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은 이 나라 최강의 ‘언터처블’이었다. 그는 <조선일보>와 노무현 대통령이 동시에 칭찬을 아끼지 않은 유일한 인물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서 노무현 대통령도 황우석을 최고의 과학자로 추켜세우는데 급급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보다 한술 더 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황금박쥐’이다. 황우석, 김병준, 박기영, 진대제의 네 사람이 황우석을 지원하기 위해 비공식 모임을 만들었는데, 네 사람의 성을 따서 이런 우스운 이름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주목해야 할 사람은 서울대 72학번 동기인 이해찬이다. 그는 황우석의 연구에 자신이 크게 이바지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도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이 총리는 2004년 8월 12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의 배아 줄기세포, 그게 바로 (교육부장관 시절 추진한) BK21프로젝트에서 나온 것”이라고 자랑했고, DJ도 이듬해 8월 8일 같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는 내가 BK21에 도움을 줬다고 하는데, 사실 그건 이해찬 당시 장관의 공이 더 크다”고 말한 바 있다. (<오마이뉴스> 2006년 1월 13일).

이밖에도 열린우리당의 ‘실세’인 정동영과 유시민은 황우석 사태가 전개되는 중에도 황우석에 관한 일방적 지지의 뜻을 대단히 강력하게 밝혔다. 특히 서울대 72학번 동기인 정동영은 무책임하게도 논문조작이 밝혀진 뒤에도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에도 황우석의 ‘광팬’들은 우글우글하다. 황우석을 ‘보배 중의 보배’라고 추겨세우고 황우석 논란을 이념대결로 몰고 가려고 한 박근혜, 황우석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악인’이라며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손학규, 비판에 신경쓰지 말고 연구에 전념하라고 한 이명박 등등. 참여정부나 열린우리당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한나라당이지만 황우석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것에서만큼은 열린우리당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참여정부나 열린우리당보다 더욱 강렬한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2005년 12월 6일, 여야를 아울러서 43명의 국회의원들이 ‘황우석 교수를 돕는 국회의원 모임’(가칭)의 결성을 발표했다. 이 모임은 황우석에 대해 정치권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었다. 황우석이 심각한 ‘연구윤리’ 위배의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나아가 ‘논문조작’의 의혹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런 모임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결국 이 모임은 윤리와 과학을 모두 저버리고 황우석을 택했던 것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를 지지하는 대중의 맹목적 열광을 택했던 것이다.

황우석을 지지한 정치인들의 태도는 개발독재를 통해 이 사회의 고질병으로 퍼진 결과주의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이 결과주의는 ‘난자 채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명백히 반여성적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이 잘못된 결과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펼친 논리는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국익론, 색깔론, 악인론이 그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색깔론이나 손학규의 악인론은 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저 두 사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을 뿐이다. 이에 비해 국익론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황우석은 이미 국익과 등치된 존재였으며, 정치인들은 이 환상에 편승하기 위해 발악했다.

오직 민주노동당만이 황우석 사태를 올바로 파악하고 있었다. 민주노동당은 황우석의 연구가 안고 있는 내적 문제를 지적하고 투명한 연구와 윤리적 연구를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안팎으로 크게 시달려야 했다. 민주노동당은 2005년 11월 28일에 황우석의 ‘연구윤리’ 위배에 관한 긴급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이에 대해 민족주의 성향의 당직자들과 당원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다. 민주노동당이 한국 정치의 체면을 살려주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대단히 위태롭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사실 황우석을 둘러싼 정치지형은 제도정치보다 시민정치에서 더욱 극적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른바 ‘황빠’와 ‘황까’, 또는 ‘친황’과 ‘반황’의 대립으로 이루어졌다. ‘황빠’ 또는 ‘친황’은 황우석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난치병 환자, 장애인, 그 가족, 그리고 ‘황우석 국익론자’로 이루어졌다. 2004년 6월에 개설된 다음카페 ‘아이러브 황우석’은 이들의 집결지이자 토론장이 되었다. 이 카페를 이용해서 윤태일이라는 사람의 ‘지휘’ 아래 황우석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집단행동이 조직되었다. 그들은 난치병 환자와 장애인 등의 절박한 처지를 바탕에 두고 PD수첩에 대해 극도로 맹목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여기서 황우석 사태는 ‘황우석 신드롬’을 넘어서 ‘황우석 파시즘’에 대한 우려로까지 커졌다. 과학에 대한 맹목적 기대가 종교적 열광을 거쳐 정치적 반동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과학의 타락이었다. 그러나 과학자로 기억되고 싶다던 황우석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이 반민주적일 뿐더로 명백히 반과학적인 행태에 대해 단 한마디의 주의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을 ‘교도’로 활용해서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자 하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행동했다.

황우석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그의 ‘원천기술’ 주장을 여전히 신봉한다. 그들은 ‘황우석을 지지하는 네티즌연대’, ‘황우석 연구재개 지원 국민연합’ 등의 ‘연대조직’을 꾸려서 황우석에게 다시 기회를 줄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황우석의 가장 큰 잘못은 줄기세포는 물론이고 원천기술도 없다는 것이다. 그의 ‘원천기술’ 주장은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종교적 교리'에 가깝다. 서울대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는 황우석이 ‘논문조작’을 넘어서 과학의 '종교적' 타락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생명공학은 인간을 제작하고 변형하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는 오래 전부터 생명공학을 감시하는 활동을 활발히 펼쳐왔다. 특히 생명공학감시연대는 황우석 사태의 전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황우석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의 거센 공격이 큰 문제였다. 그러나 인터넷을 활용한 젊은 과학도들의 과학적 열정은 황우석 사태의 돌파구를 열었다. 과학적 검증이 종교적 강론을 이겼다.

황우석 사태를 통해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위해서는 과학의 민주적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뚜렷이 확인되었다. 이제 과학민주화운동은 지식인 전반으로, 나아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어야 한다. 그것은 참된 선진사회를 향한 길이기도 하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2006/01/16 09:49 2006/01/1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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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지자 2006/01/16 17:07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원천기술 있다는데요
    서울대조사위에서도 배반포형성까지 원천기술은 인정한 부분인데
    아무것도 없고 종교적교리에 가깝다니요
    당신말이 거짓 종교적 교리에 더 가깝네요

  2. 지지자 2006/01/16 17:32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황우석박사 지지원인
    집안에 장애인이 있는것도 아니고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냥 평범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시민입니다
    방송에서 떠들던 말던 관심이 없던 제게 PD수첩은 관심을 가지게 해준 계기를 마련해 주었죠
    PD수첩내용은 공정해 보이지 않았고 한쪽으로 치우쳐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뒷배경을 생각하게 되었고 관심을 가지게 된거죠
    사실 아직도 황우석박사 지지자는 아닙니다
    단지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시민일 뿐이죠

  3. 희망새 2006/01/16 23:39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고집불통사람들
    80년말 화염병속에서 살았던사람입니다

    그네들의 열정과희생들에 감동먹고,,그네들의 고집불통,자기우월감,,에 정말 화닥질이

    나는줄알았습니다..우린 다 같은 한민족이잖아요,,사실인건인정하고,,비판은 비판대로,,

    못먹어도 고~~다..넘 징글징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