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황우석 파동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
칼럼과 기고/홍성태칼럼 :
2005/12/17 22:38
2005년 12월 15일, 이른바 ‘황우석 사단’의 핵심 구성원인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황교수팀이 사이언스 논문에 제출한 줄기세포주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같은 날, 이왕재 서울대 의대 연구부학장은 “황우석 교수가 배양에 성공했다고 보고한 줄기세포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고 “오늘을 한국 과학계의 국치일로 선언해도 좋다”고 말했다. 놀라운 주장이었다.
2005년 12월 16일 오후 2시, 황우석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11개의 ‘환자맞춤형 체세포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2004년에 복제줄기세포 6개(2~7번)를 만들었으나 2005년 1월 9일에 곰팡이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훼손됐고, 그래서 미즈메디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2, 3번을 다시 가져왔으며,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각각 6개와 3개의 복제줄기세포를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MBC PD수첩팀에 검증을 위해 넘겨줬던 복제줄기세포 5개 라인(2, 3, 4, 10, 11번)에 대해 황교수 팀에서 자체 ‘재검증’을 해 보니 환자 체세포가 아니라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황교수는 김선종 연구원이 바꿔치기한 것으로 지목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에 뒤이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황우석 교수가 김선종 연구원과 미즈메디 병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인 12월 15일에 그는 2, 3번을 빼고 나머지 9개의 줄기세포는 모두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는 남은 5개(5, 6, 7, 8, 9번)를 해동해서 다시 배양하고 있으며, 이것들로 “줄기세포를 만들었고,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성일 이사장은 황우석 교수가 미즈메디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2, 3번 복제줄기세포의 샘플들을 ‘도둑질’해 갔는데, 김선종 연구원이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샘플을 각각 하나씩 남겨 두었다며 이것으로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황우석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바꿔치기’한 자를 찾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성일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황우석 교수는 ‘희대의 사기꾼’이 되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 ‘음모론’과 ‘면피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음모론은 황우석을 죽이기 위해 누군가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하고 PD수첩에 제보했다는 것이다. 면피론은 황우석 교수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김선종 연구원과 미즈메디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황우석 교수의 행태 자체가 이미 진실을 말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미 황우석 교수는 여러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그는 연구윤리를 어겼다. 난자의 매매를 금지하고 있는 세계적 규정을 어기고 난자를 매매해서 줄기세포 실험을 했다. 이 규정은 가난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또한 그는 연구원의 난자를 채취해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세계적 규정도 어겼다. 연구원은 실험실에서 약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연구원을 실험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연구윤리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연구규범이다. 이것을 어기는 것은 세계적으로 불신과 비난을 자초하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는 약자의 보호라는 점에서나 세계적 연구규범의 준수라는 점에서나 대단히 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 나라가 심각한 ‘인권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그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둘째, 그의 연구성과도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다. PD수첩이 그의 연구성과를 무시했다는 비난은 사실상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황우석 교수는 이미 <사이언스>에 실린 ‘2005년 논문’의 철회를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었다고 한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줄기세포’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김선종 연구원은 미국에서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은 줄기세포 8개가 있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보았다는 것이 과연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줄기세포’인지가 밝혀져야 할 사실이다. 이제까지 경과로 보자면, 황우석 교수의 주장 이외에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줄기세포’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은 누구도 없다. 