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칼럼과 기고 :
2005/07/12 16:13
늘 신문에는 수많은 소식들이 전해지지만, 역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은 돈과 관련된 기사들이다. 신문의 거의 대부분의 지면들이 돈과 관련된 것들로 채워져 있으니 구태여 어렵게 찾아서 볼 필요도 없다.
주요 지면을 부동산 가격이 올랐느니 어쨌느니 하는 기사가 채우고, 그 하단 광고란에는 서울 중심 특급 상권에 분양한다는 대형 쇼핑몰의 상가 분양 광고가 실리고, 또 다른 지면에는 대기업의 신기술 개발이나 신상품 출시를 알려주는 기사인지 광고인지 모를 애매한 내용이 실리고, 또 어떤 지면은 전체가 주식시세로 채워지고. 이쯤 되니 신문을 보는 것이 경제활동의 가장 핵심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최근 독자들의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기사화되는 것은 단연 부동산이다. 집이라는 것이 우리 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의 하나이니 사실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최근 신문에서 다루고 있는 각종 부동산 관련 기사들을 보면 특이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이미 특이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관련 기사들의 핵심은 늘 강남이다. 강남에서 출발해서 강남으로 끝맺음을 한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몇 %가 올랐다. 강남의 수요를 대체할 신도시를 개발해야 한다. 강남의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이다 등 등 등.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고 있는 판교도 당연히 강남의 연장에서 거론되고 있다. 강남을 빼놓고는 부동산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나오는 애기들은 신도시를 개발함에 있어서 중대형을 더 지어야 되느니 말아야 되느니 이다. 판교 개발을 둘러싸고 오락가락하던 정부의 입장이나 언론의 방향도 이젠 대충 대형 건설 확대로 잡혀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형을 건설하는 것으로서는 강남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하니, 이런 해법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일부에서는 공영개발 운운하면서 임대아파트 건설을 지으라고 한다. 그것도 대형 임대 아파트를 지으라고 한다. 최근에는 분양 원가 공개를 두고 말이 많다. 이것도 왔다갔다 하다가 공개로 선회하는 모양이다. 물론 제대로 될지 궁금하다. 막강 건설 불패 건설회사가 버티고 있는데. 어쨌든 강남에서 시작된 부동산 논의는 다시 강남으로 귀착된다. 강남이 “강남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강남구에는 대략 20만 세대 약 50만명이 살고 있다.
신문의 부동산 기사나 정부의 정책은 온통 강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은 곧 강남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강남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소형에 사는 사람들이, 임대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최근 한 신문에 가십성 기사가 하나 실렸다. 간단하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 태평로 ☆☆그룹 본관 앞이 노조집회 무풍지대의 ‘명성’을 이어가게 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이 무노조는 물론이고 무집회의 명성을 이어간다는 기사이다. 대단해 보인다. 어떤 기업들은 노사분규로 일년 내내 시달리고 있는데, 이 대표기업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조가 없으니 당연히 집회가 있을리 만무하고, 여기에다 누구나 다 지나갈 수 있는 본사 앞 길에서조차 집회가 열리지 않는다니 가히 해외토픽감이다.
이 기업이 운용하고 있는 기업 대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니 좋은 말들이 많이 있다. 다음과 같은 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객과 함께 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경영이념 중에서) 잘 지었다. 고객과 함께하지 않는 기업은 망하는 것이니 당연히 고객과 함께 해야 한다. 그 고객들이 이 대기업의 비싼 제품들은 사주고 있으니, 이 고객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보면 가끔 혼동이 된다. 고객을 자칫 국민으로 읽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고객이 아님에도 잘못 혼동하여 고객을 국민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 것 같다. 흔히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대외적 이미지가 좋은 기업을 일컬어 “국민기업”이라는 표현을 쓴다. 전혀 잘못된 표현은 아니지만.
또 최근에 유행하는 “사회공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구도 나온다. “사회공헌에 대한 ☆☆전자의 기본적인 경영 철학은 인간미, 도덕성을 바탕으로 인류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상생(相生)의 정신'으로 함께 잘사는 사회를 창조하는 데 있으며..(생략)” 맞는 말이다. 인간미, 도덕성, 상생. 이쯤 되면 존경받는 기업이 되고도 남는다. 최근에는 주요 대학들에 수백억 원씩 기부를 하였으니 정말로 대단하고 존경받을 만한 기업이다.
