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의 평화바이러스> 박정희기념관과 친일인명사전
칼럼과 기고 :
2004/02/20 10:36
[삽화 하나] 박정희 기념관
박정희기념관은 지금 건립 중단 상태다. 행정자치부가 709억원이 들어가는 기념관 건립 및 운영 사업비 가운데 건립비 214억의 절반쯤인 100억원을 국민모금으로 확보하는 조건으로 국고보조금 200억원 지원을 약속했으나, 기부금 모금이 늦어져 국고지원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공사중단엔 시민사회의 줄기찬 공사중단 촉구도 크게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기념관 건립을 주도해온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회장 신현확)는 2003년 3월 중순 ‘기념관 건립을 지지하는 국민들로부터 모두 100억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는데, 그 내역을 들여다보면 ‘국민모금’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전경련 50억, 무역협회 10억원, 대한상공회의소 10억원, 엘지 10억원 등 대부분 특정시기에 집중 ‘모금’(!?)된 뭉칫돈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자율적 국민모금’이라는 기본원칙에 어긋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재일동포 출신 금융인 이아무개씨의 5억원을 포함한 12억원 정도이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사회-역사적 논란에 하잘 것 없는 내 의견을 덧붙이려는 게 아니다. 이글에서 내 관심사는 ‘자율적 국민모금’이라는 대목이다. 신문과 방송을 보다보면 ‘대통령 박정희’ ‘민족지도자 박정희’를 추앙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기득권 세력으로 일컬어지는 돈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데 왜 박정희 기념관 건립 모금에 많든 적든 추렴을 하는 사람은 적은 것일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 전기를 집필해온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이사 겸 편집장님은 얼마나 냈을까?
[삽화 둘] 친일인명사전
지난 1월1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국민성금 모금 캠페인을 벌인 결과 열흘 만에 2만5천여명의 국민과 네티즌이 참여해 목표액 5억원을 넘겼다는 사실을 공표하기 위한 자리였다. 애초 이들은 3ㆍ1절까지 1억원을 넘기고, 8월15일 광복절까지 5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고 한다.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 열기가 모금 기획 주체들의 판단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 16대 국회의원들이 제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 관련 예산 항목을 삭제하는 바람에 중단될 뻔 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은 말의 바른 뜻에서 ‘국민의 힘’으로 이어지게 됐다.
두 삽화를 대하는 느낌이 어떠신가. 메아리없는 국민모금과 폭포수 쏟아지듯 열화와 같은 참여가 이뤄진 국민모금. 다카키 마사오란 또 다른 이름을 지녔던 만주군관학교 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거대한 기념관 건립 사업과, 겨우 5억원의 사업진행비조차 국회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바람에 중단될 뻔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
이 둘 사이에서 한국사회가 지금껏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과 갈등의 뿌리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인가? 이 두개의 서로 다른 삽화가 미래의 한국 역사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기획되고 실천될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고 말한다면, 예단이 될까? 삶이란, 역사란, 잔머리와 세치 혀가 아니라 그저 몸으로 우직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굳이 성자와 대학자의 가르침을 빌려야만 알 수 있는 것일까.
[삽화 셋] 이라크 평화봉사단
2월13일 저녁 경기도 수원 한국방송연수원에선 한국사회포럼2004 첫날 행사의 하나로 ‘파병반대운동의 평가와 과제’(참여연대 주관)라는 테마토론이 이뤄졌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평화활동가 임영신씨는 그 귀추가 주목되는 ‘활동계획’을 밝혔다. “…이라크 추가파병안에 찬성한 국회의원 155명의 아들, 딸 명단을 파악해, 이들에게 이라크 평화봉사단에 참가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낼 계획….”
아, 정말 궁금하다. 임씨의 제안에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 2세들이 응할지.
난 정말 확인하고 싶다. 이땅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프랑스어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뜻함)라는 것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부모의 업을 짊어지고, 코뿔소의 외뿔처럼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어떤 이들을 보고 싶다.
