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새로운 희망으로 2006년을 열자
칼럼과 기고 :
2006/01/05 00:00
2005년 한해는 웬일인지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해 같다. 이론이 폐지하고 황우석 '쓰나미'가 한국을 휩쓸어 가고 국민의 자부심을 여지없이 깨뜨려 버렸다. 네마리 황금박쥐의 전설이 사실로 밝혀지고 위정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에도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의 씩씩한 일꾼들은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성과들을 열거하는 것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새로운 한해를 여는 마당에 우리들이 다시 다짐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선 눈을 들어 우리 사회를 보면, 지난해 우리 사회를 관통했던 의제인 ‘양극화’가 보인다.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심화되어 가는 양극화의 갈등도 이 세계적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입 있는 사람은 모두가 양극화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각각의 집단적 이기주의에 대한 성찰과 가능한 타협을 위한 노력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민운동도 심판자의 대열에 가담하여 비판의 오케스트라를 한층 소란하게 했던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정부는 정부 주도 하에 국민통합연석회의를 제안하면서 양극화 해소에 도전하려 했다. 그러나 신뢰성을 회복하지 못한 정부가 양극화 해소의 주역을 담당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시점에서 시민운동이 한번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운동전략의 전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감시와 주창(advocacy)의 전략에서 융통성 있고 일관성 있는 다양성이 요구된다고 본다. 부패와 불의에 대한 용서없는 고발이 국민적 희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국민이 국가의 법치주의를 신뢰할 때 가능한 것이고 최근의 흔들리는 법치제도 하에서 고발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은 급속도로 후퇴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성역없는 감시와 고발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또다른 방법도 생각해 내야 한다. 시민들이 점점 시민운동이 해결사가 아니라고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꺼져가는 희망의 불꽃을 다시 지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은 초심으로 돌아가 그동안 축적한 기득권을 양보하여 설득과 관용을 통한 국민적 대타협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전략적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해결해야 할 사회적 난제와 함께 참여연대에게 실존적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참여연대 식구를 모두 만나보지 못한 처지라, 참여연대 모두의 의견이라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대동소이 비슷한 심경일 것이다.
셋방살이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예전에는 단칸방 신세에 아이들 셋만 거느려도 쫒겨나기 일쑤였다. 그런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 그런 시절을 관심있게 지켜보지 않은 사람은 그 형편을 알리 없다.
이제 참여연대가 안국동의 보금자리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게 되었다. 이제 현실화된 임대료는 곧바로 회원들의 부담이 되고 말 것이다. 어렵게 어렵게 내주시는 회원들의 회비를 가장 유효하게 그리고 절약해서 쓰는 것은 관리자의 몫이다. 이것은 실존적인 문제이면서 가장 실제적인 과제다. 쉬운 문제일리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조차 넉넉치 못하다.
‘내집마련’하면 퍽 사치스럽게 들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내집마련은 참여연대 전체가 힘을 합하여 이룩해야 할 ‘2006년도 희망프로젝트’다. 결단코 우리 회원들과 그동안 우리를 지원해준 후원자들은 참여연대가 엄동설한에 길가에 버려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금위원회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그들을 힘껏 밀어주자. 이렇게 그야말로 참여연대답게 내집을 마련하자. 안국동을 달구었던 열정을 가지고 서울의 다른 한구석을 밝혀보자.
20년 후의 참여연대, 이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됐던 안됐던 시민사회운동은 계속 될 것이다. 그때의 운동가는 어떤 사람들일까. 운동의 내용이나 모양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그들에게 필연코 요구되는 것은 전문성과 소명의식이다. 전문성과 소명의식이 조화될 때 성숙한 운동가가 태어난다. 이 전통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고 이것이 올바르게 전승되지 못하면 그 운동은 변질되기 쉽다.
끝으로 운동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전문성을 강조하다 보면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게 되기 쉽다. 참여연대 활동가들은 다시 각별히 참여연대의 전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 바란다. 만약 이것이 소홀해지면 공동체가 훼손되기 마련이다. 각 부서간의 상관관계 속에서 상호간의 변증적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면 참여연대로서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한 삶을 계속 살아가는 상근자들, 날이 갈수록 혼돈에 빠져드는 그들의 전선, 그들이 이룩하는 가장 작은 승리의 순간에 우리 참여연대의 회원과 임원들은 시민과 함께 축배를 들고 축제를 열자. 2006년에도 참여연대가 우리사회의 희망을 만들어 가길 기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연대의 씩씩한 일꾼들은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 성과들을 열거하는 것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새로운 한해를 여는 마당에 우리들이 다시 다짐해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선 눈을 들어 우리 사회를 보면, 지난해 우리 사회를 관통했던 의제인 ‘양극화’가 보인다.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심화되어 가는 양극화의 갈등도 이 세계적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입 있는 사람은 모두가 양극화의 폐해를 지적하면서도 각각의 집단적 이기주의에 대한 성찰과 가능한 타협을 위한 노력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시민운동도 심판자의 대열에 가담하여 비판의 오케스트라를 한층 소란하게 했던 측면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정부는 정부 주도 하에 국민통합연석회의를 제안하면서 양극화 해소에 도전하려 했다. 그러나 신뢰성을 회복하지 못한 정부가 양극화 해소의 주역을 담당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시점에서 시민운동이 한번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운동전략의 전환이 아닌가 생각한다.
