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흡연여성잔혹사>의 저자, 서명숙 씨
인터뷰 :
2004/08/13 13:44
"담배는 또하나의 지독한 가부장제"
"평소엔 여성에 대한 억압을 잘 느끼지 못했어요. 직업도 기자라... '여자다 남자다'보다는 기자로서의 정체성만이 있었지. 근데 담배를 통해서 여성억압에 대해서 철저히 느꼈어요. 일종의 자기검열도 심했고."
대학시절 학보사로부터 출발한 월간 <마당>, 월간 <한국인>을 거쳐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편집장을 지내기까지 여장부였던 서명숙 씨를 시대의 무게만큼이나 억눌렀던 존재가 있었다. 그것은 마법의 풀 담배. 좋아하는 선배를 따라 피우기 시작한 담배는 김을 모락모락 피워가며 돈으로 측정할 수 없는 큰 위로와 위안을 서 씨에게 선사해 왔다.
이러한 인연으로 서 씨는 좋게 말하면 '솔직담백', 나쁘게 말하면 '참 쪽팔린' 자신의 경험을 시작으로 주변의 이야기 그리고 역사의 애연가들의 이야기들을 모아 <흡연여성잔혹사>라는 제목의 책으로 펴냈다. 서 씨의 재기발랄한 문체에 빠져들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담배라는 기호품을 통해 우리 안에 깊숙히 자리잡혀 있던 성차별의 편견을 만나게 된다.
서 씨는 묻는다. 남자한테는 한낮 기호품인 것이 여자한테는 그토록 혹독한 죄가 되냐고. 자유와 위안의 덕목인 흡연이 여성에게는 한 가치와의 호흡을 위해서 맘을 졸여야 했고 그것을 위해서 어디론가 들어가야 했고 또 그것을 위한 몇 배의 부가비용을 내야 하는지를.
담배가 아니었으면 여성억압에 대해서 느끼질 못했을 것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만으로 당했던 이러한 고초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서 봤던 <이조여인잔혹사>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엄혹한 가부장제 아래서 시들고 짓밟히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한 여인들의 한 많은 사연이 담긴 영화다.
남자한테는 간단한 기호품이지만 여자에게는 남성의 전유물을 넘본 것이라며 혹독한 대가를 강요한 담배는 그녀가 보기엔 또하나의 지독한 가부장제였다. 그렇게 책 제목은 <흡연여성잔혹사>가 되었다.
"작년부터 실내에서 금연을 해야 됐잖아요. 그래서 흡연자들이 밖에 나와서 피웠죠. 그 때 밖에서 피는 여자들도 눈에 띄게 늘었었어요. 신문에도 났는데. 근데 그것도 잠깐 이었어요. 여름에 잠깐. 그 여자들이 어디에 갔겠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못하니 어딘가로 숨은 거죠. "
서 씨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비제도적 억압에 대해서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여자가 흡연을 할 때는 남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고비용을 지출해야 해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이해하는 남자라도 그 불편함에 대해서는 모르잖아요. 바깥에서 종이컵커피 한 잔 마시며 피우면 오죽 좋아? 근데 비싼 돈주고 카페를 찾아 들어가야 하고. 내가 담배가 아니었으면 여자가 겪는 억압이나 불편함을 못 느꼈을 꺼야."
기호품 하나도 이런데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이고 비제도적인 억압이 얼마나 존재하나 말이다. "법적으로 평등한 것?" 그것 만이 다는 아닌 것이다.

재클린 케네디 오아시스를 사람들은 최고 권력자와 최대 부자의 아내로서만 기억한다. 이지적이고 개성있는 외모를 소유한 그녀가 '체인 스모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후배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입수한 서 씨는 그녀의 이야기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재클린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가 너무 한정되어 있어요. 담배이야기는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었죠. 그런데 영어를 잘 하는 후배가 외국 사이트를 통해서 알아낸 건데 얼마나 많은 정보가 있던지.(웃음)"
재클린 뿐만이 아니다. 수포석 물부리(수포석은 화산 용암이 식어서 된 구멍이 숭숭난 가벼운 돌이고 물부리는 일명 '빨부리'로 여기에 담배를 꽂아 피움)를 좋아했던 명성황후, 국가적 가부장인 김주석앞에서 담배를 피운 재미 언론인 문명자 씨 등 많은 인물들의 담배이야기를 기록했다.
