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채록하면서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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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22일. 우리에게 목불인견의 학살현장을 증언하는 한편의 보고서가 전해졌다. 거리에는 시체들이 썩어가고 고도로 훈련된 저격수들에 의해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사살되며, 아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나온 아버지가 자기 집 정원에서 총에 맞는 광경. 이 모든 것은 실제상황이다. 지역은 이라크 팔루자, 학살자는 미군이다.

지난 4월 이라크로 향한 평화활동가 윤정은 씨는 사람은 물론이고 물과 음식, 그리고 구호품마저도 봉쇄된 팔루자의 학살현장을 349명의 팔루자 주민의 증언으로 재연해 이라크 밖으로 전송했다. 팔루자 민간인 학살증언 보고서가 완료되던 시점인 22일 새벽, 메신저를 통해 바그다드에 있는 윤정은 씨를 만났다.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나. 팔루자 학살 상황을 어떻게 접했나.혹시 팔루자에 다녀왔나.

"나는 바그다드에 있다. 팔루자엔 현재 아무도 못 들어어간다. 팔루자 주민들도 일단 피난나온 후에는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4월 4일부터 미군에 의해 완전봉쇄된 상태다. 어떤 외신기자도 현지인도 못 들어간다. 그뿐이 아니다. 물과 음식 그리고 구호품도 전달될 수가 없다.

처음에 팔루자 학살이 이뤄진다는 소식을 듣고는 정신을 못 차렸다. 팔루자가 바그다드에서 굉장히 가깝다. 차로 30분 정도 걸린다. 팔루자주민이 학살되는 폭발음과 교전소리는 고스란히 바그다드로 전해졌다. 밤에는 더 크게 들렸다. 소리가 날때마다 지금은 몇 명쯤 죽었을까 생각하면 끔찍했다."

팔루자에서 학살된 민간인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팔루자 전체 민간인 피해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봉쇄 이후 사살이 급증하면서 집계가 전혀 안된다. 미군이 의도적으로 안한다고 본다. 외신에서는 600명 이상에서 1200명 이상의 부상으로 보도한다. 이번 보고서에 넣은 자료는 프랑스의 가디언지의 보도를 참조했다.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통계가 없다. 이번 이라크 전쟁의 희생자 대부분이 그렇듯이 말이다. 팔루자는 정보가 통제되어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팔루자 인구 20만명중 3분의 1이 피난길이라고 보도했다. 이라크인들이 팔루자학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이젠 분노를 넘어셨다."

팔루자 학살 증언보고서를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바그다드 주민들이 팔루자 주민들의 고통을 보다 못해 팔루자에 구호품을 전달하려는 행렬을 시작했다. 4월 7일부터다. 나는 그 소식을 한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팔루자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팔루자와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도로는 완전히 봉쇄되어 있었고 연일 일어나는 폭발과 교전으로 현지인은 물론 외국인도 매우 위험해지기 시작했다. 외국인은 접근만 해도 사살된다는 발표가 났다. 안내한 현지인까지 말이다. 그러다 팔루자에 부모와 형제 등 가족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를 만나고 나서는 이라크인 스스로가 팔루자 학살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학살증언보고서를 만들게 된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같이 증언을 채록하고 보고서를 만든 두 이라크인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팔루자로 들어갈 길을 찾을 무렵 나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팔루자에서 엄청난 민간인 학살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은 전해듣는데, 길은 봉쇄되어 있지. 외신은 전혀 보도하지 않지. 그러다 알리-알-두레미라는 청년을 만났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라크인 알리는 전후 극심한 실업난으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바그다드에 머물러 있었다. 팔루자 학살이 시작되자 알리는 가족들이 있는 팔루자로 들어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목숨을 걸고 학살현장으로 들어가려던 것이었다. 차로 30분이면 가는 거리에 가족이 위험에 처해있고, 자신은 못 간다고 생각해 봐라. 알리도 나도 미칠 지경이었다.