박정희기념관은 지금 건립 중단 상태다. 행정자치부가 709억원이 들어가는 기념관 건립 및 운영 사업비 가운데 건립비 214억의 절반쯤인 100억원을 국민모금으로 확보하는 조건으로 국고보조금 200억원 지원을 약속했으나, 기부금 모금이 늦어져 국고지원을 중단시켰기 때문이다. 공사중단엔 시민사회의 줄기찬 공사중단 촉구도 크게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기념관 건립을 주도해온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회장 신현확)는 2003년 3월 중순 ‘기념관 건립을 지지하는 국민들로부터 모두 100억원을 모금했다’고 밝혔는데, 그 내역을 들여다보면 ‘국민모금’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전경련 50억, 무역협회 10억원, 대한상공회의소 10억원, 엘지 10억원 등 대부분 특정시기에 집중 ‘모금’(!?)된 뭉칫돈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자율적 국민모금’이라는 기본원칙에 어긋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재일동포 출신 금융인 이아무개씨의 5억원을 포함한 12억원 정도이다.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둘러싼 사회-역사적 논란에 하잘 것 없는 내 의견을 덧붙이려는 게 아니다. 이글에서 내 관심사는 ‘자율적 국민모금’이라는 대목이다. 신문과 방송을 보다보면 ‘대통령 박정희’ ‘민족지도자 박정희’를 추앙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기득권 세력으로 일컬어지는 돈많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데 왜 박정희 기념관 건립 모금에 많든 적든 추렴을 하는 사람은 적은 것일까.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박정희 전기를 집필해온 조갑제 월간조선 대표이사 겸 편집장님은 얼마나 냈을까?
[삽화 둘] 친일인명사전
지난 1월1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오마이뉴스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국민성금 모금 캠페인을 벌인 결과 열흘 만에 2만5천여명의 국민과 네티즌이 참여해 목표액 5억원을 넘겼다는 사실을 공표하기 위한 자리였다. 애초 이들은 3ㆍ1절까지 1억원을 넘기고, 8월15일 광복절까지 5억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고 한다.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 열기가 모금 기획 주체들의 판단을 훌쩍 뛰어넘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 16대 국회의원들이 제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어 관련 예산 항목을 삭제하는 바람에 중단될 뻔 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은 말의 바른 뜻에서 ‘국민의 힘’으로 이어지게 됐다.
두 삽화를 대하는 느낌이 어떠신가. 메아리없는 국민모금과 폭포수 쏟아지듯 열화와 같은 참여가 이뤄진 국민모금. 다카키 마사오란 또 다른 이름을 지녔던 만주군관학교 출신 박정희 대통령의 거대한 기념관 건립 사업과, 겨우 5억원의 사업진행비조차 국회가 예산을 배정하지 않는 바람에 중단될 뻔했던 친일인명사전 편찬 사업.
이 둘 사이에서 한국사회가 지금껏 겪고 있는,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과 갈등의 뿌리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인가? 이 두개의 서로 다른 삽화가 미래의 한국 역사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기획되고 실천될지 시사점을 제공해준다고 말한다면, 예단이 될까? 삶이란, 역사란, 잔머리와 세치 혀가 아니라 그저 몸으로 우직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굳이 성자와 대학자의 가르침을 빌려야만 알 수 있는 것일까.
[삽화 셋] 이라크 평화봉사단
2월13일 저녁 경기도 수원 한국방송연수원에선 한국사회포럼2004 첫날 행사의 하나로 ‘파병반대운동의 평가와 과제’(참여연대 주관)라는 테마토론이 이뤄졌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평화활동가 임영신씨는 그 귀추가 주목되는 ‘활동계획’을 밝혔다. “…이라크 추가파병안에 찬성한 국회의원 155명의 아들, 딸 명단을 파악해, 이들에게 이라크 평화봉사단에 참가해달라는 초청장을 보낼 계획….”
아, 정말 궁금하다. 임씨의 제안에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 2세들이 응할지.
난 정말 확인하고 싶다. 이땅에도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프랑스어로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를 뜻함)라는 것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부모의 업을 짊어지고, 코뿔소의 외뿔처럼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가는 어떤 이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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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사 손석춘은 北노동신문 논설위원..
한겨레 신문사 손석춘은 北노동신문 논설위원..
한겨레 신문사 논설위원인 손석춘이란 작자가 오마이뉴스에 청와대의 수장인 노무현씨를 비난했다.
현재 한겨레 신문사는 구독율이 조선과 동아일보 2개 언론사를 합친 5분의 1도 안돼는 저급한 호남지역언론사다.
손석춘이란 작자는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던 盧씨의 행동을 비난하면서 파병반대를 주장했던 북한 지도부의 결정이 옳았다고 한다.
또손석춘은 청와대에 노무현같은 사람이 없어져야 한다면서
청와대에는 조선인민공화국의 수장이 앉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손석춘...이런 미친 개새끼가 대한민국에 있단 말인가 ?
과거 6.25 동족상잔의 침략자요, 北동포들의 인권을 탄압하고 말살하고 군림하는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세습 정권을 찬양하는 미친 개새끼가 아니고 뭔가 ?
지금이라도 정보수사기관은 손석춘을 사법처리할것을 엄중히 촉구한다.