"특별히 책을 쓰기 위해서 책을 읽은 것은 아니고 '내가 담배를 왜 피울까'라는 고민으로 많은 책들을 읽었어요. <프로이트와 담배>, <담배와의 전쟁>, <담배는 숭고하다> 등. 책을 쓸 때 다시 읽어보기는 했죠."
담배를 꼭 피고 싶지 않은데도 남성들이 많은 곳에서 일부러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적잖이 있지 않은가. 일명 '정치적 흡연' 언론인 유숙렬 씨도 북한에 방문했을 때 닫힌 사회에 문화적 충격을 주고 싶었다고.
담배를 피우던 과거도 후회하지 않아, 금연도 담배로부터의 자유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제가 '금연나라'라는 금연사이트에서 잠깐 활동을 했거든요. 내가 담배에 대한 책을 낸다고 하니까 지지하며 사보신다는 분들이 많았어요. 근데 막상 책을 내니 책에 대한 독후감은 딱 하나 올라왔어요. 그것도 여성의 흡연을 미화시켰다는 비판의 글이.(웃음)"
그렇다고 여성흡연자에게 환영만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맨 마지막 장을 가지고 여성흡연자들은 매우 유감스러워 하던걸요? '5장까지는 너무 좋았는데 6장은 모야? 금연 실용서 아냐?'라고"
그럴 만도 하다. 책의 처음부터 담배의 맛을 얼마나 맛들어지게 묘사해나가는가? 자신이 담배를 배운 시점부터 주변에 담배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 동서양을 넘나드는 역사인물들의 담배이야기.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은 담배의 맛에 대해 궁금하게, 끊었던 사람에겐 다시 그 때의 향수로 젖어들게, 그리고 피우는 사람에겐 지금 이 순간에 담배와 호흡하게 만들어 버리는 책이다.

그러나 정작 서 씨는 마지막 장에서 금연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론을 내놓았다.
담배는 서 씨에게 '아득한 청춘의 강을 건네준 나룻배였고, 끝없는 사막 같은 일상을 견디에 해준 오아시스'였다. 담배에 매료된 서 씨는 아이를 낳으러 가는 직전에도 '마지막 담배'를 피웠으니, 이런 서씨의 글에서 금연에 대한 이야기를 본 독자들은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그리고 정작 서 씨는 현재 비흡연자이다.
"나는 담배를 피웠던 과거도 후회하지 않아요. 단지 금기여서 못 피운 사람들도 불쌍하다고도 생각해요. 인생에 대한 호기심 없는 것 아니에요? "
"'쿨하게' 피우면 좋겠는데 점점 담배에 집착하게 되더라구요. 너무 힘든 나머지 담배나 한 대 피워야지 하게 되고 젊었을 때보다도 오히려 의존하게 되요. 왜 그런 것 있잖아요. 지긋지긋한데 저 남자 비젼도 없고 사랑도 식고 빛남도 사라졌는데 어쩌다 옛사랑이 상기되는 시절처럼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처럼요."
최근 여자들은 피부를 위해서 건강을 위해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서 씨도 나빠진 건강으로 인해서 금연을 결심했다. 그리고 운동과 여행, 목욕으로 '긍정적 중독'에 심취되어 있다. 그것 또한 선택이다.
헤어지기 전, 서 씨는 기자가 들고 있던 <흡연여성잔혹사>에 "모든 금기로부터 자유로운 여신이 되길"이라는 문장을 추가한다. 그는 "여자가 자유롭게 담배를 피우는 것과 담배를 끊는 것 모두 담배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두 가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신이 된 서 씨는 또 다른 자유로움을 위해 기지개를 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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