심지어 황우석 교수 자신도 ‘직접 눈으로 보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연구팀이 매일 아침 확인했다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적 증명은 자기 연구팀을 넘어선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세째, 우리는 무엇보다 황우석 교수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연구윤리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그가 계속 거짓말을 했다는 것뿐이다. 물론 과학자라고 거짓말을 하지 말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올바른 과학자라면 잘못된 연구를 하거나 그 결과를 발표할지언정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과학자는 ‘과학자의 탈을 쓴 사기꾼’일 뿐이다. ‘2005년 논문’은 물론이고 1999년의 영롱이 복제까지도 의심을 받게 된 것은 황우석 교수가 단순히 ‘실수’를 거듭했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과학적 자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기꾼도 대중의 열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중의 열광이 과학자와 사기꾼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진지한 과학자라면 대중의 열광에 큰 우려를 가져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는 분명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황우석 교수가 이렇게 여러 잘못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언론에서 늘 밝혔듯이 사람과 나라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황우석 교수는 계속해서 너무나 중대한 거짓말을 했다. 그의 거짓말은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이며, 나라의 위신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아마도 황우석 교수가 잘못을 저지른 진정한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 아닐까? 그것은 무엇보다 명성에 대한 욕심이다. 과학자들은 ‘명성경쟁’을 벌인다. 라이프니츠를 과학사에서 배제하기 위해 뉴튼이 벌였던 악랄한 공작은 유명한 예이다. 오늘날 지구화는 이러한 ‘명성경쟁’을 더욱 더 강화하는 동시에 ‘국익’의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이 경쟁에서 이기는 과학자에게는 명성을 넘어서 온갖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다한다. 이제 황우석 교수의 행태도 그 좋은 예로 기록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이렇듯 엄청난 거짓말이 걸러지지 않을 수 있었으며, 거짓말이 걸러지기는커녕 오히려 황우석 교수가 ‘국가영웅’이 될 수 있었는가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놀라운 능력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신의 자리를 현대 과학기술이 차지했다는 지적을 듣고 있다. 그 놀라운 능력 때문에 현대 과학기술은 새로운 혹세무민의 사이비종교로 타락할 수도 있다. 과학에 대한 비과학적 열광이라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분명히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과학자로서 황우석 교수는 이런 열광을 해소하기 위해 애썼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런 열광을 부추기는 비과학적 행태를 보였다. 다름 아닌 그 자신이 바로 모순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다.
또한 현대 과학기술은 그 놀라운 능력으로 말미암아 안보나 경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정치적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교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정치적인 것에 앞서서 과학적인 것이어야 했다. 이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이고 참여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자체가 큰 문제를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을 전혀 제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거짓말을 단단히 지켜주고 도와준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윤리를 조언해서 ‘2004년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책임은 너무나 크고 명백하다. 그녀는 즉각 해임되어야 하며, 또한 엄정한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박기영 보좌관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른바 ‘황금박쥐’라는 모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의 성을 딴 것이다. 따라서 김병준 정책실장과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이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과학기술부에 대한 감사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가 심화된 상황에서도 오명 과학기술부장관은 ‘과학은 과학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으로 황우석 교수를 감쌌다. 그의 책임도 명확히 규명될 필요가 있다.
