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이의 폭력 디비기> '사랑의 매'
칼럼과 기고 :
2003/12/26 11:39
인간은 직, 간접적으로 수많은 폭력을 경험하며 산다. 그러나 어떤 폭력은 피해자가 그것을 폭력이라고 인지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이뤄진다. 폭력을 폭력이 아닌 것처럼 은폐하거나 때로는 정당화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 감춰진 폭력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기고자 주
중·고교 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농땡이였다. 그렇다고 싸움을 잘하는 영웅적인 존재도 아니었으니 학교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에 불과했다. 덕분에 초등학교부터 수많은 종류의 체벌을 받아왔다.
나에게 가해졌던 수많은 체벌들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나는 그런 사랑을 결코 원치 않았다. 영화 '친구'에서 가장 리얼하고, 공감이 가는 장면은 유호성과 장동건이 선생님에게 맞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다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 아픈 경험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 그 기억을 꺼내 본다.
"너거 아부지 머 하노?"
"이발사 일 하시는 데예."
"너거 아부지는 머리 깎아서 니 가르키는데 성적이 이게 머꼬?"
그리곤 퍽!퍽!퍽! 그때 아버지 직업이 이발사라는 게 너무 원망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 직업은 아이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수많은 종류의 체벌 중에서 아직도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몇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1신
중학교 때 일이다. 체육시간에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옷을 다 벗으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다. 반 아이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속옷만 남긴 채 다 벗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디선가 낚싯대를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는 한 명씩 꼼꼼히 몸 상태를 살펴보셨다.
"야 임마 봐라. 때가 꼬질꼬질하네. 이게 머꼬."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낚싯대를 몸을 향해 휘익휘익 저으셨다.
"아…악."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감쌌다. 선생님의 낚싯대는 몸 부위 중에서 때가 낀 곳을 낚아 올렸다. 내 차례였다. 집안에 샤워 시설이 없어 목욕을 잘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내 몸 곳곳을
중·고교 시절, 나는 소위 말하는 농땡이였다. 그렇다고 싸움을 잘하는 영웅적인 존재도 아니었으니 학교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에 불과했다. 덕분에 초등학교부터 수많은 종류의 체벌을 받아왔다.
나에게 가해졌던 수많은 체벌들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나는 그런 사랑을 결코 원치 않았다. 영화 '친구'에서 가장 리얼하고, 공감이 가는 장면은 유호성과 장동건이 선생님에게 맞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을 보다 눈물을 쏟을 뻔했다. 그 아픈 경험은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다. 그 기억을 꺼내 본다.
"너거 아부지 머 하노?"
"이발사 일 하시는 데예."
"너거 아부지는 머리 깎아서 니 가르키는데 성적이 이게 머꼬?"
그리곤 퍽!퍽!퍽! 그때 아버지 직업이 이발사라는 게 너무 원망스러웠다. 당시만 해도 아버지 직업은 아이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곤 했다.
수많은 종류의 체벌 중에서 아직도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몇 장면을 소개하고자 한다.
1신
중학교 때 일이다. 체육시간에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옷을 다 벗으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있었다. 반 아이들은 아무런 영문도 모르고 속옷만 남긴 채 다 벗고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은 어디선가 낚싯대를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는 한 명씩 꼼꼼히 몸 상태를 살펴보셨다.
"야 임마 봐라. 때가 꼬질꼬질하네. 이게 머꼬."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낚싯대를 몸을 향해 휘익휘익 저으셨다.
"아…악."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감쌌다. 선생님의 낚싯대는 몸 부위 중에서 때가 낀 곳을 낚아 올렸다. 내 차례였다. 집안에 샤워 시설이 없어 목욕을 잘 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내 몸 곳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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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여학교의 악몽
여중 땐 덜했지만 여자고교도 진한이님의 경우와 비슷한 양상이죠.
저야 3년 내내 어딘가 모자라는 범생이였지만
제 짝의 경우, 담임한테 완전히 찍혔어요.
하루는 조용히 있는 애한테 시비걸다가 이가 누런 게 담배피는 것같다고
담임이 불러가더니 짝을 뒤지게 패버린 눈치.
남자친구 만나러 다니고 입이 걸어서 그렇지 담배피는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걔랑 잘 어울리는 다른 애는 은경이란 이름의 '논다니'인데
뭐때문인지 수업시간에 걸려서 뺨을 맞았어요.
칠판 앞에서부터 뺨맞기 시작해서 한걸음씩 뒤로 물러난 게
나중엔 교실 뒷벽까지 가있더라고. 반 친구들 다 보는 수업시간에.
이건 초등학교 5학년 때 일인데
저는 반아이들 거의가 농사짓는 부모님을 둔 소읍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그 중 남자아이 한 명이 평소 담임한테 잘 못 보여서
하루는 수업시간에 불려나가서 뺨을 맞는데
남자 담임이 한대 후려갈기니까 방금 맞은 뺨에 가해진 힘이 엄청났던지
걔 얼굴이 담임의 손 힘이 가해진 방향으로 휙 돌아가버리대요.
그 담임은 걔만 유독 두들겨팼음.
초등학교 5학년 짜리가 잘 못해봤자 속썩여봤자 얼마나 한다고.
어릴 때 일이고 그 자리에선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충격이 컸던지 그 뒤로 머리에서 잊혀지질 않아요.
지금까지 6,3,3년을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같은 선생을 단 한 명도 못만난 게
천추의 한이 됩니다. 배우고 본받을 점있고 열심히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려
노력하고, 학생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는 동시에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선생을 단 한 명도 못 만났어요. 12년 동안 내가 배운 선생이 도대체
몇 명인데.
지난번 교육개혁의 현장을 가다, 영국,중국 편 으로 kbs에서 2회 방송을
했는데 거기 보니까 영국의 교사 한 명이 정말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더군요
학교에 적응 못하는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교재를 개발하고 평생을 소수의 부적응 아이들을 위해 힘쓴 노고가
대단해서. 결국 이 여선생은 상을 받았구요.
우리나라 선생들도 전부 다가 몹쓸 인종들이겠냐마는 우리나라는 교사가
하나의 밥벌이 직업으로만 인식되고 이 인식이 고착되어 버려서 문제에요.
선생직업이 제일 편하다, 여름,겨울방학 놀아도 월급 나오지, 수업만 하면
되지. 거기다가 여자애들한테는 부모들이 여자직업으로 선생만한 게
없다고 주입을 시키니 훌륭하고 바람직한 교사상을 꿈꾸기 전에
안전빵 철밥통 교사로 남으려는 욕심들 먼저 채워주니 이게 되겠냐고.
아이고 말하다보니 엄청 길어졌네. 여튼 글 잘읽었어요.
자식 생기면 혹시 대안학교 보낼 의향은 없으신지.. 대안학교는 적어도
제자와 스승 사이가 인간적이던데.
선생들한테 받은 옛날의 아픈 기억은 탈탈 털고 Happy New Year!를
맞으시길 비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