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개폐기 폭탄'과 위험한 한국전력
칼럼과 기고/홍성태칼럼 :
2005/04/14 11:47
오늘날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서 대단히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 그 바탕에 전기가 자리잡고 있다. 전기를 이용하게 되면서 밤을 낮같이 밝힐 수 있게 되었고, 여기서 나아가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전기가 없다면, 현대 생활도 없다. 전기는 곧 현대 생활이다.
그러나 전기의 이용이 좋은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문명의 이기와 마찬가지로 전기도 ‘양날의 칼’이다. 그 생산과 이용의 전 과정에서부터 전기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핵발전이다. 핵발전소는 복구불가능한 사고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는 ‘절대적 위험시설’이다. 핵발전소가 안고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핵발전소를 짓지 않는 것뿐이다. 이 때문에 핵발전소의 문제는 전기와 관련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일상적에서 접하는 전기 관련 시설조차 극단적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의 사고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2005년 4월 8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지상개폐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2005년 4월 9일치 <서울신문>은 이 사고를 이렇게 전했다.
8일 오후 3시56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회관 앞길에 설치돼 있는 높이 1.2m의 전력공급용 지상개폐기가 5~6차례 연쇄폭발하는 바람에 길을 가던 김모(67)씨가 철제 덮개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방모(69)씨가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북촌에서 낙원상가를 거쳐 종로2가로 빠지는 길가에 설치한 지상개폐기가 폭발해서 행인이 죽은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길을 걷노라면 서울의 백년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무서운 길이 되어 버렸다. 그 건너편에는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이 자리잡고 있다. 폭발 때문에 나른한 ‘운현궁의 봄’이 삽시간에 아수라 지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지상개폐기는 22,900볼트(V)에 이르는 고압전력의 공급을 통제하기 위해 지상에 설치한 대형스위치를 뜻한다. 아직까지 원인은 분명하기 밝혀지지 않았지만, 개폐기 안의 가스가 폭발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서 커다란 쇠상자인 지상개폐기가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개폐기 폭탄’이 서울 시내에 8천여 개 혹은 1만여 개나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를 더욱 더 놀랍게 만드는 것은 이에 대한 한국전력의 무심한 태도이다. ‘개폐기 폭탄’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렇듯 위험한 시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한국전력의 용감한 태도는 더욱 더 위험하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전봇대와 함께 이 시설의 지중화를 주장해왔다. 그 이유는 도시경관의 개선과 보행권의 증진을 위해서였다. 종로1가를 떠올려 보자. 그 좁은 보도에 늘어 놓은 수십 개의 커다란 쇠상자는 도심의 흉물일 뿐 아니라 좁은 보도를 더 좁게 만드는 장애물인 것이다. 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이렇게 거대한 쇠상자가 보도를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꼴은 결코 볼 수 없다. 이 나라의 모든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상개폐기는 후진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이런 상태에 눈을 감고 시민의 당연한 요청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사고라는 최악의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이 시설의 지중화를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안전점검을 강화하는 따위의 미봉책으로 이 위험을 내포한 거대한 흉물을 보도에 그대로 두는 것은 이 나라를 70년대의 후진적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과 같다.
사고가 알려진 토요일에,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수요일에 한국전력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다. 한국전력은 이 끔찍한 사고에 대해 단 한마디의 해명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사 자랑은 열심히 하고 있다. 2004년도의 매출은 23조5,999억원에 이르고,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24.4% 늘어난 2조8,808억원이라고 한다. 엄청난 매출에 엄청난 이익이다. 이렇게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 전국 곳곳에 ‘개폐기 폭탄’을 설치해서 이룬 실적이 아닌가? 이 놀라운 실적은 사실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이룬 끔찍한 실적이 아닌가?
전력노동조합의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다. 자본의 탐욕스런 이윤욕을 강력히 비판하는 곳인만큼 그 때문에 만들어진 ‘개폐기 폭탄’에 대해 사과나 대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주)진로의 국민기업화로 노동자․서민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성명서는 발표하면서 정작 전국전력노동조합이 직접 연관되어 있는 ‘개폐기 폭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전국전력노동조합은 왜 존재하는가? 단지 조합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자본에 맞서는 데도 힘이 모자라서 시민의 안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수밖에 없는가?