사실 황우석 교수를 ‘국가영웅’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언론이다. 복제소 영롱이 때부터 언론은 황우석 교수를 ‘국가영웅’으로 만드는 데 골몰했다. PD수첩의 정당한 보도에 대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중동은 물론이고 KBS, SBS, YTN 등도 나서서 PD수첩뿐만 아니라 문화방송 자체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과학은 과학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PD수첩이 하고자 한 것은 바로 황우석 교수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자는 것이었다. 언론은 당연히 과학적 증명을 요구할 수 있으며, 또한 그 과정을 낱낱이 보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PD수첩을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YTN의 ‘활약’이었다. ‘황우석을 죽이러 왔다’는 터무니없는 증언을 전면에 내건 YTN의 보도는 편파보도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이와 필적할만한 엉터리 보도는 PD수첩의 보도를 ‘진보세력의 발목잡기’로 비난하고 나선 조선일보의 색깔보도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황우석 파동은 한국 언론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해 준 사례로서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도대체 과학의 이름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화두로 굴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황우석 교수는 과학의 이름으로 계속 거짓말을 했고, 그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비과학적으로 그에게 열광했고,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과학의 이름으로 그의 거짓말을 비호했고, 대부분의 언론은 그의 거짓말을 확대재생산해서 그를 ‘국가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은 다시금 박정희 체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박정희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그가 만든 사회체계, 곧 박정희 체계는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성장제일주의와 함께 과학만능주의는 박정희 체계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다. 이 체계에서 과학은 무엇보다 먼저 성장을 위한 수단이며, 따라서 성장에 이바지할 가능성이 큰 것부터 집중적으로 육성된다. ‘국가체육’과 마찬가지로 ‘국가과학’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때 그것은 ‘핵공학’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생명공학’으로 바뀌었고 그 상징적 존재로 황우석 교수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이런 박정희 체계의 ‘국가과학’ 속에서 황우석 교수는 ‘언터쳐블’의 ‘국가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황우석 파동은 다시금 민주화의 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정권이 바뀌고 과거의 잘못을 부분적으로 바로잡는다고 해서 민주화의 과제가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는 여러 영역에 걸쳐 많은 과제들이 중첩된 복합적 과제이며, 또한 민주화의 과정과 결과 자체를 계속 민주화해야 하는 성찰적 과제이다. 닫힌 ‘국가과학’을 열린 ‘시민과학’으로 만드는 것도 그 중요한 예이다. 다행히 PD수첩과 젊은 과학도들이 엄청난 장벽과 방해를 뚫고 그 길을 열었다. 그 바탕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자리잡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을 통해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데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올라오는 ‘진실’들을 찾아 읽고 공부하는 데 열중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을 대단히 좋아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의 황우석 파동에서 제발 참된 교훈을 얻기를.
2005년 12월 16일 오후 2시, 황우석 교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11개의 ‘환자맞춤형 체세포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2004년에 복제줄기세포 6개(2~7번)를 만들었으나 2005년 1월 9일에 곰팡이에 심각하게 오염되어 훼손됐고, 그래서 미즈메디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2, 3번을 다시 가져왔으며, 그 뒤 두 차례에 걸쳐 각각 6개와 3개의 복제줄기세포를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MBC PD수첩팀에 검증을 위해 넘겨줬던 복제줄기세포 5개 라인(2, 3, 4, 10, 11번)에 대해 황교수 팀에서 자체 ‘재검증’을 해 보니 환자 체세포가 아니라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줄기세포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대해 황교수는 김선종 연구원이 바꿔치기한 것으로 지목하고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은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에 뒤이어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황우석 교수가 김선종 연구원과 미즈메디 병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인 12월 15일에 그는 2, 3번을 빼고 나머지 9개의 줄기세포는 모두 가짜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는 남은 5개(5, 6, 7, 8, 9번)를 해동해서 다시 배양하고 있으며, 이것들로 “줄기세포를 만들었고,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성일 이사장은 황우석 교수가 미즈메디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2, 3번 복제줄기세포의 샘플들을 ‘도둑질’해 갔는데, 김선종 연구원이 일말의 양심은 있어서 샘플을 각각 하나씩 남겨 두었다며 이것으로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황우석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바꿔치기’한 자를 찾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성일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황우석 교수는 ‘희대의 사기꾼’이 되고 말 것이다. 이에 대해 ‘음모론’과 ‘면피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음모론은 황우석을 죽이기 위해 누군가 줄기세포를 바꿔치기하고 PD수첩에 제보했다는 것이다. 면피론은 황우석 교수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김선종 연구원과 미즈메디를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옳은 것일까? 황우석 교수의 행태 자체가 이미 진실을 말해준 것은 아니었을까?
