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상호 열린우리당 당선자
인터뷰 :
2004/05/31 18:10
"정치선배들의 2%부족한 점 채워나갈 것"
여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며 시를 쓰는 것이 꿈이었던 청년. 연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하여 오월문학상,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80년대는 시로 삶을 노래하는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 우리가 꿈꾼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런 사적인 행복들을 포기했을까? 모두들 좋은 세상이 오길 바랐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그런 세상, 자유가 샘물처럼 솟는 그런 세상.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동족을 학살하지 않는 세상.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소짓는 그런 사회. 존레논이 이매진이라는 노래에서 말했던 그런 세상을 원했다. 우리는 얼빠진 이상주의자였을까?" (우상호 자전에세이 『촌놈』에서)
그 때의 바람이 '얼빠진 이상주의자'의 것으로 남는 것에 대한 몸부림이었을까? 8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6월항쟁의 주역이기도 했던 그 학생은 2004년 현재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으로 서 있다. "길바닥에 드러누워 외친 통일을 이제는 북한에 직접 가서 협의할 것이고, 감옥에 끌려가면서 외쳤던 국가보안법 철폐를 지금은 동료의원들을 설득하면서 철폐하겠다"는 우상호 의원을 만나봤다.
17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선거 때보다 더 바쁜 우상호 의원이 인터뷰에 응한 시간은 아침 9시. 초선의원의 힘찬 표정은 하루 종일 빡빡한 일정을 견디고 남을 만큼 활기차 보였다.
정치 선배들의 2% 부족함 채워 나갈 것
-어렸을 적 꿈은 정치가 아니라 국어선생님과 시인이라고 들었다.
"실제 시인 수업도 받았다. 원래 전공은 국문학이고, 문학상도 여러 번 타고. 친구들은 시인, 소설가이다. 나도 계속 했으면 어디서 국어선생 하면서 시를 쓰고 있지 않았을까?(웃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은 아직도 있다. 누가 국회의원 됐다는 소리보다 절친한 사람이 시인됐다고 할 때 더 부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386이라는 표현자체에 반발을 해왔었다. 기호화하고 숫자를 부여하는 것이 군사문화라 생각해서였다. 학교, 감옥, 군대 같은데 들어가면 숫자부터 받지 않나. 그러나 용어가 주는 생경함을 떠나서 '386'이 표현하는 우리 세대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은 있다. 적어도 우리가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시대를 바꿨다는 자부심이다. 문제는 이것이 과거형이라는 거다. '과거에는 그랬는데 현재도 그러하냐'라는 질문에서 솔직히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나는 철저하고 순수한가. 나는 여전히 그 출발점에 섰던 우상호인가'라는 질문에 자유롭지 못하다. 운동권 출신이라는 규정이 매우 당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 운동권 출신으로서 앞서 진출한 정치선배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그 직업을 가지지 않고 그 직업에 대해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정치인이라는 직업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면서도 혐오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선배들에 대해서는 2%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더 잘해줬으면 하고, 때로는 원망스럽고 답답하기도 했다. 우리가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편으로 그들 숫자가 적어 밀리지 않았나. 많아진 우리는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후배세대니까 보완하는 것에 주력하되 우리는 다르게 하고 싶다."
-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운동권 출신들이 특정 안건에 한해서 당을 초월해 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연대가능성이 있는가?"가능성이야 늘 있다. 그러나 순서가 있다고 본다. 우선 열린우리당에 진출한 같은 성향과 같은 경험을 공유했던 세대의 단합이 먼저고 이것이 단초가 돼서 다른 당과 연대하고 단합해야 한다. 당에서 정체성을 제대로 규정하고 당내에서 연대·단합하지 못한 채 다른 당과 연대를 거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에 있는 분들 중에서 안건별로 동참해 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의지를 넘어선 당의 구속이 있지 않나. 그것을 넘을 수 있을 지는 지켜봐야 한다. 몇 가지 안에서는 시도할 것이다."
