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 窓> 낙선운동은 '보이지 않는 발'
칼럼과 기고 :
2004/01/16 13:52
또다시 낙선운동이다. 2000년 4.13 총선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한국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6대 총선에서의 승자는 여당도 야당도 아닌 바로 시민이었다. 지역주의의 벽을 뚫지 못함으로써 절반의 승리에 그치고 말았지만 16대 총선을 뜨겁게 달구었던 낙천ㆍ낙선운동은 지금까지 정치의 구경꾼으로 밀려나있던 시민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4.13 총선이 한국 정치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삐딱한 정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마련된 것이다.
낙천ㆍ낙선운동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4.13 총선 결과 총선시민연대가 선정한 낙선운동 대상자 86명 가운데 59명이 낙선했다. 낙선율 68.6%로서 낙선운동이 3명 가운데 2명을 떨어뜨린 셈이다. 집중 낙선 대상자는 22명 가운데 15명이 낙선해 68.2%의 낙선율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지역주의가 덜한 수도권에서는 낙선운동대상자 20명 가운데 19명이 낙선했다. 낙선율은 95%. 한 지역구에 두 명의 낙선 대상자가 출마해서 한 명은 떨어지고 한 명은 당선됐으므로 지역구로 따지면 100%가 된다.
낙선운동이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은 부패를 척결하고 무능 정치인을 퇴출시키자는 데 국민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멋대로 굴러가는 정치에 대해 더 이상 참지 못한 국민의 행동이 낙선운동 동참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낙천ㆍ낙선운동은 ‘고장난 정치’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는 유권자들의 정당한 자구 노력이었다.
이제 참여연대는 2000년에 이어 올해에도 낙선운동에 나섰다. 2000년 낙선운동으로 한국정치가 새롭게 태어나리라 믿었던 국민은 정치에 의해 무참히 배신당했다. 방탄국회ㆍ차떼기ㆍ무차별폭로ㆍ비리정치인 체포동의안 부결 등 16대 국회를 얼룩지게 만든 정치권의 행태는 시민사회를 낙선운동으로 몰고 갔다. 돈과 지역감정, 색깔론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정치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낡고 썩은 정치인들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번 2004년 총선에서도 낙천ㆍ낙선운동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지지ㆍ당선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들도 있는 등 이번 총선에서는 조직적인 유권자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질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낙선운동에 대해서도 당선운동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근거도 없이 음모론ㆍ커넥션설을 제기하는가 하면 불법이라고 호통치기도 한다.
그러나 낙선운동도 당선운동도 불법은 아니다. 2000년 총선의 낙선운동에 대한 법원의 불법 판결은 낙선운동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낙선운동방식의 일부에 대해 내려진 것이다. 낙선운동을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되자 정치권이 낙선운동의 방식을 극단적으로 제한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유권자운동은 정당이나 후보의 당선운동과 다르므로 제한을 완화시켜야 하지만 완화되지 않더라도 법의 테두리를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또 불공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낙선운동 대상자선정기준을 마련할 것이다. 절대로 국민의 대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낙선 대상 불량 정치인들의 우선 순위는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에 관련되었던 정치인들이 될 것이다. 군사 쿠데타 등 헌정질서를 파괴했거나 반인권적 사건에 직접 관여했던 정치인, 선거법을 어긴 정치인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감정을 선동했던 정치인, 의정활동이 부실했던 정치인, 교육ㆍ여성ㆍ환경ㆍ인권 문제 등에 대한 개혁성이 없거나 악법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정치인들도 낙선운동의 그물을 빠져나기지 못할 것이다.
정치의 총체적 부실의 책임과 원인은 정치에 대해 항시적이고 지속적인 견제와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했던 유권자에게도 있다. 민주주의의 처음과 끝을 완성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유권자이다. 3류의 정치는 3류의 주권행사가 빚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선거를 통해서 정치인이 아닌 국민이 정치발전과 사회개혁에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다. 또 선거를 통해서 국민이 정치를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정치인들이 국민의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국민의 눈치를 살펴 애쓰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유권자들은 책임도 권리도 의무도 없는 방관자의식을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 헌법 제1장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국민주권의 원칙을 밝혀놓고 있다. 따라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이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올바르고 당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낙선운동은 ‘보이지 않는 발(invisible foot)’의 작용이다. ‘보이지 않는 발’이란 말을 처음 쓴 이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랑그로와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움직이지만 ‘보이지 않는 발’이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 밖으로 차낸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제 구실을 못하는 낡고 썩은 정치에게 퇴장의 레드 카드를 내미는 ‘보이지 않는 발’은 바로 낙선운동의 대의에 공감하는 유권자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주권행사이다.