오늘날 우리는 고도로 위험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이기’가 사실은 ‘고도로 위험한 문명의 이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우는 이러한 문명의 위험을 ‘정상적 위험’이라고 불렀다. 또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아예 ‘위험사회’라고 불렀다. 두 학자가 공통적으로 밝힌 것은 위험이 우연이나 사고, 요컨대 비정상적인 상황의 소산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믿고 있는 체계나 구조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히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 자체를 늘 검토하고 교정해야 한다. 이른바 ‘성찰적 근대화’ 혹은 ‘재귀적 근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시민사회가 정당과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생산하고 지배하는 온갖 전문기관들을 감시하고 교정해야 한다. 전문가의 이름으로 시민에게 ‘정상적 위험’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위험사회의 가장 위험한 특징이다. 한국전력이 절대적 위험을 낳는 핵발전을 강행하기 위해 찬핵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식핵 전문가’들을 내세워 시민의 요청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성찰적 근대화’의 요청을 원천적으로 무시하는 성장제일주의는 ‘정상적 위험’을 극단적으로 악화시킨다. 박정희의 군사적 성장주의와 폭압적 근대화는 그 역사적 증거이다. 와우아파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의 붕괴와 이번의 ‘개폐기 폭탄’은 박정희 유령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떠돌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박정희 유령을 없앨 때, ‘선진 한국’은 비로소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전력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양질의 전기를 값싸게 공급한다는 그럴 듯한 명목으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성장제일주의의 놀음을 이제는 중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사회를 ‘안전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한국전력을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 ‘개폐기 폭탄’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고, 또 다른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전력의 의사결정과정을 투명화하고 민주화하는 것, 그리고 후진적 전력생산․공급방식을 선진화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과제이다.
그러나 전기의 이용이 좋은 결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다른 모든 문명의 이기와 마찬가지로 전기도 ‘양날의 칼’이다. 그 생산과 이용의 전 과정에서부터 전기는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핵발전이다. 핵발전소는 복구불가능한 사고의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는 ‘절대적 위험시설’이다. 핵발전소가 안고 있는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핵발전소를 짓지 않는 것뿐이다. 이 때문에 핵발전소의 문제는 전기와 관련해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일상적에서 접하는 전기 관련 시설조차 극단적 위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의 사고로 명확하게 드러났다. 2005년 4월 8일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지상개폐기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났던 것이다. 2005년 4월 9일치 <서울신문>은 이 사고를 이렇게 전했다.
8일 오후 3시56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천도교회관 앞길에 설치돼 있는 높이 1.2m의 전력공급용 지상개폐기가 5~6차례 연쇄폭발하는 바람에 길을 가던 김모(67)씨가 철제 덮개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고 방모(69)씨가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북촌에서 낙원상가를 거쳐 종로2가로 빠지는 길가에 설치한 지상개폐기가 폭발해서 행인이 죽은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이 길을 걷노라면 서울의 백년을 흥미롭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무서운 길이 되어 버렸다. 그 건너편에는 흥선대원군이 살았던 운현궁이 자리잡고 있다. 폭발 때문에 나른한 ‘운현궁의 봄’이 삽시간에 아수라 지옥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지상개폐기는 22,900볼트(V)에 이르는 고압전력의 공급을 통제하기 위해 지상에 설치한 대형스위치를 뜻한다. 아직까지 원인은 분명하기 밝혀지지 않았지만, 개폐기 안의 가스가 폭발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다시 말해서 커다란 쇠상자인 지상개폐기가 폭탄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개폐기 폭탄’이 서울 시내에 8천여 개 혹은 1만여 개나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우리를 더욱 더 놀랍게 만드는 것은 이에 대한 한국전력의 무심한 태도이다. ‘개폐기 폭탄’은 위험하다. 그러나 이렇듯 위험한 시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한국전력의 용감한 태도는 더욱 더 위험하다.
