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생태민주주의 없이 참여민주주의 없다
칼럼과 기고/홍성태칼럼 :
2005/11/07 11:22
2005년 11월 2일 핵폐기장 부지의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가 치러졌다. 그 결과 가장 높은 찬성율을 보인 경주의 봉길리라는 곳이 핵폐기장 부지로 선정되었다. 정부는 이로써 19년에 걸친 핵폐기장 논란이 민주적으로 해결되었다고 크게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핵폐기장 문제는 과연 민주적으로 해결되었는가?
형식적으로는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핵폐기장 문제는 민주적으로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들의 토론과 선택을 통해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 주민투표의 목표이고, 그런 점에서 주민투표의 실시는 민주주의의 목표를 구현하는 훌륭한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주민투표의 실시 자체가 민주주의의 구현을 뜻하지는 않는다. 올바른 주민투표의 실시만이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
이번의 주민투표는 우리의 민주화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번의 주민투표는 우리의 민주화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있는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결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논할 단계가 아니며, 여전히 민주화 내지 ‘민주화의 민주화’를 추구해야 할 단계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이번의 주민투표는 저 악명높은 ‘3ㆍ15부정선거’에 비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첫째,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부재자투표였다. 부재자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재자신고를 해야 하는데, 그 신고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예컨대 ‘10ㆍ26 보선’의 부재자신고율은 2%를 넘지 않았으나, ‘11ㆍ2 주민투표’의 부재자신고율은 20%를 훌쩍 넘는 것은 물론이고 40%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 조사를 해 보니 온갖 부정이 다 저질러졌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이름이 부재자로 신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극히 일부 사례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둘째, 사실 부재자투표보다 더 활발히 펼쳐진 것은 불법선거운동이었다. 예컨대 주민투표법은 자치단체장의 중립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장이 중립을 지킨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오히려 경쟁을 벌인 네 곳의 자치단체에서 모두 자치단체장이 사실상 ‘유치본부장’이 되어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나섰다. 아니, 독려를 넘어서 주민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엄정히 법을 지켜야 할 자치단체장이 가장 강력하게 법을 어겼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의 주민투표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을 초래하고 말았다.
세째, 투표조차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사실상 ‘공개투표’가 강요되기도 했다. 이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개투표’란 의견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공개투표’를 강요한 자들은 우리 헌법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든 자들로서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런 불법이 횡행하는 한,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는 없다. 중앙선관위는 이제라도 ‘공개투표’를 강요한 자들을 찾아서 고발해야 할 것이다.
네째, 투표에 앞서서 공정한 토론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자치단체와 지역언론은 토론을 원천봉쇄했다. 오히려 토론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공공연히 협박했다. 나아가 주민들을 찬성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 극단적 지역주의마저 공공연히 이용했다. 이로써 주민투표의 이념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주민투표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고 말았다.
이런 문제들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핵폐기장 논란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핵폐기장 자체의 문제를 떠나서 주민투표 과정 자체가 온갖 불법과 탈법의 현장이었다. 따라서 주민투표 결과에 승복할 것을 요구하기에 앞서서 주민투표 과정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 문제가 명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번의 주민투표 결과는 결국 더 큰 논란을 빚고 말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인 주민투표가 왜 이렇게 엉망으로 망가졌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참여정부의 후진적 핵정책이 빚은 필연적 결과였다. 참여정부는 박정희식 자원낭비형 경제성장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후진적 핵발전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은 꿈조차 꾸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대에 수립된 핵발전정책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 정권과 달리 ‘민주적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주적 형식’의 이면에서 참여정부가 획책한 것은 노골적인 불법선거였다. 참여정부는 ‘3000억원+a’라는 엄청난 지원금을 ‘상금’으로 내걸고 자치단체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경쟁을 벌이도록 했던 것이다. 온갖 불법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을 대대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그 생생한 징표이다.
참여정부는 참여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 과정과 절차의 중요성을 스스로 무시하면서 참여정부는 또 다시 번지점프를 즐기려는 모양이다. 벼랑 끝으로 달려가서 번지점프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특기 중의 특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번에는 줄이 너무 느슨하다. 주민투표라고 얕보았다가 줄이 느슨한 상태에서 서둘러 뛰어내린 것 같다.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 원자력문화재단 등의 숱한 찬핵세력이 주장하듯이 핵폐기장이 안전하다면, 왜 그렇게 전력 소비지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에 지으려고 하는가? 핵발전소를 전력 소비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었으니 핵폐기장이라도 전력 소비지에 짓는 것이 공평하지 않겠는가?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이면 충분히 핵폐기장을 지을 수 있다. 또한 핵폐기장이 지역개발의 첨병이라면, 왜 구태여 ‘3000억원+a’라는 특혜를 제공하는가? 핵폐기장을 짓는 것만도 특혜일텐데 거기에 덧붙여서 왜 ‘3000억원+a’라는 거금을 제공하는가? 국민의 세금을 이렇게 써서는 안 될 것이다. 특정 지역에 엄청난 특혜를 제공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사용한다면, 대대적인 조세저항운동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만일 핵폐기장이 안전하다는 찬핵세력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지금의 핵정책은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핵폐기장에 대한 반대가 거센 것은 그 위험성 때문이다.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도 마찬가지다. 폭력으로 부지를 빼앗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돈으로 부지를 산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찬핵세력이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핵폐기장과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미 생태민주주의 없이 참여민주주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시대착오적 핵발전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나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으로는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는 점에서 핵폐기장 문제는 민주적으로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지역의 문제는 지역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들의 토론과 선택을 통해 결정하도록 하자는 것이 주민투표의 목표이고, 그런 점에서 주민투표의 실시는 민주주의의 목표를 구현하는 훌륭한 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주민투표의 실시 자체가 민주주의의 구현을 뜻하지는 않는다. 올바른 주민투표의 실시만이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
이번의 주민투표는 우리의 민주화를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번의 주민투표는 우리의 민주화가 얼마나 취약한 상태에 있는가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결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논할 단계가 아니며, 여전히 민주화 내지 ‘민주화의 민주화’를 추구해야 할 단계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이번의 주민투표는 저 악명높은 ‘3ㆍ15부정선거’에 비견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첫째,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것은 부재자투표였다. 부재자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재자신고를 해야 하는데, 그 신고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았다. 예컨대 ‘10ㆍ26 보선’의 부재자신고율은 2%를 넘지 않았으나, ‘11ㆍ2 주민투표’의 부재자신고율은 20%를 훌쩍 넘는 것은 물론이고 40%에 이르는 곳도 있었다. 조사를 해 보니 온갖 부정이 다 저질러졌다. 심지어 죽은 사람의 이름이 부재자로 신고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극히 일부 사례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하고 말았다.