낙천ㆍ낙선운동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4.13 총선 결과 총선시민연대가 선정한 낙선운동 대상자 86명 가운데 59명이 낙선했다. 낙선율 68.6%로서 낙선운동이 3명 가운데 2명을 떨어뜨린 셈이다. 집중 낙선 대상자는 22명 가운데 15명이 낙선해 68.2%의 낙선율을 보였다. 상대적으로 지역주의가 덜한 수도권에서는 낙선운동대상자 20명 가운데 19명이 낙선했다. 낙선율은 95%. 한 지역구에 두 명의 낙선 대상자가 출마해서 한 명은 떨어지고 한 명은 당선됐으므로 지역구로 따지면 100%가 된다.
낙선운동이 커다란 성과를 거둔 것은 부패를 척결하고 무능 정치인을 퇴출시키자는 데 국민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멋대로 굴러가는 정치에 대해 더 이상 참지 못한 국민의 행동이 낙선운동 동참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낙천ㆍ낙선운동은 ‘고장난 정치’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는 유권자들의 정당한 자구 노력이었다.
이제 참여연대는 2000년에 이어 올해에도 낙선운동에 나섰다. 2000년 낙선운동으로 한국정치가 새롭게 태어나리라 믿었던 국민은 정치에 의해 무참히 배신당했다. 방탄국회ㆍ차떼기ㆍ무차별폭로ㆍ비리정치인 체포동의안 부결 등 16대 국회를 얼룩지게 만든 정치권의 행태는 시민사회를 낙선운동으로 몰고 갔다. 돈과 지역감정, 색깔론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정치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낡고 썩은 정치인들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번 2004년 총선에서도 낙천ㆍ낙선운동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다.
지지ㆍ당선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들도 있는 등 이번 총선에서는 조직적인 유권자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질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낙선운동에 대해서도 당선운동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근거도 없이 음모론ㆍ커넥션설을 제기하는가 하면 불법이라고 호통치기도 한다.
그러나 낙선운동도 당선운동도 불법은 아니다. 2000년 총선의 낙선운동에 대한 법원의 불법 판결은 낙선운동 자체에 대해서가 아니라 낙선운동방식의 일부에 대해 내려진 것이다. 낙선운동을 허용할 수밖에 없게 되자 정치권이 낙선운동의 방식을 극단적으로 제한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유권자운동은 정당이나 후보의 당선운동과 다르므로 제한을 완화시켜야 하지만 완화되지 않더라도 법의 테두리를 어기지는 않을 것이다.
또 불공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낙선운동 대상자선정기준을 마련할 것이다. 절대로 국민의 대표가 되어서는 안 되는 낙선 대상 불량 정치인들의 우선 순위는 부정부패와 각종 비리에 관련되었던 정치인들이 될 것이다. 군사 쿠데타 등 헌정질서를 파괴했거나 반인권적 사건에 직접 관여했던 정치인, 선거법을 어긴 정치인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감정을 선동했던 정치인, 의정활동이 부실했던 정치인, 교육ㆍ여성ㆍ환경ㆍ인권 문제 등에 대한 개혁성이 없거나 악법을 만드는 데 앞장섰던 정치인들도 낙선운동의 그물을 빠져나기지 못할 것이다.
