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다큐멘터리 <송환>의 김동원 감독
인터뷰 :
2004/05/10 12:44
묻혀있는 역사가 바로 우리의 황금어장이지
1991년 결성된 다큐멘터리 제작 집단 푸른영상. 그러나, 힘들게 찾아간 사무실 초입은 푸르름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어 보였다. 먼지가 쌓여 있고 어두웠다. 선물로 가져간 화초가 어울리는 곳을 찾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동네 아저씨 같은 김동원 감독과 인터뷰를 하면서 담백함과 순수함, 그리고 가난의 철학에 담겨있는 더 진한 푸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 감독에게는 기교가 없다. 욕심이 없다. 그 때문에 <송환>이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의 대작으로 탄생한 것은 아닐까?
내 목소리? 아직도 듣기만 하면 닭살이 돋아

“다음 주부터 지방순회상영이 있어. 5월에만 전국 30곳에 상영이 예정되어 있어. 다 가고 싶지만 대학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너무 많이 겹쳤네. 10군데 정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애.”
- ‘독립다큐계의 맏형’이라고 불리는데, 정작 본인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이 많은 냄새가 풍기잖아. 요새는 독립영화에 관심있는 20대 초반의 친구들이 ‘아빠’라고도 불러(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젊어졌으면 좋겠는데”
- 김 감독의 목소리에 반한 사람들이 많다.
“내 목소리? 난 아직도 듣기만 하면 닭살이 돋아.(웃음) <송환>같은 경우 직접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여러 고민 끝에 한 건데 다시는 안 할거야”
- 장기수 선생들을 만나러 가던 1992년. 간첩을 만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영화에 잘 드러나 있었다. 당시 북한에 대한 이해는 어느 정도였나?
"80년대 말부터 북한 바로알기 운동이 있었잖아. 내가 반공교육을 통해서 들어온 북한과 많이 다를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통일에 대한 갈증도 있었고.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북한에 대한 이해가 더 있었다고 볼 수 있겠지. "
묻혀있는 역사가 바로 우리의 황금어장이지
- 10년동안 장기수 선생들의 삶을 담았다. 그 기간 동안 계속 카메라를 잡게 한 힘은 무엇이었나?
“어떻게 10년동안 계속 잡겠나. 그 기간 내내 촬영한 것은 아니야. 한달에 한 번밖에 어르신들을 못 만난 적도 있고. 다른 작품도 했고, 돈도 벌었어야 했잖아. 같이 있었던 시간을 따지면 100분의 일도 안 될걸. 한 동네라 같이 산에 다니며 놀았던 거지. 난 가벼운 사람이야. 싫증도 잘 내고. 게으르기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오히려 끝냈을 거야. 흔들리지만 부러지지는 않았던 거지. 작업이라고 생각했다면 내 스스로 떨어졌을 걸? 작품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좋았던 거야.”
-다큐멘터리 역사상 <송환>은 최대 관객을 모았다. 성공의 요인을 뽑자면.
“우선 할아버지들이 매력 있잖아.(웃음) . 분단상황에서 말이 안되는 비극들도 얼마나 많어. 우리 역사는 용광로 같이 끓고 있어서 굉장히 드라마틱 하거든. 다큐하는 우리한테는 묻혀있는 역사들이 황금어장이지. 감춰진 사실들을 알게되면서 받는 당혹감이 관객들을 끌어들이지 않았겠나”
- <송환>에 담아내지 못해 아쉬운 것은 무엇인가?
"장기수 선생들이 남한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분들이 우리를 도와준 것도 참 많았어. 특히 봉천동 빈민투쟁 했을 때는 직접 참여하시기도 했거든. 근데 내가 너무 바빠서 카메라로 못 찍었어. 나중에 편집할 때 보니까 그 때의 필름이 없는 것이 제일 아쉽더라구."
-선생들이 말씀을 많이 안 하는것에 서운하지는 않았나.
