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누구에게도 비밀은 없다
칼럼과 기고 :
2004/12/01 11:19
지난 월요일 오랜만에 경찰이 크게 ‘한건’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시험시간대의 문자메시지 2억여 건 중 숫자로만 구성된 24만8천건의 내역을 이동통신사들로부터 제출받아 수능 정답과 일치하거나 유사한 550건을 추려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신문과 방송들은 수능 부정행위가 전국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적 단서가 나왔다며 앞 다투어 이 사실을 보도했다. 압수수색영장까지 발부받아 조용히 진행된 수사였으니, 과학수사의 개가로 받아들인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문자메시지의 내역을 경찰로 넘겨주기에 앞서, 이동통신사들이 2억여 문자메시지 중 숫자로만 구성된 24만8천건을 가려낸 과정을 생각해 보자. 문자 메시지를 추려내려면 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수능 시험시간대에 발신된 2억여 문자메시지의 주인 가운데 나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이동통신사들에게 “내 문자 내용을 마음대로 열어 봐도 좋다”고 동의해준 적이 없다. 아무리 법원의 영장에 의한 수사기관의 요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사기업에 불과한 이동통신사가 가입자들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를 직접 열어볼 권한을 갖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글자를 제외했다고 해서 당연히 면책되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숫자의 조합에 글자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길 수 있음을 이 사건 자체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거기다가 대부분의 이동통신 가입자들은 자신들의 문자메시지가 일주일 또는 한달 단위로 보관되어 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우리들의 통화 내용이 그대로 녹음되었다가 언제든지 수사기관에 의해 활용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조지 오웰이 그린 ‘1984년’의 현장이다. 문자메시지라고 해서 전화통화보다 덜 보호받아도 된다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 나아가 법원에 의해 발부된 ‘투망식’ 압수수색영장도 문제다. 강제수사를 하려면 범죄혐의와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사실이 필요하다. 사생활의 비밀, 통신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한 이번 수사에서 그런 최소한의 특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2억여건 또는 24만8천건의 문자메시지 주인들을 모두 용의자 또는 피의자로 본 것인지, 압수수색의 대상은 어떻게 한정했는지, 문자메시지와 범죄와의 관련성은 어떻게 입증했는지, 의문 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휴대전화 번호들을 특정하지 않은 채 발부된 이번 압수수색영장의 경우, 단일 영장으로는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엽기적인 규모였다. 이런 압수수색영장이 일상화된다면 앞으로 ‘김정일’이 들어간 편지 전체, ‘공산당’이 들어간 전자우편 전체에 대해서 영장이 발부될 날도 멀지 않다. 시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투망식 수사가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법원의 영장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실이 그저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권위주의 정권하의 지난 수십년 동안 병영화된 이 나라에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으니 ‘사생활’이 존재할 리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들의 이런 ‘사생활 불감증’은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대학마다 교수 임용절차가 끝나면, 누가 최종 경합자였는지, 누가 어떤 교수의 ‘라인’이었는지, 현장 생중계 같은 소문들이 학계에 울려 퍼진다. 심지어 나는 학생상담실적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상담내용을 전산화하여 공동 관리하자는 교수도 만나본 적이 있다. 이런 사회이니 수사기관과 법원이 공모하여 벌인 이번 ‘한건’ 앞에서 유난히 흥분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영장 없이 행해진 압수수색에 항의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향해 행정자치부 장관은 “내가 형사소송법도 알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그런 행자부 장관이 존재하는 사생활 불감증의 나라에서 놀라운 기술발전까지 이루어지게 되면, ‘개인’은 숨을 쉴 수가 없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이 땅 누구에게도 비밀은 없다.
