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이의 폭력디비기> "너희들이 원한다면 다시 불러주마"
칼럼과 기고 :
2004/01/09 11:39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부르는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회사나 가정에서 조금 특별한 행사를 하는 경우에 노래가 빠지는 경우가 없다. 회식자리에서 술이라도 얼큰히 취하면 노래방으로 자동 향하게 된다. 또 야유회에서 빙 둘러 않아 한사람씩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주 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즐거운 풍경 속에도 폭력이 도사리고 있으니, 왜 노래 부르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시키느냐는 것이다. 다들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데 음치들은 노래 부르는 차례가 다가 올까봐 노심초사 식은땀을 흘리며 그 시간이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음치들의 고달픈 삶은 본인에게도 20년 가까이 있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음치였다. 지독한 음치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음 구분을 목소리로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인생에 첫 번째 정규교육이었던 유치원에서 내가 음치라는 사실을 알고야 말았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던 노래를 아이들과 같이 따라 불렀으나 나의 노래는 전혀 다른 음으로 독창을 하고 있었다. 곧장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고, 유치원을 스스로 그만둘 정도로 그 충격은 컸다. 선천적 음치의 첫 정규교육은 그렇게 상처가 되고 말았다.
유치원은 스스로 그만둘 선택권이 있었지만, 초중고의 음악시간은 언제나 절망의 순간들이었다. 음악실기 시험이라도 치는 날이면 며칠 전부터 편두통에 시달렸다. 다행히 2인 1조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적당히 넘어 갈 수 있으나 단독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시험이면 그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언제나 노래를 부르면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음악선생님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그 수치스러움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고난은 학창시절에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노래방 문화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전국을 강타하는, 음치들의 문화적 대재난이 발생하고 말았다. 길거리는 한집 건너 노래방이었다. 그 오색찬란한 노래방 간판은 내게는 지옥의 표지판이었다.
친구들과 회식자리가 있는 날이면 노래방은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기분 좋게 친구들과 놀다가도 노래방에 가자고 하면 가슴이 답답해 왔다.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노래방을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처음 얼마 동안에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흥겹게 놀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전을 짜야만 했다.
그 첫 번째 작전으로 일단 친구들이 노래방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모두 내가 심부름을 했다. 마치 종업원이라도 되듯이 친구들이 술을 찾으면 술을 사왔고 담배를 찾으면 담배를 사러가야 했다. 그래야만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 옆 친구가 노래가 마무리 될 시점에는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 한 5분 정도만 시간을 죽이다가 들어가면 어느새 내 차례는 끝나 있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지는 법. 이런 타이밍이 실패할 때가 있다. 방심하는 사이 마이크가 내 손에 있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좀 과장해서 등에서 땀이 흐르고, 약간의 호흡 곤란증세가 일어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당하게 가장 소리지르기 쉬운 노래를 한 곡 선택해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군대에서 군가를 부르듯 박자와 음정을 무시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때 의도적으로 오버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한다. 사람들이 내가 노래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신경을 집중시켜서는 안된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이성을 차리기 힘들게 요란한 소리와 몸짓을 내지르는 것이다. 그러면 음치라는 것이 탄로 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어쩌랴. 노래가 끝나고 나면 친구들 대부분은 바닥에 넘어져 있다. 기절한 것이 아니라 다들 배를 잡고 웃고 있는 것이다. 대굴대굴 구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친구들 표정에 맞춰 나도 쑥스런 웃음을 짓지만,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러나 곧바로 친구들의 열화와 같은 앵콜 요청이 나온다. 간절하기도 하도, 변태적이기도 한 그 요구를 마다할 수가 없다. 목은 다 쉬어 있지만 다시 한번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너희들이 즐거워하면 한 곡 더 해준다." 라는 다짐을 하고,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를 또 다시 군가 부르듯 불러댔다. 소리가 너무 컸던지 다른 방에 있던 사람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구경하고 있다. 친구들은 같이 춤까지 추고 있다.