이미 황우석 교수는 여러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 그는 연구윤리를 어겼다. 난자의 매매를 금지하고 있는 세계적 규정을 어기고 난자를 매매해서 줄기세포 실험을 했다. 이 규정은 가난한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또한 그는 연구원의 난자를 채취해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세계적 규정도 어겼다. 연구원은 실험실에서 약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연구원을 실험에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연구윤리는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연구규범이다. 이것을 어기는 것은 세계적으로 불신과 비난을 자초하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는 약자의 보호라는 점에서나 세계적 연구규범의 준수라는 점에서나 대단히 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 나라가 심각한 ‘인권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그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둘째, 그의 연구성과도 큰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다. PD수첩이 그의 연구성과를 무시했다는 비난은 사실상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황우석 교수는 이미 <사이언스>에 실린 ‘2005년 논문’의 철회를 요청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만들었다고 한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줄기세포’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황우석 교수와 노성일 이사장의 기자회견이 끝나고 김선종 연구원은 미국에서 따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은 줄기세포 8개가 있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보았다는 것이 과연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줄기세포’인지가 밝혀져야 할 사실이다. 이제까지 경과로 보자면, 황우석 교수의 주장 이외에 ‘환자맞춤형 체세포 복제줄기세포’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은 누구도 없다. 심지어 황우석 교수 자신도 ‘직접 눈으로 보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자기 연구팀이 매일 아침 확인했다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적 증명은 자기 연구팀을 넘어선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세째, 우리는 무엇보다 황우석 교수가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까지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연구윤리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연구성과에 대해서도 그가 계속 거짓말을 했다는 것뿐이다. 물론 과학자라고 거짓말을 하지 말하는 법은 없다. 그러나 올바른 과학자라면 잘못된 연구를 하거나 그 결과를 발표할지언정 의도적으로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속해서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과학자는 ‘과학자의 탈을 쓴 사기꾼’일 뿐이다. ‘2005년 논문’은 물론이고 1999년의 영롱이 복제까지도 의심을 받게 된 것은 황우석 교수가 단순히 ‘실수’를 거듭했기 때문이 아니라 과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과학적 자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기꾼도 대중의 열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대중의 열광이 과학자와 사기꾼을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진지한 과학자라면 대중의 열광에 큰 우려를 가져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는 분명히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황우석 교수가 이렇게 여러 잘못을 저지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언론에서 늘 밝혔듯이 사람과 나라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황우석 교수는 계속해서 너무나 중대한 거짓말을 했다. 그의 거짓말은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는 것이며, 나라의 위신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이다. 아마도 황우석 교수가 잘못을 저지른 진정한 이유는 사랑이 아니라 ‘욕심’이 아닐까? 그것은 무엇보다 명성에 대한 욕심이다. 과학자들은 ‘명성경쟁’을 벌인다. 라이프니츠를 과학사에서 배제하기 위해 뉴튼이 벌였던 악랄한 공작은 유명한 예이다. 오늘날 지구화는 이러한 ‘명성경쟁’을 더욱 더 강화하는 동시에 ‘국익’의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이 경쟁에서 이기는 과학자에게는 명성을 넘어서 온갖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많은 과학자들이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다한다. 이제 황우석 교수의 행태도 그 좋은 예로 기록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이렇듯 엄청난 거짓말이 걸러지지 않을 수 있었으며, 거짓말이 걸러지기는커녕 오히려 황우석 교수가 ‘국가영웅’이 될 수 있었는가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현대 과학기술의 놀라운 능력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신의 자리를 현대 과학기술이 차지했다는 지적을 듣고 있다. 그 놀라운 능력 때문에 현대 과학기술은 새로운 혹세무민의 사이비종교로 타락할 수도 있다. 과학에 대한 비과학적 열광이라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분명히 이런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과학자로서 황우석 교수는 이런 열광을 해소하기 위해 애썼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런 열광을 부추기는 비과학적 행태를 보였다. 다름 아닌 그 자신이 바로 모순의 한복판에 있는 것이다.
또한 현대 과학기술은 그 놀라운 능력으로 말미암아 안보나 경제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정치적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노무현 대통령이 황우석 교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인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정치적인 것에 앞서서 과학적인 것이어야 했다. 이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이고 참여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자체가 큰 문제를 드러내고 말았다. 결국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을 전혀 제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의 거짓말을 단단히 지켜주고 도와준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윤리를 조언해서 ‘2004년 논문’에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는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좌관의 책임은 너무나 크고 명백하다. 그녀는 즉각 해임되어야 하며, 또한 엄정한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박기영 보좌관만이 문제는 아니다. 이른바 ‘황금박쥐’라는 모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의 성을 딴 것이다. 따라서 김병준 정책실장과 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이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과학기술부에 대한 감사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가 심화된 상황에서도 오명 과학기술부장관은 ‘과학은 과학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으로 황우석 교수를 감쌌다. 그의 책임도 명확히 규명될 필요가 있다.
