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선진화의 세 장애물
칼럼과 기고/홍성태칼럼 :
2005/10/24 09:18
결실의 계절이 깊어가고 있다. 설악산 능선은 이미 하얗게 눈으로 덮였다. 머지 않아 북쪽에서 찬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우리 문명의 치명적인 결함으로 말미암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기후가 요동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계절의 순환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만일 지구온난화의 추세를 무시하고 문제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지구 전체가 극심한 혼란과 위기에 빠지고 말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1만 달러의 덫’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1990년대 초에 연간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었으나, 그 뒤로 2만 달러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2만 달러에 이르기 위해서는 커다란 ‘개혁’이 필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일찍이 1970년대 초에 이미 유인호 교수같은 분은 ‘GNP신화’라는 개념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성장주의를 통찰한 바 있다. GNP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GNP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우리는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 수단을 제대로 쓰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올바로 대처하는 것을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지구의 적’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1만 달러의 덫’을 넘어설 수단도 가지고 있다. 이 수단을 제대로 쓰지 않고 있기에 ‘1만 달러의 덫’에 갇혀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락의 길로 빠질 수 있다. ‘수구’세력은 이 나라를 바로 그 길로 끌고 가려 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선진화를 향한 길에 세 개의 거대한 장애물을 계속 던지고 있다.
첫째, 반공주의이다. 한국의 수구세력이 가장 좋아하는 무기는 역시 반공주의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수구세력은 깊은 이념이 아니라 얕은 이익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 뿌리는 바로 일제 부역세력이다. 해방과 함께 그들은 확실히 처단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힘을 통해 다시금 이 나라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울 수 없었다. 대신에 이들은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냉전을 배경으로 미국이 무엇보다 반공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반공주의는 초법적 이념이 되었다. 역대의 독재정권은 이것을 악용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하나의 이념으로서 반공주의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공주의가 초법적 이념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억압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통해 우리는 반공주의의 초법성을 극복하고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여전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이 터져라 반공주의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물론 그들은 단순히 하나의 이념으로서 반공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부정한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그들은 반공을 내세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던 독재시대를 되살리고자 한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를 혐오하고 거부하는 독재세력이다.
둘째, 개발주의이다. 개발주의란 자연의 대대적 변형을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한 양태를 가리킨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자연의 보존을 내세운 새로운 유형의 개발주의가 나타나면서 개발주의는 역사적으로 구개발주의와 신개발주의로 나뉘게 되었다. 신개발주의는 자연의 보존과 복원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구개발주의와 크게 다르다. 구개발주의는 자연의 무조건적 변형을 ‘발전’으로 여겼다. 그러나 구개발주의와 신개발주의의 차이는 어디까지나 외형적인 것에 불과하다. 구개발주의에 비해 훨씬 그럴 듯한 외형을 띄고 있으며, 또한 어느 정도는 구개발주의의 문제를 치유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신개발주의의 문제는 구개발주의의 문제보다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신개발주의는 훨씬 거대하고 화려한 방식으로 자연의 파괴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상처는 훨씬 더 치유하기가 어렵다. 어느 경우나 개발주의는 자연의 보존과 복원을 우습게 여긴다. 박정희는 개발주의의 확산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루고자 했다. 그가 만든 개발주의의 사회체계, 곧 박정희체계는 여전히 강고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막대한 투기이익과 개발이익을 노린 막개발이 그치지 않는 것은 그 생생한 증거이다. 이러한 개발주의는 부패와 부실의 먹이사슬을 통해 작동한다. 한탄강댐 건설계획과 관련해서 주무기관인 수자원공사의 사장이었던 고석구가 엄청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이나, 청계천 주변지역 재개발과 관련해서 양윤재 서울시 부시장이 엄청난 액수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렇듯 개발주의가 횡행하는 사회는 파괴와 부패가 횡행하는 후진사회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여전히 거대한 개발계획을 미끼로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수구세력은 후진적 개발주의 세력이다.