*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12월 1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우선 문자메시지의 내역을 경찰로 넘겨주기에 앞서, 이동통신사들이 2억여 문자메시지 중 숫자로만 구성된 24만8천건을 가려낸 과정을 생각해 보자. 문자 메시지를 추려내려면 그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수능 시험시간대에 발신된 2억여 문자메시지의 주인 가운데 나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이동통신사들에게 “내 문자 내용을 마음대로 열어 봐도 좋다”고 동의해준 적이 없다. 아무리 법원의 영장에 의한 수사기관의 요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사기업에 불과한 이동통신사가 가입자들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고 문자메시지를 직접 열어볼 권한을 갖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글자를 제외했다고 해서 당연히 면책되는 것도 아니다. 단순한 숫자의 조합에 글자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길 수 있음을 이 사건 자체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까닭이다. 거기다가 대부분의 이동통신 가입자들은 자신들의 문자메시지가 일주일 또는 한달 단위로 보관되어 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우리들의 통화 내용이 그대로 녹음되었다가 언제든지 수사기관에 의해 활용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조지 오웰이 그린 ‘1984년’의 현장이다. 문자메시지라고 해서 전화통화보다 덜 보호받아도 된다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더 나아가 법원에 의해 발부된 ‘투망식’ 압수수색영장도 문제다. 강제수사를 하려면 범죄혐의와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사실이 필요하다. 사생활의 비밀, 통신의 자유 등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한 이번 수사에서 그런 최소한의 특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2억여건 또는 24만8천건의 문자메시지 주인들을 모두 용의자 또는 피의자로 본 것인지, 압수수색의 대상은 어떻게 한정했는지, 문자메시지와 범죄와의 관련성은 어떻게 입증했는지, 의문 나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휴대전화 번호들을 특정하지 않은 채 발부된 이번 압수수색영장의 경우, 단일 영장으로는 기네스북에 오르고도 남을 엽기적인 규모였다. 이런 압수수색영장이 일상화된다면 앞으로 ‘김정일’이 들어간 편지 전체, ‘공산당’이 들어간 전자우편 전체에 대해서 영장이 발부될 날도 멀지 않다. 시민 전체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투망식 수사가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아 법원의 영장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실이 그저 믿어지지 않을 뿐이다.
생각해 보면, 권위주의 정권하의 지난 수십년 동안 병영화된 이 나라에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으니 ‘사생활’이 존재할 리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들의 이런 ‘사생활 불감증’은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대학마다 교수 임용절차가 끝나면, 누가 최종 경합자였는지, 누가 어떤 교수의 ‘라인’이었는지, 현장 생중계 같은 소문들이 학계에 울려 퍼진다. 심지어 나는 학생상담실적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 상담내용을 전산화하여 공동 관리하자는 교수도 만나본 적이 있다. 이런 사회이니 수사기관과 법원이 공모하여 벌인 이번 ‘한건’ 앞에서 유난히 흥분하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영장 없이 행해진 압수수색에 항의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향해 행정자치부 장관은 “내가 형사소송법도 알아야 하냐”고 반문했다. 그런 행자부 장관이 존재하는 사생활 불감증의 나라에서 놀라운 기술발전까지 이루어지게 되면, ‘개인’은 숨을 쉴 수가 없다.
영화에서와는 달리, 이 땅 누구에게도 비밀은 없다.
* 이 칼럼은 <한겨레신문> 12월 1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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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기구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은 또 다른 속임수
별도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춘 독립기구에서 국민연금기금을 운용한다는 것은 또 다른 속임수입니다. 이제부터 그 속임수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기금관리기본법입니다. 2001년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에 의해 국민연금기금운용도 기금관리기본법에 의한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기획예산처가 주무부처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민주노총, 참여연대 등에서는 기금관리기본법의 적용대상에서 국민연금을 배제하자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기금관리기본법에 의해 경제부처의 영향력하에 있는 상태에서 민간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독립투자회사를 만든다고 독립성이 확보되겠습니까? 오히려 완충지대가 없어져 경제부처의 영향력만 더 커질 뿐입니다.
2. 보험료를 걷어서 연금을 주는 곳과 기금을 운용하는 조직을 분리하여 전문투자회사(돈을 굴리는 곳)를 만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전문투자회사 직원들은 국민연금은 어떻게 되든 간에 높은 수익을 올려 성과보너스만 받으면 됩니다. 높은 위험은 높은 수익을 만들어 줍니다. 장기적인 안정보다는 당장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고 국민연금 가입자의 피땀어린 보험료로 조성된 기금을 위험한 자산에 투자하게 되어 기금의 안정성을 훼손할 것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돈을 걷고 연금을 주는 곳에서 기금을 같이 운용해야 이런 무책임한 운용을 막을 수 있습니다.
