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정의 일상만상>배심원
칼럼과 기고 :
2004/02/10 09:59

<런어웨이>는 총기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총기제조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런 류의 재판에서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총기회사가 거대한 힘을 가진 골리앗이라면,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는 소신하나로 버티는 의뢰인과 그 변호사는 조그만 돌멩이를 쥔 다윗이다. 재벌과 소시민의 대결, 권력과 신념의 대결구도인 이 영화에서 중요한 다른 축이 있다. 바로 배심원단이다 (원래 제목이 <런어웨이 쥬리>이다).
그동안 배심원이 등장하는 영화를 수없이 봤지만 대부분 배심원들은 다소 열외로 다루어졌다. 때로 명판결을 내리는 배심원단도 있었지만, 검은 손에 매수를 당하는 어리석은 배심원도 등장하곤 했다. 어느 영화에선가, 배심원 매수를 눈치 챈 ‘정의’의 변호사가 재판장에게 배심원을 바꾸지 않으면 ‘당신도 뇌물을 받은 것으로 알겠다’고 하여 결국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되는 장면 같은 것도 있었다.
어쨌든 아직 배심원이라는 제도가 영화 속의 이야기인 우리나라에서 이번 영화는 ‘배심원에 관한 모든 것’을 알기에 아주 적격인 영화가 아닌가 싶다. 배심원이 어떻게 선출되는지, 누가 그런 자격을 얻게 되는지, 그 구성과 평결을 내리게 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어 배심원 제도 A-Z라 할만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만약 내가 배심원이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선거인 명부에서 무작위로 선정되니 일반시민이라면 누구든지 가능성 있다는 이야기다. 즉, 나같이 법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도 신성한 법정에 앉아 법의 저울대를 이리저리 재볼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위험한 일 같아 보인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이라는 말로 법정은 일반인들을 다독거려주지만 법정이란 게 아직도 우리에게는 그저 경외스럽기만 한 곳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그런데 내가 내린 결정이 법복을 입은 재판장의 판결과 동일한 무게를 가질 수 있다니! 배심원제도는 법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일반인의 상식, 모든 인간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제도인 것이다. 게다가 배심원 제도는 누구나 뽑히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시민의 의무이기까지 하다!
일부러 영화와 때를 맞춘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때맞춰 이웃나라 일본에서 배심원제도를 도입할지도 모른다는 일본 아사히 신문의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아직 아시아 쪽 사법부에서는 배심원제도가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인데 반해 일본에서는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는 모양이다.
특정 엘리트들이 법을 만들고, 그 법을 다루고, 법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사법민주주의라는 말은 아직도 특정한 사람들만의 주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법정 앞에선 정의의 여신의 두 눈은 천으로 가려져 있다. 영화에서는 법은 원래 눈이 멀었다고 비꼬고 있지만, 정의의 천칭저울을 제대로 잴 수 있는 능력은 법전문가만의 몫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법을 잘 모르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런 것 같다.
(덧붙임: 영화에서는 인권변호사인 더스틴 호프만이 이긴다. 돈과 권력을 동원해 재판에서 승소를 장담하던 법정 로비스트 진 해크만이 가난한 인권변호사의 후줄그레한 양복을 보고 비아냥거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빛나는 것은 정직과 신념만으로 버티다가 이긴 더스틴 호프만의 양복이다. 시민운동 변호사들이 보시면 용기백배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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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속지말고 이제는 고쳐야할 때입니다.
더이상 속지말고 이제는 고쳐야할 때입니다.
누구를 위한 의약분업입니까?
악착같이 의약분업하자는 사람은
1. 잘못된 정책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부
2. 수조원의 수입을 절대로 놓칠 수없는 약사
3. 정부여당의 2중대인 시민없는 엉터리 시민단체
데워지는 물 속에서 아늑해 하는 개구리들 [펌] -
교육사회주의-의료사회주의
저는 2년 전 한국 최고의 엘리트 기업에 컨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원들에 는 정신적 자유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하고 조용하지만 사원들의 가슴에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제가 최고경영자에게 가장 먼저 주문한 것은 ‘몸을 잡으려 하지말고 마음을 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의 경쟁력은 ‘창의력’에 의해 제고되고, ‘창의력’은 ‘자유’에서 생긴다. 분위기가 이렇게 얼어붙어서는 하던 일을 반복할 수는 있어도 절대로 새로운 방법을 창안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감시 풍토를 풀고 경쟁 풍토를 심자. 그러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이렇게 바꾸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 나라에는 국제경쟁력이 절실하고 이를 위해서는 창의력이 길러져야 하며 다시 이를 위해서는 자유공간이 확대돼야 합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 나라에는 자유공간이 점점 더 축소되어 가고 둔재가 천재의 앞길을 막고, 인격파탄아가 인격자를 능멸하며, 노동자가 경영인을 지배하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공부 잘 한다고 위화감 일으키지 말라, 너도나도 한 교실에서 공부해야 한다]. 이게 지금의 ‘교육사회주의’입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천재의 창의력이 양성될 것이며, 국가 일자리의 6%를 혼자서 만들어 냈던 에디슨 같은 과학자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습니까? 지금의 교육사회주의는 창의력을 기르고 있는 외국에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종속되는 가장 빠른 첩경이 아닐까요? 노무현씨는 '노동자가 가진자들의 것을 빼앗아 사는 노동자 천국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징조입니다. 더구나 여기에 일부 호전적인 교사들이 북한은 훌륭하고, 남한은 태어나서는 안될 정권에 의해 태어나 미제의 앞잡이가 되고 있다고 교육합니다.
