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수많은 환경운동가들이 '환경비상시국'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위기에 처한 이 나라의 자연이 참여정부의 섣부른 성장정책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파괴되고 말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사실 참여정부는 이미 2003년 4월 말에 전국의 수많은 환경운동가들로부터 '환맹정부', 곧 '환경 전혀 돌보지 않는 정부'라는 매서운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바로잡지 않다가 마침내 정면충돌의 상황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잘 알다시피 우리는 1970-80년대의 20년 동안에 엄청난 고도성장을 이루었다. 예컨대 일인당 국민총생산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200달러를 조금 넘는 상태에서 무려 7000달러를 넘는 상태로 급변했다. 이런 고도성장이 이루어졌기에 프로야구 발족, 칼라텔레비전 방송, 컴퓨터 보급, 서태지와 신세대 등장 등의 새로운 문화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고도성장의 바탕 위에서 정치의 민주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도 높아졌고, 그 결과 1987년의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이 일어나서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사람은 다름 아닌 박정희이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고도성장을 이끌고 나간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해 특정한 사회체계를 만들었다. 그것을 나는 '박정희체계'라고 부른다. 경제적으로 보아서 이 체계는 무엇보다 먼저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 박정희는 군사적 방식으로 이중의 착취와 이중의 집중을 강행했다.



'이중의 착취'란 자연착취와 노동착취를 뜻한다. 고도성장은 극심한 노동의 착취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전태일의 항거는 참담한 노동의 착취가 빚어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고도성장의 20년 동안 금수강산은 '공해강산'이 되어 버렸다. 개발의 이름으로 자연을 그야말로 마구잡이로 파헤치고 파괴한 결과이다. 자연을 마구 파괴했기 때문에 자연과 밀착된 전통적 삶을 영위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그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도시로 밀려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중의 집중이란 서울집중과 재벌집중을 뜻한다. 공업화는 단순히 산업적 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공간적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박정희는 거점성장방식이라는 이름의 강력한 지역불균등발전정책에 입각해서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했다. 오늘날의 망국적 서울집중은 이러한 박정희체계의 역사적 산물이다. 또한 박정희는 몇몇 재벌을 중심으로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했다. 이를 위해 재벌에게 온갖 특혜를 제공했다. 물론 특혜를 제공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았다. 그 댓가로 재벌은 정권에게 엄청난 정치자금을 바쳐야 했다. 오늘날의 지독한 정경유착도 역시 박정희체계의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우리는 민주화를 경험했다. 그런데 민주화란 무엇인가? 지난 10여년간 우리가 이룬 민주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자부하는 참여정부의 정책을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민화도, 정권교체도, 참여민주주의도 민주화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민주화는 정치의 민주화를 넘어서 경제의 민주화와 생활의 민주화로 이어진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란 대단히 제한적인 의미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아직 민주화 이후에 이르지 못했으며, 여전히 민주화하는 중에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체계의 개혁이라는 총체적 변화가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비로소 민주화 이후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박정희는 죽었어도 그가 만든 사회체계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의미심장한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성장정책이 이런 사실을 생생히 증명해준다. 물론 여기에 약간의 내적인 차이는 있다. 예컨대 재벌집중과 서울집중, 그리고 노동착취에 대해서는 해결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모순적 정책을 펴서 정권의 신뢰성이 크게 떨어지고 말았다. 대표적인 예가 신행정수도건설과 수도권규제완화라는 모순적 정책을 동시에 펼친 것이다. 그런데 참여정부가 박정희체계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노골적으로 강화되는 자연착취정책이다.



사실 자연착취정책은 박정희체계의 초석이다. 그것은 토건업의 집중적 육성과 무조건적인 급속한 공업화로 나타났다. 금수강산이 공해강산이 되고 파괴강산이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두고 이 나라가 어떻게 '선진국'이 될 수 있겠는가? 오늘날 민주화는 생태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그것은 자연을 본래의 모습대로 되살려서 시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생활민주주의를 뜻한다. 또한 그것은 지역을 독자적인 삶의 단위로 만드는 지역민주주의를 뜻한다. 불행하게도 참여정부는 참여민주주의를 내세워서 이러한 올바른 민주화의 요구에 귀를 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그것을 억압하고 있다. 부안 핵폐기장, 새만금간척사업, 청성산 고속철도 터널, 북한산 관통 고속도로, 한탄강댐, 신행정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 수도권 규제완화, 대대적인 골프장 증설 등등.



박정희체계야말로 '만달러의 덫'이다. 자연착취정책으로는 경제의 선진화를 이룰 수가 없으며, 따라서 '만달러의 덫'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선진국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파괴의 구조에서 벗어나 보존과 복원의 구조를 만들어야 비로소 '만달러의 덫'에서 벗어나게 된다. 단기적 고용증대라는 근시안적 정치목표에 현혹되어 자연착취정책을 편다면, 그 정부는 언제까지고 박정희체계를 재생산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정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박정희체계를 넘어서야 우리의 미래가 열린다.

