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프리즘> ‘증세논쟁’을 블랙홀로 만들지 않으려면
칼럼과 기고 :
2006/02/02 00:00
지금 시기 화두는 ‘증세’가 아닌 ‘양극화 해소’
증세논쟁이 한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신년연설에서 “일자리 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그리고 미래 대책을 제대로 해 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고 밝힌 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국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세금제도는 대단히 중요하다.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책임 있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보이고 있는 증세논쟁은 선후가 뒤바뀐 주제로 알맹이도 없으며, 다른 조세개혁과제에 대한 논의를 무력화시키는 논쟁인 것 같아 대단히 우려스럽다.
정부의 수입과 지출을 쉽게 이해하고자 흔히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대비하곤 한다. 그러나 정부와 가계는 수입과 지출을 고민함에 있어 차이가 있다. 가계는 마음먹은 대로 벌수가 없기에 자신이 번 수입을 기준으로 지출을 계획하게 된다. 영화관에 가고 싶어도 수입이 없으면 못하는 것이다. 반면 정부는 무엇에 쓸 것인지를 먼저 정하고 그 필요에 맞는 돈을 국민의 동의를 얻어 징수하는 것이 순리이다.
무엇에 쓸 것인가를 정하더라도 국민이 세금 납부에 동의하지 않으면 무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똑같지 않느냐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에 쓸 것인가를 정한 정책이 국민의 동의와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민이 정부가 입안한 정책에 동의와 지지를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기꺼이 돈을 낼만큼 사회공동체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고 인식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정책에 대한 동의와 지지는 진정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가계와 정부는 수입, 지출을 결정하기 위한 고민에 있어 선후의 차이가 있다. 이를 분명히 살펴 논의의 선후를 가져가야 마땅하다. 어디에 쓸 것인지 분명히 정하지 않으면 거두어 남는 세금은 낭비되는 돈이 된다.
지금 증세를 반대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은 세금을 통해 어떤 정책을 할 것인지를 모르는 국민이 많거나, 그 정책에 대해 국민이 동의하지 않거나, 그 정책이 지금 시기에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을 내서라도 꼭 실시해야 하는 정책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서 증세 논의만을 하는 것은 편가르기를 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재원마련에 대한 논의를 하기 이전에 우리사회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양극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양극화가 가져올 사회적 병폐가 무엇인지,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그 정책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실시할 것인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그 논의는 청와대나 정부관료 또는 학자들만의 논의로 그쳐서는 안된다. 국민의 상당수가 이를 자신과 자신의 가족, 친구의 문제로 여기고 그 해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임을 절감할 수 있도록 그 폭과 깊이를 넓히는 논의가 되어야 한다. 증세 논의에 많은 국민들이 화들짝 놀라는 것을 보면 아직 그러한 논의가 충분히 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증세 논의는 증세냐, 감세냐 라는 논의가 되면 알맹이가 없는 논쟁이 된다. 무슨 내용의 증세냐를 가지고 논의해야 한다. 어떤 국민은 부동산 보유세 인상이나, 상속세, 증여세 포괄주의의 도입조차도 증세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는 재원마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제도의 투명성, 형평성을 위해 개선이 필요했던 정책이다.
재원마련을 위한 증세 논의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 수 국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소득세, 법인세 또는 부가가치세 세율 인상이나 저출산세와 같이 새로운 목적세를 신설하는 것을 내용으로 해야 한다. 그것이 재원마련을 위한 진정한 증세 논의이다.
그러지 않으면 증세, 감세의 단순 구도는 모든 조세 개혁과제를 빨아들여 무력화시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다. 간이과세제도 폐지 또는 축소,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과세대상기준금액 완화 등은 지금 당장이라도 개선해야 할 과제이다.
위 정책은 재원마련을 위한 목적보다는 조세의 투명성이나 형평성 제고를 위해 필요한 정책들이다, 오래전부터 개선 필요성이 제기된 정책이다. 그러나 이 논의마저 증세, 감세의 논의 구도에 빨려 들어가 그 정책은 증세이니까 안된다 라는 잘못된 논의를 가져올 수 있다. 세수 확대 여부를 떠나 간이과세제도 폐지, 금융소득종합과세의 과세대상기준 금액의 완화는 투명성과 형평성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정책이다. 투명성, 형평성 있는 조세제도가 기반이 되어야 소득에 따라 형평에 맞게 부담할 수 있는 증세 논의도 쉬워질 것이다.
정부의 저출산, 사회안전망 개혁방안인 ‘희망한국 21’ 정책을 보면 올해부터 2010년까지 총 30.5조원 규모의 재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 중 20조원은 이미 국가재정운용계획에 포함되어 있다. 문제는 5년간 추가재원 10.5조원의 마련인데, 연간 평균으로 약 2.1조원의 마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이 정도의 추가재원 마련이라면 증세 논의를 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세특례제한법을 통해 정부가 조세감면을 해 준 것이 2005년 기준으로 약 20조원에 이른다. 이러한 조세감면제도의 정비만으로 연간 약 2조원의 재원마련은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무분별한 조세감면제도의 남발은 조세형평성을 저해하고, 과세기반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자원 왜곡마저 가져온다. 세수 확대 문제를 떠나서라도 조세형평성을 위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렇게 현 제도의 개선만으로 ‘희망한국 21’ 재원마련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증세 논의는 조금 더 있다가 이루어질 논쟁 주제이다. 지금은 증세 논의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된 양극화 현상, 그 원인,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한 논의에 더 천착하여야 한다. 국민들 다수가 동의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책을 계획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논의가 진지하게 무르익고 국민들 상당수가 그 문제의 시급성을 인식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재원마련의 문제로, 그리고 필요하다면 증세에 대해서도 기꺼이 동의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기 우리의 화두는 “증세”가 아니라 “양극화 해소”가 되어야 한다.
* 이 칼럼은 <시민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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