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 이후 불과 1년여만에 다시 치른 대선이 끝났다. 누가 '왕의 귀환'이라고 했나. 선거가 끝난 지 꼭 한달만인 5월 14일 노무현 대통령은 다시 취임했다. 헌법이 정한 5년 단임제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총선을 통해 정치적으로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는 셈이다. 최근 개각과 청와대 개편을 둘러싼 무성한 논의는 1년 전 조각 당시를 연상시킨다.

반세기만의 의회 권력의 교체와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 16년만의 선거를 통한 단독 과반 여당 탄생, 3김 시대의 종식, 지역정당의 부분 몰락 등 이번 총선의 결과는 역대 그 어느 선거보다 의미와 파장이 크고 깊다. 이를 반영하여 개혁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 한편으로 민노당을 비롯한 개혁세력이 대거 정치권에 진출하면서 시민사회단체의 정책적, 정치적 기능이 제도정치권으로 흡수될 것이고, 이로 인해 시민사회의 위상과 역할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진단과 전망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개혁의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두 번의 선거를 통해 수구냉전세력의 지배구조는 결정적으로 균열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강력하다. 재벌과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한 수구기득권 세력은 벌써부터 어려운 경제상황을 빌미로 국민의 불안심리를 자극하며 개혁에 대한 정치적 저항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무엇보다 간단없이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이 불분명하다. 보수와 자유주의 개혁세력, 극소수의 진보가 뒤섞인 가운데 국정운영의 기조를 둘러싼 내부의 힘겨루기가 개혁기조의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상당수의 운동권 출신과 개혁적 인사가 원내에 진출했지만 당선자 개개인의 전력과 성향에 기대기에는 88년 운동권 출신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진출하기 시작한 이후 반복된 좌절과 실망감이 너무 크다. 과반수 여당의 책임론이니, 민생우선론이니, 속도 조절론이니 하는 개혁을 발목 잡는 목소리가 소위 개혁적 인사라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오는 마당이다. 386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성장주의 담론과 한미동맹론을 극복할 만큼 내공이 쌓여 있는 것 같지 않다.

지난 1년간 참여 정부와 시민사회와의 관계는 노무현 정부와 수구세력간의 관계 못지 않게 갈등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개혁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분노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대규모 촛불 집회를 통해 탄핵의 정치적 의도를 좌절시킨 시민사회는 참여정부에 대해 87년 6월 항쟁으로 완결 짖지 못한 민주개혁의 완성을 요구한다. 이러한 기대와 요구가 좌절될 때 참여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는 지난 1년보다 훨씬 더 갈등적이고 대립적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불화가 그나마 이루어 낼 수 있는 개혁마저 좌초시킬 뿐만 아니라 몰락해 가는 수구기득권세력에게 회생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공은 돌아온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의 혼란도 대통령이 국정운영기조를 어떻게 잡아가느냐에 따라 정리될 것이다. 더 이상 소수 정파로서의 한계를 이유로 개혁의 지체를 변명할 여지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여든 국민들이 왜 대통령을 지켜주었는지, 총선에서 왜 열린우리당에게 과반의 의석을 주었는지, 돌아온 대통령에게 무엇을 바라는 지를 제대로 헤아려야 한다. 누구도 참여정부가 시민사회의 개혁 요구를 온전히 실현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시민사회도 참여정부 하에서 이룰 수 있는 개혁의 목표를 분명히 할 것이다.

필자는 돌아온 대통령의 선택과 관련하여 두가지 점에 주목한다.

첫째는 개각과 청와대 개편이다. 집권 2기를 맞이하여 어떤 성향의 사람을 쓰느냐는 대통령의 선택에 대한 일차적 판단 근거가 될 것이다. 보수적 현실주의자와 관료들을 내세워 개혁을 추진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두번째는 이라크 파병과 경제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것이다. 냉전체제가 붕괴한 조건에서 성장주의와 한미동맹론이 우리사회 지배담론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두가지 사안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철학을 읽을 수 있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정희 개발독재 이후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성장주의 담론을 답습할 것인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시장개혁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 정책을 추구할 것인지는 참여정부의 개혁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김기식(참여연대 사무처장)
2004/05/17 02:56 2004/05/17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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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홍위병 김기식
    너의 얼굴만 봐도 구역질난다.
    너가 무슨 국민의 대표인양 국민을 입에 달고 까불대는데 누구를 위해 까불거리는지원... 닫힌단 이중대 중대장이 너지 개놈아
    너때문에 우리나라가 10년이나 후퇴 한건 아느냐 서민들은 경제가 않좋아
    죽을 맛인데 너는 어데 서 돈이나와 입만가지고 사는겨
    서민들 등쳐서 권력에 빌붙어 개노릇이나 하고
    너 하고 어용 참여연대가 없어지면 내 스트레스가 확 풀리고 대한민국이 5년을 전진할 것이다