사실 황우석 교수를 ‘국가영웅’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정치인이 아니라 언론이다. 복제소 영롱이 때부터 언론은 황우석 교수를 ‘국가영웅’으로 만드는 데 골몰했다. PD수첩의 정당한 보도에 대해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중동은 물론이고 KBS, SBS, YTN 등도 나서서 PD수첩뿐만 아니라 문화방송 자체를 비난하고 조롱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과학은 과학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PD수첩이 하고자 한 것은 바로 황우석 교수의 주장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자는 것이었다. 언론은 당연히 과학적 증명을 요구할 수 있으며, 또한 그 과정을 낱낱이 보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PD수첩을 비난하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사명을 저버리는 것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두드러진 것은 YTN의 ‘활약’이었다. ‘황우석을 죽이러 왔다’는 터무니없는 증언을 전면에 내건 YTN의 보도는 편파보도의 극치라고 할 만하다. 아마도 이와 필적할만한 엉터리 보도는 PD수첩의 보도를 ‘진보세력의 발목잡기’로 비난하고 나선 조선일보의 색깔보도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황우석 파동은 한국 언론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해 준 사례로서 깊이 연구되어야 한다.
도대체 과학의 이름으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우리는 이런 질문을 화두로 굴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황우석 교수는 과학의 이름으로 계속 거짓말을 했고, 그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과학의 이름으로 비과학적으로 그에게 열광했고,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는 과학의 이름으로 그의 거짓말을 비호했고, 대부분의 언론은 그의 거짓말을 확대재생산해서 그를 ‘국가영웅’으로 만들었다. 이런 상황은 다시금 박정희 체계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박정희는 오래 전에 죽었지만 그가 만든 사회체계, 곧 박정희 체계는 지금도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성장제일주의와 함께 과학만능주의는 박정희 체계를 떠받치는 양대 기둥이다. 이 체계에서 과학은 무엇보다 먼저 성장을 위한 수단이며, 따라서 성장에 이바지할 가능성이 큰 것부터 집중적으로 육성된다. ‘국가체육’과 마찬가지로 ‘국가과학’이 형성되는 것이다. 한때 그것은 ‘핵공학’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생명공학’으로 바뀌었고 그 상징적 존재로 황우석 교수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이런 박정희 체계의 ‘국가과학’ 속에서 황우석 교수는 ‘언터쳐블’의 ‘국가영웅’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황우석 파동은 다시금 민주화의 과제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정권이 바뀌고 과거의 잘못을 부분적으로 바로잡는다고 해서 민주화의 과제가 모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는 여러 영역에 걸쳐 많은 과제들이 중첩된 복합적 과제이며, 또한 민주화의 과정과 결과 자체를 계속 민주화해야 하는 성찰적 과제이다. 닫힌 ‘국가과학’을 열린 ‘시민과학’으로 만드는 것도 그 중요한 예이다. 다행히 PD수첩과 젊은 과학도들이 엄청난 장벽과 방해를 뚫고 그 길을 열었다. 그 바탕에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자리잡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을 통해 다듬어지지 않은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데 열중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올라오는 ‘진실’들을 찾아 읽고 공부하는 데 열중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을 대단히 좋아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의 황우석 파동에서 제발 참된 교훈을 얻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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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너희들 활동 후원하고 싶지도 않다.
스스로 자기가 중립적인지 생각해봐라.
마치 중립적인 것 처럼 말하는데 전혀 중립적이지 않거든?
또하나의 군사독재시 법원이 자행했던 그 많은 일들과 동일하게 생각되는 건 무엇일까?
인혁당, 민청학련...... 그 많은 사건들의 진행 방향과 지금 일의 진행 방향의 차이점을 나에게 설명해 줄 수 있나? 난 별로 차이점 못느끼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