무노조, 무집회 덕분에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딘지 찜찜하다. 어색하다. 이런 기업에 노조가 없다는 것이. 노조도 있고, 집회도 있으면서 이런 인간미, 도덕성, 상생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이들에게 노조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흔히들 지배구조 하면 기업을 떠올린다. 그러나 기업 지배구조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국가적 지배구조이다. 그래서 최근에 가장 등장하는 말이 거버넌스, 그 중에서도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이다.
좋은 거버넌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국민, 고객, 사용자, 참여, 분권 등일 것이다. 혹은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참여가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에 참여하는 구조이다. 보기 좋은 거버넌스는 주권을 비교적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 것이고, 이것에 기초하여 비교적 균등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적절한 효능감을 갖춘 참여이어야 할 것이다.
효능감을 강화시켜주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의 하나는 “자기결정권”이다. 남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내 앞에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놓여져 있어야 한다. 만일 자유는 있되 선택할 것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가 아닌 것과 같다.
그렇다면 국민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효능감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을까? 그것이 부동산이든, 교육이든, 취업이든.
국민들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다양한 국민들 중에서 일부는 정부 도움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국민들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는 스스로 살아가기 쉽지 않은 국민들이 있다. 이것 저것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국민들도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신문과 방송이 부동산에 점령당하고 있을 때, 그것을 딴 나라 애기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애기가 아니라 남의 나라 애기로 듣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국민이 아니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그들에겐 오직 고객(顧客)만 있을 뿐이다.
오늘도 대학로에는 줄이 만들어 졌다. 긴줄이다. 밥줄이다. 오늘도 이들에게 생명연장의 밥을 주고 있는 사람들은 정부가 아니라 자원봉사자로 꾸려진 한 봉사단체다. 이 긴 줄에 서 있는 이들은 과연 누구의 국민인가. 아니면 고객으로조차 거부당한 이들인가.
주요 지면을 부동산 가격이 올랐느니 어쨌느니 하는 기사가 채우고, 그 하단 광고란에는 서울 중심 특급 상권에 분양한다는 대형 쇼핑몰의 상가 분양 광고가 실리고, 또 다른 지면에는 대기업의 신기술 개발이나 신상품 출시를 알려주는 기사인지 광고인지 모를 애매한 내용이 실리고, 또 어떤 지면은 전체가 주식시세로 채워지고. 이쯤 되니 신문을 보는 것이 경제활동의 가장 핵심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최근 독자들의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기사화되는 것은 단연 부동산이다. 집이라는 것이 우리 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의 하나이니 사실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최근 신문에서 다루고 있는 각종 부동산 관련 기사들을 보면 특이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아니 이미 특이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부동산 관련 기사들의 핵심은 늘 강남이다. 강남에서 출발해서 강남으로 끝맺음을 한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몇 %가 올랐다. 강남의 수요를 대체할 신도시를 개발해야 한다. 강남의 아파트 값이 떨어질 것이다 등 등 등.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고 있는 판교도 당연히 강남의 연장에서 거론되고 있다. 강남을 빼놓고는 부동산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 나오는 애기들은 신도시를 개발함에 있어서 중대형을 더 지어야 되느니 말아야 되느니 이다. 판교 개발을 둘러싸고 오락가락하던 정부의 입장이나 언론의 방향도 이젠 대충 대형 건설 확대로 잡혀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소형을 건설하는 것으로서는 강남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하니, 이런 해법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일부에서는 공영개발 운운하면서 임대아파트 건설을 지으라고 한다. 그것도 대형 임대 아파트를 지으라고 한다. 최근에는 분양 원가 공개를 두고 말이 많다. 이것도 왔다갔다 하다가 공개로 선회하는 모양이다. 물론 제대로 될지 궁금하다. 막강 건설 불패 건설회사가 버티고 있는데. 어쨌든 강남에서 시작된 부동산 논의는 다시 강남으로 귀착된다. 강남이 “강남구”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강남구에는 대략 20만 세대 약 50만명이 살고 있다.
