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살에 부자가 되면 행복할까?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는 2001년에 나왔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어린이책 분야에서 확고부동한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책이다. 많은 어른들은 “요즘은 아이들도 돈에 대한 개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어떤 어른도 “이 책 읽고 부자 되라고” 선물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른들의 욕망은 분명히 아이들이 부자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약 이 책이 원제인 『머니라는 이름의 개』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다면, 지금 같은 인기는 절대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자식이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나쁜 소망이 아니다. 하지만 “부자가 되라”는 격려성 명령 뒤에 감추어져 있는 위험한 지뢰들을 정확히 보고 아이들에게 이 책을 사주는 어른들은 얼마나 될까? 이 책에 나오는 ‘부자 되는 법’은 간단하다. 일단 동기를 명확히 하고, 자기가 할 수 있고 잘하는 일을 찾아 돈을 벌고 모은 후, 자기가 만든 종자돈을 가지고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잘하는 일을 찾아 돈을 벌고 모은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해서 기업을 세우는 일이다. 키라의 조언자인 말하는 개 머니의 말에 따르면, 집안 일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돈을 달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키라는 동네 개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동네 어른들에게 돈을 받는다.

언뜻 보기에는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별 모순이 없어 보인다. 돈으로 꼬시지 않으면 스스로 무슨 일을 하려고 들지 않는 아이들을 보아온 부모들은 오히려 “내 아들/딸이 이 정도로 철이 들면…”하며 키라를 기특해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안일을 돕는 것이 당연하다면 동네 어른들의 개를 돌봐 주는 것은 왜 당연하지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가사 용역의 일부를 제공하고 돈을 받는 것이 정당하다면, 자기 집이라도 어떤 한 가지 가사 노동을 내가 전담하고 그것에 대해 돈을 받는다면 마찬가지로 정당하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여기에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뿌리깊은 이분법이 깔려 있다.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의 노동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당연한’ 것이다. 머니의 말마따나, “돈을 버는 것은 잔디 깎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니까. 가사 노동의 가치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지워져 버린다.

동의하기 어려운 위험한 가치관

이보다 위험한 가치관은 나중에 키라의 ‘기업’이 성업을 이루면서 친구 모니카를 ‘고용’할 때 나온다. 키라는 모니카에게 일을 시키고 돈을 주면서 “처음에는 그것이 정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갑자기 나는 할 일이 없어졌고 모니카가 거의 모든 일을 다 했는데 돈을 모니카와 내가 똑같이 나누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사촌 마르셀의 조언이 등장한다. “일 자체에 대한 돈은 많아야 총 지급 금액의 50%야. 나머지 반은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용기에 대해 주어지는 거고” 만약 동네 개들을 돌보는 일이 기업이 아니라 어린아이들 용돈 받는 것과 같은 차원이라고 생각했던 부모가 있다면 이 대목에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이것은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관계에 대한 하나의 가치관, 그것도 명확한 가치관이다. 이 책을 사서 자기 아이에게 선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업주가 아닌 노동자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 자기는 부자가 아니지만 아이가 부자가 됐으면 하고 바라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기업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부분은 기껏해야 50%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에 충심으로 동의할 수 있을까?

이 책이 교묘하게 가려 버리는 문제들도 있다. 성장기에 기업과 투자 활동을 익힌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일을 할 시간을 빼앗아 가는 것이기도 하다. 성장기 청소년들의 거의 모든 시간이 대학 입시 준비에 투자되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시간이 있을 리 만무하다. 만약 키라가 하루에 서너 시간씩 학원에 가고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를 해야 했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입시에 치이고 찌든 아이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은 매스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오락과 그에 따르는 소비고, 아이들은 소비를 위해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시급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경제 관념을 교육한다는 것은(성교육만큼이나!) 왜곡되고 기형적인 방식으로밖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 맞지 않는 ‘환상’은 아닌
노동의 가치, 자본이 사회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기업이 발전해온 역사, 하다 못해 계약할 때 사기 당하지 않을 수 있는 기초적인 법 지식과 경제 지식, 이런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은 전무하다. 우리 사회가 청소년과 성인 사이에 공정한 계약을 보장해줄 수 있는 곳도 아니다.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껏해야 게임방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고, 그나마 ‘자영업’에 가까운 것이 청소년 성매매인 이 사회에서 “기업을 하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환상을 유포하는 이 책이 어린이에게 걸맞아 보이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 이면에는 “고통에 집중하면 할수록 고통은 더 커지거든. 그래서 난 오래 전부터 고통을 호소하는 습관을 버렸단다”라며 고통을 주관적인 것, 약자의 엄살로 치부해 버리는 이데올로기가 깔려 있다. 이런 말을 책에서 보고자란 어린이라면 사회적 약자가 고통을 호소할 때 얼마나 동정을 느낄까.

그렇다고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가 나쁜 점만 있는 책은 아니다. 한국 소설에서는 주로 청소년 이상, 그것도 남자 아이들만이 주인공이었던 자율적인 독립의 서사를 여자 아이가 주인공이 되어 수행한다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한계와 약점을 보고 부모를 일단 한번 부정한 채 부모에게서 정신적으로 이유(離乳)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부모들에게는 서운한 일이겠지만, 아이가 부모를 넘어서는 자율적인 행동 주체로 다시 서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한국 소설에서,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지 않는 한 부모를 부정하는 여자 아이를 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부정도 대체로 내성적이고 감정적인 반항에 그치고 사회 속에서 창조적이고 독립적인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키라는 다르다. 부모의 경제적인 약점을 내성적으로 삭히고 남보다 예민한 감수성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약한 분야에서 외부 조력자(말하는 개 머니, 머니의 옛 주인 골트슈테른 등)의 도움을 받아 부모를 넘어서고, 독자적으로 사회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통로를 개척한다.

어차피 이런 부분을 모두 생각하고 아이들에게 동화를 사주는 어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용돈 관리하는 법을 배우고 일찍부터 부자가 되려는 소망을 품으라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오늘도 이 책을 사서 아이들에게 안겨줄 것이다. 하지만 용돈을 아끼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일 자체를 위한 돈은 50%만 주면 된다”든지 “돈을 버는 것은 잔디 깎는 일보다 어렵다”는 가치관까지 함께 흡수해야만 할까? 노동을 통해 노동을 존중하는 법과 함께 돈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은 불가능할까? 정말 어려운 것은 부자가 되는 일이 아니라, 남과 자신에게 똑같이 공정하게 대하면서 부자가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2천년 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그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송경아 소설가
2003/09/01 00:00 2003/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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