  2. 김문일 2004/05/17 12:2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김혁규
    시민연대여러분 철새김혁규총리지명에(예정)대해 한말씀하시죠
    논평부탁드림니다

  3. 가면을 벗어~
    여론몰이로 낙선운동한 자들이
    김혁규는 아니라네...

    가면을 벗어~

    니 정체가 도대체 뭐냐?

  4. 참시민 2004/05/20 06:10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김기식은 위선의 탈을 벗고 반성하십시요. 권력의 프락치 노릇 그만 하시죠.
    김정헌 예비역 중장 ´시국고민´ 자살
    "헌법이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법관들이 헌법을 지켜내지 못했다"

    18일 낮 12시50분께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금곡동 N호텔 7층 객실에서 예비역 육군 중장 김정헌(金正憲 65.육사 18기)씨가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호텔 종업원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 예비역 육군 중장 김정헌(金正憲 65.육사 18기)
    종업원 김씨는 "손님이 정오가 되도록 나오지 않고 전화도 안 받아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숨진 김씨는 속옷 차림이었으며 화장실문 상단에 손가방 끈으로 목이 감긴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가 객실에 남긴 유서에는 "대통령 3명이 나라를 망쳤고…, 헌법이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법관들이 헌법을 지켜내지 못했다…. 이 한 몸을 국가에 바치겠다"는 등 최근 시국을 비관하는 내용 및 자살 시간 등이 적힌 A4용지 한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경찰은 평소 국가관이 투철했던 김씨가 최근 뉴스도 보지 않을 정도로 시국에 대해 고민 해왔다는 유족들의 말과 외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뤄 시국에 대한 고민 끝에 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인을 조사중이다.

    육사 18기인 김씨는 1993년 11월 육군사관학교 교장(36대)을 마지막으로 예편했다.
    한편 대통령 탄핵당시 노사모 회원의 분신자살 시도 사건을 매인뉴스로 보도했던 KBS 등 방송사는 예비역 육군 중장의 ‘시국비관’ 자살과 관련된 보도는 단신으로 처리했다.



    “정직하고 강직한 분이셨는데...”
    故 김정헌 전 육사교장 빈소…흐느낌.탄식으로 가득

    "정직하고 강직하신 분이셨어요. 그러나 그런 성품을 이렇게 표현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자살소식을 듣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어요. 아버님은 평소 정직하지 않은 것을 제일 싫어하셨어요. 특히 최근에 터져나오고 있는 각종 군 관련 비리들에 대해서도 못 참는 성격이셨습니다.

    - 故 김정헌 전 육사교장의 빈소. 유가족들은 내부에서의 사진촬영을 극구 반대했다.

    "대통령 3명이 나라를 망쳤고…, 헌법이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법관들이 헌법을 지켜내지 못했다…. 이 한 몸을 국가에 바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김정헌 전 육사교장(65.육사 18기)의 장남 김형진(35.은행원)씨는 이처럼 짧은 말을 남기고 다시 조문객들을 맞을 채비를 했다.

    영안실에는 조문객들이 고인에게 절을 올릴 때마다 유가족들의 흐느낌과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친지 및 지인들의 한숨소리만이 가득했다. 유가족들은 기자들의 사진촬영을 비롯한 언론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최대한 말을 아꼈다.