3. 이렇게 별도의 투자전문회사에서 기금을 운용하다 만일 투자를 잘못해서 기금에 문제가 생기면 누가 책임져야 합니까? 국민은 보험료를 걷고 연금을 주는 국민연금공단에 따져야 할 텐데 그러면 공단 직원은 뭐라 하겠습니까?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군요. "저희는 잘 모릅니다. 00투자법인에서 보험료를 걷는 즉시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그 뒷일은 모릅니다."라고 대답할 것이 뻔합니다. 뭐 정부에서 책임진다고요...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방법은 국민세금을 늘리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에서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국민이 책임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별도의 투자회사를 만들어 연금을 맡기는 일은 막아야 합니다.
4. 독립된 투자회사를 만들면 엄청난 비용이 소요됩니다. 지금은 없는 위원회를 만들자고 합니다. 그 밑에 사무국 등 '국'을 여러개 만들자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없는 별도의 투자전문회사를 만들자고 합니다. 그 비용이 어디서 나옵니까? 바로 가입자의 피땀어린 보험료로 조성된 기금에서 지출되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만 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5.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습니다. 가입자의 대표성을 강화하고 민주성을 보완한 현재 기금운용위원회를 민간 금융전문가를 상근위원으로 하는 위원회로 바꾸겠다고 합니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기금운용위원회를 상설화한 사례가 없습니다.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에서 매일매일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계획을 심의하고 운용결과를 평가하는 전략적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초로 소수 금융전문가에게 정무직 공무원 자리를 만들어 앉혀 모든 권한을 주면서 하루종일 무슨 일을 하고 있으라고 위원회 상설화를 추진한다는 것인지 알고 계십니까?
6. 카나다, 뉴질랜드, 아일랜드외에는 없습니다. 앞에 세나라가 우리나라와 여건이 비슷하다고 보십니까? 이 세나라는 국가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에게 맡긴 나라입니다. 대다수의 나라는 가입자 대표를 중심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Global Standard는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대표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입니다. 위원회 위원은 도덕성과 소신, 국민연금제도를 이해하고 가입자와 국민을 위해 결단성 있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회를 설치하고 투자전문회사 설치를 주장하는 학자나 단체 등에서 마치 세계적으로 다 그런 것처럼 포장하고 있습니다.
7.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수익이 낮습니까? 세계은행(World Bank)에 의해 국민연금기금운용 수익률은 세계22개국 공적연기금중 최고라는 것이 입증된바 있습니다. 국민연금기금은 기금을 평가하는 기획예산처로부터 3년연속 자산운용부분 1위로 평가받았습니다. 국내 어느 은행보다 수익률이 높습니다. 지금까지 조성된 149조원의 기금중 42조8천억원이 이자수익입니다. 그런데도 마치 수익이 낮은 것처럼, 운용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왜곡시키는 세력이 있습니다. 왜곡시키는 세력이 있다면 왜 그럴까요? 물론 답은 간단합니다.
8. 카나다와 미국의 사례를 들면서 국민연금기금을 주식에 더 많이 투자해서 수익을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일부 언론과 학자, 경제부처에서 주장하곤 합니다. 카나다와 미국에서는 연기금이 주식에 많이 투자해서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틀리기도 합니다. 미국의 주식시장이 작년부터 회복되어 수익이 많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2001년, 2002년에는 엄청난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이제 본전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주식은 1~2년의 손익을 갖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평가해야지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적자를 본 것은 외면한 채 최근의 수익률만을 근거로 미국 등에서 별도의 투자회사를 만들어 떼돈을 벌고 있는 것처럼 언급하면서 별도 투자회사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요?
9. 국민연금기금의 주인은 가입자들입니다.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을 경기활성화를 위해 사용하던 주식투자를 확대하던 가입자들이 중심이 되어 결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부처와 입장이 같은 소수전문가에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맡길 수 없는 것입니다. 소수전문가들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가에게 맡기자고 여론을 호도하며 혹세무민하고 있습니다. 독립, 전문가 등등 그럴듯한 말에 속지말고 오히려 가입자의 참여 폭과 권한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국민연금기금이 독립적으로 운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참여연대는 왜 국민연금 기금운용을 독립된 기구에서 운용하자는건지 참여연대 또는 참여연대 회원님들 말씀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