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2006년을 맞이하며
칼럼과 기고/홍성태칼럼 :
2005/12/31 00:00
혼란과 아쉬움 속에 2005년이 저물고 있다. 올 연말에 가장 인기있는 이야기거리는 역시 ‘황우석 사태’인 것 같다. 그만큼 황우석에 관한 관심이 크고 넓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과학의 힘으로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 아닌 희망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줬다. 그것이 ‘희망 아닌 희망’인 까닭은 이른바 줄기세포의 배양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일일 뿐더러 그것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만드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2005년 12월 29일 오전,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결국 황우석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적으로 보아서 황우석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실낱같은 이론적 가능성을 커다란 현실적 가능성인 것처럼 선전했다는 점에 있다. 그 결과 그는 과학을 종교적 맹신의 대상으로 타락시켰고, 자신은 결국 ‘희대의 사기꾼’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나아가 황우석 사태는 거대한 ‘황우석 쓰나미’가 되어 한국의 과학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런 타락이 오로지 황우석 개인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과학은 의심으로 시작해서 의심으로 끝난다. 모든 과학적 성과는 그 자체로 ‘과학적 의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황우석은 이런 의심을 받지 않았다. 각종 조사기구가 제도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울대와 정부의 어떤 조사기구도 황우석을 검증하지 않았다. 한국의 과학기구와 정책은 ‘과학적 의심’이라는 그 핵심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황우석은 자신이 지닌 강력한 힘을 악용해서 각종 조사기구를 무력화하기도 했다.
바로 이 점에서 황우석 사태는 10년 전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무려 502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다쳤다. 직접적인 재산피해도 3천억원이 넘었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삼풍붕괴사고의 물리적 원인은 물론 부실공사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부실공사를 감독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서초구와 서울시의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부실공사를 묵인한 결과로 그처럼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던 것이다. 황우석 사태도 다르지 않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제2의 삼풍붕괴사고나 제2의 황우석 사태는 불가피하다. 나아가 제도의 개혁은 ‘부패와 부실의 먹이사슬’을 통해 막대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세력의 청산이라는 구조적 개혁을 요구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제 황우석에 대한 관심은 황우석 사태를 빚은 제도와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황우석 사태가 시작될 무렵, 사람들은 이건희와 황우석을 비교해서 말하기도 했다. 둘 다 ‘대한민국의 언터처블’인데 황우석이 이건희보다 더 강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희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부패와 불법에 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황우석에 대해서는 그가 이뤘다는 ‘과학적 성과’에 대한 의심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는 맹목적 움직임이 너무도 거세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건희는 황우석보다 강했다. 황우석의 잘못은 명백히 밝혀졌고 그는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건희의 잘못은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그가 과연 처벌을 받을 것인가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황우석의 문제가 밝혀지는 소란의 와중에 이른바 ‘삼성공화국’의 문제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황우석 사태와 삼성공화국의 문제가 모두 문화방송의 탐사보도에 힘입어 크게 공론화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정보사회에서 살고 있고, 언론사는 정보사회의 핵심기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전문적으로 맡아서 처리하는 기구가 바로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엉터리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면 사회는 커다란 댓가를 치루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점에서 황우석 사태와 삼성공화국의 문제는 한국의 언론을 돌아보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문화방송은 그야말로 두 건의 세계적 특종을 했으며, 이로써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노둣돌을 놓았다. 이에 비해 진실은 물론이고 사실조차 속이며 혹세무민하는 언론사들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황우석교’나 ‘이건희교’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졌다. 타락한 언론은 타락한 사회를 빚어내는 주범이다.
‘황우석 쓰나미’는 한국의 과학과 경제에 커다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것만으로도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애썼던 정치인들은 단죄받아야 마땅하다. 여기서 나아가 황우석 쓰나미는 ‘삼성 X파일’로 드러난 삼성공화국의 문제를 집어 삼켰고, 또한 살농정책과 폭력경찰의 문제마저도 집어 삼켜 버렸다. 한나라당은 사학법을 다시 개악하겠노라 발악하고 있고, 이로써 수구부패당의 면모를 다시금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이에 맞서서 열린우리당은 재벌유화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전국에서 대대적인 개발정책을 벌이고 있다. 황우석 쓰나미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연말은 충분히 심란하고 소란스럽다.
2005년을 차분히 돌아보고 2006년을 힘차게 준비하자. 새해는 OECD 가입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경제대국에서 살고 있지만 사회복지나 환경보호의 수준은 OECD 평균은커녕 웬만한 개발도상국보다도 못한 처참한 실정이다. 우리가 이룬 엄청난 경제력과 민주화의 성과를 잘 살려서 이제 사회복지와 환경보호의 수준을 적어도 OECD 평균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귀한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노동운동의 혁신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이루도록 애쓰자. ‘참된 선진 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자.