    기자가 만난 조문객들은 고인에 대해 하나같이 "강직한 분"이었다며, 고인이 평소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런 방법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고인은 월남전 참전 후유증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국가를 위해 뭔가 한마디 남기고 생을 마감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한 것"이라면서 "누구나 심적 동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필체로 유서를 작성한 것만 봐도 그 강직한 성품을 알 수 있다"며 고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김 전 교장과 육사동기인 성모(65)씨는 "고인은 군복무 시절이나 예편 후 항상 우국충정을 가지고 있었고 행동으로 옮겨왔다"면서 "평소에 심정을 잘 내비치는 성격도 아니었고 자살한 사람의 심증을 정확히 읽을 수는 없겠지만 군복무를 마감하고 가나안 농군학교 활동이나 각종 봉사활동에 열심히 참여만 점만 보더라도 의지가 확고한 분임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고인이 육사 교장 시절 함께 생활했다고 밝힌 한 관계자는 "강직하고 정직한 분이셨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울먹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故 김 전 육사교장의 시신은 20일 대전 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5. 참시민 2004/05/20 06:4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대한민국의 헌재는 리투아니아만도 못한가? 4억 6000만원의 불법자금으로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파면당했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왜 탄핵당했나?

    팍사스 대통령은『헌재 재판관을 전면 교체해 달라』며 지연전술을 폈으나, 헌법재판소와 의회가 차례로 탄핵을 의결. 5개월 만에 탄핵정국 종료

    ● 곡예비행사 출신인 팍사스 대통령은 포퓰리즘의 대명사
    ● 러시아 기업인으로부터 4억6000만원의 대선자금을 불법 수수한 혐의로 집권 1년 만에 쫓겨났다


    의회가 3개 혐의에 대해 각각 표결

    발트해 연안국 리투아니아의 롤란다스 팍사스(Paksas·47) 대통령이 탄핵돼 해임됐다.

    리투아니아 의회는 지난 4월6일 대선자금 불법 수수 의혹, 취임 선서 위반과 국가기밀 누설, 측근 권력남용 방치 혐의 등 3건에 대한 각각의 대통령 탄핵안을 상정한 뒤 표결에 부쳐 3건 모두 압도적인 표차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탄핵안 중 「불법 대선자금 수수에 대해서는 찬성 86, 반대 17」, 「취임선서 위반과 국가비밀 누설에 대해서는 찬성 86, 반대 18」, 「측근 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찬성 89, 반대 14」로 가결됐다. 이날 팍사스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박탈당했다.

    리투아니아 헌법에 따르면, 이날부터 2개월 안에 대선을 실시해야 한다.

    이 기간 중에는 아르투라스 파울라우스카스 국회의장이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다. 의회는 오는 6월13일을 대선일로 잠정 확정했다.

    팍사스 전 대통령은 의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 하루 만에 홧병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고혈압 증세를 보이다 병원신세를 졌다. 팍사스 대통령이 탄핵된 혐의사실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유와 비슷해, 리투아니아의 탄핵정국은 한국인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됐다.


    나토, EU 가입 앞둔 국민들 분노 폭발

    탄핵안이 가결되자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지리했던 탄핵 정국이 끝났다며 환영했다.

    수도 빌뉴스 거리에서 만난 라일리스(42)씨는 『지난 5개월 동안 계속돼 온 탄핵 논쟁에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도 지쳤다』며 『국민들은 이런 정치싸움에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리투아니아는 4월2일부터 나토 공식 회원국이 됐고, 5월1일부터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된다.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국운이 상승하고 있는 마당에 국가 신용도와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 탄핵정국을 나라 망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유럽의 일원이 된다는 국민적 기대감이 큰 시기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정치싸움에 지쳐 있었고, 하루라도 빨리 국정이 정상화되길 바라 왔다.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팍사스 전 대통령의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헌재의 결정이 신속히 내려지지 않고, 대통령 역시 탄핵안을 모면하기 위해 온갖 묘수를 내며 시간끌기를 하고 있는 데 불만을 표시해 왔다.

    탄핵안 통과 직전 리투아니아 언론들은 한국 국회의 탄핵 소추안 의결을 보도하며,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보도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의 탄핵사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김유명 대우전자 리투아니아 지사장은 『이곳 사람들은 한국 하면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 그 다음으로 탄핵을 떠올릴 정도』라며 『한국의 정치사태를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탄핵사태가 이 먼 북구의 나라에까지 이렇게 자세히 알려져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리투아니아의 대통령 탄핵은 지난해 10월30일 리투아니아 국가보안국이 『팍사스 전 대통령 국방정책 보좌관 1명이 국제범죄조직과의 연계설이 나돌고 있는 러시아의 「21세기 기업」 대표와 관계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비화됐다.

