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포토뉴스 :
2004/02/25 09:39


시인 김광규는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때묻지 않은 고민을 하며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불렀던 시절'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를 통해 그리워했다.
아무도 귀 귀울이지 않지만 누구도 흉내낼 수 없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무엇인가를 살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었던 그 힘들은 세월의 무게까지 거스르지는 못했다. 20여 년이 지나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월급이 얼마인가를 물으며 달라진 연락처를 받아 적고'는 쓸쓸하게 헤어지는 뒷모습도 역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의 일부다.
그로부터 다시 몇십년 후에는 시인 최영미는 '또다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라는 시로 그녀 나름의 추억을 불러낸다.
영화촬영지에서 만난 4-50년 전의 서울 종로거리는 이제는 호호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추억을 불러낸다. 하얀 머리에 허리가 굽어진 그들도 그 당시에는 빛나던 젊음으로 그 거리를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한국전쟁 후 궁핍하기만 했던, 반민주적이다못해 론 야만적이기까지 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 수 밖에 없다면 그것은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라도 다시 소유하고픈 '젊음'이라는 것 때문일 것이다.
당시 유행1번지였던 '화신백화점'은 이제 버스정류장 이름으로나 남아있다. 그 자리는 도시 한복판에 우주선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밀레니엄타워가 대신하고 있다. 2004년 종로거리에도 '저마다 목청껏 부르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들이 울려퍼질 것이다. 그렇게 그들만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만들어지고 있을 것 같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