실용주의는 전술적 용어, 열린우리당은 리버럴 파티
-열린우리당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다. 급기야 분당 가능성까지 흘러나왔었는데,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미국의 민주당도 공화당이 볼 때는 좌파이고. 진보진영 및 공산당이 볼 때는 보수당이다. 민노당에서 볼 때 우상호는 우파고 한나라당에서 볼 때 우상호는 빨갱이다. '진보냐 보수냐'의 구분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당의 정체성 설정으로 옳은 것이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정체성 규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집단이 나아가는 방향과 목표를 일치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 아닌가? 민주노동당도 하나라고 말할 수 없지 않나. 민주노동당 내에서의 사상투쟁은 (적어도 통일이나 북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보다 더 심할 것이다. 한나라당도 운동권과 고문했던 이들이 같이 있지 않나. 구성원들의 정체성을 보면 열린우리당 일치성이 가장 높다. 한마디로 말해 열린우리당은 리버럴 파티이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이 실용주의로 당을 이끌겠다고 발표했다. 실용주의가 당의 정체성에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실용주의는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취하는 입장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실사구시'를 얘기한 것처럼 내가 진보적 입장이라도 국민에게 필요하다면 보수적 정책을 쓸 수 있으며, 역으로 자본주의 사회라도 필요하면 사회주의 정책을 쓸 수 있는 것 아닌가. 어떤 것도 국민한테 필요하다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지향점이다. 실용적이란 표현은 비판을 우회하기 위한 전술적 용어라고 본다."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의 지향점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분배와 복지 문제를 강조하면 어김없이 좌파집단 낙인이 찍히는 것은 분단국가로부터 오는 아픔이다. 열린우리당이 가야할 길은 분단과 독재의 잔재를 털어내는 역할이다. 이 정도도 한국사회에서는 진보다. 단적으로 국가보안법 하나도 못 없애지 않나. 이것은 독재시대의 악법을 없애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당과 대통령의 관계 설정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
"당의 문화, 풍토 같은 것이 굉장히 바뀌었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여당의 총재가 돼서 여당을 장악하는 통치행태를 보였다면, 노 대통령은 간접적 영향력은 있겠지만 지시나 강압을 하지는 않는다. 또 당에서도 무조건 따라가는 풍토는 없다. 다만 노 대통령도 인간이니까 효율성 문제로 여당이 빨리빨리 결정해줬으면 할 수도 있겠지만 당이라는 것은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의견대립이 있겠지만 수평적 협력관계를 통해서 잘 이루어 질 것이다."
재벌개혁과 중소기업육성이 경제난 해결의 핵
"경제문제는 한마디로 하기 어렵다. 나도 답을 알았으면 좋겠다.(웃음)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대기업 위주, 재벌 문어발식 구조를 가지고 있는 거다. 기업의 고용을 늘이는 성장정책을 펴면 과실은 대기업이 따먹는다. 요즘 고용 없는 성장 이야기가 나오는데, 기업의 매출은 커지는데 더 이상의 고용은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인력도 시장도 잃고 고유분야에서 경쟁력을 상실하는 악순환에 빠져있다. 일단은 재벌개혁부터 해야 되고. 지금과 같은 중소기업의 고유업종까지 잠식하는 구조는 깨줘야 한다. 돈 된다면 무조건 뛰어들어 많은 중소기업들이 죽지 않나. 공정한 거래관계부터 바로 잡는 게 옳다. 반면 방식에 있어서는 예전처럼 강제로 기업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기업이 투명하게 자기를 운영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서 개혁하도록 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 철회 주장이 뜨겁다. 미군이 이라크 포로를 성학대한 사진 공개 후 미국 내부에서도 철회의 목소리가 높은데, 파병철회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애초부터 이라크 파병에 반대했다. 명분 없고 추악한 전쟁이다. 포로에 대한 학살, 민간인 오폭 외에도 아마 밝혀지지 않은 더 많은 진상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도 한국전쟁의 피해자 아닌가. 물론 16대 국회에서 결정을 내렸고. 국가가 한번 결정내린 대외정책을 소신과 맞지 않다고 번복하는게 어렵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파병을 동의했을 때의 상황과 지금의 이라크 상황은 많이 변했다. 그 때는 이라크 전쟁이 종료되고 재건의 시기라고 했기 때문에 평화재건이 목적이었다고 보는데, 지금은 이라크 상황이 내전 상황으로 치닫고 포로 성학대 문제가 드러난 마당에 '우리가 16대 국회에서 내린 평화유지군이라는 목적을 이루고 있나'라는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시민단체는 파병 철회를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취지와 목적을 수행할 수 있는 시기까지 파병을 미루거나 혹은 이라크국민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거나 유엔의 주도하에 국제적 여론이 이라크 재건에 집중될 때 파병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파병철회는 아니란 말인가?