노무현씨 불법경선자금 첫확인
노무현씨 불법경선자금 첫확인
노무현씨 불법경선자금 첫확인
"최도술씨 비서관 재직 시절에 4700만원 받아"
(조선일보 기사)
▲ 안희정씨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安大熙)는 1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安熙正·구속기소)씨가 지난해 3월 대우건설로부터 대선후보 경선자금 명목으로 5000만원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노 대통령의 경선자금 문제와 관련, 정치권에 파장이 예상된다. 안씨는 이를 포함, 대우건설에서 총 1억75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안씨가 지난해 3월말과 8월 반도건설 등 부산지역 기업체 2곳에서 각각 2억원씩 총 4억원을 받은 혐의로 2일 추가기소키로 했다. 안씨가 돈을 받은 시점은 나라종금에서 퇴출 저지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한창이거나,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이다.
검찰은 최도술(崔導術·구속중)씨가 청와대 총무비서관 재직 시절인 지난해 3월 이후 기업체들로부터 4700만원을 받은 혐의를 확인, 측근비리 수사를 진행 중인 특검팀에 이를 넘길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중 2100만원은 지난해 3월 삼성물산 이모 상무로부터 건설 수주 청탁 명목으로 세차례에 걸쳐 받은 돈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불법 대선자금을 받거나 이 돈을 유용한 의혹이 있는 정치인 2∼3명을 금주 중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오너급 인사를 포함, 정치권에 불법정치자금을 제공한 기업 관계자들에 대해서도 이르면 금주부터 공개 소환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검찰은 또 지난달 30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기각된 한나라당 박상규(朴尙奎) 의원에 대해 보강조사를 거쳐 금주 중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의원 외에 SK에서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있는 정치인 2∼3명에 대해서도 조만간 본격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검찰은 ‘대선 당시 동원참치가 노 캠프측에 50억원을 제공했다’는 민주당 김경재(金景梓) 의원의 의혹 제기와 관련, 제기된 고소·고발 사건을 대검 중수1과에 배당하고 진위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인촌 김성수는 친일파가 아니고 우리의 미래의싹 어린이의 스승인가?
김성수에 관하여 검색하다보니 이런글이 올라 있는데 올린 사람은 무슨의도로 우리의 가치기준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나? 역사는 헜소리라도 지껄이면 역사가 된다고 믿는 자인가? 왜 이들은 가만히도 있지않고 꺼꾸로 어린 싹들을 인도하는가? 제 조상이 좋아 보이면 자기도 조금 좋아진다고 망상을 떠는 것인가? 이재형은 누구인가?
이재형의 초등사회 역사인물 학습7
7.독서 배울점
김성수
민족교육 사회봉사 김성수
정치가이자 교육가이며 언론인이기도 한 김성수는 1891년 전라 북도 고창에서 호남의 거부 김경중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느 어린이나 대개 마찬가지겠지만 김성수 역시 어린 시절에는 장난이 매우 심한 개구쟁이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15세 무렵부터 철이 들기 시작하더니 언제 개구쟁이 노릇을 했느냐 싶게 공부에 빠져들었으며 18세가 되자 신학문에의 열망을 안고 일본으로 유학의 길에 올랐습니다.
일본에서 정치 경제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그는 육영 사업에 뜻을 두고 중앙 학원을 인수하여 많은 인재를 배양하였으며 경성 방직 회사를 창립하여 광목을 대량으로 생산 보급함으로써 우리 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인들이 생산하는 비싼 광목을 사 쓰지 않아도 되도록 하였습니다.
이 무렵 우리 나라는 이미 국권을 일본에게 빼앗긴 뒤여서 우리 민족의 의사를 대변해 줄 수 있는 언론 기관이 절실히 필요하였습니다. 이에 김성수는 많은 돈을 들여 《동아 일보》를 창간하였습니다. 《동아 일보》는 지면마다. 일본의 악독함을 꾸짖고 대한 독립의 기운을 불어 넣었기 때문에 초창기부터 매우 인기가 좋았습니다. 1932년 김성수는 다시 보성 전문 학교를 인수하여 훗날 사립의 명문 고려대학교를 계승, 발전시켰으며 해방이 된 후에는 정계로 진출하여 1951년에는 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던 이승만 박사가 독재 정치를 자행하자 정치에 환멸을 느껴 부통령직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교육 보급으로 인재를 배양하고 생산 사업으로 민족 자본을 형성하며 언론을 통해 민중을 계몽하느라 김성수는 일생 동안 많은 돈을 썼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매우 검소하여 음식에서부터 옷차림에 이르기까지 낭비가 되지 않도록 많은 신경을 기울였으며 자녀들에게는 2, 3분만 자리를 뜨더라도 반드시 전등을 끄도록 하였습니다.
김성수의 일생을 통해 본 사회 봉사 정신과 절약 정신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나라 사랑이 무엇인가를 일깨워 줄 것입니다.
부모님께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