나는 몇 해 전부터 전봇대와 함께 이 시설의 지중화를 주장해왔다. 그 이유는 도시경관의 개선과 보행권의 증진을 위해서였다. 종로1가를 떠올려 보자. 그 좁은 보도에 늘어 놓은 수십 개의 커다란 쇠상자는 도심의 흉물일 뿐 아니라 좁은 보도를 더 좁게 만드는 장애물인 것이다. 서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본에서도 이렇게 거대한 쇠상자가 보도를 차지하고 들어서 있는 꼴은 결코 볼 수 없다. 이 나라의 모든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지상개폐기는 후진성의 상징이다. 그러나 한국전력은 이런 상태에 눈을 감고 시민의 당연한 요청에 귀를 막았다. 그리고 마침내 폭발사고라는 최악의 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이 시설의 지중화를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안전점검을 강화하는 따위의 미봉책으로 이 위험을 내포한 거대한 흉물을 보도에 그대로 두는 것은 이 나라를 70년대의 후진적 상태에 머물게 하는 것과 같다.
사고가 알려진 토요일에,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수요일에 한국전력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다. 한국전력은 이 끔찍한 사고에 대해 단 한마디의 해명이나 사과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사 자랑은 열심히 하고 있다. 2004년도의 매출은 23조5,999억원에 이르고, 당기순이익은 전년 대비 24.4% 늘어난 2조8,808억원이라고 한다. 엄청난 매출에 엄청난 이익이다. 이렇게 뛰어난 실적을 기록하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 전국 곳곳에 ‘개폐기 폭탄’을 설치해서 이룬 실적이 아닌가? 이 놀라운 실적은 사실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잡고 이룬 끔찍한 실적이 아닌가?
전력노동조합의 홈페이지에도 들어가 보았다. 자본의 탐욕스런 이윤욕을 강력히 비판하는 곳인만큼 그 때문에 만들어진 ‘개폐기 폭탄’에 대해 사과나 대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다. ‘(주)진로의 국민기업화로 노동자․서민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성명서는 발표하면서 정작 전국전력노동조합이 직접 연관되어 있는 ‘개폐기 폭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전국전력노동조합은 왜 존재하는가? 단지 조합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가? 자본에 맞서는 데도 힘이 모자라서 시민의 안전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수밖에 없는가?
오늘날 우리는 고도로 위험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이기’가 사실은 ‘고도로 위험한 문명의 이기’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페로우는 이러한 문명의 위험을 ‘정상적 위험’이라고 불렀다. 또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 사회를 아예 ‘위험사회’라고 불렀다. 두 학자가 공통적으로 밝힌 것은 위험이 우연이나 사고, 요컨대 비정상적인 상황의 소산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믿고 있는 체계나 구조 자체에 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단순히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믿고 있는 것 자체를 늘 검토하고 교정해야 한다. 이른바 ‘성찰적 근대화’ 혹은 ‘재귀적 근대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인데, 시민사회가 정당과 정부를 감시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같은 방식으로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생산하고 지배하는 온갖 전문기관들을 감시하고 교정해야 한다. 전문가의 이름으로 시민에게 ‘정상적 위험’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위험사회의 가장 위험한 특징이다. 한국전력이 절대적 위험을 낳는 핵발전을 강행하기 위해 찬핵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식핵 전문가’들을 내세워 시민의 요청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성찰적 근대화’의 요청을 원천적으로 무시하는 성장제일주의는 ‘정상적 위험’을 극단적으로 악화시킨다. 박정희의 군사적 성장주의와 폭압적 근대화는 그 역사적 증거이다. 와우아파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의 붕괴와 이번의 ‘개폐기 폭탄’은 박정희 유령이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떠돌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박정희 유령을 없앨 때, ‘선진 한국’은 비로소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한국전력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 양질의 전기를 값싸게 공급한다는 그럴 듯한 명목으로 시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성장제일주의의 놀음을 이제는 중단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 사회를 ‘안전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한국전력을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 ‘개폐기 폭탄’은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고, 또 다른 안타까운 죽음을 막기 위해,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한국전력의 의사결정과정을 투명화하고 민주화하는 것, 그리고 후진적 전력생산․공급방식을 선진화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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