    측근 보좌관이 러시아 마피아로부터 선거유세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의혹이었다. 팍사스 전 대통령은 부인을 거듭하다 사태를 악화시켰다. 대선 당시 팍사스 전 대통령의 재정적 후원자였던 유리 보리소프라는 러시아 사업가는 러시아 마피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최종 수혜자인 팍사스 전 대통령은 그로부터 120만 리투아니아 리타(약 4억6000만원)의 선거자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유리 보리소프에게 시민권까지 부여한 것으로 드러나 일파만파의 난국에 처했다.

    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3국에서 해당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언어와 역사 시험을 통과해야만 가능하다.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발트해 3국은 이들의 국적 취득 문제가 최대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리투아니아에는 약 10%의 러시아인이 살고 있다.

    리투아니아 의회는 국가보안국의 수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12월 팍사스 전 대통령에 대한 의회 조사위원회 보고서 공개를 승인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통령 탄핵 수순에 들어갔다. 의회 조사위원회는 6개 분야에 걸쳐 팍사스 대통령이 러시아 마피아와 연루됐다는 10쪽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헌재 3주 만에 탄핵안 신속 처리

    보고서를 제출한 알로야자스 사칼라스 조사위원장은 『오늘날 국가안보는 탱크에 의해서만 위협받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경제 등의 영향력에 의해서도 위협받을 수 있다』며 『대통령 집무실에서 발생한 모든 일에 대해서 대통령의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엘리기유스 마슐리스 원내 자유중도그룹 수장 등 탄핵 주도세력은 의회내 탄핵절차 돌입에 필요한 서명을 받기 위한 모임 구성과 탄핵안 서명 작업에 착수했다. 탄핵안 마련과 서명작업에 들어간 의회 단체는 집권여당 연립을 포함, 4개 정당 소속 의원으로 구성됐다.

    팍사스 전 대통령은 집권 여당 의원들까지도 등을 돌리는 비참한 현실에 직면했다.

    팍사스 전 대통령은 의회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대해 『대통령인 나를 제압하기 위한 시도』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리투아니아 국영방송 LNK-TV가 『국가보안국이 대통령 국방보좌관 레미지우스 아카스와 「21세기 기업」 대표의 대화 내용을 입증하는 증거와 통화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팍사스 전 대통령 측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던 팍사스 전 대통령은 사건이 비화되자 자신의 태도가 부적절했다고 한발 물러섰다. 때마침 같은 구소련 공화국이었던 그루지야에서 그루지야판 벨벳혁명(무혈혁명)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은 팍사스 대통령 하야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리투아니아 헌법재판소는 지난 3월16일 팍사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리를 개시했다. 헌법재판소는 불공정성을 내세워 『재판관 전원을 교체하라』는 대통령 변호인단의 요청을 거부했다.

    변호인단은 『팍사스 대통령에게 헌재가 내렸던 기존의 결정은 재판관들의 의견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며 재판관 전원의 교체를 요구했다. 이날 국영 TV를 통해 방영된 심리에서 탄핵심리를 선언한 라이몬다스 수키스 재판관은 『대통령의 재판관 교체 요구는 심리를 연장하기 위한 의도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팍사스 대통령의 지지율 10~20% 사이

    리투아니아 헌재는 3월16일 의회의 탄핵 보고안을 접수했고, 보름 만인 3월31일 탄핵안을 가결, 국회로 보냈다. 의회는 지난 4월6일 탄핵을 확정시켰다. 헌재는 신속하게 탄핵을 가결시켰지만, 그전에 의회에서 탄핵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시간이 걸려 리투아니아 탄핵정국은 5개월 가량 계속됐다.

    EU 가입을 앞두고 민감한 시기에 국정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자, 일부 해외 투자가들은 이웃 나라인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로 발길을 돌렸다는 후문이다.

    리투아니아에서는 전체 의원 141명 가운데 36명의 의원만 찬성할 경우 탄핵소추가 가능하다. 85명의 의원이 찬성할 경우 탄핵안이 가결된다. 한국과 달리 리투아니아는 대통령제를 가미한 내각책임제라 의회의 힘이 한국보다 크다.