그 순간 세상이 아득해 지면서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래를 불렀던 생각이 새롭다.
그 이후 나의 딱한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노래방에서 살아남는 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4분의 4박자 중 느린 곡 10곡을 엄선해 집중 연습하면 선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오직 '살아가기 위해서' 김광석과 전인권 등을 집중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연습을 열심히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득음'을 할 수 있었다.
노래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음치들이 살아가는 삶이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달프다. 요즘 탤런트 서민정의 음치 노래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그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고 따라 부르기까지 한다.
그 심리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음치의 노래를 즐긴다는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다. 고통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보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내게는 가학적인 행위로 느껴진다. 예쁘기만 한 그녀의 웃음 뒤에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을 같이 겪었다고 생각하니 애처롭기만 하다.
노래를 강요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것으로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쩔 수 없는 노래강요로 인해 수많은 음치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좀처럼 행복할 수 없다.
만국의 노동자들처럼, 만국의 음치도 단결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러나 이런 즐거운 풍경 속에도 폭력이 도사리고 있으니, 왜 노래 부르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시키느냐는 것이다. 다들 즐겁게 파티를 즐기고 있는데 음치들은 노래 부르는 차례가 다가 올까봐 노심초사 식은땀을 흘리며 그 시간이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한다.
음치들의 고달픈 삶은 본인에게도 20년 가까이 있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음치였다. 지독한 음치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 음 구분을 목소리로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히려 어릴 적부터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인생에 첫 번째 정규교육이었던 유치원에서 내가 음치라는 사실을 알고야 말았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시던 노래를 아이들과 같이 따라 불렀으나 나의 노래는 전혀 다른 음으로 독창을 하고 있었다. 곧장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어 버렸고, 유치원을 스스로 그만둘 정도로 그 충격은 컸다. 선천적 음치의 첫 정규교육은 그렇게 상처가 되고 말았다.
유치원은 스스로 그만둘 선택권이 있었지만, 초중고의 음악시간은 언제나 절망의 순간들이었다. 음악실기 시험이라도 치는 날이면 며칠 전부터 편두통에 시달렸다. 다행히 2인 1조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적당히 넘어 갈 수 있으나 단독으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시험이면 그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 언제나 노래를 부르면 반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들어야 했고 음악선생님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그 수치스러움은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할 것이다.
고난은 학창시절에서 끝나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노래방 문화가 한국에 상륙하면서 전국을 강타하는, 음치들의 문화적 대재난이 발생하고 말았다. 길거리는 한집 건너 노래방이었다. 그 오색찬란한 노래방 간판은 내게는 지옥의 표지판이었다.
친구들과 회식자리가 있는 날이면 노래방은 필수코스로 자리잡았다. 기분 좋게 친구들과 놀다가도 노래방에 가자고 하면 가슴이 답답해 왔다. 마치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기분으로 노래방을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처음 얼마 동안에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지 않고 흥겹게 놀기 위해서는 수많은 작전을 짜야만 했다.
그 첫 번째 작전으로 일단 친구들이 노래방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모두 내가 심부름을 했다. 마치 종업원이라도 되듯이 친구들이 술을 찾으면 술을 사왔고 담배를 찾으면 담배를 사러가야 했다. 그래야만 노래를 부르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 옆 친구가 노래가 마무리 될 시점에는 반드시 화장실을 다녀와야 한다. 한 5분 정도만 시간을 죽이다가 들어가면 어느새 내 차례는 끝나 있다.
