 때문에 이들 최고법원 구성원들의 충원과정에 민주적 정당성을 추가로 부여하기 위해 미국의 경우처럼 국민이나 시민단체, 법률가단체 등 각종 사회단체들의 의견개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이 의견들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원과 별도로 1988년에 설립된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을 통해 사회적 가치판단이나 정책결정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미국 대법원의 역할을 우리 대법원에게 기대하기는 힘들다, 특히 대법관의 다양한 인적 구성은 헌법재판을 행하지 않는 우리 대법원에는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1년에 2만 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원의 과중한 업무량을 고려해 봤을 때 재판실무능력이 다른 법률직역 출신보다 뛰어난 법관들 중에서 대법관을 충원할 수밖에 없다는 게 대법원의 주장이다.
대법관 추천운동에 대한 반대 논리 근거 없어
그러나 우리 현실을 좀더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 주장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법원의 재판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시켜 심리할 수 있게 하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는 달리, 우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대법원 판결을 포함한 일체의 법원재판에 원칙적으로 간여할 수 없다. 또 명령 규칙에 대한 위헌심사권도 해당 명령 규칙이 집행행위의 매개 없이 직접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아니면, 헌재가 아닌 대법원에 그 최종 판단권이 귀속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헌재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와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제한적인 헌법재판권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상대적으로 대법원이 꽤 넓은 범위에 걸쳐 헌법적 판단을 할 수 있다. 대법원을 정점으로 하는 일반법원의 법적 판단 또한 헌법재판소의 통제로부터 매우 자유롭다.
즉 우리 대법원도 일부 헌법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일반 민·형사 사건이나 행정사건, 노동사건, 특허관련 사건에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법해석을 통해 얼마든지 사회적 가치판단이나 정책결정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자와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포함하는 사회 각계각층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재판소 못지 않게 대법원도 다양한 인적 구성을 갖추어야할 당위적 필요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1년에 2만 건을 처리해야하므로 재판실무능력이 검증된 법관 중에서 대법관을 선임해야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할 수 없다.
2만 건이라는 숫자는 대법원에서 ‘상고허가제’와 유사한 ‘심리불속행’이라는 사건여과장치를 거치기 전의 숫자이다. 2만 건이 4인의 재판부에 배당되고 나면 그 중 40% 정도는 심리를 속행하기에 부적절하다는 대법원의 판단 하에 ‘심리불속행’제도로 걸러진다. 결국 나머지 1만2000건에 대해서만 대법원이 심리하게 되는 것이며, 2만 건이란 수치는 부풀려진 것이다. 게다가 대법관들은 법관 출신 대법관이든 비법관 출신 대법관이든 구분 없이 재판연구관으로부터 사건 처리와 판결문 작성에 직·간접적 도움을 받는다. 따라서 비법관 출신 대법관을 지금보다 더 많이 뽑더라도 재판연구관의 인원을 증원하고 이들의 조력을 더욱 실질화시킨다면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이처럼 다양한 인적 구성원을 가진 대법원은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되는 시대적 과제이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국민의 대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대법원이, 또한 사법부 전체가 ‘국민을 위한 대법원’,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거듭나기 위한 필수 불가결한 전제조건이 되고 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