교육사회주의만 문제인가요? 북한에서는 아프면 죽습니다. 의료 기술과 서비스가 원시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남한에서도 아프면 안 됩니다. 남한도 북한처럼 ‘의료사회주의’가 틀을 잡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장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무조건 얼마, 위를 수술하는 데에는 무조건 얼마씩 받으라는 것이 ‘포괄수가제’입니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붕어빵 진료’라고 말합니다. 식당에게 저녁식사는 무조건 얼마를 받으라는 말과 똑같습니다. 식당주인은 싼 재료를 가지고 속임수를 써서 만원을 받을 것입니다. 유능한 의사가 진료하거나 인턴이 진료하거나 수가가 같아야 합니다. 좀 비싼 약을 처방하여 병을 빨리 낫게 해주고 싶어도 비싼 약을 처방하면 의사가 받는 수가에서 공제합니다. [‘질’로 치료하지 말고 ‘양’으로 치료하라]는 것이 지금의 '의료사회주의'입니다. 화가는 누구나 똑같은 값으로 그림을 팔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유능한 의사야, 좋은 병원아, 위화감 조성하지 마라. 너와 나는 똑같이 대접받고 똑같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풍토에서는 절대로 의료기술이 발달할 수도 없습니다. 수가가 같은데 누가 비싼 의료장비를 사놓으려 하겠습니까? 돈 있는 사람들은 외국 병원을 찾아 나갑니다. 유능한 의사나 시설이 좋은 병원은 뒷돈을 받으려 할 것입니다.옛날에는 병원에서 약까지 받아오는 원-스톱 시스템이었는데, 지금은 다리품을 팔아 약국엘 따로 가야 합니다. 다리가 아파 병원을 찾은 환자가 다리품을 팔아야 약을 구합니다.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사람은 약도 탈 수 없습니다.
조제비, 복용지시비도 따로 내야 합니다. 이 돈이 연간 2조입니다. 이 돈은 전혀 낼 이유가 없는 떼돈입니다.
한국 의사들은 미국이나 일본의 의사들처럼 기술을 개발하거나, 열심히 책을 읽거나, 세미나를 자주 열면서 의료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마음과 시간을 쓸 겨를이 없습니다. 의사들은 보험공단과 싸움하느라 마음과 시간을 빼앗깁니다. 이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입니다.
의약분업, 건강보험공단의 통합! 이는 즉시 해체돼야 합니다. 이 두 가지의 사회주의적 범죄행위(?)로 인해 의료의 질과 서비스는 점점 낙후돼온 반면 국민 부담은 98'년 이전에 비해 2배로 늘어났습니다.
98‘-2003까지 우리가 내는 보험료는 연평균 20%씩 증가했습니다. 이 두 개의 범죄행위가 없었을 때인 95’-98‘에는 연평균 11.%씩 증가했습니다. 2배가 아닙니까? 이는 수탈행위입니다. 공단에 붙어살며 우리가 낸 보험료로 월급을 타면서도 그것도 모자라 해마다 월급을 더 많이 타내려고 데모를 하는 노총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먹여 살리느라 상당한 돈을 수탈당하고 있습니다. 기히 노동자천국인 것입니다.
지난해(2003)에 우리가 낸 보험료는 13조 였습니다. 이중 입원진료비는 5.5조 였습니다. 여기에 정부가 세금으로 보조해주는 돈도 잇습니다. 이 역시 다른 명목의 세금을 통해 우리로부터 걷어 가는 돈입니다. 2003년도 정부 부담은 3.7조, 이 역시 98’-2003간 연평균 증가율 29.4씩 증가해 왔습니다. 우리가 공단에 직접 내는 보험료, 정부가 우리로부터 세금으로 뜯어다가 공단으로 보내는 돈을 합치면 2003년의 경우 16.7조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내는 실질적인 의료 보험료는 매년 21.4%씩 증가해 왔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돈을 내면서도 사람들은 ‘내 돈이 아니니까 남에게 혜택이 가기 전에 본전부터 뽑아보자’는 식으로 병원방문을 상습화합니다. 이런 돈도 무시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망국적 의료사회주의를 빨리 타도해야 할 것입니다. 언론과 민주당이 어울려 의사들을 매도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는 이제 전문가(Professional)가 아니라 뿡어빵 진료를 하는 노동자에 불과해 졋습니다. 언론과 옛날의 민주당 때문에 우리는 수탈당하면서도 아프면 죽는 그런 세상을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장경제의 철학은 자유경쟁-창의력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가 들어서서 옛날의 소련과 지금의 북한처럼 가격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창의력을 죽이고 있습니다. 사회는 배우지 못한 노동자-기층세력이 통제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은 데워지고 있는 물 속에서 행복해 합니다.
노무현의 숨겨진 딸?? 盧일가중 비리있는듯..
노무현의 숨겨진 딸?? 盧일가중 비리있는듯..
최근 경찰이 청와대 고위층의 사주를 받아 盧에게 비판적인 시민단체를 압수수색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盧씨 일가의 비리가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다.
경찰이 盧씨의 숨겨진 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자 마자 곧바로 경찰이 시민단체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했다.
일각에선 경찰이 청와대 고위층의 사주를 받아 수사에 착수한것이라는 의혹마저 나오고있다.
청와대가 이같이 민감하게 나오는 이유에 대해 盧씨 일가중 누군가가 정치권이나 재계와의 비리에 크게 연루됐다는 의혹이다.
노무현씨는 지난 대선때부터 개표조작의 의혹속에서 당선됐으며, 양길승 실장의 몰카 비리, 노건평씨 주가조작등 온갖비리의 온상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다.
이번에는 노지연씨의 비리혐의를 은폐하려는 청와대와 경찰의 행보가 의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