2005년 12월 29일 오전, 서울대 조사위원회는 결국 황우석이 만들었다고 주장했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과학적으로 보아서 황우석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실낱같은 이론적 가능성을 커다란 현실적 가능성인 것처럼 선전했다는 점에 있다. 그 결과 그는 과학을 종교적 맹신의 대상으로 타락시켰고, 자신은 결국 ‘희대의 사기꾼’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나아가 황우석 사태는 거대한 ‘황우석 쓰나미’가 되어 한국의 과학계는 물론이고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이런 타락이 오로지 황우석 개인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과학은 의심으로 시작해서 의심으로 끝난다. 모든 과학적 성과는 그 자체로 ‘과학적 의심’의 대상이다. 그러나 황우석은 이런 의심을 받지 않았다. 각종 조사기구가 제도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서울대와 정부의 어떤 조사기구도 황우석을 검증하지 않았다. 한국의 과학기구와 정책은 ‘과학적 의심’이라는 그 핵심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황우석은 자신이 지닌 강력한 힘을 악용해서 각종 조사기구를 무력화하기도 했다.
바로 이 점에서 황우석 사태는 10년 전에 일어났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떠올리게 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무려 502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1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다쳤다. 직접적인 재산피해도 3천억원이 넘었다. 그 후유증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삼풍붕괴사고의 물리적 원인은 물론 부실공사였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부실공사를 감독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서초구와 서울시의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부실공사를 묵인한 결과로 그처럼 엄청난 참사가 벌어졌던 것이다. 황우석 사태도 다르지 않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지 않는다면, 제2의 삼풍붕괴사고나 제2의 황우석 사태는 불가피하다. 나아가 제도의 개혁은 ‘부패와 부실의 먹이사슬’을 통해 막대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세력의 청산이라는 구조적 개혁을 요구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제 황우석에 대한 관심은 황우석 사태를 빚은 제도와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황우석 사태가 시작될 무렵, 사람들은 이건희와 황우석을 비교해서 말하기도 했다. 둘 다 ‘대한민국의 언터처블’인데 황우석이 이건희보다 더 강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희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부패와 불법에 관한 여러 의혹이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지만, 황우석에 대해서는 그가 이뤘다는 ‘과학적 성과’에 대한 의심 자체를 원천봉쇄하려는 맹목적 움직임이 너무도 거세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이건희는 황우석보다 강했다. 황우석의 잘못은 명백히 밝혀졌고 그는 그에 따른 처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건희의 잘못은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그가 과연 처벌을 받을 것인가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황우석의 문제가 밝혀지는 소란의 와중에 이른바 ‘삼성공화국’의 문제는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황우석 사태와 삼성공화국의 문제가 모두 문화방송의 탐사보도에 힘입어 크게 공론화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정보사회에서 살고 있고, 언론사는 정보사회의 핵심기구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보의 생산과 유통을 전문적으로 맡아서 처리하는 기구가 바로 언론사이기 때문이다. 언론사가 엉터리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면 사회는 커다란 댓가를 치루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점에서 황우석 사태와 삼성공화국의 문제는 한국의 언론을 돌아보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문화방송은 그야말로 두 건의 세계적 특종을 했으며, 이로써 이 사회의 발전을 위한 또 하나의 노둣돌을 놓았다. 이에 비해 진실은 물론이고 사실조차 속이며 혹세무민하는 언론사들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 바로 그 때문에 ‘황우석교’나 ‘이건희교’와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히 밝혀졌다. 타락한 언론은 타락한 사회를 빚어내는 주범이다.
‘황우석 쓰나미’는 한국의 과학과 경제에 커다란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것만으로도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애썼던 정치인들은 단죄받아야 마땅하다. 여기서 나아가 황우석 쓰나미는 ‘삼성 X파일’로 드러난 삼성공화국의 문제를 집어 삼켰고, 또한 살농정책과 폭력경찰의 문제마저도 집어 삼켜 버렸다. 한나라당은 사학법을 다시 개악하겠노라 발악하고 있고, 이로써 수구부패당의 면모를 다시금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다. 이에 맞서서 열린우리당은 재벌유화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전국에서 대대적인 개발정책을 벌이고 있다. 황우석 쓰나미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연말은 충분히 심란하고 소란스럽다.
2005년을 차분히 돌아보고 2006년을 힘차게 준비하자. 새해는 OECD 가입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가진 경제대국에서 살고 있지만 사회복지나 환경보호의 수준은 OECD 평균은커녕 웬만한 개발도상국보다도 못한 처참한 실정이다. 우리가 이룬 엄청난 경제력과 민주화의 성과를 잘 살려서 이제 사회복지와 환경보호의 수준을 적어도 OECD 평균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귀한 역사적 과제를 이루기 위해 노동운동의 혁신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이루도록 애쓰자. ‘참된 선진 한국’의 문을 활짝 열어 젖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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