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인혁당 판결과 새만금 판결
칼럼과 기고/홍성태칼럼 :
2006/03/20 20:17
2006년 3월 20일, 오늘은 부시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지 만 3년이 되는 날이다. 부시의 ‘한심한 전쟁’ 때문에 수많은 이라크인들은 물론이고 미국인들도 고통을 받고 있다. 권력의 무서움을 새삼 깨닫게 된다. 아무리 민주주의라고 해도 권력을 쥔 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권력은 무섭다.
다시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오늘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날이다. 무도한 권력이 저지른 ‘사법살인’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재판이 오늘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74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을 조작해서 국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 넣으려고 했다. 1975년 4월 8일, 박정희 정권은 8명을 사형에 처했다.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의 살인극을 법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구실을 했다. 인혁당 피고인의 죽음은 한국 사법부의 죽음이었다.
새만금 판결을 보면서 나는 인혁당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8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은 바로 대법원이었다. 대법원이 박정희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기에 8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부모, 형제, 친구, 자식들을 뒤로 한 채 머나먼 저승으로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야 이 명백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길이 열렸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심한 일이 새만금 판결에서 되풀이되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려고 이러는가?
대법원은 ‘사법정의’를 상징한다. 신을 대신해서 정의를 세우는 것이 사법부이고, 대법원은 바로 이러한 사법부를 대표하는 것이다. 대법원이 정의에 대한 당연한 기대를 저버린다면, 나라의 기틀은 무너지고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쌓일 수가 없게 된다. 2006년 3월 16일, 대법원이 새만금간척사업에 관해 내린 판결은 한국의 민주화와 사법부의 책임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인혁당 죽이기 판결’의 연속선에서만 옳게 이해될 수 있는 ‘새만금 죽이기 판결’이었다.
인혁당 사건이 재심을 받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박정희 정권이 고문을 통해 조작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의 요구대로 ‘사형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대법원은 정의의 여신을 버리고 박정희를 택했던 것이다. 새만금 판결은 어떤가? 경제성과 환경성에 관한 여러 조사가 이미 사실을 잘 보여주었건만 대법원은 새만금을 죽여야 한다는 세력의 손을 들어줬다. 다시금 정의를 버리고 정치를 택한 것이다. 대법원은 토건국가와 지역주의의 정치적 요구에 굴복해 버렸다.
암담하다. 그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천혜의 새만금갯벌이 영영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마어마한 자연자원을 국가가 나서서 없애다니, 과연 이 나라에 희망이 있는가? 서해의 해수 흐름 자체가 크게 변할 것이고, 새만금호가 썩으면서 주변 바다가 크게 오염될 것이며, 결국 유례없는 갯벌의 파괴와 바다의 파괴가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둘째, 이런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와 기구들이 잘 마련되어 있으나 결국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토건국가와 지역주의가 모든 것의 위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시 태어나겠노라는 대법원에게 한가닥 희망을 걸었으나, 대법원은 낡은 시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96년 봄에 시화호의 오염문제가 불거지면서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졌다. 시화호의 재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재앙이 새만금갯벌과 그 일대에 몰아닥칠 것이다. 10년 전의 경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재앙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셈이다. 다수의견 대법관들 중의 4인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사정변경이 발생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파렴치한 보충의견을 내놓았다. 이른바 ‘면피용 발언’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속지 않는다. 역사는 새만금의 재앙이 ‘새만금 죽이기 판결’을 내린 11명 대법관의 책임이라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기록할 것이다.
뭇생명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이다. 나무는 새 잎을 틔우고 대지는 파릇파릇한 새싹들도 뒤덮일 것이다. 강이며 바다도 이미 새생명의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 새만금갯벌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31년 전의 인혁당 사건 때처럼 대법원은 잘못된 근거를 들이밀며 ‘죽이기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이 봄을 맞는 마음은, 처참하다.
다시 국내로 눈을 돌려보면, 오늘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날이다. 무도한 권력이 저지른 ‘사법살인’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재판이 오늘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974년, 박정희의 유신독재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거세지자 박정희 정권은 제2차 인민혁명당 사건을 조작해서 국민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 넣으려고 했다. 1975년 4월 8일, 박정희 정권은 8명을 사형에 처했다.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의 살인극을 법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구실을 했다. 인혁당 피고인의 죽음은 한국 사법부의 죽음이었다.
새만금 판결을 보면서 나는 인혁당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8명의 무고한 시민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은 바로 대법원이었다. 대법원이 박정희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기에 8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부모, 형제, 친구, 자식들을 뒤로 한 채 머나먼 저승으로 떠나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서야 이 명백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길이 열렸다. 돌이켜 보면,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심한 일이 새만금 판결에서 되풀이되었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려고 이러는가?
대법원은 ‘사법정의’를 상징한다. 신을 대신해서 정의를 세우는 것이 사법부이고, 대법원은 바로 이러한 사법부를 대표하는 것이다. 대법원이 정의에 대한 당연한 기대를 저버린다면, 나라의 기틀은 무너지고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은 쌓일 수가 없게 된다. 2006년 3월 16일, 대법원이 새만금간척사업에 관해 내린 판결은 한국의 민주화와 사법부의 책임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저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인혁당 죽이기 판결’의 연속선에서만 옳게 이해될 수 있는 ‘새만금 죽이기 판결’이었다.
인혁당 사건이 재심을 받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박정희 정권이 고문을 통해 조작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의 요구대로 ‘사형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대법원은 정의의 여신을 버리고 박정희를 택했던 것이다. 새만금 판결은 어떤가? 경제성과 환경성에 관한 여러 조사가 이미 사실을 잘 보여주었건만 대법원은 새만금을 죽여야 한다는 세력의 손을 들어줬다. 다시금 정의를 버리고 정치를 택한 것이다. 대법원은 토건국가와 지역주의의 정치적 요구에 굴복해 버렸다.
암담하다. 그 이유는 두가지이다. 첫째, 세계적인 자랑거리인 천혜의 새만금갯벌이 영영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마어마한 자연자원을 국가가 나서서 없애다니, 과연 이 나라에 희망이 있는가? 서해의 해수 흐름 자체가 크게 변할 것이고, 새만금호가 썩으면서 주변 바다가 크게 오염될 것이며, 결국 유례없는 갯벌의 파괴와 바다의 파괴가 동시에 진행될 것이다. 둘째, 이런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와 기구들이 잘 마련되어 있으나 결국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토건국가와 지역주의가 모든 것의 위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시 태어나겠노라는 대법원에게 한가닥 희망을 걸었으나, 대법원은 낡은 시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96년 봄에 시화호의 오염문제가 불거지면서 새만금간척사업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커졌다. 시화호의 재앙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마어마한 재앙이 새만금갯벌과 그 일대에 몰아닥칠 것이다. 10년 전의 경고를 완전히 무시하고 재앙을 향해 치달리고 있는 셈이다. 다수의견 대법관들 중의 4인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 사정변경이 발생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파렴치한 보충의견을 내놓았다. 이른바 ‘면피용 발언’인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속지 않는다. 역사는 새만금의 재앙이 ‘새만금 죽이기 판결’을 내린 11명 대법관의 책임이라는 것을 명명백백하게 기록할 것이다.
뭇생명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봄이다. 나무는 새 잎을 틔우고 대지는 파릇파릇한 새싹들도 뒤덮일 것이다. 강이며 바다도 이미 새생명의 움직임으로 부산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 새만금갯벌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31년 전의 인혁당 사건 때처럼 대법원은 잘못된 근거를 들이밀며 ‘죽이기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이 봄을 맞는 마음은, 처참하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