알리가 팔루자로 떠나기 하루 전, 나는 알리에게 말하고 싶었다. 꼭 살아서 돌아와라.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와 네가 본 모든 것을 다 증언해야 한다. 민간인 학살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꼭 돌아와야 한다라고. 그런데 알리는 영어를 잘 못해 나는 이 말을 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연히 한번 만났던 전직 아랍어문학 교수를 찾아 나섰다. 무작정 말이다.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은 폭발로 인해 연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위험한 지역을 지나야 했다. 알리와 내가 그 교수를 찾아가던 날은 미군이 아예 길을 통제했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차를 세우고 알리에게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데까지는 걸어가자고 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찾아갔다. 그녀가 바로 이번에 팔루자학살 증언채록을 함께 한 세르민이다. 세르민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알리에게 전해주고 나서, 우리가 함께 이것을 증언하자고 했다. 그렇게 한 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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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 담긴 증언은 어느 지역에서 누구를 만나 듣게 된 것인가.

"알리는 팔루자로 들어가려고 힘썼다. 하지만 인근마을까지는 갈 수 있었지만 팔루자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알리는 팔루자 인근 피난민이 대피한 곳까지 가서 민간인학살에 대한 증언을 채록해 왔다. 세르민과 나는 바그다드로 피신해 온 팔루자주민을 만났다. 방이 하나 둘 있는 집에 40명에서 70명이 피신해 있는 팔루자 인근만큼은 아니지만 바그다드의 피난상황도 심각하다. 주로 빈민가를 중심으로 팔루자난민들이 대피해 있다.

우리는 4월 13일, 15-17일, 19일 이렇게 5일에 걸쳐 팔루자난민 349명을 만나 4월 5일에서 19일까지 미군에 의한 팔루자 민간인 학살에 대한 증언을 들었다. 이들 중 12명의 증언을 뽑았다. 우리가 정리한 팔루자학살증언보고서에는 증언으로 드러난 민간인 학살과 미군의 공격 외에도 이번 학살의 시작과 배경, 그리고 난민현황도 함께 정리했다."

(◀ 사진 : 사드르시티 내 위치한 알 사워드르 병원측에 의하면 이번 공격에서 미군은 환자를 후송하는 응급차를 공격하는 등 전쟁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인도주의적인 정신에도 어긋나는 일들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윤정은)

문자로 전해지는 증언만 읽어도 섬뜩하다. 개가 시체를 뜯어먹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도 있더라. 학살 규모와 정도가 우려하는 것 이상인 것 같다.

"처절한 증언들이다. 태어난지 42일밖에 안된 아기가 전쟁을 피해 사막을 거쳐 와야했다. 지금 팔루자에는 길거리에 시체가 나뒹군다고 한다. 미군 저격수 때문에 시체를 치우러 집밖을 나설 수가 없는 상황이다. 미군은 한편으로 일시적 휴전을 하는 태도를 취하면서 휴전 발표 90분 후에 F16과 탱크로 다시 진입시도했다. 그리고 10일날 다시 충돌하고 희생자가 속출했다. 그 뒤로는 미군은 계속 폭격하고 있다. 지금은 폭격보다도 시내에 배치된 저격수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더 심각하다. 진입로에서 무장세력과 교전 상황도 심각하다."

미국의 팔루자 민간인 학살은 규모나 정도가 너무 심각하다. 그런데도 세계언론은 이런 상황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있다.

“언론과 전쟁이 어떻게 맞물려있는지 메커니즘을 볼 필요가 있다. 학살이나 교전이 벌어진 상황에서는 현지인들을 만나는 경우가 별로 없고 대부분 외신에 의존하게 된다. 만나는 현지인의 경우도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현장으로 접근하지 못한다. 또 현장에 접근할 수 있는 기자들이 한정되어 있다. 미군의 허락을 받아 미군의 헬기로 투입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자유롭기 어렵다. 그렇게 외부로 소식이 전해져왔다. 팔루자는 그 정도도 불가능하다. 어떤 외신도 팔루자에는 못 들어갔다. 완전 봉쇄다.”

봉쇄라면 어떤 모습인가. 길을 다 막았다는 뜻인가.

“미군 장갑차와 탱크가 팔루자 전 지역을 뺑 둘러쌌다. 팔루자로 통하는 모든 도로는 군인과 무기가 배치되어 있다. 그 근처에 민간인이 왔다갔다하면 그냥 사살이다. 바그다드와 팔루자간 도로 위엔 아무도 없다. 출발하는 바그다드 지점에서부터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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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었나.