세째, 사회양극화이다. 수구세력은 경쟁의 허울을 내세워서 빈익빈 부익부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의식주의 문제로 고통받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근대 사회의 기본적 경제목표이다. 이 기본적 경제목표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면, 사회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에 빠지게 된다. 빈익빈 부익부는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잘못된 제도의 산물이다. 하루 8시간이 아니라 10시간씩 뼈빠지게 일하는 사람이 살아 생전에 자기 집을 장만할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는 이미 그 기초가 무너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수구세력은 부동산투기, 정경유착, 노동탄압, 불법상속 등의 방법을 써서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1%의 땅부자들이 52%가 넘는 땅을 소유하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지니계수는 이미 거의 완전불평등에 가깝다. 금융자산도 사정은 비슷하다. 5% 정도의 돈부자들이 50%가 넘는 금융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바로 이런 땅부자와 돈부자가 수구세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반면에 정부 통계로도 500만명이 넘고 노동운동의 통계로는 8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비정규 노동자이다. 그들은 하루 10시간을 넘게 한 달을 일해서 겨우 1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렇게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생존본능에 따라 더욱 이기적이고 공격적으로 된다. 삼성재벌은 ‘천재경영’을 내세워 이렇듯 극심한 사회양극화를 적극적으로 정당화하는 동시에 부동산투기, 정경유착, 노동탄압, 불법상속의 모든 면에서 최첨단을 걷고 있다. 수구세력이 삼성재벌에 열렬한 애정을 보내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수구세력은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이 나라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세력이다. 이런 사실은 일제와 독재의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흔히 ‘1만 달러의 덫’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대변되는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의 선진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을 착취해서 고도성장을 이룬 박정희체계를 하루빨리 역사의 무덤에 매장해야 한다. 천재경영이니, 국가경쟁력이니, 차세대 성장동력이니 하는 따위의 말로 부동산투기, 정경유착, 노동탄압, 불법상속의 문제를 은폐하려는 수구세력의 시도가 먹히는 한, 박정희체계는 승승장구할 것이고, 따라서 선진화는 지연될 것이다. 수백조 원의 돈을 굴려서 이 나라를 ‘1만 달러의 덫’에 가둬놓고 있는 수구세력의 지배를 뚫고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기업 정규직 노동운동이 강력한 산별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1만 달러의 덫’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1990년대 초에 연간 일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었으나, 그 뒤로 2만 달러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2만 달러에 이르기 위해서는 커다란 ‘개혁’이 필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일찍이 1970년대 초에 이미 유인호 교수같은 분은 ‘GNP신화’라는 개념을 통해 박정희 정권의 성장주의를 통찰한 바 있다. GNP가 늘어난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GNP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
우리는 지구온난화에 대처할 수 있는 여러 수단을 가지고 있다. 이 수단을 제대로 쓰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지구적 차원의 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올바로 대처하는 것을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지구의 적’이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1만 달러의 덫’을 넘어설 수단도 가지고 있다. 이 수단을 제대로 쓰지 않고 있기에 ‘1만 달러의 덫’에 갇혀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전락의 길로 빠질 수 있다. ‘수구’세력은 이 나라를 바로 그 길로 끌고 가려 한다. 이를 위해 이들은 선진화를 향한 길에 세 개의 거대한 장애물을 계속 던지고 있다.
첫째, 반공주의이다. 한국의 수구세력이 가장 좋아하는 무기는 역시 반공주의이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수구세력은 깊은 이념이 아니라 얕은 이익을 통해 형성되었다. 그 뿌리는 바로 일제 부역세력이다. 해방과 함께 그들은 확실히 처단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의 힘을 통해 다시금 이 나라의 지배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울 수 없었다. 대신에 이들은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냉전을 배경으로 미국이 무엇보다 반공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반공주의는 초법적 이념이 되었다. 역대의 독재정권은 이것을 악용해서 국민의 기본권을 처참하게 짓밟았다. 하나의 이념으로서 반공주의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무엇보다 ‘사상의 자유시장’을 전제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공주의가 초법적 이념이 된다는 것은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억압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통해 우리는 반공주의의 초법성을 극복하고 성숙한 자유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여전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목이 터져라 반공주의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물론 그들은 단순히 하나의 이념으로서 반공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자유민주주의의 기초를 부정한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다. 그들은 반공을 내세워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했던 독재시대를 되살리고자 한다. 한국의 수구세력은 사실상 자유민주주의를 혐오하고 거부하는 독재세력이다.