둘째, 사실 부재자투표보다 더 활발히 펼쳐진 것은 불법선거운동이었다. 예컨대 주민투표법은 자치단체장의 중립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자치단체장이 중립을 지킨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오히려 경쟁을 벌인 네 곳의 자치단체에서 모두 자치단체장이 사실상 ‘유치본부장’이 되어 주민들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나섰다. 아니, 독려를 넘어서 주민들을 협박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엄정히 법을 지켜야 할 자치단체장이 가장 강력하게 법을 어겼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의 주민투표는 민주주의의 심각한 훼손을 초래하고 말았다.
세째, 투표조차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사실상 ‘공개투표’가 강요되기도 했다. 이것은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개투표’란 의견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공개투표’를 강요한 자들은 우리 헌법 제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뒤흔든 자들로서 법의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런 불법이 횡행하는 한, 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는 없다. 중앙선관위는 이제라도 ‘공개투표’를 강요한 자들을 찾아서 고발해야 할 것이다.
네째, 투표에 앞서서 공정한 토론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자치단체와 지역언론은 토론을 원천봉쇄했다. 오히려 토론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공공연히 협박했다. 나아가 주민들을 찬성 쪽으로 끌고 가기 위해 극단적 지역주의마저 공공연히 이용했다. 이로써 주민투표의 이념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주민투표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고 말았다.
이런 문제들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핵폐기장 논란은 결코 해결되지 않았다. 핵폐기장 자체의 문제를 떠나서 주민투표 과정 자체가 온갖 불법과 탈법의 현장이었다. 따라서 주민투표 결과에 승복할 것을 요구하기에 앞서서 주민투표 과정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이 문제가 명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번의 주민투표 결과는 결국 더 큰 논란을 빚고 말 것이다.
여기서 역사적인 주민투표가 왜 이렇게 엉망으로 망가졌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참여정부의 후진적 핵정책이 빚은 필연적 결과였다. 참여정부는 박정희식 자원낭비형 경제성장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후진적 핵발전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은 꿈조차 꾸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대에 수립된 핵발전정책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박정희 정권과 달리 ‘민주적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민주적 형식’의 이면에서 참여정부가 획책한 것은 노골적인 불법선거였다. 참여정부는 ‘3000억원+a’라는 엄청난 지원금을 ‘상금’으로 내걸고 자치단체로 하여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경쟁을 벌이도록 했던 것이다. 온갖 불법이 적나라하게 밝혀지고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오히려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을 대대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그 생생한 징표이다.
참여정부는 참여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고 있다. 과정과 절차의 중요성을 스스로 무시하면서 참여정부는 또 다시 번지점프를 즐기려는 모양이다. 벼랑 끝으로 달려가서 번지점프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특기 중의 특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번에는 줄이 너무 느슨하다. 주민투표라고 얕보았다가 줄이 느슨한 상태에서 서둘러 뛰어내린 것 같다.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 원자력문화재단 등의 숱한 찬핵세력이 주장하듯이 핵폐기장이 안전하다면, 왜 그렇게 전력 소비지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에 지으려고 하는가? 핵발전소를 전력 소비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지었으니 핵폐기장이라도 전력 소비지에 짓는 것이 공평하지 않겠는가? 동양 최대를 자랑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이면 충분히 핵폐기장을 지을 수 있다. 또한 핵폐기장이 지역개발의 첨병이라면, 왜 구태여 ‘3000억원+a’라는 특혜를 제공하는가? 핵폐기장을 짓는 것만도 특혜일텐데 거기에 덧붙여서 왜 ‘3000억원+a’라는 거금을 제공하는가? 국민의 세금을 이렇게 써서는 안 될 것이다. 특정 지역에 엄청난 특혜를 제공하기 위해 막대한 세금을 사용한다면, 대대적인 조세저항운동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만일 핵폐기장이 안전하다는 찬핵세력의 주장이 거짓이라면, 지금의 핵정책은 근본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핵폐기장에 대한 반대가 거센 것은 그 위험성 때문이다. 핵발전소에 대한 반대도 마찬가지다. 폭력으로 부지를 빼앗는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돈으로 부지를 산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찬핵세력이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핵폐기장과 핵발전소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미 생태민주주의 없이 참여민주주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므로 시대착오적 핵발전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구나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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