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미국의 주류 매체까지 미군의 이라크 포로 학대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이를 보는 한국의 시선은 어떠한가.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고 파병을 반대했던 쪽에서는 “원래 미국 놈들은 저랬다”라고 공격의 고삐를 잡았다고 환호하는 것 같고, 파병 찬성 진영은 과거 미국의 약점이 노출될 때마다 그랬듯이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온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이 사건은 우리의 파병 결정이 단순한 실리니 동맹국과의 약속을 지키는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우리의 자기 성찰의 자료다. 미국의 포로 잔학행위가 과거 일본이 체포한 조선의 저항세력에게 행했던 수십 가지 고문, 노리개 만들기를 그대로 반복 재연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파병은 ‘평화’는 물론 ‘재건’을 위한 것도 아닐 것이고, 군사 패권주의를 앞세우고 반인권, 물질만능주의 사고를 기저에 깔고 있는 21세기판 식민지 건설 작업에 협력하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파병 찬성론은 이제는 “미국이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엄중한 현실’이므로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논리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것은 모든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에게도 ‘노예의 길’을 또 다시 설교하는 것이다.

우리를 지난 100년 동안 지배했던 이 노선은 바로 ‘강자에게 복종해서 먹고 살자’는 ‘노예의 철학’이었다. 복종과 탐욕은 노예의 두 덕목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기성 담론은 과거나 지금이나 그토록 경제와 국제정치는 전쟁터이고, 시장과 전쟁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무조건 큰 놈 밀어주고 따라야 한다고 설교해 온 것이다. 세계 모든 사람이 미국 중간층 이상의 사람들이 누리는 풍요와 소비 수준까지 도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그들이 자신의 풍요와 소비 수준을 줄일 의사가 없기 때문에 결국 부시의 전쟁 범죄를 모른체하면서 지지하고 있는데, 한국의 주류 지식인들이 “일단 그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도 미국 부자들처럼 잘 살자”는 것은 전쟁, 학살, 지구환경파괴 등을 통한 돈벌이로 미국이 전 세계인들을 향해 저지르는 범죄 행위의 공범자가 되자는 것이다.

나 역시 미군의 고문과 포로학대 행위는 놀라운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라고 보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미군의 ‘일탈’행동이 아니라 평범한 어린 군인을 몇달 만에 고문기술자로 만들어낸 미 지휘관, 더 나아가 부시 행정부 하의 미국사회 그 자체이다. 이라크에서 고문 면허장을 발급해준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 전략은 엉터리 비즈니스맨 부시, 럼스펠드, 체니의 무차별적인 감세정책, 반복지, 반노동, 반환경, 반인권 정책과 같은 궤도에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 부시의 미국은 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기도 하다. 이라크 민중들을 동물 취급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미국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의 논리가 과거 군사정권의 성장 지상주의, 반인권, 반노동 정책, 그리고 오늘의 시장 만능주의 논리와 함께 여전히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로 작동하고 있다. 오늘의 미군보다 더 잔혹한 방법으로 노리개로 만들었던 1970~80년대 한국의 고문 지휘자들은 그 공로로 얻은 ‘알토란같은 재산’을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면서 이제는 시장경제를 지키자고 외친다.

그래서 이번 포로 학대 사건은 단지 파병결정 문제에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과거 청산이자 동시에 미래 설계이기도 하다. 물론 먹고 사는 문제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어떻게’, ‘어디서부터’의 논의가 빠진 ‘경제 살리기’론, 기반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경제 살리기’ 론은 바로 ‘무조건 파병론’과 같은 궤도에 있는 하루살이 노예의 이데올로기다. 썩은 동아줄 쥐고서 20세기의 치욕을 되풀이할 것인가, 새 샘물을 퍼서 21세기 새 문명국가를 창조해 갈 것인가, 우리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참여연대 집행부위원장)
2004/05/31 11:22 2004/05/31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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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이아 2004/06/01 21:1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우리가 가야할길
    목숨걸일 따로 있지 이라크 왜가나?
    김동춘교수님의 글은 우리시대 우리가 가야할길이 어떤길 이겠는가 라는 물음에 가서는 안될길을 쉽게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미국 상업주의와 군사력을 앞세운 네오콘세력의 무소불위로 밀어부치는 막강한 힘앞에 제국들은 떡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는 시늉들만 하다가 부시와 미군의 비 이성적이고 동물적인 행태가 전세계에 노출이 되자 이제사 겨우 부시를 비아냥 하는 테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프랑스.러시아.이태리 등등

    정의로운 무장투쟁으로 미군에 당당히 맞서는 이라크 민중들 차라리 그곳에 목숨 걸어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