"교전소리만 들어도 팔루자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확실한데 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괴롭고 어려운 점이었다. 개인적인 어려움은... 너무 많아서 얘기 못하겠다.(웃음). 이제는 괜찮다. 적응해가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옆자리에 함께 앉아있는 것,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사살되는 광경이나 테러현장을 직접 목도한 적이 있는가. 본인에게도 위험한 일이 많았을 것 같다. 괜찮나.

"노 코멘트다.(웃음) 테러현장은 수도 없이 본다. 앞에 가던 차가 펑 터지고, 불에 활활 타는 일은 흔할 정도다. 위험은 언제나 매일 있다. 일상이다. 전쟁이 일상화된 생활이다. 이라크인들이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다. 호텔 앞 조차도 혼자서 자유롭게 걸어다닐 수 없다. 어제부터는 아예 완전무장한 미군들이 왔다갔다 한다. 바로 앞 도로에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미군의 탱크와 장갑차가 지나다닌다. 작은 돌발사고로 인해 군인들이 시민을 향해 총을 난사할 수 있는 전시상황이다. 조심하고 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사진 : ◀ 지난 16일(금) 알-사드르시티에서 수니-시아 연합 금요예배, 이라크의 미군에 의한 적개심은 극에 달했다. 종교지도자은 미군에 대해 끝까지 저항하자고 연설했다. ⓒ윤정은)

목숨을 걸고 이라크에 머물도록 하는 힘은 무엇인가.

"어른들이 그러지 않나. 그냥 살아지는 거라고. 전쟁통에도 꽃도 피고 새도 날아다니고 그런다. 사람들은 슬퍼하다가도 서로 이해하고 기뻐하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이곳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벌써 몇번의 전쟁을 겪었나. 이란-이라크전쟁, 걸프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과장하면 하루도 전쟁이 없었던 날이 없었던 거다. 그런데도 이라크인들은 참 낙천적이다. 함께 증언채록했던 세르민에게 이런 얘길 했더니, "우리는 희망을 갖고 있다. 그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라고 답하더라. 정말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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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을 넘어 바그다드에 도착한 팔루자 아이들.ⓒ윤정은

증언채록 중에 만난 팔루자주민 중 기억에 남는 이가 있었을텐데.

"증언채록하는 첫날은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 채록과정은 아니지만 바그다드 시민들이 모스크에 모여 "팔루자 학살 중단"을 외치는 대중집회를 했는데, 팔루자 얘기가 나올때마다 곳곳에서 사람들이 앉아서 울었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들을 보며 나도 울컥했다.

증언채록 마지막날 만난 한 할머니가 마음에 남는다. 증언채록하고 집을 나서는데 와락 안기더니 막 흐느꼈다. 가냘픈 흐느낌이 온몸에 전달되는 것 같았다. 보고서에 그분의 채록은 없다. 그분은 내내 울기만 했다. 한마디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또 보고서 마지막에 실린 시각장애인 할머니도 마음에 남는다. "더 이상 이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말. 그녀는 죽고 싶다며 식사를 거부하고 있다.

아이들의 눈을 볼때가 가장 슬프다. 전쟁을 목격하고 사막을 넘어 죽음을 보고 그 영혼에 입을 상처를 생각하면 슬프다. 하지만 아이들의 눈은 너무나 맑다. 그러한 아이러니한 풍경에 가끔 넋을 잃기도 한다."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국제평화운동가들을 비롯해 이번 팔루자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국제적 움직임은 없나.

"아직 봉쇄가 너무 강고해 움직일 수 있는 활동반경이 좁다. 어제는 '광야의 목소리'라는 단체의 활동가가 팔루자 진입을 시도하다가 근처도 못가고 인질로 잡혔다. 근처만 가도 그렇다. '점령감시(occupation watch)'와 '이라크에서의 인권(humanright in Iraq)'이라는 단체가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에 대한 감시보고서를 내고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다."