“사실은 말 많이 했어. 선생에 따라서지만. 내가 몰라서 못 물어보는 것도 있었고. 민감한 것은 말씀을 돌리시던가. 어떤분은 아예 손부터 내저으셨지. 처음에는 관계가 서먹서먹하고. 피해의식 때문에 말씀을 삼가셨는데. 나중엔 말씀을 너무 많이 하셔서 막기도 했지.(웃음)”

자유롭게 북한에 계신 선생들을 찍고 싶어
- 북한에 송환된 선생들한테 테잎을 보내드렸나?
“받으셨는지 확신할 수 없어서 3번 보내드렸지. 마지막 외신기자편에 보낸 것은 확실히 북측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알았어. 조창손 선생님을 비롯한 장기수선생들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북측에서 본 것은 확실한 것 같애.”
- 선생들이 무척 보고 싶겠다. 북에 갈 예정은?
“가을 쯤 가고 싶어.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다른 단체 방문할 때 같이 가는 거야. 비공식적으로 할아버지들을 만나는 방법인데, 절차는 비교적 간단하고 비용은 싸. 하지만 촬영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야. 두번째는 촬영하겠다고 북측에 공식 공문을 보내는 건데, 허가절차도 복잡하고 비용도 비싸고. 설사 북측의 허가를 받는다고 해도 편한 상태에서 촬영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어. 감시받는 상황에서 찍어야 될테니까.”
- <송환>의 수익으로 푸른영상 재정에 도움이 됐는가?
“흥행으로 따지면 2천만원 벌었어. 일본에 데뷔도 하고 DVD나 테잎 등을 팔면 5,6천만원 정도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이건 푸른영상 반년치 생활비거든. 작품으로 수익을 낸 것은 <상계동 올림픽> 이후 처음이야. DVD와 테잎은 9월달 정도에 일반인들이 볼 수 있을거야.”
새로운 것 못지 않게 반추하는 것도 중요해
- 인생의 철학이 있다면?
“상계동에 들어가 빈민운동을 할 때, 정일우 신부님이 계셨어. 종교적인 관점에서 빈민운동을 하시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고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 그 때 가난한 사람들의 진심에 대해 알게 됐고 지금도 믿고 있어. 강요된 가난이 아니라 자발적인 가난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그 때부터 했는데, 난 대충 가난하게 살고 있지.(웃음)”
- 네티즌들의 다음 영화에 대한 기대가 상당하다. 올해 기획하고 있는 일은?
“기대가 부담이 돼. 부담을 느낀다고 해서 특별히 잘 만들리도 없고. 하던 대로 할거고 이미 계획도 그렇게 잡혀 있고. 현재는 <송환 2>를 준비하고 있고. 상계동 주민들과도 매년 송년회를 하고 있는데 올해부터는 카메라를 들 예정이야.”
-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은?
“하고 싶은 것은 굉장히 많지. 죽을 때까지 다 하지 못할거야. 다큐는 하면 할수록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이 생기거든. 예전에 만난 사람들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 사건은 어떻게 되었을까? 끝없는 작업이야. 상계동의 꼬마아이들. 그리고 공무원들에게 구타당했던 고등학생. 그들은 여전히 가난한지. 철거투쟁의 경험을 어떻게 간직하고 있는지. 나한테 영향을 많이 준 정일우 신부님은 지금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뒷이야기들도 현재에 다시 하고 싶고. 새로운 것 못지 않게 반추하는 것도 중요하지. 다큐라는 것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있거든. 얼마든지 다른 각도에서.”
두 시간반 분량의 다큐멘터리 <송환>. 그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는 관객은 없다. 발음 불량 김영삼 대통령의 연설, 갑자기 친한척 하며 선생들을 취재하는 조선일보 기자의 코믹함은 울던 관객들을 열심히 웃겼다. 감독은 자신의 유머감각이 아니라 한다. 우스운 이 시대의 모습이 자연스레 영화로 표출된 거라 했다. 송두율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을 구형받는 여전히 우습고 기가 막힌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다큐인생을 사는 김 감독의 역사 캐기 작업은 끝이 없는 것 같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