정치의 총체적 부실의 책임과 원인은 정치에 대해 항시적이고 지속적인 견제와 감시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했던 유권자에게도 있다. 민주주의의 처음과 끝을 완성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유권자이다. 3류의 정치는 3류의 주권행사가 빚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선거를 통해서 정치인이 아닌 국민이 정치발전과 사회개혁에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정치인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다. 또 선거를 통해서 국민이 정치를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정치인들이 국민의 위에 군림하려 하지 않고 국민의 눈치를 살펴 애쓰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유권자들은 책임도 권리도 의무도 없는 방관자의식을 버려야 한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 헌법 제1장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국민주권의 원칙을 밝혀놓고 있다. 따라서 국민주권을 실현하기 위하여 국민이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올바르고 당당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낙선운동은 ‘보이지 않는 발(invisible foot)’의 작용이다. ‘보이지 않는 발’이란 말을 처음 쓴 이는 프랑스의 경제학자 랑그로와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움직이지만 ‘보이지 않는 발’이 시장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 밖으로 차낸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제 구실을 못하는 낡고 썩은 정치에게 퇴장의 레드 카드를 내미는 ‘보이지 않는 발’은 바로 낙선운동의 대의에 공감하는 유권자의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주권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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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호남의 낙선률
당시 총선연대 낙선운동에서 영남지역 낙선률은 40% 수준이었고, 호남은 70%를 넘은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무소속으로 당선된 이들이 나중에 민주당에 입당해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최소한 호남은 총선연대 운동 취지에 호응은 해 준것이다. 그래서 호남지역 낙선률은 평균을 넘은 반면, 영남 지역 낙선률은 40% 수준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지식인은 이상하다. 칼럼을 쓰면서 영남지역을 특정하지 않고, 그저 지역주의의 벽을 넘지못했다느니, 하는 두리뭉실한 표현으로 넘어간다.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러면 못쓴다. 다수에 아부하거나, 굴종하는 자세로는 자기만 잘났다는 식이다. 손혁잰가 뭔가, 똑바로 쓰시오.
손혁재 교수님께
여러가지 사회병리현상에서 시민운동세력이 긍정적 역할을 해 온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누가 뭐라해도, 시민운동세력이 스스로 그런 긍정적 역할을 해 왔음을 자임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시민운동세력이 무리수를 두고 있음을 간과할 수도 없다. 그것은 그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기에, 또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기에 가끔씩은 "자신들을 돌아봐 주길" 부탁드리고 싶다.
시민운동세력에 의한 당선.낙선운동을 나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그것은 현재의 법이 이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반대의 이유는 간단하고도 매우 명료하다. 그것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범을 모여야할 단체가 불법을 저지르기 때문에 막자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은 불법인 탓이다. 스스로 불법을 저지르는 순간, 스스로가 서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즉시로 붕궤되고 만다. 이 것은 명분의 문제도 아니요, 누가 당선되고 낙선되느냐에 따라 이 국가의 이익이 어떻게 되느냐의 문제도 아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것은 불법인 탓이다. 도대체 불법을 스스로 허용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누군가 물을 지 모른다. 언제 우리가 그렇게 법을 지켰느냐고.. 그렇기 때문에 법은 더욱 더 지켜져야 한다. 이것은 바로 내 생명의 문제요, 나의 자녀의 문제며, 나의 이웃을 그래도 법으로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시민운동세력이 목을 걸고 이 일을 하려면 나는 "법부터 바꾸라"고 말하고 싶다. 이 법을 바꾸지 않는 이상, 열 받았다고 나를 열받게 한 사람을 찾아가 그 자리에서 낫으로 목을 베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힘이 들더라도 우리는 원칙을 지키려 애써야 한다. 사랑받는 단체일수록 그 소임과 역할은 그래서 더 엄정한 윤리를 요구받는다고 할 것이다.
나는 고국을 떠나 미국의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 나는 시민운동세력의 행보를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참으로 사랑받아야 할, 그리고 그 소임이 이 시대에 참으로 긴요한 이 세력들이 자신의 역할과 그 법 지킴이 어떠할 지를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준엄한,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심판이 또 어떠할 지도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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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글의 모든 것에서 실명을 사용합니다. 가명을 써서 글의 책임을 회피할 양이면 그 것은 죽은 글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책임을 회피하는 글은 더 이상 한 사람의 양식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고 판단키 때문입니다. 언제든 손교수님과 이 일로 메일 상에서 토론을 한번 해봐도 좋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