홍성태(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2004/11/25 13:50 2004/11/25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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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마해 2004/12/02 23:1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독립된 기구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또 다른 속임수
    별도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독립기구에서 국민연금기금을 운용한다는 것은 또 다른 속임수입니다. 이제부터 그 속임수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기금관리기본법입니다. 2001년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에 의해 국민연금기금운용도 기금관리기본법에 의한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획예산처가 주무부처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에서는 기금관리기본법의 적용대상에서 국민연금을 배제하자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금관리기본법에 의해 경제부처의 영향력하에 있는 상태에서 민간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독립투자회사를 만든다고 독립성이 확보되겠습니까? 오히려 완충지대가 없어져 경제부처의 영향력만 더 커질 뿐입니다.

    2. 보험료를 걷어서 연금을 주는 곳과 기금을 운용하는 조직을 분리하여 전문투자회사(돈을 굴리는 곳)를 만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문투자회사 직원들은 국민연금은 어떻게 되든 간에 높은 수익을 올려 성과보너스만 받으면 됩니다. 높은 위험은 높은 수익을 만들어 줍니다. 장기적인 안정보다는 당장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고 국민연금 가입자의 피땀어린 보험료로 조성된 기금을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게 되어 기금의 안정성을 훼손할 것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돈을 걷고 연금을 주는 곳에서 기금을 같이 운용해야 이런 무책임한 운용을 막을 수 있습니다.


    3. 이렇게 별도의 투자전문회사에서 기금을 운용하다 만일 투자를 잘못해서 기금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국민은 보험료를 걷고 연금을 주는 국민연금공단에 따져야 할 텐데 그러면 공단 직원은 뭐라 하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군요. "저희는 잘 모릅니다. 00투자법인에서 보험료를 걷는 즉시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그 뒷일은 모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 뻔합니다. 뭐 정부에서 책임진다고요...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은 국민세금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국민이 책임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별도의 투자회사를 만들어 연금을 맡기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4. 독립된 투자회사를 만들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됩니다. 지금은 없는 위원회를 만들자고 합니다. 그 밑에 사무국 등 '국'을 여러개 만들자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없는 별도의 투자전문회사를 만들자고 합니다. 그 비용이 어디서 나옵니까? 바로 가입자의 피땀어린 보험료로 조성된 기금에서 지출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만 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5.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습니다. 가입자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민주성을 보완한 현재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 금융전문가를 상근위원으로 하는 위원회로 바꾸겠다고 합니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한 사례가 없습니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에서 매일매일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계획을 심의하고 운용결과를 평가하는 전략적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로 소수 금융전문가에게 정무직 공무원 자리를 만들어 앉혀 모든 권한을 주면서 하루종일 무슨 일을 하고 있으라고 위원회 상설화를 추진한다는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6. 카나다, 뉴질랜드, 아일랜드외에는 없습니다. 앞에 세나라가 우리나라와 여건이 비슷하다고 보십니까? 이 세나라는 국가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에게 맡긴 나라입니다. 대다수의 나라는 가입자 대표를 중심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Global Standard는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대표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위원회 위원은 도덕성과 소신, 국민연금제도를 이해하고 가입자와 국민을 위해 결단성 있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설치하고 투자전문회사 설치를 주장하는 학자나 단체 등에서 마치 세계적으로 다 그런 것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7.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수익이 낮습니까? 세계은행(World Bank)에 의해 국민연금기금운용 수익률은 세계22개국 공적연기금중 최고라는 것이 입증된바 있습니다. 국민연금기금은 기금을 평가하는 기획예산처로부터 3년연속 자산운용부분 1위로 평가받았습니다. 국내 어느 은행보다 수익률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조성된 149조원의 기금중 42조8천억원이 이자수익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수익이 낮은 것처럼, 운용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왜곡시키는 세력이 있습니다. 왜곡시키는 세력이 있다면 왜 그럴까요? 물론 답은 간단합니다.

    8. 카나다와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국민연금기금을 주식에 더 많이 투자해서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일부 언론과 학자, 경제부처에서 주장하곤 합니다. 카나다와 미국에서는 연기금이 주식에 많이 투자해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틀리기도 합니다. 미국의 주식시장이 작년부터 회복되어 수익이 많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2001년, 2002년에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이제 본전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주식은 1~2년의 손익을 갖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평가해야지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적자를 본 것은 외면한 채 최근의 수익률만을 근거로 미국 등에서 별도의 투자회사를 만들어 떼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언급하면서 별도 투자회사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9.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은 가입자들입니다.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을 경기활성화를 위해 사용하던 주식투자를 확대하던 가입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부처와 입장이 같은 소수전문가에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소수전문가들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에게 맡기자고 여론을 호도하며 혹세무민하고 있습니다. 독립, 전문가 등등 그럴듯한 말에 속지말고 오히려 가입자의 참여 폭과 권한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연금기금이 독립적으로 운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여연대는 왜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독립된 기구에서 운용하자는건지 참여연대 또는 참여연대 회원님들 말씀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