    의회에서 대통령 탄핵안 상정→의회 내 탄핵 보고서 작성→헌재 이송→헌재 3주내 심판→의회 대통령 파면 여부 최종 표결→86명 이상 찬성시 탄핵 확정→2개월 내 대선 이라는 절차를 밟게 돼 있다.

    한국과 달리 탄핵안이 발의돼 헌재에서 심판 중일 때도 대통령의 권한은 유지된다. 의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은 즉시 면직이다.

    2003년 1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발다스 아담쿠스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된 팍사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10~20% 사이였다. 당선 때와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지 못했다. 특히, 탄핵정국으로 정치적으로 고립돼 대통령의 위상이 흔들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탄핵안 통과 가능성이 우세한 분위기였다. 결국 팍사스 전 대통령은 취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불명예 퇴진했다. 개혁을 추구하려다가 뜻도 못 펴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셈이 됐다.

    팍사스 전 대통령은 조만간 탄핵처리된 3개항에 대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한다. 어떡해서라도 불명예를 회복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조언을 듣고 있지만, 아직 공개적으로 대선에 나서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팍사스 대통령은 포퓰리즘의 대명사

    그는 재출마하겠다는 의사를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단, 형사소추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형사소추되면 대통령 출마도 금지된다.

    차기 대선 주자로는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아르투라스 파울라우스카스 국회의장을 비롯, 알기르다스 브라자우스카스 총리, 발다스 아담쿠스 전 대통령 등이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팍사스 전 대통령이 출마할 경우, 후보단일화를 통해 그와 맞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팍사스 대통령은 지난해 1월 대선 결선투표에서 1차 투표 때 1위를 차지했던 발다스 아담쿠스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아담쿠스를 이기리라고 예상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팍사스 대통령은 노레이카, 조니스와 더불어 곡예비행사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포퓰리즘의 대명사였다.

    2001년 대선 유세 당시 도심 한복판을 흐르는 강에 설치된 다리 밑을 통과하는 아찔한 곡예비행을 해 대며 인기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주 에어쇼에 참가해 국내에 잘 알려진 주르기스 등 그를 잘 아는 곡예비행사들은 『팍사스는 대통령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팍사스는 러시아인들과 노인층,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비행학교 출신의 팍사스는 소련 최고 곡예비행사상을 받은 비행 전문가. 1997년 빌뉴스 시장에 당선되면서 정치세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건축회사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그는 빌뉴스 구시가지를 대대적으로 보수해 인기를 누렸다. 지금도 빌뉴스에는 고층 빌딩이 들어서고 새로운 상가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경제성장률 유럽 최고

    1999년 게디미나스 바그노류스의 보수 정부가 무너진 이후, 팍사스는 국무총리에 지명됐다. 그는 몇 달 뒤 「윌리암스 인터내셔널」의 리투아니아 정유회사 인수에 반대하며 국무총리직을 사임했다. 2000년 총선에서 사회자유당을 이끌면서 재차 국무총리를 맡게 되지만 1년 만에 하차했다.

    이번에는 연합정당이 정부 결정권에 간섭한다는 이유를 들어 국무총리직을 떠났다. 이때 국민 대부분은 팍사스가 정치판에서 은퇴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을 창당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리투아니아는 인구 350만 명, 면적 6만5300km2로 발트 3국 중 가장 큰 규모. 남한보다 약간 작다. 정부 형태는 대통령제를 가미한 내각책임제다.

    1236년 리투아니아 공국으로 최초의 통일국가를 형성했지만, 17~18세기 들어 러시아·스웨덴 등 강대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국력이 약화돼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 3국의 분할지배를 받았고, 1915년부터는 4년 동안 독일에 점령되는 등 수난의 역사를 간직해 왔다.

    1920년 모스크바 조약을 통해 독립을 인정받아 리투아니아 공화국으로 출범했다. 당시 경제·산업 등의 분야에 근대화를 이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 점령으로 강제 합병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나 1991년 소련에서 가장 먼저 독립을 쟁취했으며, 탈러시아 친유럽 정책으로 독자적인 노선을 갔다.

    발트 3국의 리더국으로 국민의 55%가 로만 가톨릭을 믿고 있다. 민족 구성도 타 발틱국가와 달리 리투아니아인이 전체 80%를 차지하며 러시아인은 10%, 폴란드인 7%가 살고 있다. 지난해 GDP 성장률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8.9%를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