신문의 부동산 기사나 정부의 정책은 온통 강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정책은 곧 강남정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강남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소형에 사는 사람들이, 임대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최근 한 신문에 가십성 기사가 하나 실렸다. 간단하게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 태평로 ☆☆그룹 본관 앞이 노조집회 무풍지대의 ‘명성’을 이어가게 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이 무노조는 물론이고 무집회의 명성을 이어간다는 기사이다. 대단해 보인다. 어떤 기업들은 노사분규로 일년 내내 시달리고 있는데, 이 대표기업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조가 없으니 당연히 집회가 있을리 만무하고, 여기에다 누구나 다 지나갈 수 있는 본사 앞 길에서조차 집회가 열리지 않는다니 가히 해외토픽감이다.
이 기업이 운용하고 있는 기업 대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니 좋은 말들이 많이 있다. 다음과 같은 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고객과 함께 한다, 세계에 도전한다, 미래를 창조한다”(경영이념 중에서) 잘 지었다. 고객과 함께하지 않는 기업은 망하는 것이니 당연히 고객과 함께 해야 한다. 그 고객들이 이 대기업의 비싼 제품들은 사주고 있으니, 이 고객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보면 가끔 혼동이 된다. 고객을 자칫 국민으로 읽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고객이 아님에도 잘못 혼동하여 고객을 국민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 것 같다. 흔히 사회적 영향력이 크고 대외적 이미지가 좋은 기업을 일컬어 “국민기업”이라는 표현을 쓴다. 전혀 잘못된 표현은 아니지만.
또 최근에 유행하는 “사회공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문구도 나온다. “사회공헌에 대한 ☆☆전자의 기본적인 경영 철학은 인간미, 도덕성을 바탕으로 인류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상생(相生)의 정신'으로 함께 잘사는 사회를 창조하는 데 있으며..(생략)” 맞는 말이다. 인간미, 도덕성, 상생. 이쯤 되면 존경받는 기업이 되고도 남는다. 최근에는 주요 대학들에 수백억 원씩 기부를 하였으니 정말로 대단하고 존경받을 만한 기업이다.
무노조, 무집회 덕분에 그런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딘지 찜찜하다. 어색하다. 이런 기업에 노조가 없다는 것이. 노조도 있고, 집회도 있으면서 이런 인간미, 도덕성, 상생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지. 이들에게 노조는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흔히들 지배구조 하면 기업을 떠올린다. 그러나 기업 지배구조 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국가적 지배구조이다. 그래서 최근에 가장 등장하는 말이 거버넌스, 그 중에서도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이다.
좋은 거버넌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은 국민, 고객, 사용자, 참여, 분권 등일 것이다. 혹은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참여가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주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에 참여하는 구조이다. 보기 좋은 거버넌스는 주권을 비교적 균등하게 나누어 갖는 것이고, 이것에 기초하여 비교적 균등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적절한 효능감을 갖춘 참여이어야 할 것이다.
효능감을 강화시켜주는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의 하나는 “자기결정권”이다. 남이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스스로의 결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내 앞에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가 놓여져 있어야 한다. 만일 자유는 있되 선택할 것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자유가 아닌 것과 같다.
그렇다면 국민들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효능감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을까? 그것이 부동산이든, 교육이든, 취업이든.
국민들은 생각보다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그렇게 다양한 국민들 중에서 일부는 정부 도움없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국민들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는 스스로 살아가기 쉽지 않은 국민들이 있다. 이것 저것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국민들도 참으로 많은 것 같다. 신문과 방송이 부동산에 점령당하고 있을 때, 그것을 딴 나라 애기로 듣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애기가 아니라 남의 나라 애기로 듣는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국민이 아니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그들에겐 오직 고객(顧客)만 있을 뿐이다.
오늘도 대학로에는 줄이 만들어 졌다. 긴줄이다. 밥줄이다. 오늘도 이들에게 생명연장의 밥을 주고 있는 사람들은 정부가 아니라 자원봉사자로 꾸려진 한 봉사단체다. 이 긴 줄에 서 있는 이들은 과연 누구의 국민인가. 아니면 고객으로조차 거부당한 이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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