"파병철회가 쉽지 않다는 전략적인 문제이다. 우리가 모든 파병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동티모르 같은 의미 있는 파병은 해야 한다. 복구의 손길을 전 세계에 보낼 때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보내야 한다. 유의미한 파병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올바른 관계 설정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과거 미국이 독재정권을 지원했던 사실과 여러 가지 불미스러웠던 사건들, 불평등한 소파 등 개선 점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경제적 군사적 협력 관계를 모두 백지화할 수 없다. 용미론이 아니라 현실 인정론이다. 현실 속에서 개선해야 할 불평등한 관행, 문화 등은 바로 잡아야 한다. 문제는 미국이 우리의 이런 순수한 뜻을 오해해서 압력을 가하는 안 좋은 일들을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 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러나 원칙은 가져야한다."
부자가 돼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가난한 시절에 계획했던 일들을 하는 것
-17대 개원을 앞두고 국민들 또한 기대가 많다. 국회에서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가장 먼저 국가 보안법을 꼭 폐지하고 싶다. 또 하나는 언론이다. 무엇보다도 언론 시장이 정상화되어야 한다. 보수 언론도 당연히 필요하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보도가 이루어지는 관행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법과 제도적 정비를 통해 조건을 마련해 주고 싶다."

"가치와 지향은 잘 안 변한다.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가를 잊으면 내가 앞으로 어디로 가야 되는지를 모른다. 방향을 모를 때는 나의 가치와 지향인 출발점을 바라보면 된다. 하지만 내가 학생운동 할 때의 시대상황과 지금의 시대상황은 바뀌었다. 그렇다면 그 가치를 실현하는 방식은 바꾸어야 한다. 그 때는 독재정권이 내 앞에 있었고 그것을 넘어야 된다는 절박한 요구가 있었으며, 때로는 수단이 폭력적이고 불법적일 수 있었다. 지금은 그 당시의 독재정권이 아니다.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변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있는 곳이 시민단체가 아니고 정치권인 만큼 다른 수단과 방법을 취할 것이다. 17대 국회가 분단과 예속 독재의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표는 내가 학생운동을 했을 때의 지향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 때는 길바닥에 드러누워 통일을 외쳤지만 지금은 북한에 가서 협력에 관한 것을 논의하는 것이고 예전에는 끌려가면서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외쳤다면 지금은 동료 의원들을 설득해 나가면서 해 나갈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는 거다. 이렇게 진전된 상황에 대한 진전된 대책이 있는 거다. 가치와 지향만이 바뀌지 않은 것이다. 부자가 돼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가난한 시절에 계획했던 일들을 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어깨에 손을 얹고 미소짓는 세상"을 향한 가치 실현을 위해 우상호 의원이 펼칠 17대 국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 그가 "영원히 내 주변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한열 열사"를 기억하는 한 우리 정치에 희망을 걸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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