그러나 원숭이도 나무에 떨어지는 법. 이런 타이밍이 실패할 때가 있다. 방심하는 사이 마이크가 내 손에 있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면 좀 과장해서 등에서 땀이 흐르고, 약간의 호흡 곤란증세가 일어난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기라는 이야기가 있다. 당당하게 가장 소리지르기 쉬운 노래를 한 곡 선택해서 노래가 끝날 때까지 군대에서 군가를 부르듯 박자와 음정을 무시하고 소리를 지른다. 이때 의도적으로 오버하는 것처럼 연기해야 한다. 사람들이 내가 노래를 잘 하느냐 못하느냐에 신경을 집중시켜서는 안된다. 그저 모든 사람들이 이성을 차리기 힘들게 요란한 소리와 몸짓을 내지르는 것이다. 그러면 음치라는 것이 탄로 나지 않을 가능성도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어쩌랴. 노래가 끝나고 나면 친구들 대부분은 바닥에 넘어져 있다. 기절한 것이 아니라 다들 배를 잡고 웃고 있는 것이다. 대굴대굴 구르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친구들 표정에 맞춰 나도 쑥스런 웃음을 짓지만,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진다. 그러나 곧바로 친구들의 열화와 같은 앵콜 요청이 나온다. 간절하기도 하도, 변태적이기도 한 그 요구를 마다할 수가 없다. 목은 다 쉬어 있지만 다시 한번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
"너희들이 즐거워하면 한 곡 더 해준다." 라는 다짐을 하고, 인순이의 '밤이면 밤마다'를 또 다시 군가 부르듯 불러댔다. 소리가 너무 컸던지 다른 방에 있던 사람들까지 우르르 몰려와 구경하고 있다. 친구들은 같이 춤까지 추고 있다.
그 순간 세상이 아득해 지면서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노래를 불렀던 생각이 새롭다.
그 이후 나의 딱한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노래방에서 살아남는 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쳐 주기 시작했다. 4분의 4박자 중 느린 곡 10곡을 엄선해 집중 연습하면 선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부터 오직 '살아가기 위해서' 김광석과 전인권 등을 집중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노력에 하늘도 감동했는지 연습을 열심히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득음'을 할 수 있었다.
노래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음치들이 살아가는 삶이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고달프다. 요즘 탤런트 서민정의 음치 노래가 인터넷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그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고 따라 부르기까지 한다.
그 심리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음치의 노래를 즐긴다는것은 그렇게 유쾌한 일이 아니다. 고통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보고 즐거워한다는 것은 내게는 가학적인 행위로 느껴진다. 예쁘기만 한 그녀의 웃음 뒤에 내가 경험했던 수많은 일들을 같이 겪었다고 생각하니 애처롭기만 하다.
노래를 강요하는 문화는 없어져야 한다. 노래를 부르기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것으로 즐거워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어쩔 수 없는 노래강요로 인해 수많은 음치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좀처럼 행복할 수 없다.
만국의 노동자들처럼, 만국의 음치도 단결해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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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엾어라
저런. 무척 안됐군요.
사무실 맞은편에 앉는 후배사원이 음치랍니다.
그 사원의 입사 첫 회식자리에서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부르는 걸 듣고
깨달았음.
음치들한테 그런 슬픈 비하인드스토리가 있는 걸 오늘에야 알았네요.
후배사원 노래하더라도 인제 쪼금 덜 웃어야겠다. 하긴 창피해할까봐
크게 웃지도 못했지만.
이 땅의 음치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그렇지만 꼭 노래를 시키는 우리나라 문화도 심하긴 심하고.
노래말고 다른 장기를 준비하는 것도 수단이 아닐는지. 이를테면??
정말인가요? ^^
전진한 간사님,
우연히 들어왔더니 이렇게 재밌는 글을 쓰고 계셨네요?
음치...
音治...
이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음이라는 것에 소유당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다스리고 있잖아요..^^
일단, 팟팅~~!!
음은 말이죠...
본질적으로 그음을 주관하는 사람에게 다스림을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음이 저혼자 노는것 봤습니까?
그런의미에서, 힘내시기 바라오~~
추신: 언제 한번 음을 같이 다스려봐야겠군요. 시간나면 연락하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