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정의 일상만상> 뉴타운 유감
칼럼과 기고 :
2004/01/27 19:03

그러나 선날 연휴가 지나고 날아든 신문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분명히 떨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강북 뉴타운 개발지역으로 선정된 동네에 사는,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이들은 지금 떨고 있다. 그들은 추상적인 두려움이나 공포에 떠는 게 아니다. 집, 몸을 뉘이고 가족들이 한데 모이는 그 공간을, 잃어버리고 말 것 이라는 절박한 삶의 추위에 떨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장은 선거당시 강북과 강남의 균형 잡힌 발전 운운하여 강북지역개발을 공약으로 내 걸었었다. 지금 불고 있는 강북지역의 뉴타운 개발은 그에 따른 후속조치일 것이다. '뉴타운선정 축하'. 개발대상지역이 된 동네어귀마다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다. 하지만 육교철거나 고가도로 철거를 축하하자고 내거는 플래카드처럼 반갑게 보이지 않는다. 육교가 없어진 횡단보도를 건너며 비로소 인간적인 도로를 되찾은 느낌 같은 감격 같은 게 없다는 말이다. 뉴타운 지역 선정으로 '고생 끝, 행복시작'이라고 믿는 이들은 이 말에 이의를 달겠지만 솔직히 나는 '뉴타운 개발'이라는 말이 싫고 무섭다.
뉴타운 개발은 볼 것도 없이 지금 사는 낮은 지붕의 집들은 모조리 뭉개버리고 마천루 같은 아파트군을 들여놓겠다는 말이다. 빼곡한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서면 이지역의 공기는 바람을 타고 나갈 길을 또 잃게 될 것이다. 10 여 년 전 신도시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을 보며 숨이 막히다 못해 일종의 공포마저 느꼈던 기억이 다시 새롭다.
그러나 환경적인 공포보다 인간에 대한 무자비함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강하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뉴타운 지역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 지금 살고 있는 주민들 중 절반은 살던 동네를 떠나야한다고 한다. 쫓겨나게 생겼다는 말이다. 아시다시피 비아파트 동네 (부자동네 말고)주민들 중에는 세입자들이 많다. 좁은 골목 안으로 어깨들 대면서 들어있는 다세대 주택 층층이 좁은 공간 안에는 방 칸수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개발에 따른 보상 문제가 세입자들에게 적용될까? 이들은 당장 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하면 살던 집에서 나와 어디론가 가야할 것이다. 동네에서 가게를 열고 장사하던 상가세입자들은 더욱더 막막하다. 참으로 서러운 개발이다. 왜 모든 개발은 억지와 눈물과 울분을 동반해야하는가?
내가 '아파트'에 살다가 지금 사는 동네의 '연립주택'으로 이사 오던 날, 이집에 살던 새댁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즐거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즉, 구질구질한 연립주택을 뒤로하고 반듯한 아파트로 옮기게 되었으니 삶의 질이 수직적으로 발전했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그러나 지금 이 집이 나는 좋다. 구획정리 된 아파트보다 들쑥날쑥하고 자기만의 구조를 가진 집이 개성 있게 느껴진다. 쓰레기문제나 공동 공간에 대한 관리가 좀더 잘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있지만 그런대로 괜찮다. 무엇보다 엘리베이터 없이 걸어서 오를 내릴 수 있어서 좋고, 눈이 오면 바로 창문을 열고 방충망에 걸린 눈을 만져볼 수도 있고, 과일 장사가 오면 바로 뛰어 내려갈 수 있으니 좋다. 인간의 손길과 발길로 '접촉 가능한 공간'인 것이다.
개발의 원래의미를 되새겨보자. 싹 밀어붙여서 없애고 훤하고 번듯하게 지어 올리는 게 개발은 아닌 것 같다. 결국 지역개발이란 지역주민들이 더 살기 좋게 만들자는 말 아닌가. 지금 사는 터전을 그 환경에 알맞은 조건으로 맞춰 가꾸고 정비하여 변화시키는 게 진정한 개발이 아닌가 싶다. 철거민 내쫓듯이 가난한 사람들을 또 저 어느 변두리로 내몰고 그들의 눈물과 한숨위에 세워진 공간이 과연 우리가 바라는 개발일까?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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