둘째, 개발주의이다. 개발주의란 자연의 대대적 변형을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의 한 양태를 가리킨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자연의 보존을 내세운 새로운 유형의 개발주의가 나타나면서 개발주의는 역사적으로 구개발주의와 신개발주의로 나뉘게 되었다. 신개발주의는 자연의 보존과 복원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구개발주의와 크게 다르다. 구개발주의는 자연의 무조건적 변형을 ‘발전’으로 여겼다. 그러나 구개발주의와 신개발주의의 차이는 어디까지나 외형적인 것에 불과하다. 구개발주의에 비해 훨씬 그럴 듯한 외형을 띄고 있으며, 또한 어느 정도는 구개발주의의 문제를 치유하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신개발주의의 문제는 구개발주의의 문제보다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신개발주의는 훨씬 거대하고 화려한 방식으로 자연의 파괴를 추구하기 때문에 그 상처는 훨씬 더 치유하기가 어렵다. 어느 경우나 개발주의는 자연의 보존과 복원을 우습게 여긴다. 박정희는 개발주의의 확산을 통해 고도성장을 이루고자 했다. 그가 만든 개발주의의 사회체계, 곧 박정희체계는 여전히 강고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막대한 투기이익과 개발이익을 노린 막개발이 그치지 않는 것은 그 생생한 증거이다. 이러한 개발주의는 부패와 부실의 먹이사슬을 통해 작동한다. 한탄강댐 건설계획과 관련해서 주무기관인 수자원공사의 사장이었던 고석구가 엄청난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이나, 청계천 주변지역 재개발과 관련해서 양윤재 서울시 부시장이 엄청난 액수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것은 그 좋은 예이다. 이렇듯 개발주의가 횡행하는 사회는 파괴와 부패가 횡행하는 후진사회이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여전히 거대한 개발계획을 미끼로 국민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수구세력은 후진적 개발주의 세력이다.
세째, 사회양극화이다. 수구세력은 경쟁의 허울을 내세워서 빈익빈 부익부를 극단으로 몰고 간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적어도 의식주의 문제로 고통받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근대 사회의 기본적 경제목표이다. 이 기본적 경제목표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면, 사회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에 빠지게 된다. 빈익빈 부익부는 경쟁의 결과가 아니라 잘못된 제도의 산물이다. 하루 8시간이 아니라 10시간씩 뼈빠지게 일하는 사람이 살아 생전에 자기 집을 장만할 꿈을 이룰 수 없는 사회는 이미 그 기초가 무너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수구세력은 부동산투기, 정경유착, 노동탄압, 불법상속 등의 방법을 써서 빈익빈 부익부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1%의 땅부자들이 52%가 넘는 땅을 소유하고 있는 데서 잘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부동산 지니계수는 이미 거의 완전불평등에 가깝다. 금융자산도 사정은 비슷하다. 5% 정도의 돈부자들이 50%가 넘는 금융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바로 이런 땅부자와 돈부자가 수구세력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반면에 정부 통계로도 500만명이 넘고 노동운동의 통계로는 8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비정규 노동자이다. 그들은 하루 10시간을 넘게 한 달을 일해서 겨우 100만원 정도를 받는다. 이렇게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으므로 사람들은 생존본능에 따라 더욱 이기적이고 공격적으로 된다. 삼성재벌은 ‘천재경영’을 내세워 이렇듯 극심한 사회양극화를 적극적으로 정당화하는 동시에 부동산투기, 정경유착, 노동탄압, 불법상속의 모든 면에서 최첨단을 걷고 있다. 수구세력이 삼성재벌에 열렬한 애정을 보내는 이유는 아마도 이 때문일 것이다.
수구세력은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이 나라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세력이다. 이런 사실은 일제와 독재의 역사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흔히 ‘1만 달러의 덫’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대변되는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의 선진화를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 자연과 인간을 착취해서 고도성장을 이룬 박정희체계를 하루빨리 역사의 무덤에 매장해야 한다. 천재경영이니, 국가경쟁력이니, 차세대 성장동력이니 하는 따위의 말로 부동산투기, 정경유착, 노동탄압, 불법상속의 문제를 은폐하려는 수구세력의 시도가 먹히는 한, 박정희체계는 승승장구할 것이고, 따라서 선진화는 지연될 것이다. 수백조 원의 돈을 굴려서 이 나라를 ‘1만 달러의 덫’에 가둬놓고 있는 수구세력의 지배를 뚫고 선진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대기업 정규직 노동운동이 강력한 산별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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