이건 전쟁이다. 서로 총 쏘고, 폭탄이 비오듯 쏟아진다. 우리가 현장에 가고 싶어 하지만, 사실 현장에 들어가도 죽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지금은 현장에 들어가기 전에 무장세력들에게 잡히지만. 지금 바그다드도 외국인의 신변이 위험한 상황이다."

팔루자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이라크 외부로 팔루자 민간인 학살의 실체가 알려지는 것이다. 동시에 하루빨리 미군의 팔루자 봉쇄가 풀려야한다. 지금 많은 팔루자 주민들이 대피나와 있는데, 이들의 소원은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미군은 이 학살을 더 이상 은폐하지 말고 공개하고 사죄해야한다. 사죄방법은 이라크에서 철수하는 것 아니겠나. 더불어 한국은 이 전쟁에 가담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한다. 두말할 것 없이 파병을 철회해야 한다."

이미 파병한 각 국이 파병철회를 연이어 선언하고 있는데 한국만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는 파병을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반복해서 내고 있다.

"결국 우리의 문제다. 직접적으로는 한국군을 파병해야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나, 이라크전쟁, 특히 지금 벌어지고 있는 민간인 학살에서 선명하다 못해 선혈낭자한 타인의 고통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그리고 이 고통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성찰하고 결정해야 할 때다. 우리 또한 지난 시간동안 광주나 미군의 민간인 학살을 겪지 않았나."

1년 동안 이라크에 머물 계획이라고 들었다. 이번 팔루자 학살 증언보고서 이후 계획을 말해달라.

“전쟁의 흔적과 그럼에도 일상에서 유유히 흐르는 이라크인들이 지키는 평화의 힘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하려고 지난 4월 이라크에 들어왔다. 1년 동안 머물 계획으로. 그런데 이곳에 오자마자 이라크 상황이 제2의 전쟁으로 치닫고 급기야는 팔루자 민간인 학살을 알게 됐다. 증언채록을 하면서 학살의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은 팔루자문제를 기록하며 이라크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을 생각이다. 이라크평화네트워크로 모인 한국의 활동가들과 이곳 활동가들, 그리고 이라크 평화를 위해 싸우는 국제활동가들과 함께 찾아보려고 한다. 진짜로 어서 빨리 전쟁을 끝내야 한다.”

최현주 기자
2004/04/24 11:16 2004/04/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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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성태 2004/04/25 12:19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수고, 윤정은
    오랜만입니다. 바그다드에 있었구만. 곧 책이 나올 모양인데, 함께 축하할 수 없겠군. 조심하고, 건강하고, 조만간 다시 봅시다.

  2. 권은정 2004/04/26 11:59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장하다,윤정은
    보고싶은 정은씨,
    무엇보다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얼마전 문득 참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게 인터뷰 기사를 보게되었습니다.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참으로 많은 것 같아요. 정은씨가 지금 하는 일은 그중에서 아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울게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절망보다 희망을 더 많이 생각하는 그곳 사람들과 함께 굳건히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은씨의 활동으로 우리나라에 더 많은 평화의 기운이 뻗어나가기를 더불어 바랍니다.

  3. 김미란 2004/04/26 20:47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정은아! 꼭 무사히 돌아오길
    길을 떠나는 너에게 해줄 말은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의 목소리를 라디오를 통해, 이렇게 글로 만나는 것은 반가움이며 동시에 미안함이다. 몸도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데 어디서 그런 강한 의지가 나오는지...
    제발 무사하길 바라며 사랑의 힘으로 견뎌내길 바란다.

  4. 김한별 2004/05/03 21:3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열심히 하세요.

    이런 분들을 볼 때마다

    편하게 살려고 하는 제가 얼마나 비겁한 지 깨닫게 됩니다.

    하루 하루 나태해지고, 무관심해져 가는 저를

    자꾸만 깨게 하는 것 같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일하시는 것,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열심히 하세요..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빨리 파병을 철회하길 바랍니다.

    일본이, 미국이 우리에게 저질렀던 그 치떨리는 만행을

    우리도 이라크인들에게 자행해서는 안되니까요.

  5. 김찬숙 2004/07/17 11:5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윤정은님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할지...
    목숨을 걸고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시는 윤정은님..

    ,...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