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은 두말할 것도 없이 20세기의 가장 악명높은 공산주의 독재자이다. 히틀러, 무쏠리니, 히로히토, 마오쩌뚱만이 그와 자웅을 겨룰 수 있었다. 특히 스탈린은 가차없는 숙청작업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는 수십년 동안 자신과 함께 짜르에 맞서서 혁명운동을 펼쳤던 혁명가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없앴다. 혁명재판을 열어서 부하린을 제국주의의 반역자로 만들어 처형했고, 그의 마수를 피해 멕시코로 탈출한 트로츠키를 악랄하게 도끼로 암살했다. 이런 처형과 암살을 통해 스탈린은 비정한 권력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어 버렸다.

케슬러가 <한낮의 어둠>에서 스탈린의 혁명재판을 비판하고, 앙드레 지드를 비롯한 수많은 서구 지식인들이 소련에 등을 돌리고, 급기야 서구에서 ‘서구 마르크스주의’라는 새로운 사상의 흐름이 나타나게 된 것은 바로 스탈린 때문이었다. 스탈린은 타락한 이상의 상징이며, 20세기의 악몽이다. 우리는 스탈린으로 대변되는 20세기의 문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잊는 자에게 역사는 언제나 복수한다.

그러나 스탈린이 벌인 정말로 끔찍한 일은 무자비한 숙청작업이 아니었다. 그는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신봉자였다. 그는 현대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해서 인류가 ‘자유의 왕국’에 들어설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런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그는 대대적인 자연개조사업을 벌였다. 그 핵심은 우크라이나의 관개망을 확충해서 농업생산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 결과 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세계 최대의 내륙해인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이 크게 줄어들었다. 아랄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이 크게 줄어들자 아랄해의 크기 자체가 1/3로 줄어들어 버렸다. 아랄해 일대는 세계 최악의 환경재해지역이 되어 버렸다.

새만금개발사업은 세계 최대의 갯벌매립사업이다. 어떤 선진국도 이렇게 드넓은 천혜의 갯벌을 매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식한 시대에 매립했던 갯벌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무식한 시대란 스탈린의 자연개조사업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20세기 중반을 가리킨다. 선진국의 시계로 보자면, 우리는 여전히 무식한 시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우리는 우리를 스탈린이 주도한 무식한 시대에 머물게 하는 자들이 선진국을 외치고 있는 타락한 시대에 살고 있다.

새만금개발사업은 어마어마한 혈세를 쏟아붓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 사업이 추진되기 위해서는 우선 환경성과 경제성에서 타당해야 한다. 그러나 새만금개발사업은 결코 그렇지 못하다. 무엇보다 여기에 새만금개발사업의 큰 문제가 있다.

환경적으로 새만금개발사업은 스탈린의 자연개조사업만큼 끔찍한 파괴로 귀결될 것이다. 이미 새만금에서는 심각한 파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 남은 구간의 공사를 마쳐서 해수유통을 완전히 차단하게 되면 새만금은 완전히 죽고 말 것이다. 생명이 넘치는 드넓은 갯벌이 거대한 죽음의 땅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 피해는 시화호의 수십배에 이를 것이다. 지금까지 쏟아 부은 1조 7천억원의 경비 때문에 공사를 계속하는 것은 앞으로 수십조원의 피해를 야기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이 무슨 황당한 정책인가? 농림부, 농업기반공사, 전라북도는 결코 책임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

경제성의 면에서 핵심은 새만금매립지가 농업용지로 경제적인가 하는 점이다. 농림부와 농업기반공사는 매립목적의 변경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여전히 농업용지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살농정책’을 강행하기 위해 경찰이 농민들을 살상하는 나라에서 대규모 농업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새만금과 같이 대규모 갯벌을 매립한다는 주장은 어떤 설득력도 가질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이미 경제학자들의 판정은 내려졌다. 오직 농업경제학을 전공했다는 일군의 이해당사자들만이 새만금개발사업의 경제성을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강현옥 지사의 540홀 골프장 건설계획이나 세계 최고층 건물 건설계획 같은 황당한 주장 자체가 새만금개발사업의 경제적 허구성을 여실히 증명해준다.

국민의 지지라는 점도 대단히 중요하다. 여러 조사가 잘 보여주듯이 새만금개발사업에 대한 국민의 반대는 명확하다. 80%가 넘는 절대다수 국민이 새만금개발사업을 새만금파괴사업으로 여기고 있다. ‘삼보일배’에서 잘 드러났듯이, 새만금개발사업에 대한 반대는 지구시민사회의 절박한 요청이기도 하다. 새만금개발사업을 강행한다는 것은 결국 절대다수 국민의 뜻과 지구시민사회의 요청을 무시하고 새만금개발사업을 원하는 자들에게 엄청난 특혜를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특혜는 전북의 표를 얻기 위해 ‘전북 지역주의’에 부응한 ‘합법적 부패’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도 새만금개발사업은 후진성의 지표일 뿐이다.

새만금개발사업을 통해 전라북도는 더 잘 사는 곳이 될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만약에 그렇게 될 것이었다면, 지난 10여년 동안 퍼부은 천문학적 혈세로 전라북도가 더 잘 사는 곳이 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새만금개발사업에 쏟아 붓는 엄청난 혈세는 몇몇 기업이나 사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갈 뿐이고, 그 대부분은 다시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새만금개발사업을 통해 전라북도는 새만금갯벌이라는 천혜의 자원이요 세계적 명소를 잃을 뿐이다. 전라북도의 발전을 위해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며, 이보다 더 나쁜 일은 있을 수 없다.

새만금개발사업의 재개를 승인한 서울고법의 판결은 너무나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어야 할 스탈린식 자연개조사업을 새만금에서 되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엄청난 혈세가 세계 최고의 자연을 죽이는 데 사용될 수 있게 되었으며, 한 줌의 토건세력이 오랫동안 배를 불리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참혹하고 한심하다. 사법개혁이 단지 사법제도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사법부의 후진성 때문에 새만금이 죽게 되었고, 전라북도가 생태위기의 구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으며, 나라의 기틀이 제대로 서지 못하고 심각하게 요동치게 되었다.

새만금개발사업은 새만금죽이기사업이다. 새만금을 죽여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편익은 그 비용과 비교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적다. 이 나라가 제대로 선진화의 길을 갈 것인가, 그렇지 못할 것인가? 새만금개발사업의 중단은 막중한 역사적 과제이다. 서울고법은 책임을 저버렸다. 제출된 자료조차 올바로 파악하지 못하고 사실상 ‘전북 지역주의’를 옹호하는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 아마도 이번의 판결은 이 나라의 선진화와 관련된 역사상 최악의 정치적 판결로 기록될 것이다. 대법원은 이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 나라를 스탈린의 무식한 시대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홍성태 (정책위원장, 상지대 교수)
2005/12/23 00:00 2005/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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