감시와 주창(advocacy)의 전략에서 융통성 있고 일관성 있는 다양성이 요구된다고 본다. 부패와 불의에 대한 용서없는 고발이 국민적 희망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국민이 국가의 법치주의를 신뢰할 때 가능한 것이고 최근의 흔들리는 법치제도 하에서 고발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은 급속도로 후퇴하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에 대한 성역없는 감시와 고발은 계속해야 한다. 하지만 또다른 방법도 생각해 내야 한다. 시민들이 점점 시민운동이 해결사가 아니라고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꺼져가는 희망의 불꽃을 다시 지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은 초심으로 돌아가 그동안 축적한 기득권을 양보하여 설득과 관용을 통한 국민적 대타협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전략적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해결해야 할 사회적 난제와 함께 참여연대에게 실존적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참여연대 식구를 모두 만나보지 못한 처지라, 참여연대 모두의 의견이라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대동소이 비슷한 심경일 것이다.
셋방살이 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예전에는 단칸방 신세에 아이들 셋만 거느려도 쫒겨나기 일쑤였다. 그런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사람, 그런 시절을 관심있게 지켜보지 않은 사람은 그 형편을 알리 없다.
이제 참여연대가 안국동의 보금자리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게 되었다. 이제 현실화된 임대료는 곧바로 회원들의 부담이 되고 말 것이다. 어렵게 어렵게 내주시는 회원들의 회비를 가장 유효하게 그리고 절약해서 쓰는 것은 관리자의 몫이다. 이것은 실존적인 문제이면서 가장 실제적인 과제다. 쉬운 문제일리 없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시간조차 넉넉치 못하다.
‘내집마련’하면 퍽 사치스럽게 들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내집마련은 참여연대 전체가 힘을 합하여 이룩해야 할 ‘2006년도 희망프로젝트’다. 결단코 우리 회원들과 그동안 우리를 지원해준 후원자들은 참여연대가 엄동설한에 길가에 버려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금위원회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그들을 힘껏 밀어주자. 이렇게 그야말로 참여연대답게 내집을 마련하자. 안국동을 달구었던 열정을 가지고 서울의 다른 한구석을 밝혀보자.
20년 후의 참여연대, 이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통일이 됐던 안됐던 시민사회운동은 계속 될 것이다. 그때의 운동가는 어떤 사람들일까. 운동의 내용이나 모양도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도 그들에게 필연코 요구되는 것은 전문성과 소명의식이다. 전문성과 소명의식이 조화될 때 성숙한 운동가가 태어난다. 이 전통은 계속 이어져야 할 것이고 이것이 올바르게 전승되지 못하면 그 운동은 변질되기 쉽다.
끝으로 운동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전문성을 강조하다 보면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하게 되기 쉽다. 참여연대 활동가들은 다시 각별히 참여연대의 전문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 바란다. 만약 이것이 소홀해지면 공동체가 훼손되기 마련이다. 각 부서간의 상관관계 속에서 상호간의 변증적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면 참여연대로서의 정체성이 근본적으로 훼손되기 때문이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곤한 삶을 계속 살아가는 상근자들, 날이 갈수록 혼돈에 빠져드는 그들의 전선, 그들이 이룩하는 가장 작은 승리의 순간에 우리 참여연대의 회원과 임원들은 시민과 함께 축배를 들고 축제를 열자. 2006년에도 참여연대가 우리사회의 희망을 만들어 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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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전략의 전환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시민운동은 초심으로 돌아가 그동안 축적한 기득권을 양보하여 설득과 관용을 통한 국민적 대타협을 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전략적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 무슨 뜻인지 알기 쉽게 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런일도 있을수 있을까 ?
평소 참여연대의활동과취지에 대하여 관심있게 지켜 보고있던 시민의한사람입니다.
참여연대와는 비슷한 시민을위한다는 화려한 슬로건을 내걸고 활동하는 "자선단체"의부족하고/시급한개선의 문제점을 말씀드리게 되어서 우선 심히 죄스러운 심정으로 이글을 드립니다.
이런일도 있을수있을까 ?
한 자선단체bs 에서 5인가족이 30년이상 살아온 살림살이(옷가지,혼수품,생활용품,,,)을 몽땅 싹 갖어갔읍니다. 강추위속에 씻고갈아입을 옷한가지 남기지않고,신발,겉옷도 없어 하루아침에 거지아닌 거지보다 더어려운 생활을 하고있읍니다,설상가상 어려워진가세에 당한일이라 참혹스러울정도입니다.가져간사람들의"기본적인양심기준"이이래가지고 시민/시회 운운할수있을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